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에 위치한 '워게이밍'은 '밀리터리'라는 코드로 거대 게임사 계열에 오른 조금은 특이한 게임 개발사다. 모두가 대중적이고, 더 쉽고, 재미를 줄 만한 게임을 만들고 있을 때, 워게이밍은 무지막지 어렵고, 일견 투박하면서도, 엄청나게 높은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전차 게임을 만들었다. 바로 '월드오브탱크'다.

한눈에 봐도 뭔가 공부가 필요한 듯한 비주얼, 그리고 실제로 공부가 필요한 게임 디자인, 매니아를 넘어 오타쿠의 수준에 이른 고증의 삼위일체를 갖춘 월드오브탱크는 아무리 봐도 대중적인 게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오브탱크는 러시아 서버에서만 동시접속 100만을 넘어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의 하나로 단단히 자리매김한 상태다.

반면 국내 시장의 경우, 해외에 비하면 크게 흥행한다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워게이밍 코리아는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 않는다. 리그도 이어가고 있고, 이벤트도 끊이지 않고 하고 있지만, 뭔가 급박한 프로모션이나, 흥행을 위해 애가 타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것일까? 혹은 더 크고, 나은 미래를 위해 무릎을 굽히고 있는 것일까?

어떤 점이 워게이밍 코리아로 하여금 여유있는 운영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워게이밍은 어떤 마음을 품고 한국 시장에 들어왔으며,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인벤 팀은 강남 삼성동에 위치한 워게이밍 코리아를 찾아가 보았다. 전 워게이밍 코리아 대표였던 박찬국 대표 사임 이후, 아시아 담당에서 한국 지사까지 담당하게 된 윤태원 대표. 그와의 대화에서 워게이밍의 철학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살펴보았다.

▲ 워게이밍 아시아 대표 겸 워게이밍 코리아 대표 윤태원


Q. E3 2013 이후 오랜만에 인벤과의 인터뷰는 처음인 것 같다.


만나서 반갑다. 지난번엔 워게이밍의 아시아 담당 대표로 만나뵈었었는데, 이번에는 워게이밍 코리아까지 맡게 되면서 새로 인사드리게 되었다.


Q. 워게이밍 이전에 블리자드, EA코리아 등 거대 게임사에서 일해왔고, 직접 게임개발사도 차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워게이밍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워게이밍의 매력은 어떤 점인가?


워게이밍은 굉장히 특이한 회사다. 스페셜한 장르를 추구하고, 밀리터리에 관련된 것이라면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를 진행한다. 입사 동기 중 한 명은 미얀마에서 1년간 땅만 팠다. 2차 대전 당시의 유물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결국은 실패했다 하더라.

대부분의 게임회사들은 단기적인 수익을 얻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워게이밍같은 경우는 수익을 맞추는 것 보다는, 시장의 구조에 따라 게임업계를 개발해주는 일들을 더 우선시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놀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데 노력하고 나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정의 장기적인 플랜이다.

▲ 호국 보훈관련 문화 사업은 이미 워게이밍의 아이콘

사실 나는 굉장히 매니악한 취향을 갖고 있다. 내 취향이 대중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다른 게임사에서 일할 때는 내 취향의 게임은 절대 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게이밍 대표인 '빅터 키슬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추진해 밀어붙이는 불도저같은 타입이다. 어쩌면 그 점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Q. 워게이밍의 간판 게임인 '월드오브탱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처음 월드오브탱크를 접했을 때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온라인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은 시작 후 5분, 그리고 한 시간이다. 그 때 플레이어가 즐거움을 느껴야 게임은 성공하기 마련인데, 솔직히 월드 오브 탱크는 너무 어려웠다. 이 게임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월드오브탱크는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가면서 해야 조금씩 재미가 살아나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조금 지나 익숙해지고 나면 굉장히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이라 해야 할까? 월드오브탱크가 출시 초반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차'라는 코드가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친숙한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에는 다양한 전차 박물관이 있고, 많은 이들이 전차를 사랑하는 나라다. 기반이 된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으니,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쿠빙카 전차박물관의 모습, 러시아에선 전차가 사람을 구경한다

나아가 월드 오브 탱크는 지금까지 봐온 게임 중 가장 훌륭한 과금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과금 유저들도 과금 유저를 상대로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게임의 디자인도 괜찮고, 과금 구조는 사실 어떤 게임보다도 훌륭한 것 같다. 다만 문제는 높은 진입 장벽 정도일까? 때문에 아까 말했듯 한국 시장에 대한 전망은 사실 밝지만은 않았다. 초반 광고에서 남자의 게임과 근성을 밀어붙인게 어느정도 먹힌 것 같기도 하다.


Q. 워게이밍 본사에서 보는 한국 게이머는 타 지역 게이머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워게이밍 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 회사는 한국 게이머들에게 환상을 갖고 있다. 한국의 이미지 자체가 온라인 게임의 메카와 같은 이미지랄까? 만화 시장에서 보는 일본과 미국의 경제력에 느끼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빅터 키슬리 대표 같은 경우도 한국 게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한국의 매출과 상관 없이 굉장히 신경을 쓰려 하는 편이다. PC방 어드밴티지 같은 시스템도 한국에 제일 먼저 도입했고, 이후 다른 나라로 퍼뜨리는 정도였다.


