'게이머'의 특징 중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 모두 사이에, 점조직처럼 숨어 있다는 겁니다. 게이머의 수는 대단히 많습니다. 인기 많은 온라인 게임의 경우, 동접자 수가 많게는 수십만 명까지 나오곤 합니다. 그런 게임이 여럿 있으며, 그 외에 다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도 상당히 많죠. 대충 100만이 넘는 게이머가 있다고 할 경우, 전 국민으로 치면, 50명 중 한 명 꼴로 게임을 즐긴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찾기는 어려워요. 왜냐구요?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이머라고 말을 잘 안 하거든요. 물론 가끔 "나는 게임을 좋아하고, 아주 많이 한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이들을 만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게이머는, "그냥 취미 삼아 가끔 해요."라고 말합니다. 아직 게임을 한다는 말은, 국내 정서상 부정적으로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게이머들은,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이나 공인 중에도 여럿 존재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너그러워졌고, 이제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 이들도 있거든요. 가볍게 예를 들면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굉장히 사랑하는 가수 김건모나 이소라, 개그맨 유민상을 꼽을 수 있겠네요. 그 외에도 출연료 대신 칼을 받아간 그룹 캔의 배기성도 꼽을 수 있고요.

오늘 만난 이도 '게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연예인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직업이 연예인임과 동시에 게이머라고 당당히 밝힌 그 사람. 바로 개그맨 김기열입니다.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히어로즈오브더스톰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즐기고 있는 개그맨 김기열. 봄비로 촉촉이 젖어든 여의도 KBS에서, 평소와는 다른 주제로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그가 나오는 개그 프로도, 그의 사생활도, 방송 생활도 아니에요. 그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많은 분이 아실 테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들도 계실 수 있어요. 인터뷰에 앞서, 짧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개그콘서트에서 '핵존심' 코너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김기열입니다. 직업은 개그맨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또 하나의 직업을 '게이머'라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게임을 즐기는 유저이기도 합니다. 인벤은 제가 포탈 사이트 다음으로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다 보니, 새삼 여러분과 만나는게 반갑게 느껴집니다.


김기열씨가 게임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전부터 유명했어요. 왜 '김기열배 스타리그'도 열었던 적이 있잖아요. 게임은 어떻게 접하게 되었고, 언제부터 즐기게 되신 거죠?

사실 전 천재였어요(...?). 오락실 신동이었거든요. 아니 잠깐, 오락실 신동이란 말 누구나 다 하는데, 전 증거가 명확히 있어요. 당시 삼성전자에서 개최했던 게임 대회가 있었는데, 거기 나가서 처음 해본 게임으로 6위를 했어요. 대단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미리 게임팩 사서 해보고 온단 말이에요.

근데 전 처음 나가서 6등을 했단 말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뭐더라...게임 이름이 날아라 거북선(조사 결과 정확한 게임명은 '우주 거북선'이었습니다.)이었나? 하여튼 그럴거에요.

▲ 스페이스 터틀쉽!


그리고 나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알고 말았어요. 동시에 성적이 수직 하락했죠. 사실 그보다 더 열심히 즐긴 게임은 '레인보우 식스'에요. 당시 1:1 래더 랭킹이 1위였고, 프로 제의까지 받았었죠. '레인보우 식스'만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대단하네요.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시는건 누구라도 알 것 같아요. 근데 방향을 틀어 개그맨이 된 이유가 뭔가요?

일단 개그맨도 제가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꿈이었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게이머'라는 직업이 제가 어렸을 때는 없었어요. 개그맨이 되기까지도 다양한 일이 있었어요. 그 전부터 웃기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고, 군대에서도 훈련 이런거로 한번도 못받은 포상 휴가를 장기자랑으로만 세번을 받았어요.

군생활 시절, 부대에 방송국이 방문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개그로 1등을 하고 방송 관계자분들이 개그맨이 되기를 권유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얻어 개그맨이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죠.

▲ 본디 꿈은 '개그맨'이었다고


Q. 지금 현재, 가장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은 뭐죠?

'히어로즈오브더스톰(이하 히어로즈)'이요. 오늘 아침에도 플레이하고 왔어요. 지금까지 1500판정도 플레이한것 같아요. 그 외에도 스타크래프트2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전적을 세어 보니까 7500판가량 했더라고요.

