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팬픽은 인터넷에 떠도는 일러스트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상상을 짤막하게 적은 팬픽입니다.

단편적인 내용만 생각해서 적은 것이기 때문에 앞내용, 뒷내용은 모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이나 추천을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가혹한 운명-


-팬픽 소재 이미지 출처 : しぴー(트위터)




한 때 휘황찬란한 저택의 모습을 한 건물 잔해들 앞에서, 호노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눈에 비춰진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관련된 모든 사실은 한치의 틈도 없이 진위 여부까지 따지며 조사했었다.

'그녀'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완벽한 논리로써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를 감시하고 겁주던 모든 괴수, '그녀'를 구속하고 병들게 만들었던 봉인석, '그녀'를 마비시키고 세뇌시킨 악한 자도, 호노카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제거했다.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해서 행해진 것.

단지 고통받았던 '그녀'를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그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세상 이곳저곳을 같이 여행 다니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스스로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비참한 현실만이 자신을 맞이하고 있다.


 호노카 「코토리쨩...?」


미세하게 떨리는 호노카의 입으로부터 '코토리'라고 불려왔던, 순수하고 착한 그녀는 동화책에서처럼 자신을 구한 왕자님을 향해 뛰어오지 않았다.

아니, 뛰어오지 '못' 했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토리의 발 밑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불길 속에서 그 모습이 점점 변해가고 있었기에.


 호노카 말도 안 돼... 어째서...?


희망이 혼란으로 변하고, 혼란이 절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초롱초롱하던 코토리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 이계 생물같이 변했고, 가끔씩 펼쳐주었던 코토리의 하얀 날개는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채로 탁한 색에 점점 물들여져가고 있었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지만 아름다웠던 그녀의 목소리는 부정적인 모든 감정을 담아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코토리 구출 작전'에 완벽을 기하던 호노카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호노카의 머릿속은 이미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졌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가.

무엇을 잘못하고, 무엇을 놓쳤는가.

코토리는 지금 무엇으로 변하고 있는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가.


 코토리 ...호...노...카쨩......


그 신음소리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코토리의 꺼질듯한 목소리에, 초점을 잃던 호노카의 눈에 정신이 깃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호노카는 분명 코토리를 구하려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아직 이루지 못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호노카는 힘이 풀렸던 다리를 가까스로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성적인 사고를 가슴 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에게 맡기며 몸을 날렸다.


 호노카 코토리쨩을 놔줘...!


외마디 절규를 외친 호노카는 코토리를 휘감고 있는 불길 속에 몸을 날렸다.

그 불길은 이상하게 뜨겁지 않았다.

다만 이 세상에서 느끼기 어렵다고 느낄 정도로 기분 나쁜 오오라가 온몸을 훑을 뿐.

그 속에서 호노카는 코토리의 팔을 붙잡고, 바깥으로 꺼내기 위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호노카 코토리쨩, 정신차려!!!

 코토리 호노카...쨩......


보라색 불길과 변해져 가는 모습 때문에 괴로운지, 코토리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이미 날개는 외형마저 변하고 있었다.

코토리는 자신을 잡아당기고 있는 호노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 애처로운 손짓은 그녀의 마음을 동요시키기 충분했다.


 호노카 어째서 모두 코토리쨩을 가만히 냅두질 못 하는거야!

 호노카 목숨까지 걸었던 결과가 이런거라니 너무하잖아!!!

 호노카 부탁이야...

 호노카 제발...

 호노카 제발 코토리쨩을 더이상 괴롭히지 마......!!!!!!!!!!


순간, 불규칙하게 움직이던 보라색 불길들이 빠른 속도로 코토리의 몸 속으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듯이 흡수되더니,


 콰앙─!


이내 커다란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호노카의 몸은 순식간에 튕겨져 버렸다.

그녀의 몸은 땅바닥에 세차게 패대기쳐진 뒤, 들쑥날쑥한 건물 잔해들에 부딪히면서 짧지 않은 거리를 굴러져 갔다.

