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이가 강습을 한다고?

프로의 목록에 지안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동훈이는 생각에 잠겼다. 여기에서 만약 지안이와 강습을 하게 된다면 중학교 때 못 이뤘던 첫사랑이라는 지안이와 같이 볼링을 함께

치면서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보면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다고. 아까 지안이의 얼굴을 보니 옛 생각의 장면 하나하나가 뇌리를 불현듯이 스쳐 지나갔다

그 짜릿했던 첫사랑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그녀를 제외하면 나를 미쳐버릴 정도로 가슴 뛰게 하는 여자는 있긴 있었지만 그 이후로 별로 없었다. 그리고 졸업식날 꽃 몇 송이 사다가 지안이에게

주기로 마음먹던 날 전해주지 못하고 나서 집에서와 혼자 서럽게 울던 것도 기억난다. 정말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 눈물이 흠뻑 젖을 정도로 슬펐다 후회됐다. 남자에게는

짝사랑은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에 하나 아니던가 사귀냐 마냐 친하게라도 지내냐 마냐 마음이라도 전하냐 마냐 차이느냐 안 차이느냐 이런 것에

여성에 대한 시각이 심각하게 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동훈은 옛날부터 생각했다. 일종의 트라우마랄까. 그래서 동훈은 이 첫사랑이 졸업식 이후 뜸해지자 한 가지 결심을 한 걸로 기억이 난다

꼭 이다음에 내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여자는 내 여자로 만들자 여자친구로 만들자. 그런 다짐을 하며 그 프레임에 갇혀 며칠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것은 중대한 사건이었고

동훈에겐 뼈아픈 인생의 실책이자 실수였다. 그 이후로는 고등학교 때부터는 지안의 사건을 계기로 여자들과도 잘 지내려 하고 여자친구도 만들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동훈이에겐 지안은

실패한 첫사랑이자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인생 전체에서 보면은 후회할 짓은 절대 하지 말자는 크나큰 교훈을 이 여자를 통해서 얻은 것도 있어서 동훈에겐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지안의 외모도 빠질 수 없다 방금 본 지안의 모습은 화장기가 있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얼굴이 좀 변한감은 있었지만 너무나도 동훈에겐 괜찮아 보였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꼬리 끝 밑점

큰 눈망울 쌍꺼풀 하얀 피부 거기다가 이제 서른 중반 정도 되는 성숙한 자태가 물씬 피어났다. 아까 태리한테 물어보니 태리와 지안은 결혼도 안 했다고 했다. 동년의 결혼한 여자들에겐 풍기지 않는

그런 아가씨 같은 느낌이 물씬 피어나있었다. 그리고 얼굴이 동안이라 중반이지만 초반 같은 외모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말을 해야 하나 거절하면 어쩌지 흠 옛날처럼 실수하고 싶지 않아... 그냥 밀어붙이는 거다 그리고 내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 건지 파악도 못한 상황인데 그냥 볼링이나 배우려고

왔겠거니 하겠지'

그렇게 마음먹은 동훈은 거기에 적혀져 있는 지안이 번호를 저장하고 문자를 했다

-지안아 동훈인데 강습 받으러 카운터 왔더니 너도 강습하더라-

-동훈이구나 볼링 배우려고?-

-응 이왕이면 동창한테 배우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연락 한번 해봤어-

-아 그렇구나 그럼 나야 좋지 친구끼리 배우니까 그럼 강습료를 카운터에 내고 나랑 스케줄은 잡으면 되는데 내가 매주 일요일 2시부터 5시 까지가 비워 저 있는데-

-아 그렇구나 그럼 그 시간에 잡아줘-

-알겠어

문자메시지는 내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는 톤의 대화였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보면 첫 문자인데 어떻게 그 이상 갈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동훈이는 시간이 비워져있다는 것에

일단 안도를 했다 드디어 첫사랑과 볼링을 다시 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내심 기대했다. 그럼 이제 지안이의 강습 건은 해결됐고 태리한테나 가서 볼링이나 배우자

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볼링과 마주할 수 있다. 취미와 여자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조금 남자의 야수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다 이렇지 않은가 원래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거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안과의 첫사랑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쪽의 생각도 있었다. 그 좋은 기억 생각만 하면 좋기만 한 기억을 단지 지금의 느낌이 좋다고 들이대다 실패해버리면

내한 편의 소중한 기억이 이상한 색으로 변색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또 후회할 것만 같았다 20년 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