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렇다. 액션 RPG는 자동전투가 있어도 귀찮아서 안 켜놓게 되고, 전략 장르는 털려도 귀찮아서 다시 들어가지 않게 된다.

마케터들은 AU(Active Users)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까지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어떻게든 게임 내 리텐션을 높이려고 각종 기법을 동원한다. 그 고생을 알지만,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자동전투 돌려놓고 보고 있는 것도 귀찮고 들어가서 스테미너 소비하는 것도 귀찮고 심지어 터치 몇 번이면 수확할 수 있는 자원이 널려있음에도 게임에 들어가기가 귀찮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도 게임에 대한 욕구는 있다는 것이다. 자동전투조차 보지 않고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도탑전기의 '소탕권'이나 엔젤스톤의 '토벌'같은 걸 선호하는 이유다. 에피드게임즈의 한정현 대표가 나와 같은 귀차니즘에 빠진 이들을 위한 게임을 선보인다. 'LOG(이하 로그)' 진짜 로그(기록)를 보는 거 같은 게임이다.

▲에피드게임즈 한정현 대표와 일하다, 자다가, 출근하다가 갑자기 끌려나온 프로그래머들.


"이걸 게임이라고 해야하나..."

요즘 신기한 게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질문에 한정현 대표는 대뜸 "이걸 게임이라고 불러야 하나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게임이라는 말의 학술적 정의에 대한 통일적 견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비교적 통용되고 있는 로제 카이와의 '즐거움을 위하여 행하여지는 것'과 그렉 코스티키안의 '플레이어가 주어진 자원을 관리해가며 행하는 의사결정과정'이라는 정의 등이 그나마 인정받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개 사용자들한테 게임은 그냥 '게임'일 뿐이다. 뭐 딱히 정의를 내려야 하나?

"굳이 장르를 따지면 SNS쯤 되겠다. SNG 말고 SNS. 맞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거 맞다. 겉모습은 레트로 풍 SNS다."

SNS?? 난 무슨 게임인지 감도 안 잡힌다.

"전반적인 플레이 방식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생긴 타임라인을 스와이프 하면서 '관람'하는 거다. 사용자가 영웅으로 팀을 세팅할 수 있는데 세팅한 팀으로 무역, 모험, 탐험을 보낼 수 있다. 출항한 팀이 겪는 일종의 모험기가 타임라인에 노출되는 거고 사용자는 거기서 선택을 하거나 무슨 이벤트가 발생했는지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방치형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의미 있는 이벤트나 기록은 월드 타임라인에 '자랑'할 수도 있다. 똑같다. SNS랑."

▲ 팀을 짠다, 출항 시킨다. 이거만 할 줄 알면 당신은 컨트롤 마스터.


그게 끝인가? 보통 게임 설명 같은 거 하면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고 장황하게 하는데... 다시 한 번 묻는다. 그게 끝인가?

"맞다.

...
...
...

게임 플레이에 핵심적인 요소 중에 평판과 악명이 있다. 상당히 중요하다. 명성이든 악명이든 서버 내 수위권에 들어가면 특수 이벤트가 발생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만나볼 수 있다."


UI만 타임라인일 뿐이지, 요즘 다른 게임과 크게 개념 자체는 달라 보이지 않는데? 어차피 매니지먼트 싸움 아닌가?

"다르다. 일단 액션 RPG처럼 보이는 게 없다. 자동전투라는 개념도 없다. 팀을 짜고 출항시키는 게 전부다. 또 UX도 좀 다른데, 보통 게임에서 스킬을 찍거나 능력치를 찍는 것은 소위 '교과서'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그'는 그런 거 없다.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 안 되는 연구·개발에 몰방(沒放)할 거야!!'같은 매니아들도 나중에 '철갑선'처럼 특이한 레시피를 얻을 수 있다. 당장 보상이 없는 '쓰레기'같은 거도 엄청난 보상이 떨어지고는 한다.

