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동산?”
 “네, 놀이동산. 그야말로 데이…아니, 누구 기분 풀어주기엔 최적의 코스라 할 수 있습죠.”

 맥크리는 레예스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능글맞은 미소로 받아넘기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해서 열린 디즈니랜드의 자유이용권 2장이었다. 

 허나 레예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놈이 뭘 잘못 먹지 않는 이상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리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제일 잘 알았으니까. 분명 골탕을 먹을 게 뻔했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예스는 그의 제안을 파리 쳐내듯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저번 ‘소동’ 건은 저도 들어서 압니다, 대장. 그러니 이번 휴가 때 해묵은 감정은 싹 풀어버리고 푹 쉬다 오셔라, 이 얘기입니다. 마침 휴가도 겹치지 않습니까?”
 “무슨 소동 말이냐?”
 레예스는 애써 침착한 기색이었지만 맥크리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연기파 배우 제시 맥크리는 조금 과장을 보태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대장님. 지금 본부 사람들의 반절 이상은 아는 얘기를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번에 왜, 의료실에 실험용 바퀴벌레 통 들고 갔다가 치글러 박사님한테 총알 세례 받았잖습니까. 그 뒤로 계속 냉전 상태이지 않습니까?”
 “…….”

 레예스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입술만 비틀었다. 인정하기 너무 싫긴 하지만 맥크리의 말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자 골치가 딱딱 아파오는 레예스였다. 도대체 왜 그때 그걸 들고 가서……. 뒤늦은 후회를 하는 그였지만, 후회는 아무리 해도 늦는 법이었다.

 그 ‘소동’으로부터 열흘.

 앙겔라 치글러 박사와 가브리엘 레예스는 그동안 한 마디 말도 섞고 있지 않았다.


***


 열흘 전, 레예스는 연구부서 쪽에 전달해 줄 실험용 바퀴벌레가 든 통을 들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블랙워치의 대장이나 되는 사람이 왜 이런 허드렛일이나 맡고 있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버워치의 구조를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오버워치는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기관이었다. 누가 되었건 한가할 때라면 이런 간단한 심부름 정도는 해주는 것이 본부 내에 퍼진 묵언의 관례였다. 

 일이 어찌되었건 레예스는 조금 멍청한 기분을 느끼며 별 생각 없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는 판이라 신경이 좀 무뎌진 감이 없잖아 있는 그였다. 

 “가브리엘! 뭐 해요, 이런 곳에서?”

 그때였다.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누군가가 정답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예스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툴툴거리는 낮은 목소리뿐이었다. 반가워하는 주제에 태도는 퉁명스럽다니, 사교성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가 못 걸을 곳이라도 걷고 있나, 앙겔라?”
 “누가 그런데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보니까 그렇지.” 앙겔라 박사는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그의 옆에 서며 말했다. “그 퉁명스런 태도 좀 고쳐요. 하아, 어디 이렇게 사교성이 없어서야 우리 귀여운 꼬마 가브리엘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 이 누나는 너무 걱정이에요.”

 앙겔라 박사는 레예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레예스의 미간이 대번에 와직 구겨졌다. 저번에 별 생각 없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따위의 계정은 없다고 말한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그 이후로 틈만 생기면 사교성 운운하면 놀려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주 있는 대로 기어오르는군. 내가 자네만할 때는…….”
 “전 아직 쪽쪽이나 빨면서 응애거리고 있었겠죠. 말 한 번 잘했어요. 제 갑절이나 되는 나이 살아올 동안 친구 하나 안 사귀니까 그렇게 사교성이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후후.”
 “…….”

 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지는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일까. 그것은 레예스가 풀 수 없는 숙제 중 하나였다. 물론 앙겔라가 이런다고 해서 불쾌해질 그가 아니었다. 유독 자신에게만 짓궂게 구는 앙겔라였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신선하고 좋았다. 

 “봐요, 스스로 인정하니까 할 말이 없는 거잖아요. 그거 별로 급한 일 아니죠? 따라와요. 이번에야말로 내 눈 앞에서 페이스북이랑 트위터 계정 만들도록 할 테니까.”
 “아니, 잠깐…….”
 “잠깐이고 뭐고 따라오기나 해요! 또 은근슬쩍 빠지면 말도 안 붙일 거예요.”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앙겔라 박사는 레예스의 한쪽 팔을 잡더니 방향을 휙 돌려 자기 사무실 쪽으로 척척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레예스의 입가에 다시금 엷은 미소가 걸렸다. 앙겔라가 놀리는 것은 그녀 나름의 걱정의 표시였다. 그녀 나름대로 그를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했다면 진즉에 눈치 채고 거절했을 레예스였다. 하지만 왜일까, 앙겔라의 행동만큼은 예측할 수도 없고 알아도 당해버리고 마는 그였다. 결국 그는 한쪽 손이 잡힌 채로 거의 질질 끌리다시피 그녀의 사무실까지 가야만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오후의 한 때가 지났다. 아니, 지날 예정이었다. 한 가지 사건만 없었으면 말이다. 그 일은 앙겔라 박사의 조그마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뭘 가져다주려고 했던 거예요? 어디…어라, 오염 측정…에잇, 뭐라고 쓴 거야? 저 프랑스어는 못 읽는다고요.”

