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시간이 되어 엘론과 하셀은 메리엘이 머물고 있을 여관을 찾았다. 그리고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구석 탁자에 머리를 박은 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메리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메리엘 씨?”

 

 

하셀이 메리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메리엘은 뜻 모를 소리를 웅얼거렸다. 다시 한번 부르자, 그제야 메리엘은 비척비척 고개를 들었다.

 

 

으에에...”

 

히익.”

 

세상에, 완전히 맛이 갔군.”

 

 

메리엘은 술을 진탕 퍼마신 상태였다. 심지어 울기까지 했는지 눈도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훅 끼친 술 냄새에 하셀은 질겁했다.

 

 

하셀, 엘론 씨. 오셨어요...”

 

, 그래...”

 

 

엘론은 여관 주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뒤 메리엘에게 내밀었다. 물을 들이켠 메리엘은 조금은 정신이 돌아온 기색이었다.

 

 

엘론이 말했다.

 

 

왜 이렇게 마신 거야? 시험 때문에 그래? 장로한테 물어볼 게 있다더니, 안 좋은 소리라도 들은 거야? 로베이라 님 성격 좋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봐.”

 

 

메리엘은 뭔가 말하려다, 시험 내용을 발설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이미 3차 전직을 마친 엘론은 몰라도, 이곳에는 하셀이나 다른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메리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로베이라 님은 뵙지도 못했어요.”

 

? 그럼 누굴 만나고 온 거야?”

 

타일러스 님이요. 다른 분들은 자리를 비우셨더라고요.”

 

호오. 그래? 그건 또 드문 일이네.”

 

 

엘론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메리엘은 술을 더 주문하려 했다. 하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드시려고요?”

 

오늘은 그러고 싶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보네. 어쩔 수 없지. 술이나 마시면서 털어버리자고.”

 

 

엘론은 여관 주인에게 맥주와 우유를 주문했다. 우유는 물론 하셀의 몫이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메리엘이 말했다.

 

 

아버지는 잘 뵙고 오셨나요?”

 

그렇지 뭐. 호통 소리에 귀가 먹는 줄 알았어. 몇 년째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몰라.”

 

저도 엄청 혼났어요...”

 

 

메리엘은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무모한 아들을 둘씩이나 둔 부모라면 하루하루 속이 썩지 않는 날이 없지 않을까.

 

 

사냥꾼들 쪽에도 갔다 왔지.”

 

설산의 마녀 이야기를 하러 간다고 했었죠?”

 

. 어차피 한동안 마을 밖으로 나갈 일은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 마녀, 다시 생각해 봐도 황당하네. 여태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죽일 것처럼 달려든 거지?”

 

 

엘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메리엘은 설산의 마녀와 싸우던 때를 돌이켜보았다.

 

 

확실히 마녀는 기이할 정도로 엘론만을 노리긴 했다. 메리엘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다시피 했고, 먼저 화살을 날린 하셀에게 약간의 반격을 가했을 뿐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걸까?’

 

 

알케스터 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릴 게 있어요. 실은 알케스터 님이 묘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묘한 말씀?”

 

 

하셀이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아내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본 건 설산의 마녀가 맞다고 하셨어요.”

 

아니, 진짜로...?”

 

메리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우리 정말로 엘나스 산맥의 주인을 만난 거야? 세상에!”

 

 

오랜 세월을 살아온 뛰어난 마법사인 알케스터가 근거 없는 소문을 함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메리엘은 술기운도 잊고 눈을 빛내며 하셀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줘!”

 

으아아... 알겠, 알겠어요. 말할 테니까 조금만 떨어져 주세요...”

 

 

하셀은 갑자기 코앞으로 다가온 메리엘의 얼굴에 그만 뒤로 넘어질 뻔했다. 어쩐지 귀가 화끈거리는 느낌과 함께, 하셀은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절벽 근처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이상한 일이라고 하시면서도, 생김새랑 사용하던 마법을 말씀드리니까 설산의 마녀는 확실하다고 하셨어요.”

 

오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에요. 설산의 마녀의 정체는 전설로 내려오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셨어요.”

 

?”

 

설산의 마녀는 오래전, 엘나스에 있었던 어떤 여마법사라고 해요.”

 

 

탁자 한편에서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며 하셀은 말을 이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결국 마을에서 쫓겨나 깊은 숲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그 뒤, 그녀는 마을에서 쫓겨난 원한에 스스로 몬스터가 되었다고 해요.”

 

 

메리엘은 하셀의 말에 완전히 몰입했다. 하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알케스터 님이 직접 보셨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셨어요.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여마법사는 왜 환영받지 못했을까요?”

 

 

엘론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결론은 우리가 만난 건 엘나스의 주인 따위가 아니라 그저 열받은 몬스터에 불과했다는 거지. 나한테 집착했던 건, 옛날에 자길 따돌렸던 사람 중에 나랑 닮은 사람이라도 있었나 보지.”

