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녀는 복도 양편으로 늘어선 수많은 문 가운데 한 곳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희미한 스탠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책상 앞의 의자엔 검은색 재킷을 입은 사내가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었다. 그는 왼쪽 팔목에 혈청 주사를 놓고 있었다. 아멜리는 그의 팔목이 포자처럼 부풀었다가 꺼지는 걸 보았다. 사내는 괴로움과 고통이 섞인 신음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레예스, 시간 됐어. 배신자를 잡으러 가야지."

 아멜리가 말했다. 사내가 책상에 올려둔 가면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레예스가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리퍼, 나갈 준비는 다 됐어?"

 "금방 갈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리퍼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 가면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투 요원들을 위한 탈의실이 따로 있었지만, 리퍼는 유난히 혼자서 옷 입는 걸 고집했다. 그는 방탄복을 입고 팔목과 발목에 보호대를 둘렀다. 약효가 온몸에 퍼져 나가면서 보호대에 닿는 부위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탠드의 불빛이 강렬한 섬광처럼 보이고 머리는 취한 듯이 핑 돌았지만, 살육에 대한 열망만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리퍼는 몸에 로브를 두르고 나서 로브 안쪽에 나란히 늘어선 헬파이어 샷건들을 점검했다. 그는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방을 나섰다.

 아멜리는 기지 밖에서 리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리퍼가 오는 걸 확인하고 회색 수송기에 올라탔다. 리퍼가 좌석에 앉고 나서 수송기의 은폐 역장이 작동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송기가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빛바랜 가로수로 둘러싸인 저택으로 검은색 리무진이 도착했다. 입구의 철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이 리무진 안을 살펴보고 나서 문을 열어주었다. 저택 앞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귀에 이어폰을 낀 보안 요원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리무진이 멈춰 서고 조종석과 뒷좌석에서 똑같은 차림의 요원들이 내려왔다. 한 요원이 조수석에서 금발의 중년 사내가 내려오는 걸 도와주었다. 사내는 중절모로 얼굴을 가리면서 땅을 내디뎠다. 저택 정문을 지키고 있던 요원이 그에게 달려왔다.

 "앤더슨 씨, 무사히 빠져나오셨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여기 책임자요?"

 앤더슨이 저택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네, 브라운이라고 합니다."

 "어쩌자고 날 이렇게 눈에 띄는 곳에 데려왔나? 다 쓰러져가는 집에 들어가더라도 여기보단 안전할 거야."

 브라운은 앤더슨의 힐책이 대수롭지 않은 듯 요원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눈에 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백악관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놈들이 당신의 위치까지 알아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 당신들은 탈론이 일하는 방식을 몰라도 너무 몰라."

 앤더슨이 투덜거리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브라운은 요원 몇몇과 함께 그를 호위했다. 커다란 저택 안에 앤더슨이 지팡이로 카펫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커튼이 쳐진 창문 앞으로 뒷짐을 진 요원들이 앤더슨을 쳐다보았다. 앤더슨에겐 요원들이 전부 겉멋만 잔뜩 든 풋내기들처럼 보였다.

 "놈들이 내가 어딨는지 모르기만을 바라야겠지."

 "설령 알고 있더라도 당신한테 접근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브라운은 앤더슨을 서재로 안내했다.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옆으로 제목만 고상해 보이는 책들로 채워진 책장들이 줄지어 있고 벽에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 밑 창문은 금색 실로 수놓은 두꺼운 물결무늬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앤더슨은 커튼을 살짝 들춰보았다. 메마른 분수대 주변이 놈 인형으로 장식된 드넓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달빛밖에 없어서 인형들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 주인은 참 고리타분한 양반이었을 것 같군."

 앤더슨이 말했다.

 "귀족 같은 취향 덕분에 자기 집까지 말아먹은 사람이었죠. 덕분에 저희가 써먹는 거지만요."

