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을 위한 서비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카페 같은 가게와 작품 간의 콜라보나 지브리 미술관처럼 팬이 즐길 곳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작품의 배우나 성우 등의 사인회 등 있죠. 애니메이션에서는 라이브 콘서트로 성우와 팬이 함께 즐기는 이벤트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팬서비스는 획기적이거나 이미 정형화된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팬서비스는 팬의 또 다른 즐길 거리가 되어 팬의 애정과 또 다른 욕구를 낳게 해주죠. 여기에 파생되어서 색다른 2차 창작을 생산하고 팬 문화를 활성화해주며, 작품의 명맥을 이어가는 동력원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번에 리뷰하는 <뱅드림! Girls Band Party!☆PICO(이하, 걸즈 피코)>는 2018년 3분기부터 매주 목요일에 방영하고 있는 3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입니다. 공식적으로 팬서비스의 항목 중 하나라고 정해두지 않았지만, 팬서비스 차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7년 3월에 출시된 음악 게임 <뱅드림>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설정과 분위기, 성격을 숙지하고 있는 팬이 아니고서는 <걸즈 피코>의 내용을 일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죠. 매주 <반도리TV>과 <글로벌 뱅드림 공식 유튜브> 같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본편을 빠르게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부분도 팬서비스적인 성격을 진하게 띠게 해줍니다.
정신없는 분위기가 팬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
<걸즈 피코>는 <뱅드림> 각 캐릭터 간의 관계, 취미, 개인 사정, 성격 등을 이용한 내용 전개, 즉 캐릭터가 밴드를 하고 있지 않을 때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이라고 했지, 이게 진짜 소소할 거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노래 부르기>나 <계단에 단체로 넘어지면서 몸 바뀌기>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죠. 그야말로, 누구든 한 번쯤은 상상은 해보지만, 실제로 실천해보지 않는 다양한 상황 속 전개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원래라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개가 각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을 통해서 그럴듯하게 구현되었죠. 덕분에 시청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에 설득당하면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기존 캐릭터의 이미지와 예측불가 한 전개의 융합으로 코믹한 상황이 연출되는 동시에 감상하는 내내 계속 긴장감까지도 유지하게 되었죠. 게다가 터무니없는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 채 다른 에피소드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캐릭터의 배경을 안다면, 이 사태가 벌어진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갖가지 정보를 알고 있는 팬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난해한 전개일 겁니다. 제3자가 등장 캐릭터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 턱이 없거니와, 단편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캐릭터를 설명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생략되었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제작진이 설명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조금이라도 만들려는 작은 배려조차 없었습니다. 시청자가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제작되었던 거죠.
▲1회에서 무슨 밴드인지 알려주는 게 그나마 있는 정보 제공의 끝이다.
그래서 팬이 아닌 사람이 <걸즈 피코>를 감상하려고 한다면,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스토리의 전개가 불친절해서 기본 정보를 탑재하지 않은 상태로 감상한다면, 스토리의 정신없는 흐름에 겉돌기만 하다가 작품이 끝나기 때문이죠. 그러니 여기서라도 <걸즈 피코> 리뷰는 끄고,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최근에 <별 셋 컬러즈>를 봤는데,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찾는다면, <아이돌 마스터 푸치마스>를 추천합니다.
▲<뱅드림>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다른 걸 찾아보는 게 낫다. <별 셋 컬러즈> 재밌었다.
<걸즈 피코>는 팬이 아니라면 끌릴 만한 요소는 없었다.
<걸즈 피코>는 솔직히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앞서서 언급했던 불친절한 전개뿐만이 아니라, 작화, 연출 등 여러 가지를 살펴봐도 뛰어난 부분은 없었죠.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걸즈 피코>의 인물은 전부 SD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는 겁니다. 굉장히 귀엽죠. 그리고 간소화된 장면 속 배경은 볼품없이 그려져 있어서 가뜩이나 튀어 보이는 SD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작품의 볼거리는 첫 순간부터 캐릭터로 한정되게 되었죠.
▲배경이 각지고 볼품없이 그려져서 SD 캐릭터가 훨씬 부각된다.