히어로즈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전 이 게임이 잘될 것 같다고 느끼는게, 제가 게임을 지금까지 하면서 이렇게 사람을 열받게 하는 게임을 본 적이 없어요. 다른 게임을 하다가도 지면 열이 받긴 하는데, 이건 진짜 최고에요. 사람을 계속 하게 만들어요.

아니 왜 5픽인데 힐을 안해요. 없으면 말을 해야지. 말을 하면 차라리 제가 하잖아요. 그래놓고 이상한거 골라서 던지고 아오...

▲ 힐러 없으면 말을 해주세요!


동료 개그맨 중에도 같이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 계신가요?

물론이죠. 스타크래프트2는 권재관씨랑 김영민씨가 같이 자주 해요. 히어로즈는 저랑 같이 핵존심 코너 하는 정해철 씨랑 양선일 씨가 주로 하는데, 사실 제가 제일 잘해요.


다른 분들은 잘 못하나요?

아니 그 사람들은 게임을 대하는 자세가 개그맨이에요. 왜 게임 하시는 분들은 다 알잖아요. 게임 보면 감 딱 오는 거.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이런 거 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게 안 돼요. 난 게이머라 되는데.


그럼 같이 게임을 하면서 화도 내고 하시겠네요?

혼자 하면 화낼 일이 없죠. 그냥 속으로 썩이고 마는데, 같이 PC방 가서 게임을 하면 제가 좀 시끄럽긴 해요. 왜 못하냐고 소리도 가끔 지르고…. 뭐 가끔이에요. 가끔.

어딜 가나 게이머는 다 똑같네요. 히어로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 같아요. 히어로즈라는 게임 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등급 업이 너무 힘들어요. 10급까진 어떻게 올라가겠는데, 그 이후로는 파티 짜서 음성 채팅하면서 해야지 안 그러면 못 올라가겠더라고요.

맞다. 영웅 고르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건 좀 고쳐야 할 것 같아요. 30초 동안 고르고, 교차로 또 고르고…. 그러다 보면 한판 하는데 준비 시간이 너무 길어요. 가끔 보면 게임 시작했는데 넋 놓고 있는 사람들 많거든요. 그게 다 준비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런 것 같아요.

긴장감이 없어요. 긴장감이! 게임 시작하고 우르르 몰려가는데 한 명이 안 와요.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면 기다리다 담배 피우러 갔대요. 이게 말이 됩니까? 전 전화도 안받는데…. 더 긴장감 있게 해야 해요.

인벤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히어로즈 방송도 잘 챙겨보는 편이에요. 신정민 해설 방송도 잘 보고 있고, 고수분들 나와서 플레이하는 것도 가끔 봐요.

▲ 영웅 선택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거 아닙니까?


그럼 다음에 인벤방송국 한번 오셔서 이벤트 매치라도 하실 의향이 있나요.

어…. 음 그게 있죠. 요즘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지금 8연패 하고 와서, 뭘 해도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전에 그분들하고 같이 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전 1,500판가량 했는데 그분은 2,800판을 하셨어요. '나 말고도 저렇게 독하게 하는 사람이 있구나...'해서 직업을 물어보니까 학교 선생님이시래요. 애들 가르쳐준다고 게임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그분하고 둘이 같이 껴서 다섯이서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점점 말이 없어지시더라고요. 제가 말했거든요. '저희 때문에 지는 것 같아요.'라고요. 그러니까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말은 하시는데 점점 말이 없어지시다가 어느 순간 나가시더라고요(웃음). 실력 보면서 굉장히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Q. 히어로즈만큼 애정을 보이시는 게임이 스타크래프트2인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좀 해보죠.

스타크래프트2. 진짜 많이 했어요. 다이아몬드 1티어에 있기도 하고, 앞에서 말했듯 7500판 정도 플레이했어요. 저랑 비슷한 분이 한 분 더 계세요. 시인 하상욱 씨라고 세줄 시 이런 거 많이 쓰시는 분인데, 이분도 5,000판 넘게 하셨을 거에요.