 "이미 왔으니 어쩔 수 없지. 다른 곳으로 가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지?"
 "두 시간 안에 당신을 본부로 호송할 헬리콥터가 도착할 겁니다. 거기에 가시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일은 없을 겁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원래 있던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여기선 좀 돌아다녀도 괜찮겠지?"

 브라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앤더슨은 브라운의 감시하에 저택 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책을 몇 권 꺼내보기도 하고 저택의 주인이 썼을 사냥 도구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금세 흥미가 떨어져서 시들어가는 화초들을 보면서 줄담배를 피우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괘종시계가 한 번 울렸다. 브라운은 몇몇 요원과 함께 거실에 있는 난로 앞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앤더슨은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면서 마음속의 불안을 달랬다. 그는 난로 속에서 타들어 가는 장작들을 주시했다.

 "앤더슨 씨, 그런데 탈론에서 도망쳐 나온 이유가 뭡니까?"

 브라운이 요원들을 보내놓고 물었다.

 "위에서 아무 말도 안 해주던가?"

 앤더슨이 장작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희 같은 말단 요원들은 그냥 닥치고 지키는 게 일이라서요. 싫으시면 말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앤더슨은 찻잔을 비워놓고 담배를 꺼내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내 직급을 넘어선 것을 알아버렸거든. 어디 가서 떠벌리진 말게. 놈들은 지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음…세계정복 같은 건가요?"
 "그런 거였으면 나도 동참했을 거야. 메인 컴퓨터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우연히 간부급의 자료를 열람하게 됐지. 그때 파일들을 확인해선 안 되는 거였어. 나는 거기서 탈론이 진행하고 있던 생화학 실험과 인체 개조 내역을 보고 말았지. 씨발…내가 거기서 뭘 봤는지는 묻지 말게. 파일을 닫고 난 뒤에야 내 열람 기록이 남았단 걸 알게 됐지."

 "제가 들어봤자 좋은 내용은 아니군요. 그런데 거기서 어떻게 나오신 겁니까?"
 "신속하게 움직인 덕분이지.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경비병들을 속여서 곧장 빠져나왔어. 조금만 늦었어도 놈들이 내 뇌를 끄집어냈을 거야. 아마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 날 쫓고 있겠지."

 앤더슨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서 말했다. 그의 짐작은 사실이었다. 탈론은 이미 앤더슨의 위치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탈론은 앤더슨이 익히 알고 있는 자신들의 방식대로 그를 정리할 계획이었다.

 옥상에 있는 요원들은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교대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요원은 달빛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날려 보내다가 문득 연기가 뭔가에 가로막혔다고 생각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달빛에서 총알이 날아들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요원들은 동료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뒤통수에도 총알이 박혔다. 어둠 속이 일렁거렸다.

 "착륙 지점 확보."

 아멜리가 보안경을 올리면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

 그녀의 뒤에서 리퍼가 양손에 헬파이어 샷건을 쥐고 말했다. 요원들의 이어폰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옥상으로 요원들이 더 올라왔다. 그들은 시체를 보자마자 권총을 빼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리퍼는 연기처럼 흩어져서 옥상으로 날아갔다. 요원들의 눈에는 짙은 연기가 달빛을 받으면서 내려오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요원들이 다급하게 소리치는 동안에 리퍼의 몸은 그들의 등 뒤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이제 죽을 시간이다."

 요원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오금이 저렸다. 그들은 리퍼를 보기도 전에 몸이 찢어진 채로 차디찬 바닥에 뒹굴었다. 아멜리의 저격과는 달리 요란한 샷건 소리와 요원들의 처절한 비명이 저택 안에까지 울려 퍼졌다. 브라운은 요원들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앤더슨을 서재로 끌고 갔다. 앤더슨은 체념한 얼굴로 묵묵히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옥상으로 더 올라가지 말고 안에서 지키고 있어. 곧 후송 부대가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티고 있으면 돼. 놈들은 몇이나 되지? 저택 안에 들어온 놈 말이야. 아 됐어, 억지로 확인할 필요 없어."