구르는 속도가 점점 감소되어 겨우 멈춰지자, 호노카는 온몸이 구타당한 듯한 고통에 휘감겼다.


 호노카 우으윽...


그러나 더이상 쓸데없는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을 터.

삐걱거리는 몸을 뒤로 하고, 빠르게 정신을 차린 호노카는 머리에 손을 짚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본능적으로 코토리쨩을 찾으려는 움직임이었다.


 호노카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코토리를 찾고야 말았다.

하지만,


 호노카 코토리쨩......?


그녀의 모습은,


 코토리 ...


이미 완전히 변하고야 말았다.

.
.
.
.
.

코토리는 공중에서 보라색으로 물들여진 날개를 펄럭이며 호노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변해버린 그녀의 눈빛을 느낀 호노카는 소름이 돋고 말았다.

예전의 선함은 커녕 모든 것을 멸할 것 같은 사악함이 코토리의 온몸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것만 같은 사악함.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부정해버렸다.

겉은 분명 변했을지 몰라도, 속은 그대로라고.

코토리는 코토리라고.

그런 절박한 희망이, 잔혹한 현실에 대한 각인이라는 것을 호노카 스스로 깨닫지 못 했다.


 호노카 무사해서 다행이야...


호노카는 망가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퍼엉─!

 퍼엉─!!


코토리의 날개로부터 뿜어져나온 검은 탄환들이 자비없이 호노카 주변에 꽂히며 폭발했다.

직접적으로 맞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호노카의 몸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걸까.

코토리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이.


 호노카 왜, 왜 그래, 코토리쨩...에헤헤.


호노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무마해보려 했다.


 코토리 「...미안해, 호노카쨩. 현재 내 몸은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어.


코토리의 슬픈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말이 울려퍼졌다.

이에 호노카의 몸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공격한 코토리에게 더이상 예전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호노카가 충격에 빠져있는 사이, 코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토리 그러니까 부탁해, 제발 도망쳐...


행동과 말이 다른 코토리의 모습에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호노카 무슨 말이야...?


호노카의 물음에, 코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코토리 이 때까지 나도 몰랐었는데, 지금 내가 이 모습으로 변하니까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 내가 이 저택에 오자마자 주인님이 '멸살의 코드'를 심었던거야.

 호노카 멸살의 코드라니...?

 코토리 구속구가 모두 풀리고, 주인님 자신이 죽게 되면 발동되는 '계약 기능'... 내 목소리의 힘을 파괴의 힘으로 바꾸는 '변환 기능'... 내 힘이 다 될 때까지 주인님을 죽인 인간과 주변 인간을 말살하는 '파괴 기능'... 그리고......

 호노카 ...?

 코토리 내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폭주 기능'도 있어...

 호노카 뭐, 라고...?

 코토리 미안해, 호노카쨩... 정말 미안해... 이제 변환 기능의 마무리가 다 됐어. 곧 있으면 폭주 기능까지 완전히 발동될 거야......

 호노카 ...

 코토리 그러니 이 틈에 얼른 도망쳐. 나, 나는... 호노카쨩을 죽이고 싶지 않아..... 우흑, 흑...


말을 마친 코토리의 몸은 시간이 조금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함의 오오라가 더 강해져가고 있었다.

이와 어울리지 않게 코토리의 눈에서는 순수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곧 있으면 이 눈물조차도 흘리지 않는 살인기계로 변모할 것이다.

타인에게 코토리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심이 극악으로 치닫았을 때의 결과물.

모든 것을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근본적인 것을 제거하지 못 했다.


 호노카 크윽...!


코토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저택에 갇혀있다가 겨우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농락당하는 코토리의 마음을 상상한 호노카도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


 호노카 코토리쨩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돌파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호노카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코토리를 구출하기 위해 챙겨온 회복포션이었다.

본래 더 많이 갖고 왔지만 이미 이전에 다 써버려서 남은 것은 이것 밖에 없었다.