 

 

문득 메리엘은 자신이 기절했을 때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쇠사슬에 묶인 채 분노를 쏟아내던 여마법사와, 흑마법을 사용하던 프리스트.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환상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메리엘은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메리엘이 아무런 말이 없자 하셀은 고개를 갸웃했다.

 

 

메리엘 씨? 왜 그러세...”

 

 

하셀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여관의 문이 거칠게 열어젖히며 굉음을 내었기 때문이다. 여관 내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

 

 

들어온 것은 험상궂은 인상의 세 남자였다. 화가 치밀어 오른 듯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셀이 작게 중얼거렸다.

 

 

사냥꾼들...? 여긴 왜...”

 

 

그들은 엘나스의 사냥꾼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엘론을 발견하고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여기 있었군. 엘론.”

 

날 찾았어?”

 

그래. 우리가 왜 왔는지는 알고 있겠지.”

 

 

엘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 새끼가!”

 

 

성큼성큼 다가온 사냥꾼은 그대로 엘론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엘론은 옆으로 넘어졌고, 탁자와 그 위에 올려져 있던 것들이 엎어지며 여관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

 

 

메리엘은 쓰러진 엘론을 살폈다. 하셀은 사냥꾼들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꺼져라, 하셀.”

 

 

사냥꾼은 짧게 말하고는 하셀을 걷어찼다. 하셀은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사냥꾼은 하셀을 옆으로 치운 뒤 엘론에게 다가갔다.

 

 

하셀!”

 

 

메리엘은 사냥꾼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죠?”

 

마법사인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비켜라.”

 

설명할 생각이 없다면, 저도 그럴 수 없어요.”

 

 

사냥꾼은 귀찮은 듯 혀를 차고는 메리엘에게 손을 뻗었다. 그때 엘론이 메리엘을 밀어내며 일어섰다.

 

 

괜찮아. 내 일이니까, 넌 나서지 마.”

 

 

엘론이 말했다.

 

 

무슨 짓이지? 이건 그냥은 못 넘어가겠는데.”

 

 

사냥꾼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네가 그런 소리를 하다니.”

 

무슨 말이지?”

 

 

사냥꾼은 엘론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설산의 마녀의 분노를 산 탓에 우리 모두가 위험해졌잖아!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지? 차라리 뒈져서 죗값이라도 치르지 그랬나?”

 

 

엘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뭐라고?”

 

대장은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인 것 같지만, 우리는 생각이 달라. 안 그래도 매일 사고만 치는 네놈 때문에 피곤한 참이었다. 이참에 손을 좀 봐주지.”

 

잠깐,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헛소리 마라! 네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왜 잠잠하던 설산의 마녀가 널 공격한 거냐!”

 

 

엘나스의 사냥꾼들에게 설산의 마녀는 두려운 존재였다. 목숨과 생계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 자의 분노를 샀으니, 자연히 그 책임을 물으러 온 것이다.

 

 

사냥꾼은 다시 한번 엘론에게 주먹을 날렸다. 엘론은 고개를 틀어 가볍게 흘려내고는, 역으로 사냥꾼의 턱을 날렸다.

 

 

어억!”

 

 

다리가 풀린 사냥꾼은 무릎을 꿇었다. 엘론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끝까지 해볼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무 잘못도 한 적 없어. 지금 돌아가면 없던 일로 해주지.”

 

크크... 엿이나 먹어라.”

 

 

사냥꾼들은 엘론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무기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상대와 싸우는 상황이다. 저대로 두면 엘론은 분명 크게 다칠 것이다.

 

 

메리엘은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불현듯 타일러스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찌 보면 지금도 그 각오가 필요한 때라고 볼 수 있다.

 

 

메리엘은 스태프 끝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인즈에게 부탁해서 공격과 관련된 마법은 모두 기억에서 지워버렸지만, 기초적인 마법 정도는 원리를 몰라도 임기응변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푸른 에너지 덩어리가 일렁였다. 에너지 볼트. 마나를 응집시켜 발사하면 폭발하는 간단한 마법이다. 이걸 적당히 충격만 줄 정도의 위력으로 조절해서 사냥꾼들을 무력화시킨 다음, 치료해서 쫓아내기만 하면 된다.

 

 

식은땀이 흘렀다. 메리엘의 손이 덜덜 떨렸다. 스태프를 사냥꾼들에게 겨누고는, 마나 응집체를 발사하려 했다.

 

 

순간 메리엘의 머릿속에 피투성이가 된 한 소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

 

 

실패했다. 그것을 발사하겠다고 생각하자마자 메리엘은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흩트리고 말았다. 메리엘은 스태프를 떨어뜨렸다. 스태프는 마룻바닥 위를 시든 나무토막처럼 볼품없이 굴렀다.

 

 

...’

 

 

결국 필요할 때 나서지 못했다. 자괴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역시,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구나.’

 

 

죽일 생각이 아닌데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거부감이 드는 형편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 같은 상태로는 설령 프리스트가 된다 해도 의미가 없다.