 브라운이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리퍼는 옥상에서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로브 뒷자락이 바람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렸다. 정원에 있던 요원들은 분수대에서 그의 흰 가면을 목격했다. 요원들의 고함과 함께 권총과 소총들이 발포되었다. 리퍼는 다시 한 번 어둠 속에 몸을 감췄다. 요원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죽음이 자신들의 곁에 다가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헬파이어 샷건의 총구가 반짝거릴 때마다 분수대가 깨져 나가고 피투성이가 된 요원들의 몸뚱어리가 그 안으로 빠져들었다. 저택의 창문이 열리기 무섭게 총알이 요원들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요원들은 다시 커튼을 치면서 대문을 걸어 잠궜다. 정원의 학살극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요원 한 명이 애처롭게 대문 앞에서 소리쳤다.

 "이봐, 빨리 문 좀 열어줘!"

 리퍼는 대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로브에 걸려 있던 유탄들을 샷건 안에 꽂아넣었다. 요원은 그의 발소리를 듣고 손이 부서지도록 대문을 두들겼다.

 "내가 대신 열어주마."

 리퍼가 말했다. 그는 대문을 향해 유탄을 연달아 발사했다. 요원과 함께 대문이 박살 나면서 파편이 저택 안으로 튀었다. 저택 안으로 연막탄이 굴러 들어갔다. 요원들은 대문이 있던 곳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연막 속으로 무기를 들이댔다. 리퍼는 어김없이 그들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연막 밖으로 가슴 한복판이 찢겨 나간 시체들이 튕겨 나갔다. 요원들은 마구잡이로 총알을 퍼부으면서 하나같이 이어폰에 지원을 보내달라고 울부짖었다. 리퍼는 연막을 뚫고 나와 벽을 타고 뛰어다니면서 남은 요원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연막이 걷히면서 정원에서부터 이어진 핏빛 흔적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리퍼는 총알이 남아있지 않은 샷건을 시체 위로 던져버리고 로브 안에서 새로운 샷건을 꺼내 들었다. 원형 계단에서 요원들이 그를 향해 산탄총을 발사했다.

 "적이 저택 안에 들어왔다! 계단을 막아!"

 "귀찮은 파리떼들 같으니."

 리퍼가 말했다. 요원들의 공격은 공연히 그가 있던 바닥만을 때렸다. 요원들은 검은 연기가 자신들을 향해 들이닥치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요원들의 머리 위에서 연기가 걷히자마자 샷건이 그들의 몸을 터뜨렸다. 2층 복도에서 몰려나오던 요원들은 창문을 지나칠 때마다 커튼이 무색하게 아멜리의 저격으로 한 명씩 죽어 나갔다. 몸을 숙인 요원들이 연기가 되어 다가오는 리퍼를 보고 반대편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리퍼는 복도의 끝에서 요원마다 각기 다른 부위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복도의 핏물이 계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브라운과 앤더슨은 이어폰을 통해 그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듣고 있었다. 탈론의 목표물인 앤더슨보다도 브라운의 얼굴이 더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서재 문을 지키고 있는 요원 두 명이 권총을 부여잡고 그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송 부대는 대체 언제쯤 오는 겁니까?"

 "닥쳐! 나도 지금 알아보고 있어!"

 브라운은 애꿎은 요원들에게 성질을 내면서 본부에 연락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됐어! 이제 헬리콥터가 올 거야!"

 한 요원이 브라운의 말을 듣고 성급하게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가 커튼을 치우기도 전에 창문이 깨지면서 총알이 책장에 처박혔다. 서재 안으로 바람과 함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어왔다. 브라운은 시체를 보고 질겁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앤더슨 씨, 빨리 나갈 준비 합시다. 놈들이 헬리콥터까지 쫓지는 못할 겁니다."

 "탈 수나 있으면 다행이겠군."

 앤더슨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헬리콥터 두 대가 분수대 양옆으로 착륙했다. 안에서 중무장한 군인 십여 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온 사방에 널린 시체들을 보고 바짝 긴장한 채 저택 안으로 진입했다. 시체는 서재 앞까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군인들은 브라운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뛰어갔다.

