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때론 왜곡되어야 좋다. 생각보다 우린 왜곡된 진실을 보다 많이 듣고 보고 자라왔다. 고백을 받은 숫기없는 여학생이 거절할 말을 찾지 못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다던가, 정말 형편없는 면접자에게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본 회사에 적합한 인재가 아니라 뽑지 않았다 등의. 이런 말같지 않은 왜곡은 당사자에게 정신적 피해를 줄여준다. 당사자로서는 그게 거짓이라 추측해도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도망갈 출구를 하나 만들어주는것과 같다. 그러니 어쩔때는 열가지 거짓이 온전한 하나의 진실보다 더 가치있을수도 있단 소리다. 만약 모든것에 대한 온전한 진실을 다 알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내 주위에 그 어떠한 날붙이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디서부터 사건을 요약해야하는지 잘 모른다. 전투 경험만 많지 이런식의 기록은 탐탁치 않다. 그러나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한 진위를 판별하려면 보다 많은 시간을 생각에 빠져야 하고, 그 생각동안 기억의 많은 부분이 변질될 우려가 있으니 가능한 오늘, 보고 느낀것을 사실대로 기술하겠다.
 때는 초저녁. 바람이 비교적 쌀쌀하게 불어왔을 때다. 66번 국도에서의 전투를 끝마치고 난 후 요원 휴게실의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각보다 치열했던 전장에서의 긴 싸움은 요원들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고, 덕분에 전투가 막을 내리고 일종의 휴전 상태에 들어선 지금은 나를 제외한 모든 요원들이 내일 있을 전투의 연장을 대비하여 재정비에 들어갔다. 보통의 나였으면 그들과 같이 재정비를 하고 있었을 테지만 그날은 그럴 기분이 아니였다. 국도의 중간지점, 건물과 차량 사이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모습은 분명 레예스를 닮아 있었다. 가브리엘 레예스. 옛 기억이 확실하다면 오버워치 본부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의문의 폭발과 함께 레예스는 죽었다. 곱씹어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같은 폭발에 휘말린 나도 앙겔라가 만들어준 생체치료캡슐덕에 목숨을 부지했으니, 레예스 또한 비슷한 행위로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없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처음 보았을때 느껴진 그 위화감은, 도저히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였다. 어딘가 결여되어있던 그의 모습은 어딘가 소름끼치기까지 하였다.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자의식까지 의심하며 그에게 수많은 총탄을 박아넣었다. 그때 느낀 내 감정은…이질적이게도 무의미했다. 사물에게 총을 쏘는듯한, 멀리있는 과녁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에 몸서리쳐졌다. 오버워치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모든걸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후였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것은 아니다. 비록 마지막엔 적으로 돌변했지만 오랜시간 친구로 지내왔던 상대에게 총을 겨누면서 느끼는 감정이 단지 내 호흡소리와 개머리판에서 느껴지는 진동 뿐이라니. 기억은 그를 레예스라고 말하고 있지만 몸으로는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그가 그토록 변해버린 이유를…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무도 없네…?"

 생각과 생각의 연결을 계속하는 사이, 연약하지만 당찬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면 티와 반바지라는 다소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앙겔라 치글러 박사가 전등의 스위치 버튼을 찾아 쭈뼛쭈뼛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인지 사방을 둘러보며 스위치 버튼에게로 손을 뻗는 그녀의 모습은 어린애가 연상될 정도다.

"찾았다."

 숨쉬듯 작게 내뱉은 혼잣말과 동시에 앙겔라는 버튼을 눌러 전등을 켰다. 사방이 환해짐에 만족하며 커피포트로 걸어가던 앙겔라는 문득 이상한점을 눈치챘는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내게 고개를 돌리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쳤다. 

"모, 모리슨! 여기서 뭐하는 거에요!?"

"여긴 요원 휴게실이다."

"……?"

"난 블랙워치가 아니란 소리지."

 곰곰히 생각하던 앙겔라는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작게 실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왜 휴게실을 이용하냐고 말하는게 아니에요. 불을 끄고 앉아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말없이 전술 조준경을 가리켰고, 앙겔라는 보란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적외선 센서때문에 불을 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거면 그건 적당히 이기적인 소리네요. 인간은 사회성 동물이에요. 남을 배려하는것에서부터 인간성은 시작되죠. 냉혈한이라는 소리를 듣고싶은건 아니겠죠?"