에피소드제로 구성되어있고 각 에피소드는 우리가 업데이트하는 것이 아닌 세계에 흩어져있는 6가지 아티팩트를 사용자들이 모으면 넘어가는 식이다. 그러면서 기술이 발전하는 거고. 새로운 함선 레시피는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는 데 이런 게 저런 매니악한 플레이로 발생한다.

아직은 구현이 안 됐지만, 차후에 '넬슨', '이순신', '검은 수염'같은 단 한 사람의 유저만 얻을 수 있는 네임드들도 구현하려고 한다."

▲타임라인이 올라가면 '관람'하면 된다.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전작 '페인트 히어로즈'와는 달리 완전한 도트, 레트로풍의 도트 그래픽으로 제작했다.

"중소 개발사가 그렇듯 우리도 글로벌 시장을 지향한다. '페인트 히어로즈'는 국내에와 서양에서는 그래픽 선호도가 높았는데 남미에는 혹평을 받았다. 그래서 글로벌에서 호불호 갈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도트를 생각해냈다.

과거 게임시장을 닌텐도가 제패했을 때 그래픽이 도트였는데, 그 그래픽에 90% 이상이 긍정적이다. 또 '로그'는 대항해시대나 하이텔 천리안 시절에 게임을 즐겼던 30대에서 50대를 타겟층으로 삼고 있어 도트를 선택하게 됐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래픽과는 상반되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매력이다."


개발 중인 빌드라 배경음악이 없는 건가? 아니면 원래 없는 건가?

"원래 없다. 페이스북이랑 트위터에 배경음악이 있나?"

▲ 만국 공통 '호(好)', 도트.


남들이 하는 건 승산이 없어...

"글로벌 원빌드로 바로 배포한다. 퍼블리셔를 구하는 것도 힘들고 구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도 힘들고 둘 다 힘들다.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서 자체적으로 나간다. 개발 모토가 '남들이 하는 건 승산이 없으니 약이라도 빨자'다."


개발 속도가 상당히 빠른데, 대표로서 작은 회사를 꾸려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힘들다. 솔직히 힘들다. 지금도 '모 아니면 도'라는 기분으로 하고 있다. 6월까지 상황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회사 규모도 줄일 계획이다. 직원들에게도 이미 알린 상황이고…. 뭐 불사른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퍼블리셔를 찾는 것도 시간이고 비용이다. 우리는 그 시간에 게임에 더 집중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투자는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 돈이 아니다. 자력으로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빙하고 싶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잘 해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액션 RPG 말고도 우리처럼 아이디어로 경쟁해 글로벌에 집중하여 성공하는 사례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개발 속도가 빠른 건 이리저리 벌려놓은 프로젝트들을 보유해놓고 완료하고 있어서 그렇다. 5월, 6월 중에도 이것저것 발매할 생각이다."

▲ 전작 '페인트 히어로즈'의 이벤트. 그들의 개발 모토는 '남들이 하는 건 승산이 없으니 약이라도 빨자'.


전작은 약간 저연령층을 노린 게임이었는데 이번에는 대놓고 직장인이나 장년층을 노렸다.

"이 게임은 캐시로 살 수 없는 게 생각외로 엄청나게 많다. 일반적으로 게임에는 인게임 재화와 더불어 캐시아이템이 존재하는데 '로그'에는 캐시아이템이 없다. 소위 말하는 '현질'을 하면 인게임 재화인 골드를 획득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노가다'를 진하게 할 생각이면 충분히 무과금 유저도 과금 유저를 뛰어넘을 수 있다. 물론 엄청난 '노오오오력'이 필요하지만.


아까도 언급했지만, 에피소드가 넘어가는 과정이 독특하다.

"챌린지 모드는 아티팩트를 모으는 모드다. 세계관에 6개의 아티팩트가 있는데 사용자들이 다 모으면 에피소드2로 넘어간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망원경, 나침반, 육분의처럼 기술 발전을 상징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증기선, 철갑선, 비공정으로 확장하는 형식이다. "



PvP 랭킹 같이 스트레스 유발 콘텐츠는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이런 요소가 없으면 너무 밋밋하지 않나?