 "지금 들어가겠다. VIP는 무사한가?"

 "네, 물론이죠. 저도 같이 좀 데려가 주세요."

 군인들은 브라운의 대답을 흘려 듣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서재의 문을 향해 다가갔다.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군인들의 한가운데로 흘러 들어갔다.

 "죽음으로 쓸어주마!"

 리퍼가 사방에 샷건을 쏴갈기면서 소리쳤다. 군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빗발치는 총격 속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브라운은 그 소리를 듣고 군인들이 탈론을 제압하면서 오는 중이라고 믿고 싶었다. 앤더슨은 헛된 기대를 품지 않았다. 폭발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브라운의 마지막 부하 요원이 총탄 세례를 받고 말았다. 브라운은 문밖으로 기관단총을 쏘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제기랄!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앤더슨이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짧은 총성에 이어 브라운이 책상 앞에 쓰러졌다. 앤더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리퍼를 보고 냉소를 지었다.

 "정말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나?"

 리퍼가 앤더슨의 머리에 샷건을 겨누면서 물었다.

 "아니, 결국엔 잡힐 줄 알았지. 너까지 보내서 즉결처형을 해버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네놈의 그 쓸데없는 발악 덕분에 잘 놀았어. 다음에도 너처럼 멍청한 놈이 도망쳐줬으면 좋겠군."

 "하나만 묻자. 넌 대체 뭐 때문에 이러고 다니는 거지? 아멜리는 적어도 우리한테 세뇌라도 당했어. 그런데 왜 네놈은 정신도 멀쩡하면서 탈론을 위해 일하는 거야? 네 짓거리가 미친 척이라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죽음을 쫓는다느니 어쩐다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마. 난 네 녀석이 몸에 무슨 실험을 받았는지 알고 있어. 그딴 짓거리까지 하면서 얻으려는 게 뭐야?"

 리퍼는 앤더슨의 질문에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야 돈 때문이지. 용병한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

 "열등감을 숨기는 건 쉽고 간편한 법이지."

 앤더슨이 리퍼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리퍼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앤더슨은 가면 속에서 리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꿰뚫어보았다.

 "돈이라…참 좋은 핑곗거리지. 돈이 그렇게 좋아서 오버워치 요원들을 쫓고 있나? 대장 자리에서 밀려났던 게 분통 터져서 그런 건 아니고?"

 리퍼는 앤더슨의 얼굴에 양쪽 샷건을 전부 발포했다. 앤더슨의 몸이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리퍼는 총알이 떨어진 뒤에도 방아쇠를 마구 당기면서 발로 앤더슨의 사지를 분질러놓았다.

 "리퍼, 뭐 하고 있어? 아직도 처리 못 했어?"

 아멜리가 무전기로 물었다. 리퍼는 로브 안에서 폭탄을 꺼내 책상 밑에 붙여놓고 전원을 눌렀다. 폭탄에서 녹색 발광 램프가 빛을 뿜어냈다. 창문 밖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지금 간다."

 리퍼가 말했다. 그는 저택에 들어왔을 때처럼 연기가 되어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아멜리는 수송기에서 경찰차들이 저택 앞에 멈춰서는 걸 지켜보았다. 그녀의 곁으로 리퍼가 돌아왔다. 경관들이 헬리콥터에 남아 있던 군인들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유리창이 전부 깨지면서 커다란 불길이 저택을 휘감았다. 수송기가 자리를 떠났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아멜리가 좌석에 앉으면서 물었다. 리퍼는 주먹을 꽉 쥔 채로 멀어져 가는 저택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멜리는 그의 대답을 듣는 걸 포기하고 저격총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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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왕의 길 맵의 설정대로 여섯 명씩의 영웅들이 임무 목표에 따라 치고 박는 내용을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제 실력으로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쓰다가 안 되면 엎을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