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소아테르스의 결말

by 매튜 던


극작가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쓴 타놀드는 연극이 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배우들은 무대 공포증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극본 때문인지, 죽은 작가의 미완성 작품을 공연하는 것에 대한 미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모든 배우가 하나같이 아마추어라도 된 듯 어설프게 행동했다.

철학자 역할을 맡은 아틀로는 계속해서 죽어 가는 연기만 했다. 양과 늑대로 알려진 한 쌍의 섬뜩한 영혼 옆에서 말없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연기를 할 때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오랫동안 숨을 꺽꺽거렸다. 이번에는 네니가 어찌나 크게 웃음을 터뜨렸는지 쓰고 있던 양 가면이 벗겨졌을 정도였다. 가면은 쩍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에밀은 늑대 가면을 벗었다. 날카롭고 들쭉날쭉한 가장자리에 턱살을 심하게 쓸린 에밀이 통증에 움찔거렸다. 타놀드는 에밀이 또다시 약을 바르겠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만!" 타놀드가 말했다.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었다. 무언극 전용 원형 극장은 입장료를 반만 내고 처마에서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아주 작은 한숨 소리까지 또렷이 전달될 정도로 울림이 뛰어났다.

성주의 언덕 위 성채 근처에 있는 이 오래된 극장에서는 어두운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늘처럼 연회가 열리는 밤이 되면 거나하게 취한 귀족들이 무언극을 감상하기 위해 성주의 저택에서 내려오곤 했다. 술에 취해 불만을 표출하는 귀족 관객은 연극을 망쳐서 당하는 굴욕보다 더 끔찍했다.

배우들은 자세를 풀고 고개를 돌려 타놀드를 바라봤다.

타놀드는 손가락으로 콧등을 문지른 후 무대 옆을 쳐다봤다. 정갈한 검은색 옷을 입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돌로 된 층계에 기대어 있었다.

"두아르테." 타놀드가 옷을 잘 차려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줘."

두아르테는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신호할 때까지 관객을 붙들어 두지."

"설령 레이디 에르힌이 병환을 떨치고 일어나서 연극을 보겠다고 하더라도 절대 방해하면 안 돼. 이제 거의 막바지야, 두아르테. 다 같이 합이 맞아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그럴 거야, 타놀드. 목숨을 바칠 각오로 하면 뭔들 안 되겠어?" 행운을 빌며 입을 맞춘 손바닥을 층계에 올린 두아르테는 곧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더니 극장을 나갔다. 육중한 빗장이 큰 소리를 내며 걸릴 때까지 극장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해가 저물어 가며 저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형 극장이 틈 하나 없이 봉쇄되자 타놀드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불을 건넬 녀석이군. 죽는 연기는 한 번이면 충분해, 아틀로." 타놀드는 네니를 돌아봤다. "스카고른의 딸, 아무리 아틀로가 멍청한 짓을 했다지만 그만 웃어.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웃음기 빼고 차가운 죽음의 기운을 발산해 보라고." 마지막으로 타놀드가 에밀을 가리켰다. "뺨에 피가 흐르잖아. 두드려서 닦아."

"이 망할 늑대 가면 안에 뭐라도 덧대야겠어요."

"그 고통을 연기에 투영해 봐! 소아테스가 죽어 가면서 킨드레드 이야기를 쓸 때 아프다고 불평했을 것 같아? 아니야. 영광스럽게 생각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소아테스의 가보에 뺨이 쓸렸잖아."

"가면이 안 맞아요." 네니가 무대에 떨어진 양 가면을 주우며 말했다. "계속 흘러내린다고요."

"그럼 끈을 써!" 타놀드가 허리띠를 풀어 네니의 발치에 던졌다.

끊임없이 연습했건만 극단은 소아테스가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극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타놀드는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알더버그의 최고이자 유일한 극장을 책임지고 있는 극작가로서 소아테스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암울한 일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수원의 양'은 소아테스가 최후의 광기를 쏟아 낸 작품이야. 소아테스의 마지막 불꽃이 여기, 우리 손에 있는데... 너희는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연기하면서 소아테스의 유산을 모독하고 있어. 소아테스는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또 버텼지. 소아테스가 이 장면을 쓰다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이 덧없고 비극적인 일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배우들은 침묵을 지켰다. 반성하는 것도 같았다. 그때 목을 가다듬은 아틀로가 목소리를 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요." 멀쑥한 데마시아인 아틀로가 입을 열자 타놀드는 그 말뜻이 정반대라는 것을 알고 또 시작이냐는 듯 눈을 굴렸다. "애초에 미완성 작품을 남이 완성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요."

