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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그램 화면에 제주도 너머의 바다가 잡혔다. 바다 한복판엔 거대한 오징어처럼 생긴 옴닉의 기동요새, 크라켄이 있었다. 화면은 괴물의 내부를 각종 수치로 분석해주었다. 유연한 열 개의 촉수 다리에 다리마다 수많은 빨판이 있고 빨판 안에는 로켓포와 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화기가 숨겨져 있었다. 어떤 배라도 삼켜버릴 것처럼 큼지막한 입에는 그에 걸맞게 탄도 미사일 수준의 위력을 자랑하는 광선포가 있고 얼굴에선 네 쌍의 눈이 붉게 빛났다.

 화면은 크라켄에서 대한민국의 국군이 출격하는 영상으로 전환되었다. 해안 기지에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발진하고 제주도에 배치된 레일건과 미사일 발사대가 크라켄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구축함과 크고 작은 군함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크라켄을 포위해갔다. 육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차와 로켓포를 해운대의 모래사장 근처에 배치했다. 헬리콥터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MEKA의 기체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제주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영상의 시점이 MEKA와 송하나에게 고정되었다. 장관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제군들, 여러분은 몇 분 뒤에 크라켄과 맞서 싸우게 된다. 오래전 우리 영해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옴닉의 괴물이 이번에도 조국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녀석을 쫓아낼 때마다 옴닉은 녀석에게 더 흉악한 무기들을 부착시켜 다시 내보내 왔다. 언제까지 괴물들한테 우리의 바다와 대지를 위협받으면서 살 수는 없다. 우린 지금까지 그래왔듯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빌어먹을 놈을 막아낼 것이다. 허나 우린 더 이상 헛된 희생을 치르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있기 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장렬하게 싸우면서 죽어갔다. 조국을 위한 희생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우린 이번에야말로 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서 놈들이 나타났던 캄캄한 심연 속에 묻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평화를 안겨주고 대한민국에 새 시대가 왔음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다."

 

 

 장관의 연설이 끝난 뒤 기체들의 화면이 전술 레이더로 전환되었다. 송하나는 편대의 선두에서 전속력으로 물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방송은 크라켄과 마주치기 전까진 꺼져 있었다.

 "왠지 죽으러갈 때 나올 법한 연설 같군."

 박정식이 말했다. 송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절 못 믿기라도 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단지 적이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을 뿐이야. 하여튼 잘 싸워, 다치지 말고."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크라켄은 보란 듯이 바다 한복판에 가만히 있었다. 녀석은 송하나의 기체를 보자마자 다리를 모두 하늘로 치켜세우면서 포효했다. MEKA 부대원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몸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송하나는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고 크라켄의 다리 사이로 날아들었다. 크라켄의 다리들이 물 위를 내려치면서 거센 물살이 퍼져 나갔다. 그녀는 재빨리 방송을 켜놓고 크라켄의 다리에 융합포를 발사했다. 방송 사이트들은 접속자가 넘치다 못해 서버가 터질 지경이었다.

 "오징어 사냥 시작합니다!"

 송하나를 시작으로 다른 기체들도 크라켄의 다리를 피해 가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전투기들이 녀석의 머리 위로 폭탄과 미사일을 줄줄이 투하했다. 크라켄은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입을 쩍 벌린 뒤 엄청난 크기의 광선으로 하늘을 그어버렸다. 송하나의 기체에까지 충격파가 퍼져 조종간을 쥔 손이 흔들렸다.

 "진짜 크네. 저거에 맞으면 뼈도 안 남겠어."

 가까운 곳에서 구축함의 레일건 포격이 크라켄의 머리에 빗발쳤다. 크라켄은 다리로 포탄들을 막아내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구축함들이 연막을 뿌리면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크라켄은 함대 한복판에서 떠올라 구축함 한 대를 다리로 휘감고 토막 내버렸다. 간신히 다리에서 벗어난 군함은 녀석의 빨판에서 솟아 나온 미사일에 얻어맞고 불길에 휩싸였다. MEKA 부대원들이 녀석의 빨판 안으로 미사일을 날렸지만 아무런 폭발도 없었다.

