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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3 16:22
조회: 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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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파더 실제스토리) 진짜 나쁜놈은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끝끝내 악행을 저지른다.http://nbnnews.co.kr/news/view.php?idx=113889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지난 1994년 8월 14일 서울 성북구 월곡동 ‘황금장 여관’ 주인의 딸 이향정 양(14 ·중3)이 행방불명됐다.
얼마 후 주인 전옥수 씨(여‧49)는 집안에서 딸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자필이 아닌 타자기로 작성된 메모에는 “엄마 나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어요. 그러니 나 찾지 마세요. 그 아저씨 참 좋은 분이예요. 엄마도 나 잊고 아저씨랑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전 씨는 딸이 가출한 것으로 믿고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그런데 6일 후인 21일 전 씨마저 행방불명된다. 여관에는 전 씨의 동거남인 성낙주(43) 혼자 남게 됐다. 성 씨는 마치 자신이 여관 주인처럼 행세했다. 어느 날 전 씨의 친구가 “옥수 어디 갔느냐?”고 전화하자 성 씨는 “가출한 딸을 위해 절에 불공 드리러갔다”고 둘러댔다.
전 씨의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몇 십 년 지기이자 사소한 일까지도 자신과 상의하는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갔을 리가 없었다. 모녀가 연이어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그녀는 “친구 딸이 가출하고, 친구마저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몇몇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당시 몇몇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사진출처=자료사진, '한겨레' 1994년 8월 25일자 지면 합성)
행방불명된 모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여관에서 가까운 곳에 모녀가 살던 집을 찾아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다 전 여인의 딸 이 양이 가출할 때 타자로 쓴 메모지를 발견했다. 경찰은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 중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은 이양이 남자친구와 가출한 것 자체가 미심쩍었다.
이 양은 집에서는 착한 딸, 학교에서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엄마와의 사이도 좋았고,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이 양이 메모 한 장 달랑 남겨놓고 가출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자필이 아닌 타자기로 남긴 것도 의아했다.
경찰은 22일 오후 8시쯤 성낙주를 경찰서로 임의 동행해 조사를 벌였다. 이 양과 전 씨의 행적을 캐묻기 시작했다. 성 씨는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녀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받거나 말문이 막힐 때면 염불을 외워대며 피해가려고 했다.
이 양이 남겼다는 메모를 유심히 살펴보던 수사팀은 이상한 것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맞춤법이 틀린 글자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옆’으로 써야 할 것을 ‘엽’으로 쓴 것인데, 단순 오타가 아니라 잘못 익힌 습관으로 보였다. 수사팀은 묘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성 씨에게 자필 진술서를 작성하게 한 다음 일부러 ‘옆’자가 들어가는 문장을 유도한 것이다. 경찰의 예상은 적중했다. 성 씨는 ‘옆’으로 써야할 글자를 ‘엽’으로 적은 것이다. 이로써 이 양의 메모는 조작된 것이며, 성 씨가 만든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전 씨의 실종 당일 성 씨의 알리바이를 캐물었다. “전 씨가 불공드리러 간 날 당신은 뭘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성 씨는 “경동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의 소지품을 검사해보니 당일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의 영수증의 나왔다. 그의 거짓말이 들통 나는 순간이다.
경찰은 모녀의 실종에 성 씨가 깊이 개입돼 있다고 확신했다. 이제 그의 자백을 받아야만 했다. 경찰은 성 씨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모르쇠로 버티거나 염불로 일관하던 성 씨는 더는 안 되겠던지 얼굴을 감싼 채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모녀는 가출하거나 불공드리러 간 것이 아니라 성 씨에게 살해당한 후 암매장 당한 것이었다.
참혹하게 살해 후 암매장
그는 왜 모녀를 죽인 것일까. 성낙주는 1977년 출가해 태고종 종적으로 한동안 승려로 활동했다. 1984년 승적이 박탈된 후에는 떠돌아다니며 생계를 해결하는 처지가 됐다. 그 후 승려 생활할 때의 가락으로 미아리에 철학관을 열었다. 성 씨는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 셋을 두고 있었지만,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아내가 가출하자 아이들은 고향 부모에게 맡겨 놓은 채 자신은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이때까지도 그는 혼인 상태였다.
