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이 게임을 어떻게 비벼갈지 너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이라 하기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글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같은 일부 유저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적어본다

 

 

 

비슷한 실력을 기준으로 봤을때

정글로 플레이 하면

아무래도 다른 포지션보다 게임 돌아가는 판도를 더 잘 볼 수 있기 마련이다.

 

정글러로써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그럴 것이다. 

정글링을 할때도, 이동하는 중에도, 심지어 싸우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미니맵과 각 라인의 화면을 직접 보면서

각 라인의 상태, 아군-적군의 움직임을 포함한 전체적인 상황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모든 포지션에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비슷한 실력이라면

정글러가 가장 유리한 부분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다.

이토록 많은 정보가 들어오다보니

정글러는 쉽게 '예측' 해버리곤 한다.

 

예측이라는 것은 정글러로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픽창, 로딩창에서부터 

우리는 픽을 보면서 예상하고 또 계획하기 시작한다.


이 상성은 무난히 중후반 가면 질 수가 없겠네

이거 라인전에서 최대한 터뜨려야겠다

탑 초반부터 엄청 싸우겠네 최대한 빨리 가줘야겠다. 2:2도 유리하다.

봇은 커버하는 식으로 해야겠네

여긴 어떻게든 받아먹고 다이브만 안당하게 봐줘야겠다.

상대 정글만 찾아주면 알아서 이기겠네. 

저기 원딜만 망치면 우리가 질 수가 없겠다.

탑 집요하게 파서 게임 쉽게 만들 수 있겠네.


라이너가 맞라인 상대를 어떻게 조질지 생각하는 동안 정글러란 놈들은 저런 생각을 한다.

게임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라인에서는 

정글러에 비해 전체 맵을 파악하고 계획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라이너 입장에서는 나를 죽이려하는 내가 죽여야 하는 웬수가 눈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놈이 코 앞에서 cs를 먹고 있고 나를 때리려고 슬금슬금 간을 보고 있는게 느껴진다.

잠시 눈을 돌리면 저 웬수같은 야스오가 칼을 한 번 휘두르고 빠져나갈지 모른다.

저 놈보다 덜 때리는 것도 싫고, 저 놈이 나보다 더 cs를 먹는 것도 싫다.

칼질과 스킬이 한 번 오간다. 동시에 대포 막타!!!

 

이런 상황에서 정글러보다 맵 전체의 상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까? 

 

낮은 티어에서는 라이너들이 상대 정글을 의식하고 아군 정글의 위치를 확인하며 플레이 해주면

그 정도로도 감사할 노릇이다.

 

각자 자기 라인에 관해서는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지언정 

정글만큼 전체 판도를 파악하는건 힘든 일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서포터도 정글만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렇게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훌륭한 정글러는 게임을 잘 풀어나갈 것이다.

한쪽이 손해를 봐도 다른 쪽에서 그것을 메꾸고

어떻게든 이득 볼 수 있는 요소를 찾고,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 변수를 만들고 게임을 굴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함정에 빠져있는 정글러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여러 곳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전체를 파악하기 쉽다 보니

아군의 실수나 이해하기 힘든 플레이 역시 쉽게 목격해버리고 만다. 


'와 탑 1렙 딜교하는거 봐라 노답이네'

'봇 xx들아 내가 반대 사이드에 있을땐 싸움 걸지좀 말라고'

'아 미드 cs 너무 밀리네 유리한 상성인데 왜케 발리지. 미드 실력차 좀 심하네'

'아 봇이 사리면서 파밍만 해주면 그냥 쉽게 이기는 게임인데 그걸 모르냐??'

'이거 용 치면 먹을수는 있어도 결국 손해인데. 라인 박히고 타워 밀리는데 이걸 억지로 하네ㅠㅠ'

'아니 상대 정글이 방금 용 앞에 보였는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미드 갱에 당해? 핑도 찍어줬는데??'...

'저런걸 못 보나??!!ㅡㅡ 수준 진짜!'


나아가 팀원들의 수준을 쉽게 결정해버리고 게임의 결과마저도 혼자 단정해버리기도 한다.

자기가 쉽게 보는걸 팀원들이 못보니 쉽게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상황을 예측하는걸 넘어서서 실력을 단정짓고 결과를 예단해버린다. 

 

 

 

 

그러다보니 정글러는 스스로 멘탈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이는 흔히 탑이 1:1(혹은 1:2)에서 밀려 아군 정글에 분노하며 멘탈이 나가거나

잘 싸우던 봇이 위가 터지며 잉여가 되고 멘탈이 나가는 것과 조금 다른 케이스다.

 

굳이 아군으로부터 정글 탓을 당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보고 목격한 것만으로 스스로 흔들리고 좌절하며

머리속에 패배의 그림이 그려져버리는 정글러 특유의 멘탈 나감이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스스로 확실히 하고 싶다. 

 

 

그건 정글러의 수준이다.

나의 수준이다. 저 멘탈 나감은 정글러가 잘 걸리는 이겨내야 할 병이다.

 

간혹 보이는 탑의 병자들

버티기만 해도 쉽게 이길 게임을 자기 1:1 못이긴다고 악을 바락바락 지르고

그 시간에 미드, 봇에서 다 갱을 성공한 아군 정글의 어머니를 찾으며

멘탈이 나가는 탑이 있다면 그것이 탑의 수준이듯이

 

이 역시 정글러의 수준인 것이다.

 

내가 더 잘해서 남들 실수가 보이는게 아니다.

내가 더 잘해서 아군이 못 보는걸 보는게 아니다.

그게 보이는건 단지 내가 남들보다 맵을 더 볼 수 있고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는 정글러라는 포지션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정보를 아군에게 미리 알려주되 아군이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그래서 손해를 본다 해도

나는 그것을 욕하고 탓하고 수준을 논하며 패배를 떠올리기 전에

다음 이득을 생각해 나가야 한다.

 

그걸 통해서 어떻게든 이득을 만들어 나가는게 니가 할 일이다.

니가 본 불리한 상황을 (그게 심지어 정확한 것이라 해도) "이거 탑미드 다 수준차이 나고 개불리해요 못이겨요"

라고 정확히 말하는 것은 정글러로써 가치가 없다.

 

니가 불리하다고 파악한 정보가 정확하다 해도 넌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이길 수 있어요 이걸로 이득봐요" 

승리를 원한다면 이게 정글러가 할 말이고 할 일이다.

 

왜냐하면

니가 정글러랍시고 아무리 남들보다 더 많은 걸 보고

아무리 정교하게 게임을 예측한다고 해도

사실 10명이 어떻게 게임을 비벼갈지 너는 절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1년 전쯤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오늘 인상적인 게임을 하나 하면서 다시 떠오른 말이 있다.

아마 도파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결과 예측하는 짓좀 하지마

특히 정글하는 애들이 많이 그러는데 제발 예측좀 하지마

10명이 게임을 어떻게 비벼나갈지 너는 절대로 알수가 없어!!"

 

당연한 말이지만 막상 게임을 하면 잊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나도 오늘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정확한 예측도 비관이 아닌 이득으로 만들어나갈 때만 그 가치가 있다

 

더 가치있는 정글러가 됩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