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퀘어에닉스 산하 루미너스 프로덕션이 개발 중인 '포스포큰'은 최초 공개때부터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일단 게임을 냈다 하면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두던 과거와 달리 입맛이 까다로워진 현 게이머들을 상대로는 작은 규모로 시작해 IP를 키워나가는 것이 정석에 가깝지만, 이들은 과감하게 AAA급 오픈월드 게임을 냅다 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스포큰'은 많은 이들의 관심은 받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 속 기대작에 가까웠다. 짧은 티저와 간간히 풀리는 정보들 외에 게임의 큰 줄기가 베일에 쌓여 있었기에, 출시와의 거리감이 꽤나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스컴 2022에서, '포스포큰'은 10분에 달하는 플레이 영상을 공개하면서 게이머와의 심적 거리를 대폭 줄였다.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포스포큰'은 꽤 흥미로운 점이 많은 게임이다. 오픈월드 게임이고, 여러 마법을 섞어 쓰는 마법사가 주인공이며, 액션과 파쿠르에 공을 들인 게임. 정도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보다 상세히 장면 장면을 살펴보면 '포스포큰'이 지닌 개발 철학과 지향점, 그리고 게임의 전체적 모습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 서구적 모습의 일본풍 스토리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포스포큰'이 일본 개발사가 만든 일본 게임이라는 점이다. 루미너스 프로덕션은 파이널 판타지 XV팀의 개발팀이 독립해 만들어진 스퀘어에닉스의 자회사로, 현재 대표인 '아라마키 타케시'역시 파이널 판타지 XV의 PC판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게임의 전체적인 모습에서는 일본 특유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서구권 게임의 감성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과 배경 미술, 자메이카계 영국인이 담당한 주인공의 모델링, 공식 언어로는 영어인 점 등이 그렇다. 딱 봤을때, 따로 들은게 없다면 일본에서 만든 게임이란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뜬금없이 사무라이 갑옷이나 일본도가 등장하지 않는 점도 그렇다.

▲ 인물과 배경 디자인만 봐선 일본 게임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반면 비주얼적 측면을 제외하면 기존의 일본 게임들이 보여준 특성들이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가장 크게 보이는 부분은 '서사의 기반'이다.

'포스포큰'의 기본 서사는 뉴욕에서 살던 고양이 애호가 '프레이 홀랜드'가 어느 순간 우연찮게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이세계로 빨려들어가 마법 팔찌를 차고 악을 물리쳐 고향으로 찾아올 방도를 찾는다는 것인데, 이 흐름은 '이세계 용자물'의 왕도다. 보통 트럭에 치이면서 시작되는 이 일본산 이세계 용자물은 이미 수도없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쓰이는 전통의 클리셰인데, 막상 서구권에서 이런 서사 흐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 이랬던 그녀가

전형적인 서구권 게임식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게임으로는 '엘더스크롤' 시리즈가 있는데, '스카이림'을 플레이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덜컹대는 마차에서 눈을 뜰 때 게이머는 게임과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해 점점 게임 속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하지만, 전통적인 일본식 이세계용자물의 경우 세부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꽤 뻔한 스토리에 가깝다. 대신 그만큼 진행이 명확하고 이야기가 산으로 갈 일이 적어 이해하기 쉽고 보장된 재미를 주니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 말할 수는 없다. 그저 '포스포큰'의 서사 흐름이 일본 게임의 그것을 따르며, 영상 초반부부터 이를 확실히 드러낸다는 뜻이다.

▲ 이세계에선 상자도 비범하게 여는 전투마법사?

영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일본 게임의 특징은 전투 중 나타나는 'Grade'인데, 이는 2000년대 초 게임시장을 강타했던 일명 '스타일리쉬 액션' 장르의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일본에서 시작되어 '갓 오브 워' 1편의 개발에도 영향을 준 장르인데, 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공격을 성공시킬 때마다 등급이 올라 최종적으로 전투가 끝났을 때 이를 점수로 환산하는 시스템이다. '포스포큰'에서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이에 따라 아이템과 아이템 드랍율이 이 등급에 따라 달라진다.

▲ 화려하고 현란하게 싸울수록 올라가는 전투 등급


◈ 전투와 게임 플레이, 세계 구성

'포스포큰'의 주인공 프레이는 여러 원소 마법을 섞어 사용하는 '마법사'이지만,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의 마법사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띄는데, 뒤에 숨어 긴 캐스팅 끝에 강력한 마법을 휘갈기는 '파티 판타지'의 마법사보단 '검은사막'의 마법 사용자들이나 '닥터 스트레인지'쪽에 가깝다. 마법사가 단독인 액션 게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

때문에 포스포큰의 전투는 다양한 마법을 계속 바꿔가면서 쏟아붓는, 앞서 말한 '스타일리쉬 액션'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데, 최근 등장한 게임들 중 비슷한 전투 템포를 보여주는 게임은 '둠'이 있다. 장르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끊임없이 무기를 바꿔가며 빠른 속도로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며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있다.