 호노카 그래도 하나는 남기고 모두 클리어 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호노카는 이내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다 마신 포션 병을 바닥에 떨구자마자 그녀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아물고, 잃었던 기력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핀 호노카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검을 주웠다.

그러고선 성큼성큼 코토리를 향해 다가갔다.


 코토리 안 돼! 다가오지마...!!!


다급하게 외친 비명과는 다르게 코토리의 몸은 더 빠르게 반응했다.

코토리의 날개가 크게 한번 날갯짓을 하자 수많은 탄환들이 호노카를 향해 날아갔다.


 코토리 안 돼!!!


하지만 호노카가 무심히 검을 몇번 휘두르자 탄환들은 모두 사그라들었다.

결국 단 하나라도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 했다.

그렇게 손쉽게 탄환을 제거한 호노카는 눈가가 촉촉해진 눈으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코토리를 향해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호노카 코토리쨩이 아까 말한 코드의 기능들은 그게 끝이지?

 코토리 「응? 으응...

 호노카 그럼 이 문제는 간단해.


호노카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호노카 코토리쨩의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내가 싸우면 되는거야. 그럼 코드도 스스로 없어질거 아니야?


'코드'란 본래 어떤 종류이던지 간에 자신의 기능을 일부라도 다 하지 못 하면 자동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생각해 봤을 때, 코토리가 말한 모든 기능들 중 목소리의 힘을 파괴의 힘으로 바꾸는 '변환 기능'이 그나마 코드 자체를 소멸시킬 가능성이 크다.

힘 자체가 다 떨어지면 더이상 그 기능이 발동되지 않을테는데다가, 동시에 주변 인간을 말살해야 하는 '파괴 기능' 또한 무력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코토리 무리야! 내 목소리의 힘이 얼마나 큰 지 호노카쨩도 잘 알고 있잖아!


코토리가 말한대로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힘은 마을 몇 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정말로 강력하다.

이를 파괴의 힘으로 바꿨으니, 이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틴다는 것은 마치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다.

호노카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호노카 괜찮아, 나를 믿어. 맹세할게.


호노카는 부드럽지만 힘찬 목소리로 맹세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녀는 코토리를 구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이라도 기꺼이 행할 것이다.

그 믿음직스럽고도 부드러운 눈동자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코토리는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잊혔던 과거의 단편이 스쳐지나간걸까.

따뜻한 추억이 그녀의 마음을 자극한 것일까.

중요한 점은 호노카의 말대로 어떻게든 이 상황이 해결될 것 같다는 희망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악함의 오오라가 최고조로 치닫았을 때,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코토리 응...


오오라의 흐름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코토리 「믿을게......


눈을 감은 시간은 단 몇 초.

이윽고 다시 떴을 때, 코토리의 눈은 아무런 생기가 없었다.


 코토리 멸살의 코드. 완전 발동. 코드 명령어. M091K2. 목표는 전방에 있는 인간 1명. 제거, 실시합니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목소리가 코토리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오자 호노카는 한숨을 쉬었다.


 호노카 코드라는 것, 정말 짜증나는 거였구나. 달콤했던 코토리쨩 목소리를 저렇게 바꾸다니...


이윽고 검을 고쳐쥔 그녀는 따뜻한 무언가가 자신의 눈에서 다시 한번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한번도 크게 다투지 않았던 코토리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날이 오게 될 줄을 그 누가 상상했을까.

그래도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해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눈 앞의 인간을 제거하려는 코토리의 입가에 냉소가 담겨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방금 전까지 흘리던 눈물이 아직까지 새어나오고 있었다.


 호노카 그래, 이 상황에서 제일 힘든건 코토리쨩이겠지...


잠시 동안은 서로를 노려보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중에서 날고 있던 코토리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윽고 거칠게 날개를 펄럭거리며 호노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호노카 또한 코토리한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상태에서 검을 고쳐잡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끝을 알지 못 하는 싸움이 시작되고 말았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