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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수만 명이 해내지 못한 일을 프로게이머 소녀가 해내다!'

 송하나가 무사히 기지에 돌아온 뒤 인터넷 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은 그녀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뒤덮였다. 지난 십 년간 겨우 바닷속으로 되돌리는데 그쳤던 옴닉의 괴물들이 송하나가 나서기 시작한 뒤 몇 달 만에 두 대나 지상에서 완파되었다. 그녀는 언론의 찬사보다 기껏 자기의 취향에 맞춰놓은 기체를 잃은 게 더 신경 쓰였다. 정비병들이 그녀의 기체 정보를 저장해뒀고 언제라도 똑같이 도색해놓을 수 있다고 말한 뒤에야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그녀는 금세 몸을 회복하고 프로게이머 시절처럼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출격하는 걸 반대해왔던 여론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 게임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영웅이 되었다.

 그녀는 국군에서 마련해준 여분의 기체를 타고 도심 한복판을 비행하기도 했다. 그녀가 다니는 곳마다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가 잇따랐다. 때때로 그녀가 즉석 인터뷰를 할 때면 수많은 인파가 그녀를 둘러싸곤 했다.

 "송하나 양, 어떤 각오로 싸움에 임하셨나요?"
 "게임을 할 때와 똑같아요. 늘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나섰어요."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능숙하게 기체를 다룰 수 있을까요?"
 "음…손도 빨라야 하고 눈도 좋아야 하고…아, 제가 그렇다는 소린 아니고요, 무엇보다 신나게 한다는 마음이 중요해요!"

 "지금까지 맞서 싸운 적들이 상대하기 어려웠나요?"

 "점수를 준다면 빵점짜리였던 것 같네요!"

 그녀는 자기 실력을 과시하면서도 국군을 홍보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 군을 두고 무능하다고 비판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결정적인 상황에 지원이 없었다면 제가 위험했을 거예요."

 "그래요, 저도 하나양의 전투 영상은 전부 봤습니다. 센터피드를 잡을 때 레일건이 없었다면 기체를 들이받지도 못했겠죠. 그런 아이디어는 누구 머리에서 나왔던 건가요?"
 "제 자폭이요?"

 기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가 생각한 거에요. 그땐 그거밖에 먹히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누가 만들었는진 몰라도 다음번엔 주무장이나 강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좋습니다. 다음에 나타날 괴물과도 잘 싸울 자신이 있나요?"
 송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 있던 광선총을 빼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향해 광선총을 겨누고 입으로 발사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캐리는 언제나 제 몫이라고요!"

 국군은 그녀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어렵지 않게 MEKA의 신병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쓸만한 경험을 쌓으려면 몇 달은 필요할 터였다. 옴닉은 국군에 그만한 여유를 줄 생각이 없었다. 옴닉의 괴물은 두 주일 만에 인천항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송하나는 MEKA 부대원들과 함께 인천항으로 날아가면서 박정식에게 브리핑을 받았다.

 "이번엔 두 놈이 한꺼번에 나타났으니 조심해야 할 거야. 한 놈은 청색 왕게인가 그렇고 다른 놈은 붉은 바닷가재라는데 왜 이런 촌스러운 이름을 붙여놨는지 모르겠어. 그냥 킹크랩이랑 랍스터라고 하면 되지."

 "그런 말 함부로 하셔도 되겠어요? 지금 시청자들이 중사님 말도 듣고 있다고요."

 그녀가 자신의 얼굴이 찍히는 화면을 향해 인사하듯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장관이 그녀의 방송 건의를 받아들였을 때 박정식은 처음에 자기가 꿈을 꾸는 줄 알았었다. 다행히도 그의 우려와는 달리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그녀의 방송을 지켜보며 응원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었다.

 "네, 네, 저도 여러분의 소중한 응원 다 받아보고 있답니다. 다만 무서운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부모님 명의로 들어온 아이들은 나가줬으면 좋겠네요."

