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바다 위에 점점히 흩어져 있는 섬과 같이 내 머릿속에서 흔들린다. 이제 나는 그 섬들을 하나 하나 방문하여 그 시절을 그려보려 한다."
흡사 장 그르니에의 '섬'의 어느 구절 같다. 이 글은 영화 친구의 시작 내레이션이다.
영화의 끝은 푸르고 깊은 바다이다. 싱그러운 네 명의 소년은 탄탄하고 검은 튜브 하나에 의지한 채 바다거북과 수영 선수 조오련이 경기를 하면 누가 더 빠를까를 궁금해하며 노닥거린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
"큰일 났어. 우린 너무 멀리 왔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자."
"그래, 가자."
네 명의 소년은 하나의 튜브에 의지하듯 혹은 끌듯, 한 팔들을 끼운 채 열심히 일심동체가 되어 헤엄치기 시작한다.

앙드레 말로는 예술은 인간이 운명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혹 인간들 중에는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가 천재 헬돌이든, 그저 그런 건랜스든, 버프도 제대로 못 쓴 비운의 수렵피리든, 혹은 민폐모스든, 그들의 삶은 운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바치며, 삶과 운명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예술적 승리를 누리기도 한다.

나는 자신의 삶에서 운명성을 발견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간에 일관성 있게 운명을 꿰뚫은 사람은 지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길에 들어선 것을 아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무엇을 이루었거나 이루지 못했거나, 몇 걸음을 나아갔거나 굳이 셀 필요가 없는 일이다. 갈 만큼 가는 것뿐.

내 친구는 어느날 모처럼 게장을 잘 담갔다. 친구가 불투명한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잠자리를 정돈하고 걷어 올렸던 머리를 풀어 핀을 책상 위에 놓는 사이에 보상 음악이 울려 퍼졌다. 친구는 왠지 보상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의자를 베고 기댄 채 어둠 속에서 보상 화면을 끝까지 보았다고 한다. 곁에는 상위랭크로 오며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 외길만을 파온 버프피리를 공격피리로 전환하더라도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수렵피리족 안에서, 삼 개월 동안이나 버텨온 창고안의 피리들을 정리하고 이리저리 돈을 떼인 채 적은 자본금으로 새로운 아이템과 거너셋을 맞추기 위해 구차한 동분서주를 하고 있는 남편이 잠들어 있었다.

빰 빠바밤 빠바밤... 보상화면이 끝날 무렵 눈물이 고이더라 한다. 새로운 컨텐츠가 제발 빨리 나와야 할 텐데... 지금은 자신이 이 게임을 왜 시작했는지도 까마득한, 첫 레이아의 감동조차도 기억해내지 못할 칠팔십랭크 유저들이 그제서야 새로운 거너셋을 맞춰야 하는. 지금은 가장 평범한 피리유저가 한밤중 홀로 보상화면을 보면서 이제부터의 걱정에 눈물을 흘리는 비운의 시대이다.

내외적으로 해킹, 업데이트, 운영부실, 진부함.. 몬헌엔 모욕과 누추함과 전락의 예감과 불안과 혼란과 끔찍한 결핍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의 어둠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보다 더 어려웠던 긴 역사 속에서 몬헌을 바라보고, 자기의 전 생애 속에서 자기 운명을 통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편의 영화처럼 자기 생에서 일관성을 발견하는 것,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정직하게 나아가는 것... 맨몸으로, 거추장스럽고 장식적인 욕망들을 비우고, 그처럼 가볍게 다시 출발하는 선에 서는 피리들은. 우리는 얼마나 찬란하고 자유로울까.





















왜 흑룡에선 피리들면 안되여?? 왜여???

나 모스쎗 완성해씀 님들 각오하세여.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