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전에 술 한잔 마시고 와서 뻘글 한번 길게 적어본다. 
잠깐 내 얘기부터 하자면 난 시즌2부터 시작한 올드게이머이면서 막눈, 엠비션, 로코도코, 콘셀러드 같은 게이머들의 경기부터 쭉 지켜 본 올드 팬이다. 
내가 처음 좋아한 팀은 mig 프로스트 그러니까 CJ의 전신이 되는 아주부의 전신 팀이었다.
왜 좋아했냐고 한다면.....일단 mig 1,2 팀 그러니까 블레이즈 프로스트의 얼음과 불이라는 상반되는 팀 네이밍이 그때엔 너무 멋있어 보였고 그 중에서도 프로스트가 더 멋져보였다....라는 유치한 이유가 아니였나 어렴풋이 떠올려본다. 사실 너무 오래되서 잘 기억이 안 난다. ㅎㅎ
아무튼 프로스트를 응원하던 나는 페이커의 데뷔무대를 보고 응원하는 팀을 바꿨다.
난 미드라이너였고 당대 한체미라 불리던 엠비션을 솔로킬 내고 게임 내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준 어린 천재의 역량에 취해버렸으니까. 
이후 내가 응원하는 팀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나의, 정확히는 팬들의 응원에 답이라도 하듯이 페이커는 승승장구 했다. 
싹수가 보인다는 흔한 말이 오래된 관용구로 굳어진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페이커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상대 미드라이너를 무너뜨렸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까지 무참히 박살내며 롤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물론 순탄하지기만 한건 아니었지만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아무튼 이때의 페이커가 압도적이라는데 반기를 들 사람은 많이 않을거라 생각한다. 게임을 지더라도 대부분 미드는 박살냈고 자신이 천재임을 증명하듯 상상도 모한 여러 픽들을 꺼내어 상대를 농락했으니까. 그때는 페이커가 하는게 미드라이너의 메타였다.
그때는 이길까 질까 하는 의문보다 어떻게 이길까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선 페이커와 T1이 군림한 기간은 꽤 길었다.
슬슬 떨어질때가 됐다고. 팬인 나마저도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그런 의심을 비웃듯 다시 한번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니까.
하지만 너무 높이 있던 탓인지 그들의 추락은 길었고. 그만큼 아팠다. 
LOL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뛰어난 인재들이 몰리고 시스템은 단단해졌다. 
선수들의 실력은 상향평준화 됐고 T1은 그 흐름속에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 시기의 페이커는 안쓰러웠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를 찍어누르던 이전의 영광에 취한듯 무리한 플레이를 지속하며 패배의 원인이 될때도 많았다. 기본적인 실력은 여전히 1티어라고 부를만 했지만 상대가 자신과 합을 나누고 오히려 자신이 밀릴 수 있다는 걸 인정 할 수 없는것만 같았다.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해보였다. 결국 플레이까지 더더욱 엉망이 되고 게임을 던지는 악순환의 무한 반복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가 팬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슬슬 은퇴를 해도 좋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페이커는 그런 나를 비웃으며 다시 한번 비상했다. 
기나긴 슬럼프를 이겨내고 실력이 돌아왔으며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다. 이전처럼 상대를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뽐내진 못했고 간간히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천천히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가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T1은 우승하지 못했다. 그때쯤에는 LCK에 담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담원 게이밍의 포스는 전성기 T1이 생각날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뽐냈다. 
하지만 페이커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플레이 했고 패배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런 페이커를 그저 조용히 응원했다. 
그러다가 담원은 최고의 자리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분열되어 무너졌다. 
담원이 무너졌을때 나는 조금 슬펐다. 항상 T1을 막아서던 강력한 적을 T1의 손으로 부수는 장면을 상상해 왔던탓이었다. 
아무튼 이후에도 T1과 페이커는 천천히 나아갔다.
감코진의 변화와 함께 어려움도 겪었으며 크고 작은 역경들이 있었지만 다행이도 내 눈에 보이는 페이커는 이전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롤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진 못했지만 LCK에서 꾸준하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리고 담원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듯 젠지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전부터 꾸준히 성적을 내며 명문을 자처하던 젠지가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T1에게 날을 세웠다.
그리고 젠지에는 새롭게 세최미 라인에 이름을 내밀던 쵸비가 있었다. 