타놀드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이 얘기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신성한 작품을 모독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이야?"

"극본에 깃든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부족한 것 같아? 때는 이미 늦었어!" 타놀드는 극장의 나무 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줄기를 가리켰다. 햇빛은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한기가 타놀드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우리가 아는 부분만 무대에 올리고 미완성 부분은 그냥 두는 게 어때요? 소아테스를 기리려면 그편이 낫지 않겠어요? 인정 좀 하세요." 아틀로가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해선 방법이 없다고요!"

아틀로의 말이 맞았다. 극단은 소아테스가 쓴 다른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불꽃을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 소아테스에게 심취한 극단의 병든 후원자는 미완성 작품을 끝내 달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해 왔다. 절박함을 느낀 타놀드는 자르반 2세가 있는 서쪽의 위대한 도시로 두아르테를 보내 소아테스가 소장했던 연극 가면들을 찾게 했다. 가면들은 아주 오래되어 가격이 상당히 나갔다.

머리를 푹 떨군 타놀드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공연을 취소해야 해." 이마를 문지르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손에 땀만 묻어나올 뿐이었다. "그러면 환불을 해 줘야 할 텐데." 타놀드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돈은 이미 다 써 버렸어!"

"이런 때 말하긴 좀 그런데, 양 가면이 깨졌어요."

타놀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뭐?"

"얼굴에서 떨어질 때 깨졌어요. 사고였어요!" 네니가 깨진 가면 조각을 들어 보였다. 나무로 된 귀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잘하면 묶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환장하겠군." 타놀드는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돈을 다 쓴 게 그 가면 때문인데. 그건 소아테스가 소장했던 가면이야. 심지어 대출까지 해서 산 거라고!"

"사고였다잖아요." 에밀이 말했다.

"생각을 해 보자." 타놀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훑어보았다. 층진 원형 극장은 수 세기 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돌로 된 층계는 원형 극장의 토대라고 할 수 있었다. 원형으로 우뚝 솟은 판돌은 녹머치에 사람이 살기 훨씬 전부터 극장 자리에 서 있던 것이었다. 요 몇 년 사이에는 극장에서 진행하는 연극과 의식이 관객에게 더 잘 보이도록 위에 설 수 있는 나무 단까지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배우들과 가수들은 기둥에 자신의 인장을 새겨 신성한 극장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겼다.

힘든 시기에 극장은 타놀드의 집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타놀드가 관리하는 극장은 모든 슬픔의 근원이었다.

"깨진 가면을 보니 두 가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중앙 발코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부유한 귀족들이 앉는 곳이었다. 타놀드는 혼자 있을 때도 감히 그 자리의 고급 쿠션에 머리 한 번 기대어 본 적이 없었다. "가면 제작자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세 가지겠지만... 그 이야기는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연습할 때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타놀드가 배우들에게 말했다.

"저 여자는 내내 여기 있었어요. 저희는 작가님이 데려오신 분인 줄 알았죠." 네니가 말했다.

'내내 여기 있었다고?' 그럴지도 몰랐다. 타놀드는 몇 주 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상태였다. 타놀드가 황금 좌석에 있는 여자를 휙 돌아보았다. 그 좌석은 레이디 에르힌이 앉을 자리였다. 두 해 전에는 자르반 2세의 꼬마 후계자가 저 벨벳 쿠션에 앉아 타놀드가 연출한 '모든 물고기의 왕'을 관람했다. 그 후계자는 마지막 커튼이 내려갈 때까지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쳤다.

"누구십니까? 밝은 곳으로 나오세요."

여자가 앞으로 나왔지만, 밝은 곳에서도 여자의 정체를 바로 알아낼 순 없었다. 여자의 눈은 마치 안개 너머 먼 곳에서 빛나는 별 같았다. 게다가 으스스한 반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가면 위에 특이하게 꼬인 가지가 싹처럼 돋아 있었다. 그 가지에는 색이 어두운 잎 하나가 붙어 있었다. 여자의 우아한 걸음걸이에서 귀족 특유의 태도가 느껴졌다. 타놀드는 마침내 여자의 옷에 장식된 문장을 알아봤다.