 "어휴…이게 군사작전인지 소풍인지 구별이 안 되는군. 너무 우쭐대지 마. 방심했다간 한순간에 골로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시는 건 어울리지 않거든요."

 "더 진지하게 해줄 수도 있는 걸. 송하나 대위님, 제 말투가 불편하십니까?"

 "으아, 제발 그러지 마요!"

 그녀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 기체들이 인천에 도착했다. 부산 해운대와는 달리 인천항엔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부두엔 커다란 게와 가재 모양의 괴물이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괴물들은 정박해 있던 선박을 침몰시키고 컨테이너들을 장난감처럼 건물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킹크랩은 얇고 길쭉한 세 쌍의 다리에 입 양쪽에 날카로운 집게를 달고 있었다. 킹크랩의 몸을 둘러싼 파란색 장갑 위로 대포와 기관포, 박격포 등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랍스터는 킹크랩보다도 훨씬 큰 양손 집게로 선박들을 무자비하게 썰어버린 다음 항구로 서서히 올라오면서 등에 달린 대포를 쏘고 있었다. 랍스터의 눈은 센터피드처럼 붉게 빛났고 가재의 수염처럼 보이는 금속 막대엔 전류가 흘렀다. 거리에선 군인들의 통제에 따라 민간인들이 후방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송하나는 건물의 옥상에 착지하고 나서 괴물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 적수는 싱싱한 해산물이네요. 다행히도 센터피드처럼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진 않아요. 전 그런 건 딱 질색이랍니다."

 "방송용 멘트는 거기까지. 이제 집중해."
 박정식이 말했다.

 "알았어요. 이제부턴 제가 진지 모드에요."

 송하나가 방송 화면을 전술 레이더로 전환하면서 말했다. 괴물들이 그녀를 노리고 쏜 포탄들이 감지되었다. 송하나가 포탄들을 요격하면서 괴물들을 향해 날아갔다. 킹크랩의 화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그녀에게 가차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기관포 탄환이 일직선으로 빗발치고 하늘에선 박격포가 자로 잰 듯한 간격을 두고 쏟아졌다. 거리에서 국군의 대전차포가 괴물들의 머리를 후려쳤지만 다가오는 속도조차 늦추질 못했다. 송하나는 킹크랩의 등에 올라타면서 박격포 안으로 미사일을 쏘았다. 아쉽게도 유폭은 일어나지 않았다. 킹크랩은 다른 박격포들로 자기의 머리 위에 포탄을 날렸다. 송하나가 포탄을 피해 날아올랐다. 킹크랩의 등에서 포탄이 터졌지만, 등딱지는 멀쩡했다. 폭발이 멎은 뒤에 킹크랩의 장갑 몇 군데가 뒤집히면서 화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래선 들이받을 곳도 못 찾겠는데…."

 "자폭은 마지막에 생각하지 그러니."

 박정식이 말했다. MEKA 부대원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괴물들 사이에 난입해 미사일을 쏴댔지만 융합포를 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송하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렇게 화력을 강화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잖아요."

 "조종석을 만들어서 그래. 무인 기체 시절엔 추가 무장을 달 공간이 넉넉했는데 급하게 개조를 하다 보니…."

 "설명은 그만! 일단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괴물들은 집게를 사방으로 휘둘러대면서 기체들을 날파리처럼 쫓아냈다. 랍스터가 항구에 올라온 뒤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선포들이 랍스터의 집게에 집중됐지만 불 위에 놓인 쇳덩어리처럼 빨갛게 달궈지기만 할 뿐이었다. 송하나는 랍스터의 얼굴 앞으로 날아가 녀석의 눈을 향해 융합포를 쏘았다. 랍스터의 눈이 더욱 붉게 빛나더니 작은 광선이 일직선으로 발사되었다. 송하나는 광선을 피해 랍스터의 눈 뒤에 착지했다.