"관심 없다." 

"으으…. 모리슨. 당신 참 많이도 변했군요."

"물질적인걸 말하는건가. 심적인걸 말하는건가."

"…얄궂군요."

 볼을 부풀리며 커피포트의 물을 끓이는 앙겔라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졌지만 앙겔라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과거의 기억에 젖어들다니. 배반적이군.

"커피, 마실래요?"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가져오며 묻는 앙겔라에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젖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포트에 물이 끓으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잠시간의 시간동안 물이 끓어오르는 커피포트를 멍하니 바라보던 앙겔라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고, 때문에 눈이 마주쳤다. 어색함을 풀어갈 수단인건지, 아니면 진짜 궁금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앙겔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보니 왜 무장한채로 있는거죠? 전투가 끝났으니 어느정도 휴식은 필요할텐데."

"전장에서 편한 휴식이라는건 자살행위랑 다를게 없다. 앙겔라 박사."

"에…. 그럼 전 지금 자살행위 중이라는 소린가요?"

"크게보면 죽고싶다는것과 다르지 않지."

"……작게 보면요?"

"멍청한거고."

 앙겔라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며 컵에 커피포트의 물을 따라내렸다. 그러며 혼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 놀리기 좋아하는 성격은 그대로네요. 정감가는 말투가 사라져서 아쉽기는 하지만."

 나는 앙겔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것도 있지만 창 밖의 수상한 움직임이 적외선 센서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앙겔라가 뒤이어 몇 마디를 더 붙였지만 이미 나는 그런것에 신경쓸 처지가 아니였다. 서둘러 옆에 놓았던 펄스 소총을 집어 출입구로 걸어갔다.

"어딜 가나요 모리슨?"

"산책 좀 하다 오겠다."

"……이 야밤에요?"

"그런가……. 사냥이라 말하는게 보다 적합하겠군."

 얼빠진 앙겔라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서둘러 요원 기지를 빠져나왔다.
 밖의 날씨는 생각보다 더 쌀쌀했다. 기지 근처의 가로등은 가시거리를 그리 멀리 확장시켜주진 못하였고,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지천은 어둠에 뒤섞여 있었다. 아까의 그 움직임이 내 환각이 만들어낸게 아니라면 적은 분명 이 지점에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주변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공허한 바람만이 귓가를 간지럽힐 뿐 그 아무것도……. 잠깐.
 어둠이 굴절될수도 있는 것인가? 적은양의 달빛이라도 받아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닌 지형지물들의 사이에서 보통의 어둠보다 짙은 어둠이 꿀렁이고 있었다. 그 농도가 미묘하여 잘못 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망설임 없이 나선 수류탄을 하늘로 쏘아 올렸고, 나선 수류탄이 발사되는 찰나의 순간에 그 어둠의 정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적외선 센서에도 잡히지 않았지만 날 보며 똑바로 서 있는 어둠은 분명 사람의 형체였다.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잭 모리슨…. 오랜만이군 옛 친구여."

"레예스……?"

"그래…. 강습 사령관 모리슨…. 너의 충실한 그림자…. 크흐흐흐흐…."

"…과거 이야기나 하려고 불러낸건 아닐텐데."

"물론이다…. 방금 네 별종짓 때문에 오래 이야기할 시간은 나지 않겠군…."

 어둠은 꿈틀거리며 형체를 잡아갔다. 어둠 속에서 나온(정말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다리가 땅을 짚었고, 팔이 서서히 드러나며 그의 상체가 완전한 모습을 그렸다. 해골을 연상캐하는 흰 가면에 검은 로브. 예상했던대로 오늘 싸웠던 그가 맞았다.

"나는 네게 진실을 말해주러 왔다 모리슨…. 그 어떠한 대가도 없이 말이지. 이 우스운 비극을 너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을 테니까…."

 그에게로 겨누던 총을 치웠다. 진실? 비극? 어설프게도 호기심이 동했기에 내게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 저항하지 않는 쪽이 좋다 모리슨. 어차피 이 사실을 알면 네가 알던 정의는 한순간의 편린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크흐흐흐…."