1993년 중순쯤 전옥수 씨가 성 씨의 철학관을 찾아 인생 상담을 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 알게 된다. 전 씨가 남편 없이 자신명의로 된 여관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성 씨는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점과 사주를 봐준다는 핑계로 전 씨의 집에 자주 들락거렸다. 전 씨가 “허리가 안 좋다”고 하자 침과 뜸을 놔주고 지압시술을 해주다가 내연관계로 발전하고 동거까지 하게 된다. 성 씨는 철학관을 정리하고 전 씨의 집으로 들어왔다.
전 씨는 성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다보니 무일푼으로 밥만 축내는 성 씨가 달가울 리 없었다. 사사건건 다툼이 잦아졌다.
이 양이 실종되기 하루 전인 13일 저녁 성 씨와 전 씨가 심하게 말싸움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 양이 성 씨에게 “요즘 엄마와 자주 싸우는데 그만 괴롭히고 이젠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했다. 이 양은 성 씨가 생활능력도 없고 엄마와 다툼이 잦자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시신처리는 엽기적이고 잔인했다. 그는 이 양의 시신을 욕실로 옮겨 식칼로 목과 팔, 다리 등을 수 십 차례에 걸쳐 토막 내 검정 비닐봉지에 넣은 후 종이상자에 나눠 담았다.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다시 라면상자에 넣은 후 테이프로 밀봉했다.
같은 날 이복동생(충북 제천시 송학면)에게 전화를 걸어 “고사를 지낸 돼지머리를 버려야 하니 도와 달라”고 했다. 성 씨의 말을 의심없이 들은 이복동생은 자신의 그레이스 승합차를 타고 왔다. 성 씨는 이복동생의 도움을 받아 오후 1시쯤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읍 구암리 북한강휴게소 인근 야산에 이 양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성 씨는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미리 구입해 둔 타자기로 이 양이 가출한 것처럼 메모를 작성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양의 죽음을 가출로 위장하는데 성공한다.
한 번 시작한 살인은 두 번째는 더 쉬운 법이다. 21일 새벽 3시쯤 성 씨는 여관 안내실에서 전 씨와 또 다시 심하게 다퉜다. 전 씨가 “재산도 없이 남자 구실로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믿고 사느냐”고 말하자 이에 격분했다.
그는 같은 날 오전 8시쯤 여관 107호에서 잠자던 전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수술용 칼로 시신을 토막 낸 후 살점은 도려내 정화조에 버렸다. 나머지 뼈 등은 라면상자 3개에 나누어 담고 포장했다.
토막 시신이 든 상자는 여관 안내실 계단 밑에 숨겨뒀다가 다음날 의붓형인 김 아무개 씨(50)의 렌터카를 이용해 강원도 원주군 문막면 동화2리 고속도로공사장 부근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암매장했다. 성 씨는 이 양을 살해한 지 이틀 후 의료기기 가게에서 수술용 메스를 구입했는데, 이때부터 전 씨 살해를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이 양이 나에게 ‘엄마와 사이도 좋지 않으니 나가달라’고 대든데 앙심을 품었고, 전 씨는 ‘남자구실로 제대로 못 한다’고 구박해 모녀를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경찰은 성 씨의 말을 액면가로 믿지 않았다. 숨진 전 씨가 황금장 여관 이외에도 서울 영등포 등에 수억 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재산을 노린 계획적인 범행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시신 상태에 경찰도 경악
경찰은 성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하고 재판에 넘겼다. 같은 해 12월 2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김황식 부장판사)는 검찰 구형대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성 씨는 현재 교도소에서 23년째 복역 중이다. 억울하게 죽은 모녀의 원혼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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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몇몇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당시 몇몇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사진출처=자료사진, '한겨레' 1994년 8월 25일자 지면 합성)
▲사진출처='KBS스페셜' 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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