여자는 병환을 떨치고 일어난 극단의 후원자였다.

"레이디 에르힌, 몰라뵈었습니다! 절 용서해 주십시오." 타놀드가 예의를 차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쓰고 계신 가면이 뭔지 여쭈어도 될까요? 어쩐지 익숙한데 기억이 안 나서 말입니다."

"엘드록으로 만든 가면이에요." 레이디 에르힌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지만 말은 뚜렷하게 들려왔다. "엘드록 나무에서 자른 목재는 그 어머니 나무가 살아 있는 한 계절에 따라 계속해서 함께 꽃을 피운다더군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둘 사이의 끈은 끊기지 않는다고 하죠."

"정말 굉장하군요."

"제가 방해한 모양이네요." 레이디 에르힌이 배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 제안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타놀드가 손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며 무대 옆과 무대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배우들도 이번만큼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후원자분이 해 주시는 조언은 언제나 환영이지요."

"소아테스가 살아 있던 시절에는 모든 배우가 가면을 썼어요. 모두 가면을 쓰면 소아테스가 밤의 품에 안기며 미친 듯이 펜을 휘갈길 때 죽음의 문턱에서 본 이상한 영혼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거 괜찮네요! 가면을 넣어 둔 트렁크가 어디 있죠? 거기 다른 가면도 있었는데요." 아틀로가 무대 뒤로 사라지며 외쳤다.

"잠깐, 일단 얘기를—"

타놀드는 엘드록 가면을 쓴 수척한 여인이 두 손을 마주 잡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레이디 에르힌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했다.

타놀드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틀로가 자신의 키만큼 긴 트렁크를 끌고 무대로 돌아왔다. 트렁크 옆에는 길게 'Q. W. 소아테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타놀드는 문득 낡은 트렁크의 모습이 관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틀로가 무거운 트렁크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죽은 시인의 냄새가 나는 것 같네요."

'말하는 것하고는...'

녹슨 경첩이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굶주린 개의 울음소리처럼 극장 안을 울렸다. 나머지 배우 둘은 목을 길게 빼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레이디 에르힌이 입을 열었다. "가면을 고르기 전에 잘 들으세요. 시간이 늦었어요. 곧 연극을 시작해야 하죠. 모두 각자에게 맞는 가면을 고른다면 오늘 밤은 진정으로 기억에 남을 밤이 될 거예요. 우리가 연기하는 영혼이..."

"우리 안에 깃들 테니까요." 에밀이 말을 마무리했다.

"배우들의 신조네요." 네니가 말했다.

아틀로는 씩 웃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해야지 어쩌겠어요. 작가님도 오세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으니 다 같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연극을 선보여야죠."

"대담하군요." 레이디 에르힌이 말했다.

타놀드는 레이디 에르힌의 얼굴에서 이상한 미소를 감지했다.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두아르테가 떠날 때 귀족들이 앉는 발코니는 비어 있지 않았던가? 분명히 극장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 보니 레이디 에르힌도 평소와 어딘가 달랐다. 수척하다 못해 뭔가에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병환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서늘한 저녁 공기가 서서히 극장을 메웠다.

"레이디 에르힌, 건강을 되찾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망토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이 정도는 되어야 잊힌 시인을 기리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죠." 아틀로가 말했다.

손을 흔들어 타놀드의 제안을 거절한 레이디 에르힌은 아틀로를 돌아봤다. "불길한 가면을 선택했네요. 독수리는 남은 것을 쪼아 먹고, 남은 게 하나도 없으면... 아주 멀리 날아가서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후 다음 식사를 기다리죠."

"소아테스의 유산을 쪼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기대되는데요?" 아틀로가 몸을 돌려 얼굴에 쓴 가면을 과시했다. 길게 굽은 부리가 달린 백골 가면이었다. 사체를 먹는 새의 모습 같았다.

수척한 모습의 레이디 에르힌이 무대로 다가갔다. 아주 오래된 존재 같으면서도 건강하고 우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피부는 살이 아니라 매끄럽게 굳은 석고를 떠올리게 했다. 밤을 옮겨 놓은 듯한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바깥으로 퍼졌다. 타놀드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둘을 헷갈릴 수 있었을까?

