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센리엔의 미궁(이하 미궁)에 들어선지 3시간, 드디어 마지막 11단계 도플갱어와 대면했습니다.
이런, 하필이면 재빠른 이비의 도플갱어가 나왔네요. 멍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퀵슬롯을 쳐다보지만
이미 들고왔던 모든 소지품은 0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믿을 것은 캐시 아이템 뿐.


한참의 사투를 벌이며 고지를 눈 앞에 둔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오류로 클라이언트가 종료됩니다.
다급한 마음에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번개같은 재접속! 다행히 어시스트 시스템으로
종료전에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밖에 나오지 않은 코어를 보며 야속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어쨌든 끝났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루팅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전체 플레이 타임 3시간 30분 중 단 한 번의 팅김 현상. 그로 인한 어시스트 참여.
이블 코어에 다가가 핸드모션을 눌러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조금 쉬고 싶다며 게임을 종료한 그가 이후 다시 미궁으로 향했을지,
아니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을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게임 속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일들이니까요.







아마 다들 이런 경험을 한번씩은 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궁에서만 얻을 수 있는 타이틀과 아이템을 위해 3시간 이상을 투자하고, 겨우 도달한 최정상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함을 지닌 도플갱어를 만났을 때 비어있는 퀵슬롯때문에 좌절해야 했던 경험.
혹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벼워지는 지갑은 물론, 간헐적으로 팅기는 현상으로 인해
받지 못한 보상에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경험 말입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 미궁이 추가되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미궁은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우선, 기존의 3개뿐이던 전투 방식이 5개로 늘어남은 물론
방식도 단순 전투가 아닌 퍼즐형 방식이 추가되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소모 아이템의 재충전 기회를 부여하고 전체적인 등장 몬스터의 난이도를 조절하여
클리어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골드와 AP뿐이던 보상에서 특수 세트 아이템 보상을 추가하여
미궁에 도전해야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부여했습니다.


덕분에 예전보다는 미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어째서인지 여전히 미궁은 선뜻 가기 꺼려지는 묘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습니다.



현재 미궁에서 얻을 수 있는 세트 아이템은 직업 제한 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로리카 플레이트 세트와 피오나와 이비 전용인 미드나잇 세트까지 2종류로
두 세트 모두 독특한 외형과 나쁘지 않은 효과로 매우 고가로 거래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 과연 유저들의 욕심에서 나오는 단순한 불만의 표출일까요.



[ 운만 따라준다면 인생역전도 가능한 미궁 드랍 아이템 ]




[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는 사람은 적은 미궁 ]




난이도를 하향했음에도 미궁이 꺼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한 번에 3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유저들이 많다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장르적 특성상 플레이하는 동안 계속해서 조작과 상황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즉, 플레이 타임이 바로 피로로 다가오게 되지요. 물론 다른 장르의 게임 역시
장시간 플레이에 따른 피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계속해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해야하는
MORPG가 주는 피로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특히, 마비노기 영웅전의 다른 전투들의 평균 클리어 시간이 4인 파티 기준으로
15~25분 내외로 아무리 오래 걸려도 40~50분을 넘기지 않고
전투의 제한 시간조차 1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3시간 가까이 계속해서 플레이를 해야한다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동안 다른 전투들로 골드를 벌어
아이템을 사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 유저들이 존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피로감이라는 문제를 떠나서 본다 하여도
한 번에 3시간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다양한 환경의 유저들도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잠깐 풀고 싶은 직장인,
혹은 학교와 학원 공부에 치어 잠깐 게임을 즐기는 학생처럼 소위 말하는 라이트 유저들에게
미궁은 마음먹고 도전해야 하는 전투인 셈이지요.



[ 난이도 하향 전이긴 했지만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준 13시간 미궁 ※인벤가족 yakmo20님의 사진 ]




상식 밖의 몬스터들로 인한 좌절감도 있습니다.


사실 미궁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상대하다보면
실제 해당 전투에서 싸우는 그것들 보다는 약한 편에 속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일전의 패치로 전체적인 난이도를 하향시켜 클리어 타임 역시 반 정도 줄였을 만큼 쉬워진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전체 11층 중 9층까지의 이야기일 뿐,
본편이라 할 수 있는 10층과 11층은 혼을 빼놓기에 충분합니다.



미궁은 1레벨부터 70레벨까지 모든 레벨의 유저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든 마영전 유일의 컨텐츠입니다.
개발사는 저레벨 유저들은 물론 고레벨 유저들까지 만족시키는 밸런스를 위해 많은 경우들을 고려하여
미궁을 설계했습니다. 무조건 캐릭터의 강함을 보는 전투가 아닌 여러가지 모드를 추가하면서
그와 함께 절대적인 강함이 없다면 클리어하기 힘든 도플갱어란 몬스터를 투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그 기준을 높게 잡은 탓인지,
10층 이상의 도플갱어들을 만나보면 입이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유저와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고 유저가 사용하는 장비를 사용하지만 도플갱어의 공격력은
유저의 그것이 아닙니다. 마영전의 특성상 찰나의 방심이 곧 찬 바닥과의 해후(?)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쯤되면 포션의 의미가 없어질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주어 유저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플갱어의 경우 SP의 개념이 없어 이른바 SP 스킬의 난사를 사용하곤 합니다.
다행히 SP 4칸의 스킬들은 사용하지 않지만 1~2칸의 스킬들은 자유롭게 사용하며
특히 11층의 이비 도플갱어는 '진정한 마법사'라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알려줄 정도로 블라인드 애로우를 난사합니다.



앞으로 마영전의 레벨 제한이 풀려 미궁의 층이 더 높아지게 된다면
이 도플갱어들은 또 어떤 SP스킬로 유저들을 당황시키게 될까요.



[ 인벤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미궁 파티 모집글 형식. 캐시는 필수. ]




현재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적어도
모든 파티원이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캐시 아이템의 사용 이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한 번 부활을 위해 사용하는 200~500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전체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캐시 아이템을 생각해보면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수로(그것도 한 번으로는 끝나지도 않을) 캐시 아이템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의
유저의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복잡합니다.
물론, 베타 테스트 중인 무료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닌 이상 게임을 하면서
일정 요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 아차! 하는 순간 밀려오는 후회. 정말 유저의 실력 부족일까 ]




이제는 제법 널리 퍼진 데브캣의 명언이 있습니다. '게임이 너무 쉬우면 재미없습니다'.
그 옛날 이 말에 감동하여 게임 속 캐릭터의 한계를 넘기 위해 레벨업을 하고 장비를 맞췃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고급 장비를 맞추고 더 이상 찍을 스킬이 없어져
AP가 남고 레벨업까지 거의 끝낸, 소위 말하는 상위 1%의 유저조차 단 한 번의 실수로
죽음을 피할 도리가 없는, 지금은 말입니다.



플레이의 부담을 줄이고, 자신의 캐릭터 시체를 바라보며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로센리엔의 미궁을 즐기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Inven Roii
(Roii@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