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세계관을 참고 삼아 개인적으로 '이런 배경이면 재밌지 않을까~?'하는 망상을 곁들여 작성해 봤습니다.
쬐까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건 애교로 xD


20XX. 01. 26
병원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UN측 인물 하나가 그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대퇴부 골격과 합금의 분자단위 융합 수술을 마친 후라 피곤했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UN측 사람이 오버워치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오버워치?
그들이 옴닉 사태를 수습한 것은 사실이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옴닉 사태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억제된 것 뿐이다.
만약 오버워치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20XX. 03. 18
대략 세 달 정도, UN에서 끈질긴 접촉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내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다.
내 대답은 항상 '아니오'지만 그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병원장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인지, 외과 과장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0XX. 04. 01
그들이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를 이용했다.
나는 의사가 된 이후 항상 생각해왔다.
부모님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내가 지금과 같은 힘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UN측에서 보낸 자료에는 옴닉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발발하고 있는 크고 작은 규모의 내전과 그로 인해 전쟁고아가 되는 아이들에 대한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병원에 출근한 후 그것을 출력해서 묶은 다음 자세히 읽었다.
전쟁은 항상 무고한 피해자를 낳는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행하는 것은 무자비한 정치가들과 군인이지만, 피해는 항상 보통 사람들이 입는다.
그 굴레를 끊기 위해 오버워치라는 거대하고 폭력적인 힘이 사라져야 한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20XX. 05. 08
UN 본부에서 긴급한 호출이 있었다.
병원의 옥상에 도착한 수송선을 타고 오버워치 본부로 향했다.
환자의 이름은 가브리엘 레예스였다. 놀랍게도, 그는 머리를 제외한 온몸이 거의 바스러진 상태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급히 병원에서 나노머신을 이용한 체세포 활성화 장치의 시제품을 공급받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의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환자들에게 안정적인 치료수단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장치가 총을 들고 전장을 헤매는 남자에게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수술 직전, 레예스가 내 팔을 부여잡고 피거품을 뿜으며 무언가 이야기 했지만 그의 성대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나는 병원장의 허락을 얻어 오버워치 본부에 며칠 더 남아있기로 했다.



20XX. 05. 09
레예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동을 찾았지만 어제 내가 수술을 집도한 방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그 방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수술을 도왔던 오버워치 측 의료진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내 질문에 굳게 입을 닫았다.
오후에 집요하게 나를 설득하던 UN측 인사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마치 내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내게 오버워치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오버워치 부설 의료시설의 최고 책임자로.
외과 과장이라는 자리도 분에 넘친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지나치게 큰 제안이었다.
만약 내가 오버워치에 남아 체세포 활성화 장치를 완성시킨다면?
오버워치를 강습부대가 아닌 진짜 평화유지군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전세계에 자립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나는 UN측 인사에게 나흘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병원에 연락해 원래 있기로 한 날짜를 초과한 것은 개인 휴가에서 차감해달라고 말했다.


20XX. 05. 11
새로이 강습사령관에 임명된 잭 모리슨 씨가 나를 찾아왔다.
다들 레예스에 대해서 감추는 와중에,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과거 두 사람 모두 미군에 적을 둔 일이 있다면서, 그는 내게 전우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사령관이라는 직책에 비해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가진 기술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장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돌이켜보면, 지금껏 나는 잊고 있었다.
보통사람들 뿐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당사자들도 그만큼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결국 내가 해야하는 일은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20XX. 05. 12
잭 모리슨 씨와 오버워치의 수뇌부를 상대로, 나노머신을 이용한 체세포 활성화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
거기엔 레예스 수술 이후 유령처럼 지내던 의료진들도 함께 참석했다.
나 한 사람의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병사 개인이 휴대할 정도로 작은 투척형 치유장치. 민간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설치형 메디팩 등.
나는 조금 확신을 얻었다.


20XX. 05. 14
결국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일부터 나의 직함은 오버워치 의료부문 총책임자가 된다.