"당신은 레이디 에르힌이 아니군요."

배우들은 타놀드의 깨달음을 알지 못했다. 타놀드의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배우들의 말도 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나랑 가면 바꾸자." 네니가 에밀에게 말했다. "넌 피부가 약해서 이런 가면 쓰면 안 돼. 차라리 피부가 거친 내가 쓰는 게 낫겠어."

"굳이 이 아픈 걸 쓰겠다면야..." 에밀이 네니에게 늑대 가면을 건넸다. "그 예쁜 광대뼈까지 까지게 생겼네."

두 사람이 맞바꾼 가면을 얼굴에 썼다.

벽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나며 원형 극장에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덧문은 덜컥거리며 닫혔다. 타놀드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바람 사이로 목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심장 소리가 들려, 양아." 낮은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타놀드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봤지만 보이는 것은 배우들뿐이었다. 배우들은 타놀드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 그때 왼쪽 귓가에서 다른 목소리가 노래했다.

"빛의 파편이

어둠 속에서 춤추며

끊임없이 움직이네..."

그 말에 타놀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대 위에서는 가면을 바꿔 쓴 네니와 에밀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때 둘의 입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에밀이 한껏 높아진 가성으로 말했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경쾌한 목소리였다. "사랑하는 늑대야, 이제 네가 보이는구나."

"아아아." 네니가 안도하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기분이 나아졌어, 양아." 네니는 네발로 기듯 자세를 바꾸더니 몸을 아래로 쭉 늘리며 기지개를 켰다. 도저히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냥 놀이를 할 시간인가?"

"장막이 걷히면

할퀴고 물어뜯으렴.

화살을 쏜살같이 날려 다음 막으로 넘어가자."

타놀드가 수척한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극장을 가로질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둬요!"

여인이 타놀드를 돌아봤다. "난 당신의 후원자가 아니에요."

타놀드는 가면을 쓴 배우들을 바라봤다. "다들 무대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 연극은 끝났어."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빗장이 걸린 입구를 향해 소리쳤다. "두아르테!"

"타놀드..." 레이디 에르힌인 줄 알았던 여인이 돌아서서 커다란 눈을 빛내며 타놀드를 바라봤다. 두 눈은 엘드록 가면 뒤에서도 어둠에서 태어난 듯한 빛으로 반짝였다. 타놀드는 그 으스스한 안광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 여인을 알면서 알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여인이 무서운 동시에 여인에게 이끌렸다. 여인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어리석으면서도 합리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타놀드는 생각할 것도 없이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다들 가면 벗어. 당장. 제정신이 아니군... 이건 저주받은 연극이야! 모르겠어? 소아테스가 단순히 극본을 쓰다가 죽은 게 아니라 '과수원의 양'을 썼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면... 이 이야기 자체가 저주나 마찬가지라고!"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수척한 여인도, 네니의 늑대도, 에밀의 양도 아니었다. 아틀로, 혹은 아틀로의 입을 통해 말하는 무엇인가가 날카롭게 긁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틀로는 시체를 먹는 새처럼 두 팔을 높이 벌리고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소아테스는 내 부리를 기다리고 있지." 아틀로가 말했다. 아틀로의 입꼬리가 쩍 갈라졌다. "소아테스는 완전히 죽었어... 이제 소아테스를 예전처럼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거든." 팽팽하게 당겨진 아틀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 목소리에 타놀드의 심장이 잠잠해졌다. 타놀드는 걸음을 멈췄다. "소아테스는 곧 사라지고 잊혀서 나와 함께 날아갈 거야. 그저 종이의 글, 바람에 실린 이름이 되어... 일부만이 남겠지."

"소아테스의 일부도 여전히 소아테스예요." 수척한 여인이 말했다.

"저자가 연극을 중단했어..." 가엾은 아틀로의 입을 통해 말하는 존재는 아틀로의 몸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틀로의 팔이 앞으로 격하게 비틀리며 펴지더니 앙상한 손가락이 비난하듯 타놀드를 가리켰다. "그런데 혼자 가면을 쓰지 않았군..."

"당신은 소아테스에게 거의 다 왔어요." 여인이 타놀드에게 말했다. "가면을 골라 소아테스의 마지막 장면을 직접 확인해 봐요."