스타크래프트2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요. 밸런스 문제는 항상 있는 건데, 사실 밸런스 패치 주기가 너무 잦다고 생각해요. 뭐만 하면 DK 찾고 하잖아요. 그런 거 좀 별로예요. 스타크래프트 1 때는 패치로 인한 밸런스보단, 전략의 우위가 승리를 얻는 방법이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A 선수가 기발한 방법으로 약소 종족임에도 이기면, 다음에는 B 선수가 그걸 깨기 위한 새 전략을 가져오고, 또 A 선수가 그 전략을 깰 새로운 전략을 내놓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극적인 전개가 펼쳐졌던 것 같은데, 지금 스타크래프트2는 패치에 너무 민감해요. 그러다 보니 우승자가 우승자 같지가 않아요.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가도 금방 내려오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이가 금방 채가고 하죠.

'와. 이 선수는 진짜 최고구나' 했던 선수도 꽤 돼요. 이신형 선수도 있고, 김유진 선수, 원이삭 선수, 정윤종 선수도 다 좋아해요. 근데 전성기가 오래가질 않더라고요. 김유진 선수가 IEM 시즌8 월드챔피언십에서 1억 원 딱 탔을 때가 진짜 극적이었는데 지금은 오르락내리락...

▲ 1등 1억 원, 2등 0원이었던 IEM 8의 우승자 김유진


스타크래프트2 관계자 중 친한 분들은 누가 있나요?

전태양 선수랑 아주 친해요. 예전에는 2:2로 게임도 많이 했어요. 요즘 전태양 선수 기량이 조금 떨어진 것 같은데, 그게 다 저랑 2:2를 하지 않아서 그래요.

제가 다이아몬드 1이고, 전태양선수가 그랜드마스터잖아요. 그럼 2:2를 하면 상대가 마스터 티어 정도에서 잡힌단 말이죠? 그렇게 되면 사실 제가 할 게 별로 없어요. 거기서 제일 못하니까요. 그럼 전태양선수가 혼자 2인분 해서 이기곤 했단 말이죠. 혼자 두 명을 상대해도 이길 수 있는 선수였는데, 요즘엔 그 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에요. 아마 저랑 계속했으면 지금쯤 더 잘나갔을텐데...

스포티비에서 방송하는 고인규 해설하고도 잘 알고 지내요.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해설을 그렇게 하면서도 그랜드마스터 티어를 유지하고 있고, 팀 리그도 엄청 열심히 해요. 아마 제 생각엔 해설하는 시간 빼고 남는 시간에 게임만 하고 살 거에요. 예전에는 좀 힘들어했던 시절도 있었죠. 그땐 멘트 치는 것도 저한테 물어보고 했는데, 이제는 너무 잘해요. 예전에 잘 못할 때는 욕을 하도 먹어서 SNS도 다 끊었었는데…. 이젠 좀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응원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 일할 때 빼면 게임만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규 해설


사실 아직 '게임'을 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남아 있긴 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타깝죠. 게임산업의 규모 자체가 큰데, 그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전 게임을 한다고 솔직하게 다 얘기를 해요. 생각해보면 똑같거든요. '난 축구를 자주 한다', '등산을 자주 한다', '영화를 자주 본다' 이런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죠. 근데 개그를 하다 보면, 게임을 많이 한다는 게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해요. 안타까울 뿐이죠.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전국 체전 종목에도 게임이 들어가고 하는 걸 보면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게 보인다는 거에요.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진다면, 언젠가는 인식이 변할 날이 오겠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벤을 이용하는 게이머 분들께 한마디 남겨주셨으면 해요.

저한테도 굉장히 즐거운 인터뷰였어요. 사실 요즘은 인터뷰를 잘 하지 않아요. 항상 코너 짜는 이야기, 개그 관련 이야기만 하다 보니,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인터뷰 제의가 왔을 때 정말 즐겁게 응할 수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잖아요. 게임을 소재로 이렇게 이야기할 일이 지금껏 없었죠.

인벤은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곤 하는 곳이에요. 가끔은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이르고 싶어 가기도 하고요(웃음). 그때마다, 인벤을 하시는 분 중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 어디보다도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직접 공수해서 올려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예전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한 적이 있어요. 당시 확장팩이 새로 발매되어 서버가 미어터질 때였는데, 바로 다음 날이 되니까 퀘스트 동선하고 공략법이 다 올라오더라고요. 그 가혹한 환경에서도 내용을 모두 정리해서 올릴 정도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인벤에서 활동해주시는 모든 게이머 분들이, 게임을 진정 사랑하고 즐기는 게임계의 능력자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저도 즐겁게 게임을 즐기고, 여러분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