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승전 5경기 EDG의 카운터전략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있어서 씁니다.

 

 

픽밴에는 단순한 가위바위보 싸움뿐만 아니라 매우 넓은 의미에서 두 가지 전략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가장 강한 조합을 구성한다. 둘째, 상대의 강한 조합을 예상하여 저격한다.

 

 

두 전략은 상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조합의 장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살리는 팀이 승리에 이르게 됩니다.

 

즉 많이들 생각하는 것처럼 대놓고 카운터를 당한 SKT가 픽밴에서 완전히 놀아난 것은 아닙니다. SKT의 생각은 '르블랑 살려? 우르곳 살려? 그래 한번 카운터 쳐봐라' 였을 것이고 이건 오만한 발상이 아닙니다. 롤챔에서도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하나의 픽밴 양상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적 약팀이 카운터 전략을 많이 구성하고, 또 성공하는 경우도 적습니다.

(물론 EDG가 SKT에 비해 약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또 SKT가 픽밴에서 지지 않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MSI 결승전 5경기만큼 이 전략이 극명하게 대립한 경기는 보기 드뭅니다.

 

 

SKT는 나르-누누-르블랑-우르곳-노틸러스를 픽했는데 다섯 픽 전원 현재 메타상 강하다고 평가받으며 노틸을 제외한 네 개의 픽은 선수 개개인이 자신있어하는 픽입니다. (노틸은...잘 모르겠네요)

 

반면 EDG는 이블린-모르가나가 주류픽인 알리-마오카이-시비르와 함께 상대의 조합을 카운터치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EDG의 조합이 단순히 단단한 알리-마오카이와 실드를 가진 모르가나-시비르로 르블랑을 카운터치거나 시야에서 자유로운 이블린이 누누를 카운터치는 형식인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더군요.

 

단적으로 말해서 모르가나와 시비르는 르블랑을 귀찮게할 수 있을지언정 단독으로 카운터칠 수 있는 픽이 아닙니다. 확정cc가 적은 이블린-알리-마오카이는 물론이고요.

 

대표적인 르블랑의 카운터요소는 확정 cc에 연계되는 폭딜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EDG의 조합은 확정cc가 적은 조합이거니와 폭딜요소도 없다시피합니다.

 

 

 

 

마오카이-이블린-모르가나-시비르-알리, 이 라인업을 보신다면 당연히 떠오르는게 있으셔야 합니다.

다섯챔프 모두 이니쉬가 가능하거나 이니쉬 시너지를 가진 챔프입니다.

 

나르-누누-르블랑-우르곳-노틸러스, 이 라인업을 보신다면 또 떠오르는게 있으셔야 합니다.

모르가나-시비르는 상대 조합에 비해 압도적으로 라인클리어가 좋습니다.

 

 

그래요. EDG는 단순히 르블랑과 누누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팀차원에서 특정 목적을 가지고 조합을 구성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반면에 SKT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강한 조합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상대의 노림수에 패배했습니다.

 

픽밴을 살펴보며 EDG의 '목적'을 설명드리겠습니다.

 

 

1) 밴

 

SKT: 헤카림-렉사이-징크스 / EDG: 칼리스타-그라가스-카시오페아

   

5경기에서 양 팀이 이전 경기들에 비해 달라지는 점이 있는데, 4경기 전부 르블랑을 밴하던 SKT는 르블랑을 풀어주고

1경기 제외 전부 우르곳을 밴하던 EDG는 우르곳을 풀어줍니다. 특히 EDG는 우르곳을 풀면서 5경기에서 처음으로 그라가스를 밴하구요.

 

우르곳은 일종의 미끼인 것이 분명하고 SKT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덥썩 물죠.

한편 그라가스 밴은 뱅기에게 누누를 강제합니다.

 

 

 

2) 픽 1단계

 

[우르곳 -> 마오카이-알리 -> 누누-르블랑]

 

여기까지 매우 일반적인 픽밴 상황입니다.

르블랑 왜 픽했냐. 왜 미리 픽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폰블랑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4경기 내내 르블랑을 밴한 것은 EDG가 아니라 SKT였습니다.

 

개인적으론 첫픽 우르곳이 아쉽고. 또 SKT가 본인들이 잘 쓰면서도 유독 결승전에서 마오카이를 저평가한 것이 특히 아쉽네요.

 

참고로 SKT의 픽 우르곳-누누-르블랑 모두 EDG가 거의 확신한 픽이었을 것이고, 특히 우르곳을 제외한 르블랑과 누누는 SKT로서도 당연한 선택임과 동시에 EDG가 강제한 선택지입니다.

