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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먹어! 그리고 감탄하라고! 이 토르비욘 님의 훈제 연어에 말이지! 내 연어가 저런 꺽다리 놈에게 질 리가 없잖아!”
 “라인하르트 특제 연어 스테이크를 먹어보면 그런 소리는 입 밖에도 못 낼 거요! 자, 최고의 연어 스테이크가 왔소이다!”

 그새 아파트 안은 화려하게 바뀌어 있었다. 방 구석구석에는 호박 따위로 만든 얼굴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천장에는 별 모양 야광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해골 표본 같은 괴상한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토르비욘과 라인하르트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어 있었다. 다들 할로윈 복장으로 한껏 멋을 부린 채였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음식은 뷔페식으로 늘어져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테이블이 두 개라는 것이었다. 한쪽에는 토르비욘의 훈제 연어가 메인 디시로, 나머지 한 쪽엔 라인하르트의 연어 스테이크가 메인 디시로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들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각종 야채와 허브, 해산물로 끓인 부야베스가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정향을 박아 통째로 구운 고기 요리며 인도의 난 같은 빵도 잔뜩 있었다. 아마 접시가 모자라 빵을 접시 대용으로 쓰라고 한 것 같았다. 한쪽에는 보기만 해도 실 것 같은 피클과 설탕을 잔뜩 입힌 과자도 있었다. 모두가 먹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양이었다. 

 넓적한 빵에 샐러드며 고기 따위를 넣어 먹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연어 요리가 제일이었다. 모두가 먹고 즐기면서도 대체 누구에게 표를 던질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그만큼 둘의 요리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어이 의사 양반! 거 주최자가 지금까지 어딜 쏘다닌 거야? 빨리 와서 이거나 먹어보라고! 거기 껌둥이 너도 멀대처럼 서있지 말고 빨리 튀어 와!”

 토르비욘이 호박과 사탕으로 장식된 기계 팔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자 앙겔라는 얼른 뛰어가야만 했다. 덩달아 그녀에게 한쪽 팔을 내주고 있던 레예스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따라가야 했다. 곧 그들도 파티의 한복판에 끼어들었다. 레나 옥스턴의 입담은 파티의 분위기를 몇 배나 달아오르게 했다. 토르비욘과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서로에게 꽥꽥 고함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즐거움만 가득했다. 

 “트릭 올 트리트!”

 그때, 언제부턴가 안 보인다 싶었던 아나가 아파트 문을 꽝 열며 시원스럽게 외쳤다. 분명 저 대사는 애들이 사탕 얻을 때 사용하는 거지만…뭐 상관없나.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열렬히 환영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 뒤에 있는 맥주 박스를 환영한 거였지만 말이다. 그 짧은 다리로 가장 먼저 달려온 토르비욘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다. 아예 맥주 박스째로 씹어 먹을 기세였다.

 “이거 스톰스타우트 맥주잖아! 내가 이걸 얼마나 마시고 싶었는데!”
 “오오, 이건 나이트본(Nightborne) 포도주! 한두 병도 아니고 한 박스라니!”  
 “모리슨이 보내주는 특별 선물이야. 뭐 약간의 월권행위가 있었지만…….” 아나가 한쪽 눈을 찡긋 하며 말했다. “이거 마시는 사람 전부 공범인데, 어떻게…이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질 급한 토르비욘이 그 좋은 기계 팔로 상자들을 남김없이 해체해버렸다. 그 난장판 속에서 라인하르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손길로 맥주를 한쪽에 척척 쌓았다. 방금 전까지 으르렁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보이는 완벽한 협동심에 사람들은 감탄을 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웃음 따윈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크으-이거 맥주랑 먹으니 스테이크도 나쁘지 않은데?”
 “자네 연어도 훈제 향이 죽여주는군!”
 “뭐야, 그럼 승부는요?”

 레나의 의문에 그들은 동시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동시에 한 마디를 뱉었다.

 “무승부!”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제 파티에 어울리는 술도 왔겠다, 대결이고 뭐고 없어졌겠다 하니 분위기가 한층 더 어우러졌다. 

 앙겔라는 어딜 가나 환호의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토록 성대하고, 사람이 많이 참여한 파티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그 전부가 그녀의 공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은 전부 그녀의 공으로 돌릴 작정처럼 보였다. 

 그때 맥주 몇 캔과 음식을 조금 싸서 슬쩍 나가는 아나의 모습이 앙겔라의 눈에 비쳤다. 아마 파티에 못 온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려는 모양인가 싶어, 앙겔라는 그녀가 미처 챙기지 못한 과자며 식기 따위를 챙겨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밖에 아나의 모습은 없었다. 앙겔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별일이야, 레예스? 이런 파티는 항상 불참이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어?”

