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의원과 서울대 77학번 동기인 유기홍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의 봄 당시 두 사람이 대의원회 의장과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는 선거 관리를 맡고, 과도정부 역할을 담당했던 ‘서울대 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총무위원장을 맡아 당시 상황을 잘 안다”며 심 의원에게 편지를 썼다. 유 전 의원은 “나도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갔지만, 당시 비공개 지도부 ‘무림’의 일원이었던 내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다”며 “당시 유시민은 모든 일을 밖으로 드러나 있던 공개지도부로 돌리고, 비공개 지도부를 성공적으로 지켜냈다”고 옹호했다. 이어 “유 이사장이 조사받으며 총학생회장인 자네(심재철 의원)가 아니라 비공개 지도부를 실토했어야 한다는 말인가”라며 “유시민은 조직을 지켰고, 심재철 검거 이후에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조작이 완성됐다”고 지적했다. 또 “한때 친구였던 자네가 크게 헛발질을 했다”며 “자네의 증언이 이해찬 선배 등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엮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법학과 77학번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시 진술서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 교수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두환은 어마어마한 고문과 장기불법구금을 자행했다. 그때의 자술서는 강제타술서로, 자발성이 없다”며 “유시민과 심재철의 강제타술서에서 마뜩잖은 몇 줄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고초·고문의 정황증거이지, 그들이 밀고자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자술서를 어떻게 썼든, 당시 학생, 정치, 재야운동의 동향은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이미 다 들어 있었다”며 “자술서대로 사건 윤곽을 잡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군부가 짠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의 진술서가 수사 초기 신군부의 눈과 귀를 밝혀준 셈이 됐다”는 심 의원의 주장을 반박한 셈이다. 또 “둘 다 극도의 폭력과 위축감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본다”며 “둘 다 훌륭했고, 멋있었고, 닥쳐올 고난의 불안 속에서도 각오하고 임한 학생 리더였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학보사 기자로, 유 이사장과 심 의원의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청와대 민원제안비서관을 지낸 양민호 한반도광물자원연구센터 이사장도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근 두 사람 간 논쟁을 보고 있자니 쓴웃음만 나온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젊은 시절 아끼던 후배들이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양 이사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75학번으로, 서울대 재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양 이사장은 “당시 수사기관 진술서를 갖고 서로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며 “설사 그 당시 고문에 못 이겨 본의 아니게 진술을 강요당한 자들이라도 그 이후 올바른 행동을 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양 이사장은 또 “심재철은 이미 오래 전에 민주화 동지들을 배신한 정치인이다. 반면 유시민은 시종일관 우리 민주진보 진영의 튼튼한 우군으로 활동해왔다”며 “심재철이 어떻게 1980년대 초 MBC에 기자로 입사하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미스터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