쵸비가 잘하는 미드라이너라는 걸 부정할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았다. 
다만 그 시기의 쵸비는 이기적이었고 자신이 무언갈 해야하는 강박에 빠져있는 사람 같았다. 
추락하고 방황하던 시기의 페이커가 떠오르는 플레이가 자주 보였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메카닉으로 캐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개인적인 사견으로 세최미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하듯 수없이 맞붙은 T1과 젠지의 맞대결에서 언제나 승리의 신은 T1의 손을 들어줬다. 
이때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우승컵을 들고 과거의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이던 페이커가 참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T1은 순항했다.
이때 쯤 페이커의 플레이가 새로운 팀원들에게 맞춰 굳어진것도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팀원으로 자리잡은 어린선수들은 다들 메카닉적으로 뛰어났다. 그렇기에 페이커는 캐리보다는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며 크랙플레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옛날과 같은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새롭게 정착된 페이커의 스타일도 맘에 들었다.
팀이 위기일때는 캐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게 어린 팀원들과 잘 맞는 합으로 보였으니까. 
어린 선수들은 페이커가 바라는것처럼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난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며 응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인터뷰 영상을 봤다.
쵸비의 인터뷰였다.
결승에서 T1과의 접전끝에 패배한 쵸비의 인터뷰.
쵸비는 언제나 그렇듯 담담하게 인터뷰를 했다. 
당연하게도 페이커에 관련된 질문이 나왔고 쵸비는 페이커를 리스펙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갔다.
이어진 수많은 패배의 끝에서 이제는 정말 알것 같다고. 페이커의 플레이에서 배웠다고.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기억하기론 크랙플레이를 해야 하는 중요한 때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한발 내딪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성장을 포기해서라도 팀을 위해 게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놀랐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쵸비의 유일한 단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쵸비가 정말 더 성장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우이길 바랬지만 불길한 예감은 이상하게도 늘 들어맞았다. 
정말 쵸비가 변했다. 
강박과 같은 CS파밍을 포기하고 팀원을 위해 로밍가길 선택했으며 크랙플레이를 하려다 쵸비답지 않은 쓰로잉을 하기도 했다. 
완벽하진 않았다. 로밍이 쓸데없는 시간낭비가 될 때도 많았으며 크랙플레이 보단 쓰로잉이 더 많았으며 몸을 내던져야할때 망설이다 무기력하게 지는 경기도 많았다.
하지만 세최미에 언급될 만큼 뛰어난 선수, 심지어 메카닉적으로는 최고라 불리는 선수인만큼 그 실수는 빠르게 줄었다. 
그렇게 묵묵히 자신들만의 싸움을 거듭해 온 젠지와 쵸비는 결국 LCK 결승전에서 T1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때쯤 나는 쵸비의 기량이 페이커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물론 페이커만의 장점은 여전했다. 긴 세월 군림하며 머리보다 몸이 반응하는 빛나는 크랙플레이는 그때도 그렇고 현 시점에서도 페이커만의 유일무이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인전, 로밍력, 챔프폭, 무엇보다 팀의 기둥으로 안정적으로 팀을 견인하며 한타에서 꾸준히 딜을 누적해야하는 미드라이너의 기본적인 역량만 놓고 본다면 쵸비에게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쵸비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게 보였다.
쵸비가 페이커에게 승리하고 결승에서 T1에게 끊임없이 패배했던 징크스를 끊어낸 이후에 T1과 페이커는 쵸비와 젠지에게 이길 수 없었다. 순식간에 서로의 입장이 반대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묵묵히 페이커를 응원했다. 
그렇게 또 한번의 롤드컵이 찾아왔다.
T1과 페이커는 극복했지만 국제전의 악몽은 이겨내지 못한 젠지는 이미 떨어지고 T1은 롤드컵 결승에 올랐던 재작년. 젠지 없는 결승은 당연히 우승하겠거니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마침내 다시 한번 세계의 정상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T1은 기적처럼 달려온 DRX에게 패배했다.
흐느끼는 케리아와 묵묵히 다독이는 페이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악몽같은 날이었다. 
페이커의 긴 부진에 은퇴를 떠올리던 그때 이후 최고로 힘든 날이었다.
