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 기억도 없고 감정도 못느끼는, 구멍투성이인 엘리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개그코드와 말버릇일지도 모른다. 내리 3끼를 굶은 그녀가 말을 아끼고 아끼다가 드디어 칭란 마을로 보이는 어느 마을 앞에 도착했을 때 내뱉은 말이 '배고프다'라면, 평소와는 조금 다른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밥먹고싶다..."

 아이오니아의 역에서부터 좀 떨어진 마을이긴하지만 과연 이 사람들이 엘리스에게 호의를 베풀어줄지는 의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죗값을 인지하기위한 과제인데 오히려 '무탈하게 마무리되는것마저도 사치'인데 말이다.

'죗값을 치루는게 아니라 인지하는 과제다.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고통을받아도, 결코 그 일들을 되돌릴수도, 고칠수도 없겠지. 그래. 마오카이는 내게 살아남으라고했어. 그 말은 여기서도 해당되는거야. 그러니까, 난 반드시...'

 '살아남겠어.'라는 마음을 다잡기전에 그녀는 마을사람들에게 처참하게 구타당하고 죽어가는 자신을 상상해버렸다.

 

'아아아아!'

 

 목놓아 울어도, 가성이라 여길법한 높은 음의 비명을 질러도 눈꿈쩍안할 사람들속에서 엘리스는 죽어나갈 것이다. 마오카이의 약속도 어긴채, 카사딘의 일침에 단한번의 온전한 성찰도하지못한채. 그의 일갈에 단한번도 반항하지 못한채.

"...살고싶어."

 자신이 죽인 신도들의 얼굴을 본적이 있다. 그 얼굴들에 자신의 얼굴을 덧대면 그것이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의 표정과 일치할게 틀림없다.

ㄴ그러니까 나를 이용하란 말이다 엘리스. 넌 살아야할 이유가 있잖나?ㄱ

"닥쳐!"
ㄴ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청문회 이후에 둘을 떨어뜨렸다고 소환사들이 생각했지만 지금 우리 둘은 어떤가, 같이있지않은가?ㄱ

"끄으으..."
 생사를 보장할 수 없는 과제이긴하지만 유혹에 빠져 썩은 아귀의 힘을 받기는 싫었다. 머리가 아파오고 이는 부득부득 갈리지만 확실한 결정을 하기전까지는 멈추지 않는 고통들이었다.

"으아아아!"

 엘리스는 뛰쳐오듯이 마을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보기드문 헐떡이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 몇몇이 그녀를 응시하지만 이내 자기갈길을 찾아서 어딘가로 떠나 자리를 비웠다.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매우 다행이었다. 땀흘릴 시간을 줄뿐만아니라 그동안 품어왔던 불안이 어느정도는 해소되었으니까.

'하지만... 시에인이라는 현자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말을 걸기도 힘들어.'

 그렇다고해서 모든 불안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녹서스에서도, 필트오버에서도 그래왔지만 아이오니아에 온 이래로 그녀는 다른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 이상황에서 그녀가 말을 걸기위해 필요로하는 용기의 정도는, 현재 그녀의 역량 밖이었다.

"조용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파악해볼까."

 '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체 어느곳에 살고있을까'라는 일말의 환상과 기대를 품고있지만 그것에 행동의 원칙을 두기에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엘리스는 큰거리, 작은거리, 골목까지 모두 돌아다니기로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모두 엘리스보다 열등한 삶과 옷차림을 하고있었지만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모든 사람들의 바지나 치맛자락을 붙잡고 '정말 실례하지만 밥 끼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고싶었다. 그런 마음을 알고있는지 모르고있는지 무심한 사람들은 엘리스를 피해 어딘가로 숨어들어가거나 자리를 피했다.

 

 한 시간쯤 돌아다니기를 반복한 엘리스가 골목길을 파악하기위해 걷고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상해. 여기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획일적이야... 낯선이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는 없지만, 저들의 동작은 모두 똑같아. 남녀노소 모두...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나를보고 욕하지않아. 아무말 없이 지나가듯 피해버리는 이 적막함은 녹서스하고같아.'

 그럼에도 한시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은 아무런 해도 입지않았으니 '무력행사를 하려는건가'라는 염려는 조금밖에 들지않았다.

 

 가면갈수록 줄어드는 인파들을 인식하면서 다니지 않은 엘리스였기에.

'빨래줄인가?'

 골목길 앞에 버젓이 걸려있는 여러 옷들. 좁은 길의 양방향엔 엘리스의 상체위치에 조그마한 창문 하나가 달려있는 집이 있었다. 또 자로 재놓기라도한듯 옷들은 정확히 엘리스의 얼굴을 가릴정도의 높이에 있었고 어떻게든 옷을 헤쳐나가지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무생각없이 옷들을 걸어놓은 순간,

퓨퓻-

 

"아아!'

 양쪽 창문구멍에서 화살 두개가 그녀의 양팔에 박혔다.

'함정?!'

 이제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고 화살을 빼내려고 힘을 준 순간, 의문의 외압이 그녀를 방해했다. 화살의 깃부분에 묶여진 줄이 그녀의 양팔을 서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녀의 팔에 적중한 순간부터 조금씩 당기고있었던걸로보아 살상용은 아닌듯했지만 문제는 잡혀서 무슨 취급을 당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

"끄으으..."
 양팔을 교대로 잡아서 화살을 뽑아내기엔 이미 줄이 팽팽했다.

'이렇게되었다면 일부러 앞으로 돌진하면서 뽑아내는수밖에...!'

 상당한 아픔이 뒤따르지만 질주의 힘으로 화살을 뽑는것도 극약처방이기에 엘리스는 일부러 앞으로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그 때,

"저 마녀를 잡아라!!!"
 앞뒤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거리를 좁혀오고있었다. 난처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미 형태로도 활동할 수 있는 '거미 여왕', 어떻게든 힘으로 속박을 풀고 벽을 타고 건물 위로 도망치는거라면 저들도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

 마음을 다잡은 순간 온 몸에서 검은색 아우라가 얇게 그녀를 뒤덮었다. 일자로 서있던 상체가 숙여지고 팔다리와 뒤에 장식용같이 말라붙어있던 4개의 다리에 마력과 생명력이 부여되자, 아우라는 사라졌다. 그것이 사라진 자리엔 한 마리의 거미가 있을 뿐.

 

팍 - 팍 -

 예상대로 고통은 참을 수 없었지만 남은 6개의 다리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다. 벽을 올라타서 올라가는데만 성공하면된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보통인간은 할 수 없는 것을 이뤄냈다!

'살았...'

 그렇게 생각하는 엘리스가 건물 위에서 목격한 것은 그녀의 다리를 잘라내려는 사내 몇 명이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동작이었다.

'아...!'

 다시 거미 형태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면서까지 한번 두번의 검격을 피해냈지만, 사내들은 이미 건물 위에 그녀를 잡으려고 포진해있던 뒤였다. 엘리스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후방밖에 없었다. 물론, 후방의 지면의 끝이 어떤지는 알고있었다.

 마침내 뒷걸음치던 발을 밟아줄 바닥이 없을 때, 순간의 공복이 엘리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순간에,

'...!!!'

 그녀는 다시 고립된 골목길로 떨어졌다.

<계속>

 

<글쓴이의 말>

 

하루 두편!!! 정말 오랫만의 연재속도네요! 물론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