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정답이 없습니다. 사람들 모두 취향과 생활 환경이 다르기에, 각자 즐기는 게임도 다르고 원하는 콘텐츠도 다르죠. 비슷한 게임을 좋아한다 할지라도, 그 게임을 좋아하는 포인트 자체가 모두 같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자체가 굉장히 힘들죠.
그중에서도, 여성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임들은 아직도 연구가 많이 부족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여성 게이머들이 늘어나고 있고, 게임 시장도 이제는 남성들만을 위한 게임이 아닌 여성들도 고려해야 할 시기가 온 지 꽤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무슨 게임을 만들어야 할까요? 흔히 '오토메 게임'이라고 불리는 여성향 게임만이 정답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경험을 공유하고, 같이 해답을 찾기 위해 '체리츠'의 이수진 대표가 NDC 강단에 섰습니다. '체리츠'는 그동안 여성들을 위한 게임을 개발해 두 게임을 스팀에 런칭했고, 지난해 7월에는 모바일 게임 '수상한 메신저'를 글로벌 런칭해 2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수진 대표의 강연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죠. 왜 이게임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게임을 만들때 무엇을 고려했는지. 마지막으로는 여성 타겟의 게임을 만들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이수진 대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체리츠의 사례를 공유할 뿐, 여성 타겟의 게임들에 대해서는 같이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는가? -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으로 선택한 텍스트"
체리츠의 '수상한 메신저'는 아주 독특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수상한 메신저'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비주얼 노벨류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텍스트가 약 60만 단어 분량인데, 이게 일반 비주얼노벨 게임류보다 약 다섯배에서 세 배 정도 많은 분량이에요. 그렇다고 단순히 텍스트로만 읽히는 '감상형 게임'은 아닙니다. 텍스트도 있지만 때로는 메신저로 상황을 알 수 있고 새벽에도 단톡방이 열려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죠.
텍스트 기반 게임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인 '상호작용'이 부족한 부분을, 우리가 마치 일상에서 메신저로 대화하는 듯한 느낌으로 풀어냈습니다. 수많은 텍스트를 분할하면서 방식을 바꿔서 보여주고 시간도 이래저래 나눈 방법이기 때문에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지도 아주 많은 편이고요. 아, 그리고 가끔 전화(?)도 옵니다. 물론 이게 다 인공지능을 도입한 게 아니고 전화도 대답을 선택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요.
이 게임은 체리츠의 세 번째 게임입니다. 첫 번째 게임과 두 번째 게임은 PC로 출시되었으니 스마트폰으로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앞서 제작한 게임들에서 얻은 피드백으로 '게임'이라는 본질에 더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텍스트 기반 게임인 만큼, 텍스트를 단순히 보여주지 않고 상호작용이 되거나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한 점이 가장 특이한 점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체리츠는 "왜 텍스트"를 기반으로 게임을 설계했을까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영상이나 소리, 그림보다는 '글'이 가장 많은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죠. 체리츠는 아주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좋은 시스템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금방 따라잡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게 만드는 '경쟁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스토리텔링은 많은 유저들이 좋아하는 부분이었기에 텍스트 기반의 게임을 만들기로 선택합니다.
상대적으로 텍스트는 모방이 힘든 데다가 다른 재미보다도 '감정'을 유발하는 재미는 모방하기가 어려운 점을 잘 캐치했죠. 서버에 텍스트를 저장해서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보안에도 신경을 쓰고요. 텍스트 기반의 게임은 약점이 분명히 있고, 이를 앞서 제작한 두 작품에서 많이 깨달았기에 '수상한 메신저'는 서두에서 설명한것처럼 좀 더 게임 다운 방식으로 만들게 된 거죠.
■ 게임을 만들 때 중요시한 점은? - "공감에 초점을 맞춘, 유저들과 연애를 해보기로..."
