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오
온화한 불꽃

밀리오의 이야기는 수 세대 전,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시작된다. 밀리오의 할머니 루페와 쌍둥이 자매 루네는 원소술의 달인으로 각자 땅과 불의 액시옴을 이용해 비달리온의 시험을 통과해 윤 탈에 들어갔다. 하지만 루네가 윤 탈에 반역을 꾀하다가 적발되면서 쌍둥이 자매는 연대 책임을 지게 되었다. 결국 루페는 이쉬탈 변방으로 추방되었고, 자매의 믿음을 저버린 루네는 자취를 감추었다.

밀리오가 태어나기 전까지, 가족은 새로운 삶을 꾸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덕분에 밀리오는 낙원과도 같은 마을에서 사랑과 웃음이 가득한 부족함 없는 유년기를 누렸다.

밀리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루페는 손자에게 액시오마타를 가르쳤다. 일가족 중 누구도 루페의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했지만, 밀리오만큼은 자연스럽게 원소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다만 규칙과 계율에 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실망한 루페는 희망을 버리고 가르치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밀리오는 스스로 공부를 계속했다. 할머니가 강요했던 제약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워 나갔다. 자연을 공부하면서 고유의 규칙을 만들어 냈고, 결국 불의 액시옴에 통달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 원소술이었다.

하지만 의아했다. 왜 불의 원소술은 뭔가를 파괴할 때만 쓰일까? 밀리오는 불에서 더 큰 잠재력을 보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 반딧불이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반딧불이들을 따라가던 밀리오는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마을 사냥꾼을 발견했다. 밀리오는 불의 액시옴을 활용해 사냥꾼을 안정시키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을까지 거리도 너무 멀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액시옴을 치유의 힘으로 바꿔 보려고 했다.

사냥꾼의 상처에 손을 올리자 밀리오는 희미한 온기를 느꼈다. 마치 상대의 영혼, 내면의 불꽃에 닿기라도 한 듯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때 밀리오는 자신의 몸속에서 똑같은 불꽃이 타오르는 걸 감지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나무와 잎사귀 속에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온 정글이 하나의 모닥불 같았다.

밀리오는 자신의 온 에너지를 그 느낌에 집중했다. 그리고 자연이 가르쳐 준 대로 불의 힘을 발현했다. 그러자 작지만 길쭉한 눈을 지닌 존재가 생겨났다. 눈빛에서는 두려움과 친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밀리오가 그 존재를 사냥꾼의 상처에 갖다 대자, 내면의 불꽃이 사냥꾼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발견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액시옴이었다. 밀리오는 그것을 '치유의 불꽃'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새로 발견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밀리오의 손 위에서 치유의 불꽃을 내뿜으며 춤추는 '불꽃 친구'를 본 가족들은 기뻐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루페는 밀리오의 성장을 보고 불안했다.

그동안 다른 가족들은 밀리오처럼 어린 나이에 액시오마타를 익히지 못했다. 루페는 손자의 능력만 있다면 추방 생활을 끝내고 이쉬탈의 지배 계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불에 대한 관심과 급성장하는 원소술 능력은 액시오마타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루페는 마지막 구원의 기회에 전부 걸기로 했다. 사실 루페는 그동안 밀리오만 바라보며 살았다. 밀리오가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혼자 이샤오칸까지 가서 루네가 남긴 짐을 덜어 주기만을 바랐다. 밀리오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부담을 느꼈다. 혼자 집을 떠나 여행할 생각에 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용기를 내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밀리오는 할머니와 함께 '불꽃 보따리'를 만들었다. 영원히 불타는 단짝 불꽃 친구를 넣어 다닐 수 있게 특수 제작한 가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밀리오는 고작 12살의 나이로 혼자서 길을 떠났다. 불꽃 보따리를 메고, 가족들이 만들어 준 새 옷을 입고 여행에 나섰다. 갑작스러운 작별에 슬펐지만, 애써 활짝 미소를 띠었다.

밀리오는 이쉬탈 전역을 여행했다. 정글을 헤치고, 별하늘 아래에서 야영하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이따금 신나는 모험 이야기를 잔뜩 담은 편지를 집에 보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여정 끝에, 마침내 이샤오칸에 다다른 밀리오는 비달리온에 도전하기 위한 수련을 시작했다.

'치유의 불꽃을 다루는 소년'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졌다. 지하 감옥에 감금된 채로 때를 기다리는 루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밀리오 역시 그 소문을 눈치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윤 탈에 들어가서 가문의 자랑이 되겠다는 일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