20XX. 10. 01
윈스턴과 처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의 겉모습은 거대한 유인원이지만, 지적수준은 잘 교육받은 박사들과 다름없었다.
달에서 홀로 지냈다는 그는 독자적인 가치관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생체 추적형 치유광선과 함께 사용할 전투복의 개발에 그의 조언을 구했다.
덕분에 지자기장을 이용한 추력 제어 기술을 적용할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거대한 손으로 마치 이쑤시개처럼 보이는 연필을 집어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발키리 수트'
자신이 달 기지에 있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전설들 중 하나라면서, 꼭 그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20XX. 11. 06
레예스가 복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그가 원래 강습지휘관이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해보려 시도했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마치 유령처럼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
레예스가 돌아왔을 무렵, 또 한 명의 환자에게 강화시술을 했다.
그의 정체는 모든 것이 불명이었고, 단지 '겐지'라는 이름만 알려져 있었다.
레예스의 경우는 신체조직 중 소실된 부분이 없었지만, 겐지의 경우는 달랐다.
원래는 부상당한 군인의 재활보조를 위해 설계해 두었던 강화 외골격장치의 설계를 일부 변경하여 그의 몸을 새로 건조하다시피 했다.
그는 레예스처럼 말수가 적었지만, 강인한 눈빛으로 생체조직과 금속제 강화 외골격 간의 융합과정을 버텨냈다.


20XX. 01. 13
발키리 수트의 테스트가 시작됐다.
서류엔 '신속 반응형 고기동 추력제어 전투복'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생체 추적형 치유광선은 '카두세우스'라 이름붙인 지팡이를 통해 제어하도록 했다.
지팡이와 수트는 착용자의 생체적 특징에 따라 개별적으로 미세조정되기 때문에, 둘이 하나의 짝을 이뤘다.
테스트용 수트는 내게 맞춰져 있다. 양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오버워치의 수뇌부가 이 계획을 찬성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새로이 어떤 비밀부서가 신설되었다고 들은 이후, 발키리 수트와 카두세우스 지팡이 개발에 필요한 예산 일부가 삭감되었다.
그들은 내 연구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나노머신 치유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섣불리 계획을 취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20XX. 01. 20
발키리 수트의 테스트에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광선의 출력과 수트의 추력제어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양산에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일명 '생체장'이라고 불리는 휴대형 체력회복 장치를 완성했다.
용감한 지휘관인 잭 모리슨은 높은 자리에 앉고 나니 시간이 많아졌다며 직접 생체장의 기능시험에 자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대원들을 데리고 직접 전장으로 출동하는 그에게 시간이 많을 리 없었다.
조금은 어린아이 같은 고집을 부리길래, 밤을 새워 전장에서 한 번은 제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을 안정화 시켰다.
그는 간부급 회의에서도 곧잘 내 편을 들었다.


20XX. 03. 08
모리슨과 함께 직접 전장으로 갔다.
반군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퇴각하는 아군을 후방까지 수송하는 임무였다.
발키리 수트와 카두세우스 지팡이의 성능은 이제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무사히 부상병을 모두 수습해 본부로 복귀했고, 모리슨은 생체장 생성장치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의 앞에서는 웃었지만, 내 방으로 돌아온 후 온몸이 떨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전쟁과 실제 전쟁은 동전의 양면 만큼이나 달랐다.
동전의 앞면만 아는 사람은 직접 그것을 뒤집어 보기 전엔 뒤쪽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다.


20XX. 05. 10
상부에 응급후송 전용의 수송선 건조를 건의했지만 반려당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20XX. 06. 02
레예스의 건강이 염려되어 일과 후 그의 개인실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노 머신을 이용한 치료의 첫 번째 대상이었던 그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
공식적인 면회 요청은 모두 반려되었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그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예스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어디로 간 거지...?


20XX. 08. 19
오버워치 설립 5주년을 맞이해 윈스턴과 레나가 오랜만에 본부를 찾았다. 토르비욘, 라인하르트, 맥크리, 아나 아마리 역시 늦지 않게 축하연에 참석했다.
레예스와 모리슨은 나중에 합류했는데, 레예스는 기념사진 하나만 촬영한 채 다시 자취를 감췄다.
실질적인 작전 수행을 담당하고 있는 요원들에게 UN에서 제공한 훈장이 수여됐다.
나 역시 의료 부문 최고 공헌자라는 훈장을 받게 되었다.


20XX. 10. 30
레예스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그는 독자적으로 블랙워치라는 조직을 결성해 단독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름 외에, 그들이 수행한 임무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은 비밀에 부쳐졌다.
징계위원회에 참석했던 모리슨의 경직된 표정에서, 그것이 밖으로 누설되어선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XX. 11. 04
공식적으로 오버워치는 해산되었다.
동료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파괴된 본부의 메인 프레임에서, 오버워치가 나노머신을 이용한 체세포 활성화 장치에 대해 별도로 연구한 문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일에 적잖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드물지 않다.
나 역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빨리 알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버워치라는 조직을 통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오버워치는 해산됐고, 나는 UN측에서 소집한 청문회에 출두해야 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에 대해 사실대로 털어놓을 것이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내가 난도질해버린 타인의 삶들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