 "다리의 연결 부위에 공격을 집중해라."
 사령부에서 말했다. 지금까지 국군이 노려왔던 크라켄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공군이 폭격으로 크라켄의 시선을 가로막는 동안에 기체들이 다리 하나에 몇 대씩 들러붙어 융합포와 미사일을 정신없이 갈겨댔다. 크라켄은 다리를 채찍처럼 휘두르면서 몇몇 기체를 낚아챘다. 크라켄의 다리 안에 갇힌 기체들이 곧장 바닷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송하나는 녀석의 다리 사이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국군의 지시를 따랐다. 그녀는 융합포만으로 손쉽게 연결 부위의 장갑을 벗겨낼 수 있었다.

 크라켄은 다리를 물속에 집어넣고 빨판에서 미사일을 내뱉었다. 미사일이 허공에서 분리되고 더 작은 로켓들로 나뉜 다음에 사방에서 폭발했다. 송하나는 크라켄의 머리 위에 앉아 미간 한 곳을 노리고 융합포를 쏘았다. 크라켄은 다시 한 번 잠수를 시도하면서 다리를 교차시켜 그녀를 가두려 했다. 군함에서 발사된 어뢰들이 터지면서 크라켄이 있던 곳에 물기둥이 솟구쳤다. 크라켄이 다리를 마구 내저으면서 떠올라 광선을 퍼부었다. 몇몇 기체가 크라켄의 입으로 자폭했지만, 녀석은 센터피드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았다. 크라켄의 입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날아가던 기체들이 주변 공기와 함께 얼어붙었다. 크라켄은 사방에 물장구를 치면서 기체들을 쫓아냈다.

 "으…차가워죽겠어."

 송하나가 양손에 입김을 호호 불면서 말했다. 크라켄의 다리 끝에서 먹물처럼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국군의 포격이 연기 속으로 날아들었다. 물속에서 크라켄의 다리가 송하나가 타고 있는 기체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녀는 대처할 틈도 없이 크라켄의 다리와 함께 물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송하나는 입안에 공기를 가득 머금은 채 크라켄의 다리에 미사일을 쏘면서 조종간을 있는 힘껏 앞으로 밀었다. 그녀가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광선이 융합포를 스쳐 지나갔다. 미사일들이 부표처럼 둥둥 떠오른 뒤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갔다가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그녀는 기체를 한 바퀴 돌리면서 미사일을 전부 요격시켰다. 그녀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기침을 토해냈다.

 "나만 물 먹을 수야 없지!"

 크라켄이 다시 떠오르기 무섭게 녀석의 다리에 레일건이 연달아 꽂혔다.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가면서 크라켄이 비명을 질러댔다.

 "도망치기 전에 어서 공격해! 가리지 말고 아무거나 퍼부어!"

 사령부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태까지 크라켄은 다리 하나만 파손되어도 곧장 도망쳐버리곤 했었다. 크라켄은 이번엔 잠수하지 않고 광선으로 구축함의 함포들을 부숴버리고 송하나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도 끝장을 보려는 것 같은데요?"

 송하나가 말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다리 몇 개를 더 잘라도 결국엔 도망가버릴 텐데 말이야."

 박정식이 말했다.

 "그럼 다리 말고 다른 곳을 크게 날려버리면 그만이죠!"

 "그게 말처럼 쉬웠으면 우리가 이러고 있을 필요도 없겠지. 뭐, 너도 생각이 있을 테니 간섭하진 않겠다. 얼지 않게 조심해."

 송하나는 크라켄의 다리들을 징검다리 삼아 녀석의 얼굴 위로 날아갔다.

 "페인트 같은 거 없어요?"
 "페인트…뭐…?"

 "음…그게 뭐더라? 아무튼, 사격점에 칠하는 거요! 그거 미간에다 한 방 쏴주세요!"

 "글쎄, 그런 것까지 준비해놓았으려나. 일단 알아볼게."

 크라켄은 다리로 자기 얼굴을 쳐가면서 그녀를 쫓아내려 했다. 그녀는 차곡차곡 겹쳐지는 다리 위로 뛰어오르고 내려오면서 크라켄의 눈 위를 짓밟고 다녔다.

 "디바가 요청한 표적 지시기를 발사하겠다."

 사령부에서 말했다. 그녀는 크라켄의 얼굴 밖으로 날아가면서 녀석이 다리를 얼굴에서 빼게 했다. 녀석의 이마로 폭탄 한 발이 떨어졌다. 폭탄에 내장되어 있던 형광 액체가 크라켄의 미간을 초록색으로 물들였다. 적외선 조준으로 유도할 수 있는 표적이 형성되었다.

 "이런 건 한 군데만 노리는 게 최고지!"

