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나와서 어제 보고 왔습니다. 

 원작 만화인 <총몽>을 정말 손에 꼽도록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기대도 컸지만 그만큼 불안도 컸습니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공각기동대>를 비롯해 다양한 일본만화 원작의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 걸 보았거든요. 원작팬들은 원작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실망하고, 일반인들은 겉핥기로 가져온 설정들에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서 실망하는 악몽이 여기에서도 이어질지 걱정이 들었었습니다.

 일반인보다는 원작 팬 입장에 가까운 저는 이런 영화들을 볼 때 먼저 보는 게 '영화가 원작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는가?'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면서 활짝 웃는 것처럼, 감독이 실사영화를 들고 원작에게 자신있게 보여주는 모습이 보이면 저는 아무리 작품이 부실해도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원작팬만 잡기에는 흥행이 걱정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들이 영화에 담겨있을테니까요.  어린아이가 고양이를 그릴 때 삐쭉 솟은 털가닥이나 말랑말랑한 육구, 콧주름 등 세세한 부분은 그리지 않고 날서고 커다란 눈매, 뾰족한 두 귀, 방향이 있는 꼬리 등 '고양이'라고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로 그리듯이 원작의 많은 설정들을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에 담지 않아도, 주된 설정과 캐릭터가 살아있으면 저는 좋은 실사영화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보면  <알리타>는 제 입장에선 괜찮은 실사영화화였습니다. 

 
 대추락 사건 이후 공중도시 자렘과 그 아래의 고철도시만 남은 디스토피아는 낮에는 의외로 이런 상황에도 사람들은 웃으며 살아가는구나를 보여줬지만 밤이 되면 숨어있던 범죄와 사냥,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그 주변을 발광하듯 빛나는 네온사인 간판까지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절반은 고철도시의 낮을 보여주는데 활기가 넘치는 점이 처음 볼 땐 이 세계관이 이런 곳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하긴 애니메이션 미소녀 여고생이 화장실을 가는가 가지 않는가와 같은 생각으로 디스토피아에도 밝은 대낮은 있겠지라고 납득을 하며 넘어갔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내용 덕분에 <블레이드 러너>같은 칙칙하고 암울한 분위기보다는 원작의 2부인 라스트 오더의 분위기에 더 가까워졌던거 같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알리타와 이도 빼고는 묘사가 부족해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속편을 위한 초석 다지기라고 납득을 하려고 해도 알리타의 남자친구인 휴고부터 시작해 모든 캐릭터가 정해진 대사를 읽는 보이스웨어 캐릭터 같았습니다. 알리타만 해도 복잡한 과거사가 있고 기억 상실도 있어서 할 말이 많은 캐릭터인건 맞고, 이도 역시 고철더미에서 그녀를 주워와서 딸처럼 키워온 아빠같은 역할이라 할 말이 많은건 맞습니다. 그런데 주연이고 마지막까지 나오는 남자친구 휴고는 좀 더 대사나 행동을 원작처럼 더 늘려줬어도 될거 같은데.. 그냥 껄렁한 남자친구. 

 묘사가 거의 대사 한 번 이야기하면 그 대사가 뒤에 행동으로 이어지는 1:1 대응이라서 더 밋밋하게 느껴진 것도 있네요. 

 그정도였습니다.


 기갑술을 이용한 알리타의 격투와 모터볼 씬은 단점을 씹어먹을 정도로 굉장히 눈과 귀가 즐거웠습니다. 이제껏 본 액션들 중 이렇게 호쾌한 건 킬 빌 이후로 처음이었어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파란 피를 흘리는 사이보그라서 팔이 뽑이거나 온 몸이 부서지는 소리까지 더해져서 이것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모터볼만 2시간으로 했어도 굉장했을거 같다는 농담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  12세 이용가라고 하긴 하는데, 피 색깔이 다르고 기계라서 그렇게 받은건지는 몰라도 부서지고 뜯어지는 걸 보면 섬뜩하고 장기도 그대로 나와 이게 어떻게 12세를 받은 건지 의문이 듭니다.  


 속편을 만드려고 하는 작품이라 그런지 설정이나 떡밥은 좀 실망스러운 게 있었습니다. 떡밥을 풀어놓고 끝까지 회수 안한 것도 있고, 처음에 중요하게 이야기했는데 나중엔 조용히 사라진 거, 안 중요한거 같았는데 갑자기 중요해진 것 등등.. 다음 작품이 나와야 알겠지만 설정은 분위기는 살렸지만 나머지는 별로였습니다.

 원작도 사실 1부 2부 3부가 돌림노래처럼 세이브포인트부터 재시작, 세이브포인트부터 재시작이긴 하지만요.


 뭐 그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역대급 액션과, 다른 실사영화화와 보단 원작에 대한 좋아함이 보여서요.


 진짜 엉망진창인 감상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