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부모님은 문자그대로 못배운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는편인데 고향서 초등학교만 나와 동네근처에서 머슴살이를 하셨다 한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많으신지 70이넘은 나이에도 공부하시고 50이 되었을때 사이버 대학교를 졸업하셨다.
장남이라는 무게감때문인지 뒤늦은 서울상경이후에 어머니를 소개로 만나 결혼 하셨나 보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4살이 어리신데 어렸을적에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초등학교입학할 나이에 식모살이를 시작하게 되셨나 보다.  아직까지도 그때 당하신 일들이 기억에 남으신가 보다. 그래서 인가 아직도 마음이 소녀시절 그대로인가
보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20살때 비슷한 생일에 죽은 사람의 등록번호를 쓰고 계신다고 한다.
어려서 부터 우리집은 형편이 좋지 못했고, 나는 어째서인지 이해심이 많은 아이였다. 
무엇이 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였고
무엇이 하기 싫어도 말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착한아이인줄만 알았다.
나는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대학을 다니었던 부모님들이 많은 세대인 90년대 생이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못하였고,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기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잘 모르셨고, 나는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로 초등학교를 다녔다.
배우지않아 남들보다 뒤쳐지고 청결상태가  나쁜아이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나는 왕따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남들이 나를 싫어한다는걸 깨닫기에는 너무 순수했던 시절이었을까?
부모나 친척들밖에 몰라 나를 싫어할것이라는걸 생각하지 못했던걸까?
하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그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타인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오는 사람들을 마다했고
나를 표현하는걸 극단적으로 꺼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엇도 시작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고 다가오는 사람 심지어 여자도... 마다 했었다. 극단적으로 자존감이 바닥이지 않았을까..
항상 착한아이였어야 했기 때문에 싫은소리를 하지 않았고, 일터에서는 나름 인정을 받았다. 아무리 부조리해도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까. 일도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몇년 나는 서른을 바라보는데 아무런 성장이 없었다. 아무런 발전도 없었고, 무엇도 제대로 해본적이 없고
어떤 목표를 위해서 달려본적도 없고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해본적이 없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살아온 세월
그 어떤때에도 진심이지 않았다. 너무 열심히하면 많은것을 쏟아부으면 실패할까바 실망할까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게 살다. 돈이 떨어져 원래 일하던 직장으로 돌아갔다. 불평불만없이 남들 안하는일을 해주는 사람이라,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를 만났다. 자기 일에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 밝게 미소지어주고 책임감 있게 하는 여자
부끄러워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형식적으로 인사만 할 뿐...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고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 착각하게 되었다. 일부러 인사도 열심히하고 말도 몇번 걸어봤다. 그래도 앞에 나설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볼품없고 내세울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중 그녀는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었고, 나이도 나랑 비슷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나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가 내가 좋아한다는걸 모를리가 없을것이고,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서른살이 되어서 사춘기 소년처럼 행동했다. 나는 2년에 1살을 먹는가 보다...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데 과연 그런 사람이 나를 봐줄것인가?
서로 연락처만 알고 있고, 몇년에 몇번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서른쯤 그는 10년을 달려오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에 합격하였다. 그에게 공무원은 쉬운일이었을것이라...  그의 꿈이었던 시인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시집을 하나 추천해달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달이 지난 후에야 읽게 되었다. 200페이지의 시집 읽는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고, 글자를 이해하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저자의 고뇌 고통 인내를 이해하기에는 도피만해온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고 나는 책을 읽다말고 부끄러워 졌다..얼마전 나는 어떤 기업을 들어가기 위해서 논술을 썻다. 쓰는 동안 즐거웠고, 기다리는동안 애가탔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하자 마치 나의 인생이 인정받았다는듯이 기뻣다.
 그러나 나는 나는 면접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버벅거렸다...나는 준비가 안되있었다.
마음의 벽은 처음부터 없는것이라. 한번 왔다 갔다하면 쉽게 넘을 수 있을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있지도 않는 벽을 넘지 못한다.
난생처음 읽어본 시집 나는 시와 저자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시를 써보았다.


나무를 보았다.
낭떨어지 끝에 간신히 위태로이 있는 나무
나무가 있는 자리는 너무 좁아 한 사람이 간신히 있을 수 있는 나무
그 가지는 너무 작고 잎은 너무 좁아 제대로 그늘하나 만들 수 없는 나무
겉과 속은 너무 말라 바스라져 장작이나, 가구로도 쓸 수 없는 나무
숨어사는 은자가 좋아할 나무


나는 나무가 되었구나
我(나),無(무)가 되었고,
아무나 되었구나


나의 옆자리는 너무나 좁아 한사람이 겨우 있을 있을 수 있었고
나의 손은 너무나 마르고 작아,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줄 수 없었다.
나의 몸은 너무 허약하고, 나의 정신은 너무나 미약하다.
나는 사람숲의 사는 은자가 되었다.




우울하고 자괴감이 드는 연말... 글이라도 써볼까하여 써봤습니다. 아무리봐도 중2병의 글이라 생각하지만 어디라도
배출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남겨봅니다. 지금까지 평생 이럴줄 몰랐는데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 이렇게도 바뀌는 군요...
인제 30살 학위도 돈도 직장도 친구도 별로없고 물론 모태솔로인...심지어 건강도 안좋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까요...
요새 오이갤에 이런글만 올리는군요 제가 하는 게시판이 이것뿐입니다.
제가 봐도 제 정신이 불안한거 같습니다. 이러다가 크게 나빠지는게 아닐지...
요새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