 "입으로도 모자라서 이젠 눈으로까지 빔을 쏘잖아! 나중엔 엉덩이로도 쏘겠어."

 랍스터는 양쪽 집게를 벌린 뒤 그녀가 있는 곳을 내리쳤다. 송하나는 집게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랍스터를 있는 대로 약 올렸다. 킹크랩이 랍스터의 등 위로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포탄 몇 발은 랍스터의 몸에도 떨어졌다. 송하나가 킹크랩의 등에 올라가면 이번엔 랍스터의 대포가 그곳을 노렸다. MEKA 부대원들은 그녀의 묘기를 흉내 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지원사격만 해주었다.

 랍스터는 송하나를 경계하면서도 어느새 도시 코앞까지 접근했다. 녀석이 건물에 집게를 휘두르자 건물이 칼에 베인 종이처럼 썰려 나갔다. 국군의 전차들도 집게에 닿기 무섭게 포탑이 찢어지고 튕겨나갔다. 머리가 잘려나가는 걸 겨우 모면한 전차병들이 기어 나와 거리로 달아났다. 송하나는 뒤처진 킹크랩의 고간 사이로 들어가 융합포를 퍼부었다. 다른 기체들이 그녀를 따라 킹크랩의 배 밑에 속속 들어왔다. 킹크랩은 다리를 땅바닥에 내리쳐서 고정한 다음 배를 깔았다. 운이 없는 기체 몇 대가 녀석의 배에 깔려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킹크랩은 송하나가 나오자마자 입을 열면서 거품을 물었다.

 "…진짜 게였나?"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보렴."

 박정식이 말했다. 거품은 쇠구슬 모양으로 생긴 드론이었다. 드론들이 자석처럼 송하나의 기체 곁으로 올라오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그녀는 기체를 상승시켜놓고 손을 조종석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음 기체엔 조종간도 유리 안에 넣어주세요."

 "나도 타고 다녔을 적에 몇 번 건의해봤는데 그건 안 해주더라고.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야. 그보다 랍스터가 다시 오고 있으니 조심해."

 랍스터는 도시를 부수다 말고 킹크랩을 지원하기 위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전투기들이 짙은 구름을 뚫고 나타나 미사일을 떨궜다. 랍스터의 등에 벙커 버스터가 작렬했지만, 녀석도 대포를 몸 안에 집어넣어서 보호했다. 그 틈을 노려 랍스터에게 다가간 기체들은 집게에 걸려 두 동강이 나버렸다. 송하나가 집게에도 융합포를 맞춰봤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랍스터의 수염 끝에서 전류가 구체로 뭉쳐져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그녀가 전기 볼을 가볍게 피해내자 전류가 번개 모양으로 허공을 갈랐다. 기체에 정전기가 흐르면서 그녀의 머리가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으…이거 정말 기분 나빠."
 "기분 나쁜 거로 끝나서 다행이구나. 좀더 제대로 피하지 않으면 통구이가 될 거다."

 박정식이 그녀의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말했다. 그녀가 싸우는 걸 보려는 시청자 수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녀를 국가대표처럼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등뒤에서 킹크랩의 드론들이 날아오면서 랍스터가 펼쳐 놓은 전류에 휘말렸다. 드론들이 펑펑 터져나가면서 그녀의 기체가 연기 속에 갇혀버렸다. 두 괴물의 화력이 동시에 연기 속으로 쏟아졌다. 그녀가 연기 밑으로 나오기 무섭게 랍스터의 광선이 기체의 다리를 노렸지만 그녀는 줄넘기를 하듯이 광선 위로 뛰어올랐다. 그동안 다른 기체들이 부단히 두 괴물을 귀찮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괴물들은 송하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란히 서서 땅속에 다리를 파묻었다. 이윽고 아무런 조준도 하지 않은 무지막지한 포격이 하늘을 뒤덮었다. MEKA 부대원들은 센터피드 때보다 방어 매트릭스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많은 수가 포격에서 무사히 벗어났다. 송하나가 그들을 뿌듯하게 쳐다보았다.