"특이점이있는 요소들이나 독특한 요소는 월드 타임라인을 통해 자랑할 수 있다. '자랑'이야 말로 타임라인의 꽃 아니겠는가. 특수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사용자의 결정에 따라 분기가 갈리기도 한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시절 머드 게임의 느낌이랄까.

또 해적질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면 게임 테마가 바뀐다. 배경이 철창으로 바뀌고 타임라인 역시 감옥 내에서 간수가 던져주는 신문을 받아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

결국, 사용자의 몫이다. 최종 목적지는 명예로운 왕가냐 바다를 주름잡는 네임드 해적이냐인데, 어떤 쪽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방치형 게임이지만, 이러저러한 재미 요소가 있다."


사용자 참여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사용자들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 정확하다. 글로벌 원빌드로 서비스하는 이유가 사용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 이벤트를 따라가다 보면 '노량 해전'도 나올 거고 자연스럽게 한일전도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항해와 해적이라는 컨셉을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어차피 항해를 직접 할 수는 없겠지만.

"해적이라는 게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굉장히 잘 먹히는 컨셉이다. 그러면서도 타임라인 컨셉에도 잘어울린다. 타임라인을 올리면서 결과물을 보는데 털렸는지, 털었는지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아티팩트를 등록하는 과정도 경쟁으로 꾸밀 생각이다. 먼저 얻은 사람이 해당 아티팩트의 임자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말이다."



여러분 눈치 보지말고 게임 합시다.

이 게임의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역시 타임라인 아니겠나. 그래. 핵심 주제는 타임라인이다. 현실의 오마주라고 할까.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다. 보스턴 티파티, 무적함대 격파 등 실제 역사가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특정 역사 이벤트가 등장하면 사용자들은 편을 나눠 역사적 사실에 개입한다. 예를 들어 무적함대 이벤트의 경우 영국, 스페인 영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축으로 단체가 생긴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


어쩌다 이런 극한의 방치형 게임을 생각하게 됐나

"내가 잘 가는 철판구이집이 있다. 가서 술 한잔하고 있는데 철판구이집 사장님이 '레이븐'을 하고 있었다. 철판구이를 하면서 곁눈질로 보면서 하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나 싶어서 만들게 됐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간단하다고 하는 클리커 게임도 귀찮아한다. 게임회사 대표도 이런데 일반 사용자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

▲ 송아지 무우와 함께라서 '음메리우스'. 무척 직관적이다.


'로그'. 어떤 게임으로 사용자들이 받아들여 주면 좋겠는가?

"아재들이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나처럼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사실 '이게 게임이냐?'라는 반응도 기대하고 있다. '로그'가 게임의 정의를 살짝 바꾸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하고 있다.

게임의 요소라고 하면 아무래도 즐기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게임이 머드 게임과 TRPG의 산물임을 생각해볼 때 행위 요소는 SNS와 별반 차이 없다.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UI 자체가 SNS의 그것과 비슷할 뿐이다.

게임이라는 거. 개발자는 놀이터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못한 것들을 개발자가 만든 세계에서 사용자가 생성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앞서 아티팩트를 다 모으면 시즌이 넘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아티팩트를 모은 사람이 전부 악명이 높은 해적이면 '원피스'처럼 대해적 시대가 되는 거고 명성 높은 왕가가 차지하면 대무역 시대가 열리는 거다. 결국, 사용자들의 재량에 따라 게임이 갈린다.

우리는 세계를 준비했을 뿐 그 세계를 만드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그래서 언제쯤 할 수 있는가. 간만에 게임 보고 설렌다.

"현재 막바지 작업 중이다. 안드로이드는 이번 달, iOS는 5월 중에 만나볼 수 있다. 용량은 20~30메가 정도 될 거 같다. 귀차니즘에 휩싸인 사람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아무리 귀차니즘인 사람도 침대에 누워서 타임라인 정도는 당겨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