그렇다면 수상한 메신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체리츠가 수상한 메신저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공감 능력'입니다. 여성 게이머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아이디어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점이죠. 단순히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을 성공한 게임 형태에 집어넣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체리츠는 그래서 공감에 기반이 가지 않은 콘텐츠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조를 세웁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기존에 만든 게임들이 있으니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게임을 발전시키기로 합시다. 여성을 타겟으로 한 게임들은 피드백이 굉장히 섬세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피드백을 전부 다 다 따르게 되면 게임이 너무 뻔하게 되고, 피드백보다 크리에이터의 의지를 존중한 게임은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죠. 그러면 '회사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 자체는 애초에 '공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해서 체리츠에게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리츠는 유저들과 사랑, 연애를 해보기로 합니다. 사랑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죠. 체리츠는 일단 두 가지의 선택지를 고민했고,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사랑을 주는 방식으로죠. 유저들에게 잘하되 회사의 색을 잃지 않고, 사랑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유저의 삶이 장기적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유저를 후회 없이 엄청 사랑하는 회사'를 만들려는 기조를 세우고 유저들과 공감하려고 했던 것이죠. 주의할 부분은 이런 기조를 가져가려면 강철 멘탈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유저들이 좋은 말만 해주는 건 아니거든요. 안 좋은 말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보면 피드백의 '본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여성을 타겟으로 한 게임 시장에 그럼 뛰어들 가치가 있느냐는 점이 문제겠네요. 체리츠의 경험을 들어보자면, 일단 여성 게임 시장은 2차 창작이 많고, 바이럴 마케팅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할만한 게임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게임 수명이 보통 다른 게임들보다 오래간다고 합니다. 보통 게임이 3개월부터는 수익이 낮아지는 편인데 예전에 출시한 게임도 지금이나 2년전이나 거의 비슷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상한 메신저의 예시를 들자면, 한영 동시 발매를 한 후에 마케팅 없이 250만 다운로드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유료 전환율이 전체는 20%, 미국 iOS 마켓만 따지자면 54%가 유료 유저로 전환했습니다. 지난해 7월과 9월에 런칭을 해서 지금까지 수십억의 매출이 나왔고, 퍼블리셔가 없기 때문에 영업이익률도 높았습니다. 마케팅도 없었고, 투자도 없이 그동안 마련해온 자본으로 제작됐기에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럼 여성 타겟 게임을 만들 때 고민을 해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
강연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수진 대표가 말한 부분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체리츠가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여성 게이머를 보고 싶다는 점. 단순히 유저뿐 아니라 더 많은 여성 게임과 여성 유저, 그리고 더 많은 여성 프로듀서가 생기길 바라는 부분이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이 대표는 '고정 관념'을 깨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의 게임 시장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남성 중심의 시장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뭐 일단 초창기 개발자부터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개발을 해 왔고, 소비층 역시 남성 게이머들이 많았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형태의 게임이 등장했고 일종의 과도기를 거쳐 선호하는 게임 '장르'와 '형태'가 어느 정도 자리 잡게 됩니다. 쉽게 말해 '고정관념'이 생긴 거죠. 물론, 남성 중심이었으니 남성 위주의 게임들이 나온 거라고 설명을 할 수 있죠.
그러나 지금은 좀 다릅니다. 여성 게이머의 취향과 성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의 게임 시장에 재미를 느끼는 여성 게이머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당장 우리 모두가 하나의 게임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게임만 좋아하는 건 아닌 것과 비슷합니다. 진짜로 여성이 선호하는 게임의 방향과 형태, 장르는 다시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죠. 당장 '여성을 위한 게임'이라고 생각해보자면 대부분 일본의 '오토메 게임'을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여성을 위한 게임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동안 여성들을 위한 게임이 시범적인 형태, 혹은 독특한 케이스로 나온 건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오토메 게임도 냉정히 말하자면 '비주얼노벨'의 소비층을 다르게 생각한 것뿐이죠. 우리는 아직 여성들이 공감하고 재미있을 수 있는 장르와 소재를 찾는 것조차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장르에서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자는 시각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발명해서 새로 장르나 형태를 정립해나가는 게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냥이 아니라 커뮤니티로 레벨업을 한다던가 하는 형태를 예시로도 들 수 있겠네요. 기존 게임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 가지 요소를 찾아보면서 과도기를 거쳐 새로운 여성 게임 장르를 개척한다면, 우리는 기존 게임 장르가 가진 한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고정관념'을 깨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