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아마추어 판에서 고전파라는 닉으로 유명했던 미친 고딩이 데뷔했고,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챔피언스서머 우승과 롤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를 짧게 회상해보면 이렇다  
그 때는 LCK라 불리지도 않았고 리그의 위상 또한 그저 동양의 변방, 
서양 팀들과는 격차가 있다고 생각하던 그런 시기다.

더블리프트, 핫샷GG, 오드원, 프로겐 등등
당대 최강이라 생각 되었던 선수들은 대부분이 서구권이었고
LCK의 위상은 아니, 위상이라 말하기도 민망하고 멋쩍은
해외 팀들을 초청해서 경기를 하던 이제 막 시작한 최초의 지역 리그였다.
나조차도 그 때는 오드원의 방송을 보며 빌드를 따라하곤 했었으니까... 

라일락, 콘샐러드, 막눈, 캡틴잭 같이 북미서버 최상위권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당시에도 있었지만 사대주의였는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CLG나 TSM, 프나틱 같은 서구 팀들이 최고인줄로만 알았었다.

'스킬을 모션을 보면서 피하는 정신 나간 고딩'
선수캠에 대고 하품을 하고 코를 후비적 거리던 18세 소년은
당대의 상식과 평판을 까마득하게 뛰어넘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데뷔와 동시에 챔피언스 리그 서머와 월즈를 재패 해버린다.

나에게 비춰진 그 소년의 등장은 혁명 그 자체였다

소년은 LCK에게 첫 번째 월즈 우승을 선사했고 
이후 FAKER라는 닉네임으로 롤판에서 전무후무한 커리어를 쌓아간다

글을 쓰는 나는 페이커를 데뷔시즌부터 응원 해 온 나이 40줄이 
넘어선 아저씨 티원 팬이다 솔직히 지금도 '티원' 이라는 이름보다는 
'슼'이나 '에스케이티'가 더 익숙할 정도로
올드팬이라면 올드팬일 수 있는 그런 낡은 사람이다.

나에게 LCK는 좀 특별한 취미다 
해외축구를 좋아하던 나를 이스포츠로 전향하게 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넘쳐난다
태동기부터 지켜 봐왔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작년 월즈 결승전에서는 정말이지 
누굴 응원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분명 티원과 페이커의 오랜 팬이었지만 
데프트 선수의 삶의 궤적 또한 지켜 봐왔기 때문에
한 명의 LCK의 팬으로써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으니까...

데프트가 8강에서 EDG에게 승리하고 
샥즈가 2942일 만의 4강 진출에 대한 감상을 물었을 때
몸이 무너져 내리며 흐느끼는 데프트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동안의 간절함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압박감이
클라이막스가 되어 터져 나온 장면이라 데프트의 모습과 감정에 
순간적으로 몰입 된 것 같다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라는 데프트의 인터뷰는
나보다 꽤 어린 친구지만 많은 교훈을 주는 프로마인드였다.

그래 뭐, 어쨌거나 나에게 LCK란 불혹을 넘긴 나이가 되어서도 
눈물을 질질 짜게 할 정도로 특별한 취미라는 그런 이야기다

올해 월즈는 속상한 경기들이 많은 것 같다

엊그제의 젠지도 정말 열심히 응원했었는데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아쉬운 밴픽과 
찰나의 실수로 아깝게 패해서 분했다

어제의 케이티 경기는 예상 외로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명승부가 펼쳐졌으나 너무 안타깝게 한 끝 차이로 패했다고 생각한다
룰러는 참 대단한 선수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LPL에서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는 룰러의 행보 역시 응원하고 있다
티원팬의 입장에서는 얄미운 선수이긴 하지만
멋진 경기를 만들어주는 라이벌팀의 선수들도 항상 존경한다 

늙어 빠진 아재가 커뮤니티에 장문의 글을 남기는 이유는
이런 과정들이 하나의 스포츠니까 벌어지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 이다. 

분명 LCK는 2013부터 2017까지 세계를 지배했었고, 
월즈 역사상 가장 많은 소환사컵을 들어 올린 지역이 맞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절대자란 없는 법이다
만약 어떤 한 지역이 최강자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그 것 만큼이나 재미없고 지루한 스포츠 또한 없지 않겠나?

스포츠니까 변화가 있는 것이고, 흐름이 있는 것이고 
승패를 예측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흥망성쇄의 굴레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석한 이야기지만 최근 몇 년간은 LPL의 우승 횟수와 강세가 
더 두드러진다 이제 LCK는 도전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더 파격적이고 날카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LCK가 우승을 했으면 좋겠지만 
정말 너무 어려워 보인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봐도 우세는 LPL이고
2023 LCK 서머에서 정말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1시드 젠지도, 3시드 케이티도 탈락했다

솔직히 스위스스테이지에서 LPL한테 져서 LCK 내전으로 
디플러스기아를 탈락 시킨 케이티가 밉기도 했지만 
어제는 그런 감정 따윈 다 집어치우고 진심을 다해 응원했었다

결과적으로 이제 남은건 2시드 티원 뿐이다 
내가 LCK에서 가장 좋아하는 팀이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존경하는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있는 팀이다

오늘 LNG전이 어떻게 끝이 날지는 모르겠다 
23 월즈가 18년 월즈에 이어서 LCK 단 한 팀도 
4강에 올라가지 못한 최악의 다른 해가 될지, 
도장깨기를 국제전에서도 구현하며 티원과 페이커가 
4번째 소환사 컵을 들어 올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승패가 중요하진 않다

2013년도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꾸준하게 노력해오고 좋은 기량을 펼치고 있는 페이커 선수의 모습을 
월즈 8강전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벅차다

무엇보다 LCK 팀 중 단 하나만이 남아 있는 이 아슬아슬한 현실이 
벌겋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할만큼 쫄린다

괜찮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티원에게는 오히려 더 좋은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희망적인 현상에 대한 말이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어두울 수록 빛은 강해진다'는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말이다 

부디 선수들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을 
두려움을 떨쳐 낼 용기를 발휘해주기를... 

기록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LPL에게 다전제에서는 진 적이 없다는 기록 따윈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쌓아왔던 기록들이 많기 때문에
무너지는 기록 또한 많은 것이 당연하다

최근 티원이 중요한 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한 적이 많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들의 플레이를 잘 구축하지 못한 것이라는
앵무새 같은 말만 반복했었다

팬으로써 보고 싶은 모습은 주저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드러눕지 않고 맞서 싸우는 모습이다
도전자 다운 화끈한 모습과 최선을 다해서 치고 받는
뜨거운 경기를 보고 싶다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것을 생각하고
잃게 되는 두려움 보다는 
얻게 되는 희열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무언가 손에 쥐고자 한다면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니
지키는 게임 따위는 접어두고 
과감하게 내딛는 게임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결전의 날이다

곧 있으면 벌어질 LCK의 마지막 팀의 멋진 경기와 행보를 기대해 본다
낡은 팬인 나는 이제 11년차가 된 페이커의 또 다른 도전을 전력을 다해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