 아, 정문이 아니라 후문 쪽으로 간 건가. 앙겔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다 딱 멈췄다. 아나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쯤은 나와 줘야 뒤에서 뭐라 안 하는 법이니까.”
 “어머, 네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한 성격이었어? 어서 말 해. 내가 이렇게 음식까지 가져다 줬잖아.”
 “난 가져다 달라고 한 적 없어.”
 “그런 주제에 잘만 먹고 있으면서 뭘.” 뒤이어 맥주캔 까는 소리가 났다. “캬아! 정말 스톰스타우트라는 이름값을 하긴 하네. 기가 막힌 맛이야. 넌 안 마셔?”
 “알콜은 뇌를 상하게 하지.”
 “알콜의 힘을 빌려야 할 때도 있답니다, 이 아저씨야. 다들 너 같은 쇠신경이 아니라고.”

 그렇구나. 가브리엘은 술은 안 먹었구나. 앙겔라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양새가 어찌 훔쳐 듣는 꼴이 되었지만, 이상하게 발이 안 움직이는 그녀였다. 남의 대화를 엿들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과 무언가 이상야릇한 기분이 그녀의 발을 묶어놓고 있었다. 

 “정말 좋다. 이런 일상.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옴닉 전쟁이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봐, 레예스. 넌 오버워치가 해체되면 뭘 할거야?”
 “용병으로 먹고 살겠지.”
 “어휴, 꿈도 희망도 없긴. 좀 멋진 꿈같은 거 가져보면 안 돼? 가정을 이룬다거나 하는 거 말이야. 요즘 청춘 사업 잘 되고 있지 않아? 치글러 박사랑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앙겔라는 놀라서 하마터면 들고 있던 물건들을 떨어뜨릴 뻔했다. 청춘사업? 자신과 가브리엘이? 남에게는 그렇게 보였던가 싶기도 한 마음에 부끄러운 마음 등등이 섞여 그녀의 마음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가브리엘 레예스라는 남성은 꽤 능력 좋은 남자였다. 일단 오버워치라는 거대 세력의 한 장을 맡고 있고, 외모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고, 몸도 단련된 근육질이었다. 단점으로 성격이 조금…아니 좀 많이 무뚝뚝하단 게 있긴 했지만 그건 그에게 익숙해진 앙겔라에겐 별다른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앙겔라도 그가 싫지 않았다. 아니, 실은 꽤 좋아했다. 그녀의 이상형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레예스는 거기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관계 아냐.”

 하지만 레예스는 그런 혼란스런 앙겔라의 마음에 찬물을 들이 부었다. 단칼에 부정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냉정하게 들려서, 이 차가운 겨울날 달아올랐던 그녀의 마음까지 단번에 식힐 정도였다. 앙겔라의 표정이 조금 사라졌다.

 “하지만 옆에서 볼 때는 꽤 어울리는데? 난 저번에 치글러 박사가 복도에서 네게 장난칠 때 놀라 뒤집어질 뻔했다고. 나 네가 누구 장난 받아주는 거 처음 봤단 말이야. 기억나? 오버워치 첫 창설 때 장난삼아 놀렸던 사람을 네가…….”
 “고고학자이신가? 잘도 그런 케케묵은 기억을 들추시는군.”
 레예스는 비꼬면서 툴툴거렸다.
 “아무튼, 왜 그런 관계가 아닌데?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안 나갔다는 뜻이야, 아니면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거야? 괜찮아! 나 사내 연애 적극 찬성론자야.”
 “그런 거 아냐.” 
 “그럼 왜? 너 치글러 박사같은 여자 만나는 게 어디 흔한 일인 줄 알아? 너같이 무뚝뚝하고, 남 배려 안하면서 사교성도 최악인 남자 이해해 줄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되겠어?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것이야. 이때다 싶으면 달려들어야 한다고.”

 아나는 허공에 주먹질까지 하며 열변을 토했다. 이대로 있으면 끈덕지게 달라붙을 걸 안 모양인지, 레예스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예전에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어.”
 “뭐?”
 “그런데 지금은 두렵군.”

 그게 다였다. 그런 알쏭달쏭한 말만 남긴 채 레예스는 입을 닫았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애초에 대화를 주도하던 아나가 말을 않으면 침묵이 내려앉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앙겔라는 당장 레예스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나는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앞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했다.

 “겁쟁이.”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것이야. 이 멍청하고 둔한 얼간아.”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혀를 찼다. “됐다. 남의 사정에 끼어 들 입장도 아니고…네 맘대로 해. 난 간다. 우리 사령관한테도 할로윈 음식 맛은 좀 보여줘야 할 테니 말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서 가버렸다. 후문 쪽으로 나간 게 천만다행이었다. 추위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앙겔라의 몸은 꽝꽝 얼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레예스도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그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앙겔라의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추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추웠다. 추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

 앙겔라의 목소리가 입김처럼 허공을 맴돌다 스러졌다.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왜 아나가 그토록 화를 냈는지도 말이다. 그들은 오버워치 요원이었다. 늘 위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유가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마음을 추스릴 여유가 없었다.

 앙겔라는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파티가 한창인 그녀의 방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레예스가 간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어둠과 추위가 아닌 빛과 따스함으로. 하지만 왜일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마음 속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잡담

0. 이상하게 유쾌해야 하는데 안 유쾌하네...?

1. 다음편은 누가 아파요

2. 많이많이

3. 표지 감사합니다 표지 쓰고 싶어서 빨리 썼어요 만들어주신 ANLOVE(조아라 독자)님 감사합니다.

4.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