Q. 한국의 월드오브탱크 유저는 사실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수익성 관련된 문제는 없는가?


러시아나 유럽, 다른 해외 시장에 비하면 분명 한국 시장은 작은 편이다. 그래도 신기하게 1인당 매출은 한국이 높은 편에 속한다. F2P 게임의 평균보다는 수익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사실 동남아 지역의 경우 과금 유저의 수가 굉장히 적다.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과금 유저들이 과금 유저들과 즐겁게 게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월드오브탱크의 과금제는 '시간을 사는'개념이다. 누구라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게임의 엔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과금을 할 경우 조금 더 빠르게 당도할 수 있는 정도다. 우리는 충분한 유저 풀이 생성되고, 같이 즐길 수 있다면 만족한다.

▲ 쎄보이긴 한데 돈에 비하면 무적도 아니고...무과금 유저도 억울하지 않다



Q. 워게이밍의 차기작인 '월드오브워플레인'의 경우 일부 지역은 베타 서비스를 실시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쯤 즐겨볼 수 있을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월드오브워플레인의 베타 서비스를 반대하는 쪽이었다. 월드오브워플레인의 경우 월드오브탱크의 완성도에 비하면 아직 상당 부분 모자라다. 이미 다른 지역은 오픈베타를 했기 때문에 점차 수정해나가야겠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경우 좀 더 나은 완성도가 갖춰져 있을 때 게임을 선보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중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

아마 빨리 나온다 해도 내년 초 쯤일까? 사실 나도 확신은 할 수 없다. 잠정적으로 런칭은 보류된 상황이라 봐도 될 것 같다.

▲ 월드오브워플레인은 좀 더 완성되면 볼 수 있을 예정



Q. 그렇다면 또 다른 차기작인 월드오브워십은 언제 쯤 볼 수 있을까?


운이 좋다면 올해 안에 플레이어블 빌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니 사실 빅터 키슬리 대표는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웃음) 내년 초 런칭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중이다.

▲ 월드오브워십도 자세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Q. 최근 워게이밍 코리아에 유저들의 불신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정책을 펼칠 예정인가?


그간 워게이밍 코리아의 운영 방침이, 다른 여러 게임사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워게이밍은 남들과 다르게, 조금 더 유저와 친해질 수 있는 방향의 운영을 추구한다.

때문에 박찬국 지사장이 건강상 문제로 회사를 떠난 후, 한국 지사의 운영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들과의 벽을 낮추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오히려 한국 서버의 인원이 적기 때문에 더욱 유리하다. 왜 오프라인 미팅을 해도 더 쉬울 것이고, 유저 개개인에게 더욱 더 접근할 수 있지 않겠나?

때문에 작은 것 부터 찾아서 조금씩 플레이어들과 교류해 나가는 것이 지금 한국 지사의 새로운 방침이다. 그 기점은 올 여름이다. 이번 여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해온 프로모션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어가려고 한다. 여러 가지 유저 참여형 행사들을 만들어 가려고 기획중이다. 뭔가 딱딱한 행사 느낌이 아닌, 그때 그때 감정이 시키는대로, 유저와 하나가 되서 게임을 키워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 유저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



Q. WTKL이 어느정도 잘 진행되긴 했지만, 국내 월드오브탱크 e스포츠 시장은 사실 순항중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 부분은 어떻게 개선해나갈 생각인가?


e스포츠는 본사의 빅터 키슬리 대표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콘텐츠이다. 여기서 우리는 e스포츠의 본질부터 다시 생각해 보았다. e스포츠는 게임을 관람하는 엔터테인먼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드라마도 필요하고, 더 많은 팀과 선수들이 확보되어야 한다. 일단 현재로서는 다양한 선수층이 나오기에는 한국의 플레이어 풀이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선수 풀과 같은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비해 보는 재미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항상 비슷한 플레이, 긴박감보다는 기회를 노리는 진행 등등 사실 지금의 월드오브탱크 경기 룰은 관람하기에 썩 재미있는 콘텐츠는 아니다.

본사 내부적으로도 이런 문제는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여러가지 룰 포맷을 고려중이다 5:5경기나, 모든 선수가 8티어 전차를 타는 등등, '보는 재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가뭄에 콩나듯 엄청 재밌었지만, 기본적으로 보는 재미는 영 꽝이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의 월드오브탱크 게이머 및, 워게이밍의 팬분들께 한 마디 부탁한다.


예전 블리자드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국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런칭하는 일을 맡았다. 그 때 나에겐 게임의 문화와 인식을 바꿔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당시 한국 온라인 게임계에서는 돈이 굉장히 중요했다. 게임은 재미로 해야 하는데 왜 돈이 중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면서 영어 명사를 쓰는 것도 싫었다. 한국 사람들이 플레이하면서 한국 게임이라고 느낄 정도로 로컬라이징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반발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와우를 하면서 한글이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는 유저들도 등장하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월드오브탱크 역시 나에게는 마찬가지다. 아직은 작지만, 조금씩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게임 문화를 바꿔나가고 싶은 것이 현재의 꿈이다. 이런 다수 대전 게임은 욕이 나와야 한다는 편견을 빼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 나아가 모든 이들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게임으로 가꿔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한국 시장을 짧게 보지 않는다. 아직까지 워게이밍 코리아는 한국 내 워게이밍 게임의 풀이 더욱 커질 수 있도록 시드를 만드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운영중이다. 지금 우리 게임을 즐겨주는 모든 게이머 분들이, 나아가 사회 전반에 선진 게임 문화를 전파해주는 멋진 분들로 거듭나길 바라며 우리는 최선을 다하겠다. 항상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