▲ 계속 마법을 바꿔가며 빠르게 싸우는, FPS인 '둠'과 비슷한 전투 감각

프레이가 사용하는 마법은 보라색, 녹색, 적색, 청색 네 계열로 분류되며, 각각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물과 중력을 다루는 청색의 '프라브 마법'이나 불꽃의 적색 마법인 '실라 마법'과 같은 식이다. 게이머는 이 계열에 맞춰 자신만의 '스펠 셋'을 설정해둘 수 있고, 전투 중에 이를 바꿔가면서, 혹은 연계해 사용할 수 있다. 단순히 서서 마법을 쏘는 정도가 아닌, 적에게 붙는 기술, 떼어내거나 묶는 기술 등 용처가 다양하기에 플레이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한 성향의 마법사가 될 수 있다.

▲ 물과 중력을 다루는 청색 마법인 '프라브 마법'

이 '빠른 템포로 펼쳐지는 화려한 전투'는 사실상 '포스포큰'이라는 게임의 '핵심'이다. 영상을 보면 게임 구조의 많은 부분이 이 전투를 부각시키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파티클을 아끼지 않고 써 엄청나게 화려한 마법 연출, 어느 지형이든 매우 쉽고 빠르게 극복하는 마법 파쿠르다.

주인공 '프레이'는 웬만한 험지도 전혀 어렵지 않게 빠른 속도로 극복하는데, 별도로 어려운 커맨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영상으로 추측한 조작 난이도는 '마블 스파이더맨'의 파쿠르 정도. 아예 조작이 필요 없진 않지만, 초보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 '포스포큰'의 파쿠르는 그 어떤 게임과도 비교하기 힘든 역동성을 보여준다

먼 곳으로 간다고 괜히 어렵게 길을 돌아가거나 가는 것 만으로 어려움을 겪을 일 없이 빠르고 지루하지 않게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전투로 접어들게끔 만드는 설계다. 또한, 이 '마법 파쿠르'는 전투 중에도 매우 요긴하게 쓰이는데 영상에서는 파쿠르 중 마법 사용에 별도의 점수를 매긴다거나, 파쿠르로 적의 공격을 회피할 때 추가 점수를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 구성은 '세미 오픈월드'의 형태이다. 완전한 오픈월드 게임의 대표인 '스카이림'을 다시 예로 들면, 스카이림은 세계에 구현된 대부분의 요소들(NPC, 사물, 지형 등)과 소통이 가능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세미 오픈월드'는 세계 자체는 오픈월드로 구축해 두었되, 세계의 각 부분들이 일종의 스테이지 개념으로 존재하는 세계다.

▲ 아이템은 망토와 목걸이

▲ 각 장비마다 속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특정 마법 계열에 특화된 장비로 만들 수도 있다.

'배트맨: 아캄 나이츠'나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가 대표적인 세미 오픈월드 게임들로 '포스포큰' 또한 도시가 존재하고 NPC와 열린 세계가 존재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상호작용은 지원하지 않고 주인공의 서사와 전투에 초점을 맞춘 세미 오픈월드가 훨씬 어울린다. 수집 가능한 아이템과 마나 지점, 그리고 전투 공간이 어우러진 세계가 '포스포큰'의 외부 필드인 셈이다. 영상에서도 '브레이크'라는 오염 때문에 몇몇 도시 외엔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는 묘사가 나오며, 도시 외부는 적들만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게임의 서사 핵심 요소이자 스토리 텔러 역할을 하는 자아를 지닌 팔찌 '커프'

게임 내에서 '프레이 홀랜드'가 마법을 쓰는 수단인 팔찌 '커프'는 이지를 가진 아이템으로 끊임없이 농담과 조언을 하는데, 이는 스토리텔링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부분이다. 주인공이 혼잣말을 하긴 모양이 빠지고, 오디오 로그나 일지 등으로 세계관을 설명하는 건 너무 수동적이기 때문에 함께 대화를 나눌 파트너를 만들어 세계관을 설명하는 한편 몰입감과 재미를 늘리는 디자인인데, 대표적인 예로 '갓 오브 워(2018)'의 '미미르'가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유일하게 안전한 도시의 이름이 'CIPAL'이라는 점이다. 발음 또한 '키팔'이나 '카이팔'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인데, 아마 정식 한국어판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비슷하게 이름이 수정된 사례는 헤일로 시리즈의 '저힐라네(영문명 Jiralhanae)'가 있다.

▲ 어떻게 도시 이름이...

정리하면,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포스포큰'의 모습은 세미 오픈월드 게임이면서도 '화려한 전투와 빠른 템포의 액션'에 초점을 둔 작품으로 보인다. 세계 곳곳을 낱낱히 파헤치며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알아가는 게임은 아니지만 이세계물의 왕도를 따르는 단단한 도입부로 주인공의 행동을 설명하며, 게임이 추구하는 핵심 요소, '마법을 통한 자유로운 움직임과 화려한 전투'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강력한 대단위 마법도 구현해 둠으로서 여러 게이머가 원하는 '마법사'에 대한 판타지를 채워준다

물론, '아시아(Athia)'의 크기가 얼마나 크며, 게임의 볼륨은 어떻게 될 지, 그리고 악역인 '탄타(Tanta)'와의 갈등이 어떻게 풀려갈지는 게임이 출시된 이후 알 수 있겠지만, '포스포큰'이라는 게임이 어떤 모습을지를 상상하는 데는 이렇게 정리한 내용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