 잡담 겸 교육(?) 중간에 차를 마시던 앙겔라 박사는 레예스가 가져온 금속제 상자에 호기심을 비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예스는 별 생각이 없었기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별 거 아니네. 그냥 곤충 표본이야.”
 “곤충? 벌레 말이죠? 아, 그러고 보니 방사능 오염 측정에 벌레를 쓴단 얘기는 들어봤는데…이거였군요? 어디어디, 이거 안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 두게. 뭘 안다고.”
 “어머, 저 이래봬도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거든요.”

 아무래도 레예스의 퉁명스런 태도가 오기에 불을 댕긴 모양인지 앙겔라 박사는 새침해져서 상자 이곳저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상자의 어느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철컥
 솨아아아아

 “…………………딸꾹.”
 “후우, 그러길래 내 만지지 말라 했잖는가.”

 하얀 금속제 상자 아래서 짙은 갈색의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 앙겔라 박사가 그것을 인지하기까지는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레예스의 핀잔 따윈 귀에 닿지도 않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여섯 개의 다리, 기다랗게 휘적거리는 더듬이. 바퀴벌레였다. 수십 마리가 넘는, 앙겔라 박사의 손가락 한 마디는 될 법한 바퀴벌레가 티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었다. 

 “………아, 으, 아.”

 그녀는 형용할 수 없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침착한 게 아니라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사고가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바퀴벌레였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대격변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정신을 짓밟는 자가 있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이 레예스였다. 그는 바퀴벌레를 하나하나 잡아 상자 속으로 다시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 행위는 앙겔라 박사에게 있어 인류의 이해를 초월한, 사람으로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걱정 말게. 실험용이라 병균 따윈 없을 테니까. 아, 앙겔라. 거기 기어가는 놈 하나만 주워주…….”

 탕!

 그렇기에 앙겔라 박사는 그 더러운 무리에게 심판을 내렸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책상 서랍 안쪽에 호신용으로 놔뒀던 카두세우스 블라스터가 들려있었다.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용케 조준이 됐는지, 그녀를 향해 기어오던 바퀴벌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총탄 흔적과 함께 말이다. 

 “가, 가까이…가까이 다가오지 마! 말아요!”
 “거, 그 권총 내려놓고 진정부터 하게.”
 “진정이고 뭐고 그 바퀴벌레 빨리 치우란 말이에요! 빨리! 그 손에 든 거! 빨리! 나가! 나가란 말이에요! 그거 들고! 안 그러면 쏠 거야!”

 얼마나 패닉 상태인지 그녀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멀쩡히 차랑 과자 먹고 있는지 눈앞에 있는 상자에서 바퀴벌레가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패닉을 이해했을 터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레예스는 그 보통의 범중에 들어가기엔 신경이 너무 굵고 상식이 짧았다. 정확히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도 적었다. 그렇다. 그는 그녀가 왜 바퀴벌레 ‘따위’를 무서워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가브리엘 레예스는 그만 지뢰를 밟고야 말았다.

 “걱정 말게. 이건 실험용으로 길러진 거라 병균 따윈 전혀 없…….”

 타다당!

 그가 한 손에 바퀴벌레 한 마리를 든 채 앞으로 한 걸음 나오는 순간, 앙겔라 박사의 총이 불꽃을 뿜었다. 하지만 이번엔 손이 너무 떨렸던 모양인지 총탄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발이 하필이면 바퀴벌레가 담긴 상자에 맞아버렸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제어장치가 깨진 모양인지 상자는 활짝 열렸고, 레예스가 애써 담아놨던 바퀴벌레가 다시 우르르 기어나왔다.

 “꺄아아아아아! 오지 마! 오지 마! 쏴버릴 거야! 오지 마아아!”
 “…후우.”

 타다다다당!

 앙겔라 박사는 책상 위로 기어올라가 그야말로 총을 난사하며 결사항전을 벌였지만, 벌레가 어디 사람 말을 듣던가. 바르작거리던 바퀴벌레들은 바닥을 기어다녔고, 몇몇은 그녀가 아끼는 찻잔 속에 풍덩 빠지거나 과자를 갉아먹었다. 총성에 사람들은 놀라 달려나왔고, 그 소란 속에서 레예스는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서 항전하던 앙겔라 박사는…….

 “흑, 으흑, 으…아아아아아아앙!”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바닥엔 바퀴벌레 떼, 책상 위에서 총 잡고 펑펑 우는 앙겔라 박사, 그리고 골치 아프단 표정으로 미간을 누르고 있는 가브리엘 레예스……. 소동을 듣고 온 사람들이 본 광경은 바로 그러했다. 그 기묘하고 괴상한 조합에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잇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에 바퀴벌레들을 진공 흡입기로 죄다 빨아들이고 나서야 작은 소동은 겨우 일단락이 났다. 앙겔라 박사가 레예스에게 다가오지 않게 된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냉전 상태가 열흘 가까이 지나, 결국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잡담

0. 메르시 울리기는 재밌어 흫허허허헣

1. 짧게 올린다고 간 보는거 아니에요 너무하네 진짜 :6

2. 그거 보고 열받아서 뒷내용 다 지웠다가 후 지금 맨틀층보다 깊게 반성중입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3. 이 에피소드는 다음 편이면 끝나겠네요.

4. 다음 단편에선 어떻게 메르시를 괴롭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