타놀드는 극장에서 도망칠까 생각했다. 언덕 위에 있는 성주의 성채나 마을로 달아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레이디 에르힌의 집에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타놀드는 수척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해가 거의 다 저물어 있었다. 다가오는 밤을 반기며 울어 대는 곤충과 밤새 소리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소아테스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장면을 상상하며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던가...

"모두가 가면을 써야 해요." 여인이 말했다.

입을 떡 벌린 타놀드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엘드록 가면에 붙은 어두운 잎이 알 수 없는 바람에 흔들렸다.

"꼭 가면을 골라야 한다면, 저 트렁크나 무대에 있는 가면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타놀드는 잠시 경직되어 움직이기 힘들었던 팔다리에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수척한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내 가면을 쓰고 싶나요? 잘 결정했어요, 타놀드. 역시 창의성과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은 다르군요. 와서 직접 가면을 벗기도록 해요."

"당신의 가면을 가져가 당신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연기하는 영혼이..."

"...우리 안에 깊숙이 깃들기를." 여인이 마무리했다.

살아 있는 엘드록 가면을 가져가 얼굴에 쓴 타놀드는 마침내 소아테스가 쓴 미완성 작품의 진정한 결말을 보았다. 완벽하고 끔찍하며 생명이 차오르는 동시에 숨이 멎는 듯한 결말이었다.

타놀드가 입을 열었다. "각자 자리로 이동해라. 우리의 이야기는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다 같이 합을 맞춰 하나가 되고, 목숨을 바쳐 한목소리로 노래하자."

"목숨을 바쳐서." 양, 늑대, 독수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함께 연극을 시작했다.




두아르테는 입이 근질거렸지만, 레이디 에르힌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하루 종일 타놀드에게 숨기는 데 성공했다. 에르힌 가문의 새 주인은 동트기 전 레이디 에르힌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으면 극단의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특히 타놀드는 유독 힘들어할 게 분명했다.

슬픔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비극에 그저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디 에르힌이 죽기 직전 극단에 재산을 넘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타놀드에게 재산의 영구 소유권을 넘긴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술에 취한 귀족들은 기다림에 지쳐 갔다. 심기가 뒤틀린 성질 나쁜 귀족들이 조롱하거나 폭언을 퍼부을지도 몰랐다. 심하면 극장 활동에 제재를 걸 가능성도 있었다.

두아르테가 레이디 에르힌을 애도하느라 칙칙한 무채색 옷을 입고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려던 바로 그때, 문을 열라는 타놀드의 신호가 들려왔다.

두아르테는 문으로 달려가 육중한 빗장을 풀었다. 앞다투어 안으로 들어간 관객은 이내 검은 줄기가 달린 시든 장미로 뒤덮인 무대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멈춰 섰다. 그 섬뜩한 장면에 기대감으로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관객은 입을 다물고 각자 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극장에서 빈자리는 레이디 에르힌의 자리뿐이었다.

모두 소아테스의 오래전 잊힌 미완성 걸작이 시작되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동안 배우들은 힘들어 보이는 자세를 미동 없이 유지했다.

타놀드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개막 첫날에 출연진만 달랑 내보내다니 타놀드답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타놀드는 관객을 맞이한 후 포도주 한 병을 들고 무대 옆으로 가 연극을 지켜보곤 했다.

두아르테는 고개를 돌려 무대 위 배우들을 살펴봤다. 네니와 에밀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늑대 가면을 쓴 네니는 손에 든 화살로 에밀의 옆구리를 찌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에밀의 두 손은 네니의 목에 감겨 있었다.

철학자 역할을 맡은 아틀로는 어찌 된 일인지 죽음의 까마귀를 닮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양팔을 커다란 날개처럼 펼치고 소품 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아 다른 두 배우를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팔에는 죽은 꽃들이 깃털처럼 달려 있었다.

배우들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관객은 연극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두아르테는 무대 뒤로 가서 타놀드의 지정석을 확인했다. 포도주 병도, 타놀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세상에 단 하나 남은 '과수원의 양' 극본이 놓여 있었다.

두아르테는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이야기는 여전히 미완성이었지만 타놀드의 글씨로 새로운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가면을 쓰지 않는 자는 끝을 볼 수 없다. 그녀가 보여 준 끝은 정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