하지만, 캐릭터를 부각시켰다고 해서 캐릭터의 움직임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 모든 캐릭터의 움직임은 마치 한 편의 인형극을 보듯이 뚝뚝 끊겨서 매끄럽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말할 때조차도 입을 뻥끗할 때와 닫았을 때, 단 두 개의 움직임으로 표현했죠. 더군다나 단편 애니메이션이면서 제작 비용을 더욱 줄이기 위해 3분짜리 한 회 안에서도 재활용되는 장면이 많다는 것도 보기 불편한 점이었습니다. 작화에서 유일하게 칭찬할 부분은 SD 캐릭터로 단조롭게 그려진 게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무마해줬다는 거뿐이었죠.
▲가끔씩 깔끔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아주 가끔이었고, 대부분은 말하는 장면처럼 부자연스럽다.
그나마 <걸즈 피코>의 연출이 있었기에 작품의 흐름에 녹아들기 쉬웠습니다. 특히, 모든 캐릭터의 감정 표현이 이모티콘처럼 되도록 눈에 잘 띄도록 과장되게 표현되면서 캐릭터의 감정을 읽기 쉬웠던 게 주효했습니다. 그 덕분에 상황 속 분위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연출은 그저 캐릭터를 돋보여줄 뿐이지 그다지 특별한 연출은 아닙니다. 그러니 결국 연출도 작화나 스토리의 전개와 다를 것 없이 모든 걸 캐릭터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거죠.
▲표정이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감정을 읽기가 쉽다.
그래서 캐릭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 입장에서는 그나마 봐줄 만한 요소는 ED 노래가 좋고 귀여웠다는 점뿐이었죠. 그 정도로 <걸즈 피코>는 작품적으로 뛰어난 부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팬이 아닌 사람이 봤을 때의 감상이었죠.
<걸즈 피코>의 가치는 팬이 즐기는 거다.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때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게 됩니다. 스토리의 구조가 매우 튼튼하다든지 결말이 매우 감동적이나 시각적 연출이 매우 뛰어나다 등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정형화된 틀이 있고, 그에 따라 가치 판단을 내리는 다양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러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걸즈 피코>처럼 기획 대상이 뚜렷한 작품이라면, 자신의 가치 판단의 기준을 조금 뒤로하고, 제작진의 의도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걸즈 피코>가 제작진이 팬을 위해 제작한 팬서비스 작품이라면, 그 가치는 팬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게 옳겠죠.
그런 의미에서 <걸즈 피코>는 분명 좋은 작품입니다. 자신이 좋아했던 캐릭터의 색다른 면모를 보면서 다른 캐릭터에 대한 즐길 요소도 가득하니, 팬으로서 <뱅드림>을 더욱 폭넓게 즐기게 해주는데다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벌어졌던 기상천외한 사건이 그대로 버려지는 게 아니라 다른 에피소드에도 영향을 끼치는 등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흥미진진한 반전 요소도 팬에게 창작 욕구를 자극시킵니다. <뱅 드림>게임의 BGM을 활용한 <걸즈 피코> OST도 게임에 대한 소속감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걸즈 피코> 13화에서 보여준 라이브 하우스에서 중요 선언을 하는 에피소드 장면은 <뱅 드림> 애니메이션을 봤던 팬에게 뜻밖의 재미도 줬죠.
▲한 캐릭터의 1인칭 시점이 되어서 해당 그룹의 분위기를 간접 체험하게도 해준다.
이처럼 <걸즈 피코>는 팬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팬 디스크나 라이브 콘서트 등과는 다르게, 작품을 즐기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즐겁게 해주고 있죠. 그러니 <뱅 드림>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걸즈 피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일 겁니다.
PS. 현재 16화까지 방영되었으며, 매주 목요일 24:00쯤에 <글로벌 뱅 드림 유튜브 공식 채널>을 가보면 다음 편이 업데이트가 되고 있습니다. 한글 자막이 없다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도 들지 않고 접속도 매우 간단하니, 관심이 있다면 부담 갖지 않고 한번 봐보시는 건 어떨까요?
최근 3일 동안 침대에 누워서 골골되는 바람에 어제부터 밤새서 지금 후딱 끝내버렸네요. 그래서 리뷰 중에 이상한 게 있다면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고보니, <걸즈 피코>가 아니라 <걸파 피코>라고 줄여서 말하더라고요..... 아.... 수정이 귀찮아서.....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