하지만 페이커와 어린동료들은 그 다음해에 당당히 롤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막강한 라이벌인 젠지를 직접 눌렀으면 좋았겠지만 혼자 남아 LPL 3팀을 모조리 무너뜨린 서사가 또 나름의 맛이 있었다. 당시 최고의 팀이었던 LPL팀을 상대로 페이커의 슈퍼플레이가 빛나서 더 기분이 좋았다.
페이커가 다시 한번 세계의 정상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팀원들에게 공을 돌릴때. 
나는 기나긴 팬으로서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여전히 뛰고 싶어하는 페이커가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내 기분은 그랬다. 
이 후부터는 뭐랄까.....소설의 에필로그 이후의 외전을 보는 기분으로 응원하고 있다. 
쓰다보니 벌써 24년이 됐다. 
페이커와 T1, 그리고 젠지와 쵸비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T1과 페이커는 아쉽게도 이번에도 LCK 결승에서 젠지와 쵸비에게 닿지 못했다.
이후 열린 msi 라는 국제전에서 젠지는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고 T1과 페이커는 이전에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을 반복하며 휘청이며 나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엔 T1이 결승에 올라가더라도 우승은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현 시점 젠지와 쵸비의 폼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미 긴 징크스를 깨고 국제전에서 LPL을 이겨낸 젠지를 이겨내긴 쉽지 않아보인다.
젠지가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컨디션관리에 실패하지 않는다면. 젠지가 이기는게 흔히 말하는 정배일것이다.
다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msi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한번 진다고 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스포츠에서 정배가 항상 승리하진 않는다는것 때문이겠지만.
이어진 패배에 절망하고 끝을 고했었다면 젠지와 쵸비는 이미 꺽였어야 했고 페이커는 진작에 은퇴했어야 한다. 
그때그때의 승패에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게 팬과 선수지만 내 사견으로 진정한 팬이라면 선수가 끝이라고 말하기전까지 묵묵히 응원해주면 되는게 아닐까 싶다. 
패배를 이겨내려 노력하는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스포츠를 만들고 팬들의 가슴을 울리니까. 
재작년 DRX의 우승과 작년 T1의 우승이 그래서 더 가슴을 울리지 않았나.
세상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때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자신이 좋아서 응원하고 지켜보는 스포츠에서만큼은 따뜻해져야 되는게 아닐까.
이미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서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병들게하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독설에 지쳐 커뮤니티를 떠난지 꽤 됐지만 가끔 이런 저런 경로로 커뮤니티는 물론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모든곳에서 자신의 병든 마음을 자랑하는 인간들을 볼때면 마음이 답답하고 안쓰럽다.
페이커와 쵸비, 그리고 젠지와 T1은 한국인 그리고 롤팬으로서 너무 자랑스러운 팀이다. 
아마 그들도 서로를 그렇게 상각하고 있지 않을까? 서로를 자극하는 라이벌이 없었다면 LCK는 빠르게 병들어갈 것이다. 혼자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G2가 매번 세계무대에서 절망하는 것처럼. 
자신이 자신의 팀과 선수를 아끼는것처럼 타인도 타인의 팀과 선수를 아낀다.
그게 그렇게 이해하기 힘들일인지 의문일뿐이다. 
현재 누가 뭐래도 젠지 특히 쵸비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게 사실이고 T1 특히 페이커는 부진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경기, 다음 시즌 누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게 우리가 롤을 E 스포츠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다. 
아아....쓰다보니 너무 길게 썼다. 뭘 쓰고 싶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왜 떠난지 오래된 커뮤니티에 찾아와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해 이곳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일까.
탬이나 카운터픽은 물론이고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시절. 
스스로를 장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갈고 닦은 공략을 보면서 탬을 따라하고 룬을 따라하고 챔피언 별 상대법을 따라하고....서로의 팀을 응원하고 싸우고 그러면서도 웃으며 활동했던 그 시절...
물론 그때도 이상한놈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시궁창은 아니었다.
음.....쓰고 생각해보니 이것도 추억미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내일 일어나서 기억한다면 부끄러워 아마 후다닥 삭제할 확률이 높은 뻘글.....하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한명이라도 비난보다 상대방이 자신과 응원하는 팀이 다를뿐이라고 인정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래본다.
긴 세월 활동하는 페이커에 대한 악감정 보다는 좋은 감정을 품기를 바래본다.
그럼 이만 글을 마친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어느 스포츠에나 있는 훌리건 분탕종자들은 그냥 다 나가뒤졌으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