 송하나가 융합포를 쏘면서 말했다. 하늘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포탄과 미사일, 총알들이 크라켄의 미간을 두들겼다. 크라켄은 수증기를 쏟아내면서 얼음 장벽을 만들어냈다. 장벽을 뚫을 만한 화력을 가진 무기들은 장벽 앞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떨어졌다. 송하나는 장벽의 맞은편에 서서 잠시 숨을 돌렸다. 크라켄의 다리들이 작살처럼 장벽 한가운데를 뚫고 나와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 기체에 서리가 끼면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퍼져 나갔다.

 "어우, 짜증 나!"

 그녀가 융합포로 크라켄의 다리를 떨쳐내면서 말했다. 크라켄이 다리를 일렬로 세우고 빨판에서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MEKA 부대원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함께 방어 매트릭스를 켜고 포탄들을 요격했다.

 "모두 정말 고마워요!"

 "고맙기는. 우리가 할 말이지."
 그녀의 곁에 있는 부대원이 말했다. 부대원들은 피하기만 급급했던 신세에서 벗어나 장벽 위에서 크라켄의 입을 공격했다. 크라켄이 수증기를 내뿜는 걸 멈추자 폭탄들이 지시기로 표시된 곳을 때렸다.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장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해군은 크라켄이 잠수하는 걸 막으려고 녀석의 몸 밑에 터뜨릴 수 있는 건 모조리 쏘고 보았다. 다리 한쪽이 추가로 잘려나가면서 크라켄이 괴로운 듯이 몸부림쳤다. 녀석의 다리에 붙잡힌 기체는 다른 기체들의 신속한 지원사격 덕분에 금세 풀려나왔다. 난공불락 같던 괴물의 빈틈이 서서히 벌어져 갔다.

 "이제 이길 각이 보여!"

 송하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크라켄은 마지막 발악으로 다리들을 휘두르며 군함을 향해 광선을 쏘았다. 국군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에 계속 유효타를 꽂아넣었다. 마침내 크라켄의 이마가 깨지면서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송하나는 크라켄의 다리들이 자기를 덮치려는 순간 구멍 안으로 기체를 던져넣었다.

 "잘 가!"

 그녀가 낙하산에 매달린 채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그녀의 기체가 크라켄의 이마 안으로 쏙 들어가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크라켄의 다리가 그녀에게 닿기 전에 미사일과 레일건이 연달아 쏟아지면서 녀석의 다리가 하나둘씩 축 늘어졌다. 녀석의 입에선 광선을 모으다 말고 침을 흘리는 것처럼 투명한 액체가 줄줄 새어 나왔다.

 한 기체가 융합포로 송하나의 몸을 잡고 그녀를 크라켄의 머리 위에 내려주었다. 크라켄의 이마에서도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다. 연기를 뚫고 옴닉의 로봇들이 기어 나왔다. 이마에 점이 세 개 달린 양산형 로봇들이었다. 하늘에서 기체들이 송하나의 앞으로 내려오면서 그녀를 가려주었다. 로봇들은 양손을 머리 위에 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로봇이 부대원들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항복이다, 망할 인간들아."

 부대원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장 로봇을 융합포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남은 로봇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송하나는 그만하란 듯이 손으로 기체의 융합포를 매만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지금까지 이놈들한테 죽은 사람이 몇인데. 전부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것들이야."

 한 부대원이 분을 삭이면서 말했다.

 "사격 중지! 포로들은 건드리지 마라!"

 장관이 부대원들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소형 보트와 헬리콥터들이 포로를 호송하기 위해 몰려왔다. 부대원들은 로봇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송하나를 앞다퉈 칭찬했다.

 "그나저나 우리 꼬마 대위님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는걸."

 "누구보고 꼬맹이라는 거에요? 기가 막혀서!"
 그녀가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어쩌면 작은 몸이 여기에 더 잘 맞는 걸지도 모르지."

 "그거랑은 아무 상관 없거든요."

 "우리 영웅께서 많이 추우신 것 같은데 빨리 집에 보내드려야겠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하나도 안 춥거든요!"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 나. 어서 보트를 타고 가렴."

 "그래, 우리가 어떻게 너 없이 싸울 수 있겠니."

 송하나는 부대원들의 등쌀에 떠밀려 보트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얼굴이 뾰로통해졌지만, 담요는 거절하지 않았다.

 

 

 

 

 

 

크라켄 잡는덴 역시 이걸 들어야죠.

마지막 괴물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