 

 

메리엘은 시험을 포기하고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직은 일렀던 모양이다.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마음 같아선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더 먼 곳까지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걸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그런 자격은 주어지지 않을 터였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야.’

 

 

메리엘은 스태프를 주워들었다. 적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싸움을 멈추지는 못해도 버프 정도는 걸어줄 수 있었다. 서로 뒤엉켜 있어 엘론을 특정하기가 어려웠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어라?”

 

 

그러나, 고개를 든 메리엘은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삼 대 일의 싸움이었는데도, 엘론은 놀랄 만큼 잘 싸웠다. 좁은 공간에서 적이 에워싸고 있는 만큼 설산의 마녀 때처럼 공격을 회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엘론은 대부분의 주먹과 발길질을 맞아가면서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엘론은 기이한 맷집으로 그것을 모두 버텨내었다.

 

 

분명 엘론은 활을 다뤘고, 그리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다. 전사도 아닌 자에게 저런 짓이 가능한 건가?

 

 

싸움을 말리려던 메리엘은 자기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정신을 차린 하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게... 무슨...?”

 

 

오래지 않아 소란이 멎었다.

 

 

쓰러져 있는 것은 사냥꾼들 쪽이었다. 한 사냥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뭐냐... , 어떻게 된 거지?”

 

 

엘론은 입가를 쓱 훔치면서 말했다.

 

 

주먹이 솜방망이네. 운동 좀 더 해야겠는데? 볼일 끝났으면 이만 가봐.”

 

 

엘론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쓰러진 탁자를 세우고 부서진 집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엘론은 혀를 차며 말했다.

 

 

난장판이 따로 없군. 돈은 있지? 이거 다 물어주고 가. 알겠어?”

 

 

사냥꾼의 얼굴에 핏줄이 솟았다. 그는 충동적으로 옆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다음 순간, 그는 엘론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그것은 칼이었다. 커다란 칼날이 허공을 날았다. 엘론은 뒤돌아 있었기에 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 잠깐!”

 

안돼!”

 

 

날아간 칼은 엘론의 목과 어깨 사이에 박혔다. 엘론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하셀은 비명을 질렀다.

 

 

!”

 

 

정작 당사자인 엘론은 비교적 덤덤했다. 엘론은 자신의 어깨에 박힌 채 반짝이는 칼날과 사냥꾼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홧김에 벌인 짓인지, 칼을 던진 사냥꾼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얼어 있었다.

 

 

사냥꾼은 황급히 말했다.

 

 

, 잠깐.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맨손으로 싸우는 건 다툼의 영역이었다. 적절한 명분이 있고, 불구가 되거나 할 정도로 수위가 지나치게 과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무기를 쓰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엘론 역시 엘나스의 주민이자 같은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같은 마을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엘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는 사냥꾼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꺼져.”

 

아니, 그래도...”

 

당장.”

 

 

사냥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난처해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에 결국 사냥꾼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만을 안은 채 돌아갔다.

 

 

사냥꾼들이 사라진 후, 엘론은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피곤하네. 난 이만 자야겠어. 먼저 간다. 너희도 적당히 놀고 잠이나 자.”

 

 

당연하게도 메리엘과 하셀은 엘론을 멈춰 세웠다.

 

 

? 그대로 가시려고요?”

 

어깨에 칼을 꽂은 상태로?”

 

 

엘론은 아직 어깨에 박힌 칼을 뽑아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칼은 고기를 써는 용도였기에 크기와 무게가 꽤 나가는 것이었고, 그로 인한 상처가 작지 않음은 자명했다. 치명적인 부위에 박히진 않았지만 그대로 둘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엘론은 완고했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신경 꺼.”

 

아뇨, 제가 꼭 봐야겠어요.”

 

 

메리엘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칼을 쥐었다. 그러자 엘론은 거칠게 메리엘을 밀쳤다.

 

 

신경 끄라니까!”


꺄악!”

 

 

메리엘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와 함께 박혀 있던 칼이 팍 뽑혀 나왔다.

 

 

메리엘 씨!”

 

 

하셀이 기겁하며 메리엘에게 달려갔다. 하셀은 고함을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진짜 미친 거야?”

 

 

하셀은 분개하며 메리엘을 일으켰다. 하지만 메리엘은 엘론의 무례함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메리엘의 눈동자는 정확히 엘론의 상처를 향하고 있었다.

 

 

칼날이 뽑히는 순간, 메리엘은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당연히 보여야 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액체. 살갗이 찢기면 배어 나오는 그것.

 

 

칼이 뽑혀 나온 엘론의 상처에서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엘론은 곧바로 상처를 가렸지만, 메리엘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직후, 메리엘은 힐을 사용했다. 단순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금 반드시 힐을 사용해야 한다는 어떠한 직감에 따른 행동이었다.

 

 

……!”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메리엘은 엘론이 휘청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메리엘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러 증거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다. 메리엘은 이미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언데드?’

 

 

엘론은 이미 죽은 시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