 

 

3) 픽 2단계

 

[모르가나-시비르 -> 나르-노틸러스 -> 이블린]

 

EDG의 카운터조합이 본색을 드러나기 시작하는 상황입니다.

 

 

모르가나-시비르는 대놓고 라인클리어가 강한 조합입니다. (앞서 우르곳-누누-르블랑은 대놓고 라인클리어가 약합니다)

더욱이 앞선 픽이 알리-마오카이로 이니시 역시 매우 강력한 조합으로 완성됩니다.

 

여기서 SKT가 결정적으로 실수를 했다고 봅니다.

 

노틸러스는 약간의 한타 억제력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론 기동성이 매우 느립니다.

(선택의 의미를 가장 모르겠는 픽입니다.)

 

나르는, 마린선수가 잘 다루긴 하지만 EDG가 갖춘 조합에 대한 자체 카운터픽과도 같습니다.

 

나르의 약점은 한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점, 다시 말해 분노 관리가 안된 와중에 상대가 강하게 치고들어오면 무력하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라인클리어도 좋지 않죠. 이미 상대 조합은 이니쉬에 거의 올인하다시피한 조합인데 한타에 제약이 있는 나르라니, 매우 좋지 않았다고 봅니다. 기동성이 안좋은 우르곳-노틸과 함께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나르는 상대의 저돌적인 이니쉬에 매우 무력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마린 선수 개인역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블린. 누누에 대한 상성이 좋고, 은신으로 르블랑 암살에 약간이나마 내성이 있으며, 이니쉬에 힘을 보탤 수 있는 화룡점정입니다.

 

 

 

 

SKT의 조합은 라인전이 강하고 초중후반 한타 밸런스가 좋습니다.

 

반면 EDG의 조합은 라인전은 무난하고 후반 한타를 버리는 대신 기동성과 이니쉬, 라인주도권에 올인합니다.

 

 

르블랑이 조합 상대로 할 것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서로 무난히 후반에 가면 SKT가 지기 힘든 조합입니다.

모르가나가 후반 갈수록 딜러로서의 역할이 심각하게 제약되는데 반해 르블랑은 점점 탄력받기 때문이죠. 르통기한은 옛날 이야기지 현재 풀템 르블랑은 포킹으로 풀템 탱커를 (밴쉬만 벗겨진다면) 한번에 집에 보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집니다.   

 

 

대신 모르가나는 초반 르블랑 상대로 반반 싸움을 무난하게 할 수 있고 여차하면 이니쉬도 가능하지만, 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카운터 역할은 아군 보호입니다.

 

우월한 라인클리어와 기동성을 바탕으로 힘차이가 벌어지는 후반에 가기전 중반에 게임을 끝내는 것을 '목적'으로 EDG는 경기 초반부터 과감한 다이브와 이니쉬를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EDG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은 르블랑의 암살과 노틸러스의 궁 정도인데, 모르가나가 두가지 모두에 억제력을 가집니다. (후반 갈수록 모르가나는 르블랑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 게임에서는 Q적중률이 주목받았지만, 이는 폰 선수 개인의 슈퍼플레이, 또는 SKT 선수들의 실수이지, 변수가 크기 때문에 팀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노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EDG가 짜온 카운터전략은

 

1) 상대에게 형편없는 라인클리어 픽을 유도 및 강제하고

 

2) 우월한 라인클리어와 이니쉬능력을 바탕으로 라인전 과정을 최대한 삭제해 초중반 쉴새 없이 몰아쳐서 끝내는 것이며

 

3) 상대의 예상되는 픽에서 유일한 걸림돌인 르블랑을 모르가나로 억제하는 것입니다.

 

 

SKT가 초반 이 전략을 매우 성공적으로 막았지만(탑 한타 이전까지 오히려 글골을 앞섭니다), 결국에는 폰과 코로의 슈퍼플레이, 봇듀오와 페이커의 실수, 그리고 나르-누누의 조합상 무력함으로 패배한 것일 뿐입니다. 

 

 

픽밴에서 SKT가 실수한 것은 맞고, 또 EDG가 매우 정교하게 설계를 짜온 것도 맞지만

SKT가 카운터를 전혀 모르고 당한 것마냥 놀아난 것만은 아니고 EDG의 조합이 르블랑 하나만을 저격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EDG가 인상적으로 목적성이 강한 조합을 짜왔고, 그 목적을 저지하는데 SKT가 실패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