"진실을 전해주러 왔다면, 네 머리통을 날려버리기 전에 말하는게 좋을거다."

"성격 급한건 여전하군…. 그래. 말해주겠다…. 옴닉 해방 작전을 기억하는가? 모든 몰락의 구심점을 말이야…."

 모를수가 없다. 나와 레예스가 이렇게 된것엔 그 작전이 어느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그 작전은 보기좋게도 실패했지. 그러나 이상했다. 그 작전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일급 기밀로 치부되었는데 어떻게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것인가…? 거기다 적들은 우리가 어떤 공격을 할지 경로까지 예측해놓고 있었다. 여기까진 너도 알고 있는 이야기겠지…."

"…물론이다."

"여론은 급속도로 퍼져나갔지. 그동안 오버워치와 블랙워치가 인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지는 그들에게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어…. 그들은 우리의 무능을 탓했고, 우리의 부정부패를 탓했다. 그 잘난 강습 사령관 모리슨도 더이상 영웅이 아닌 비겁한 패배자로 전락하는건 한순간이었지. 기다렸다는듯이 UN은 우리에게 특별감사를 행했다. 이후엔 알다시피 오버워치의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이상하지 않나…? 어떻게 여론은 한순간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었고, 우리를 창설한 UN이 우리에게 왜 그토록 가혹했는지…?"

"하고싶은 말이 뭐냐, 레예스."

 그는 한 번 음침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UN은 우리가 두려웠던거다 모리슨…. 날로 강대해지는 힘에 겁을 집어삼킨거지. 옴닉 사태가 진정되고 나자 우리의 존재는 또 하나의 불균형이었다. 평화를 저울질하는 UN에게 있어 그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 오버워치와 블랙워치는 그들 산하의 존재였지만, 알다시피 블랙워치는 그즈음 UN의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듣고 있었다. 곧 통제권에서 벗어나고 독립적으로 행할것이라는건 바보가 아니면 알 수 있는 일이었지. 오버워치 또한 당장은 명령에 고분고분 응하고 있지만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를 상태였어. 때문에 UN에선 우리를 없앨 궁리를 한거다. 불안정한 평화보단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평화를 원했던거지…."

"날 현혹하려 하지마라ㅡ."

"크흐흐…. 현혹은 대상에게서 훔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모리슨.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너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진실을 말해주겠다고. 특별감사 도중에 내란이 있었던건 기억하나? 네 기억으론 블랙워치에서 먼저 선제공격을 한 걸로 알고 있겠지. 그러나 내 기억으론 오버워치 쪽에서 먼저 공격을 가했다. 이걸 뜻하는 바를 네가 모르지는 않을거라 믿는다…."

"……내부자가 있다는 소린가?"

"믿는 자에게 달렸지. 아, 나는 이만 가봐야 할때군."

 그가 뒷걸음치는 소리와 상반되게, 멀리서 땅을 박차고 들려오는 소리는 보다 생동감이 넘쳤다. 투박한 뜀걸음 소리와 함께 도착한것은 무장한 앙겔라 치글러 박사와 윈스턴이었다. 

"모리슨! 괜찮아요? 당신이 나선 수류탄을 발사하는 소리가 들려서……맙소사!"

 앙겔라는 말하다 말고 리퍼의 모습을 보고는 겁을 집어삼켰다. 어둠속으로 녹아드는 비자연적인 모습은 언뜻 초월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였으니까.

"당신……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죠?"

 앙겔라의 질문에, 레예스는 가소롭다는듯이 웃어재꼈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겠지."

 레예스가 완전히 사라지자, 당황함에 입을 벌리고 레예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윈스턴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건…. 도저히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겠군요."

 윈스턴의 말에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 기지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리슨. 저 자가 도대체 여기에 왜…?"

 앙겔라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와 내 팔목을 잡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그의 손을 단숨에 뿌리쳤다.

"잠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 이상으로 접촉하려 들지 마라. 앙겔라 치글러 박사."

 처참해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앙겔라를 뒤로하고, 나는 내 방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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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나온김에 한 번 써봅니다 ㅠㅠ

생각보다 오버워치 스토리가 탄탄해서 상상하는 맛이 있군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