 "이제 다들 저만큼 잘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네 흉내 내느라 바쁠 뿐이야."
 "그거 칭찬 맞죠?"

 "지금 네 방송은 온갖 칭찬으로 도배되고 있어. 보고 싶으면 빨리 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해봐."

 박정식이 방송 화면에 채팅까지 쳐가면서 말했다. 채팅창엔 디바의 심볼인 토끼 모양의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왜 다들 이걸로 못 봐서 안달인지 알겠군."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다."

 송하나는 괴물들 사이를 이리 저리 누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랍스터의 집게가 그녀를 내리치려고 했지만, 애먼 동료의 등딱지만 두들기고 말았다. 철판이 찌그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킹크랩의 장갑이 움푹 팼다. 송하나는 그걸 보고 공격을 아예 멈춘 채로 두 괴물의 사이에서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킹크랩의 드론들은 랍스터의 한쪽 눈을 터뜨리고 랍스터의 전류는 킹크랩의 기관포를 마비시켰다. 두 괴물의 집게가 교차하자 그녀는 곧장 하늘 위로 기체를 상승시켰다. 집게가 엇갈리면서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꼴이 되어버렸다. 괴물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안팎으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게 보였다.

 "모두 빨리 얼굴에다 쏘세요!"

 송하나가 소리치자마자 다른 기체들이 벌떼같이 몰려와 미사일을 퍼부었다. 성질 급한 부대원 몇몇은 그녀가 했던 대로 곧장 자폭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킹크랩은 센터피드처럼 얼굴이 처참하게 부서지면서 다리가 꺾인 채로 몸을 숙였다. 랍스터는 집게로 공격을 막아냈다. 녀석은 허공에 포탄을 퍼부으면서 물속으로 달아나려 했다.

 "이번에도 MVP는 내 차지야!"

 송하나가 킹크랩의 집게 속으로 파고들면서 소리쳤다. 킹크랩이 얼굴을 가려봤지만, 그녀의 집요한 공격에 나머지 눈마저 박살 나고 말았다. 국군의 포격도 효과를 거둬 킹크랩의 다리와 팔목이 벗겨지면서 집게가 스르륵 내려갔다. 송하나는 녀석의 집게 밖으로 나가면서 얼굴을 향해 모든 미사일을 퍼부었다. 킹크랩의 수염에 전류가 집중되자마자 큰 폭발이 일어나 수염마저 볼품없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녀석은 얼굴에 불이 붙은 채로 몇 발자국을 더 가다가 바다를 눈앞에 두고 주저앉았다. 송하나는 킹크랩의 잔해 위에 내려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여러분 모두 즐겁게 봐주셨나요? 이번엔 지난번보다 쉽게 물리쳤답니다!"

 그녀가 방송 화면을 띄우면서 말했다. 채팅창은 미친 듯이 스크롤이 올라가고 있었다. MEKA 부대원들은 괴물들의 잔해 주변에 내려앉아 피해 상황을 조사했다. 그녀의 말대로 손실된 기체가 두 주일 전보다 훨씬 더 적었다.

 "아니에요, 여러분. 저만 잘한 게 아니에요. 모두 팀워크가 좋아서 수월했던 거랍니다. 그래도 제가 제일 잘하긴 했죠? 그렇죠? 저한테 이 정도는 껌이에요!"

 송하나가 부대원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아주 공주님 납셨군."

 박정식이 동료들과 담배를 나눠 피면서 말했다.

 "중사님이 보기엔 어땠어요? 저 잘 나온 거 같아요?"
 "못 나왔다고 하면 네 팬한테 맞아 죽을 분위기야. 지금도 잘 나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송하나는 기체 밖으로 나와 괴물의 등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영웅적인 활약상이 인터넷상에서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가벼운 분위기로 써봤습니다.

지난번과 동일한 음악을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