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섬머 시즌 일정으로 하루가 마무리되는, 변함없는 하루. 경기를 지켜보며 기사를 작성하고, 승리한 팀 소속 선수와 승자 인터뷰를 나누고, 기자실을 나왔다.

하지만 그날은 분명 일상과 달랐다. 기자실을 나와 따로 만날 사람이 있었다. 언제나 롤챔스에서 활약 중인 김동준 해설위원이 그 주인공. 날카로운 해설로 엄청난 인기를 달리고 있는 김동준 해설위원은 현장을 오가며 가끔 마주쳤을 뿐, 실제로 진득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어색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시. 김동준 해설위원은 마치 매일 만난 지인을 맞이하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기자님들이 더 바쁘시죠. 사실 저도 많이 바빠졌습니다." 김동준 해설위원은 롤챔스 주 6일 편성으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매일 서울 OGN e스타디움까지 출근하는 데만 1시간 반 정도 소요돼 힘들다고 하면서도 눈빛에는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꽤 늦은 시각. 김동준 해설위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남 부근의 한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화보 촬영 콘셉트에 대해 설명했다.

"제가 화보 촬영을 몇 번 해봤는데, 한 번도 남성 잡지 같은 콘셉트로 촬영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네요!" 라며 화보 기사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뭐랄까. 그에게서 뭔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졌다.





연신 셔터를 누르던 사진 기자가 와인병을 손에 들고 촬영해보자고 제안했다. 입고 있는 정장과 잘 어울릴 법한 콘셉트 제의에 김동준 해설위원도 흔쾌히 수락. 손에 들고 있는 와인병을 지긋이 바라보는 김동준 해설위원을 보고 한 가지 궁금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언제나 반듯해 보이는 김동준 해설위원도 술을 좋아할까.

김동준 해설위원이 잠시 손에 쥔 와인병에서 눈을 뗐다. "예전에는 술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술을 많이 줄이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가끔 일에 지친 날이면 술 생각이 나요. 치킨에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직장인의 로망으로 불리는 '퇴근 후 캔맥주'도 좋고요. 지인들과 만나 웃고 떠들면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좋아해요."

김동준 해설위원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그의 정장과 와인병이 묘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와인이라는 것이 그렇다. 서민적인 이미지라기보다는 좀 더 귀품있고 고급스런 술.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깔끔한 인상을 정장으로 감싸고 있는 남성과 와인. 잘 어울렸다.

"술을 딱히 가리진 않지만 가볍게 마시다 보니 와인에 대한 지식이 깊지는 않아요. 그래도 마실 기회가 있으면 가끔 즐기는 편이에요." 그는 짧게 답한 뒤 다시 촬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일 LoL 팬들과 함께 하는 김동준 해설위원이지만, 그가 퇴근 후에는 어떤 모습일 것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마침 단추 몇 개를 풀고, 주변에 대본 등을 뿌려 놓은 채 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위와 같은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워낙 사적인 모습을 공개한 적 없는 김동준 해설위원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비밀스럽다기보다는 제 사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별다른 취미는 없어요. 퇴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각종 LoL 커뮤니티와 e스포츠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서 올라온 기사들과 글들을 꼼꼼히 읽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늦어 저도 모르게 잠드는 경우도 허다하죠. 요즘 워낙 세계적으로 대회가 많이 열리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봐야 할 정보와 데이터, 기사가 엄청 많아요!"

"커뮤니티를 정말 열심히 봐요. 가끔 '중계'나 '중계진', '김동준' 심지어 '동준좌'라는 단어 등으로 게시판에 검색을 해봐요. 그러면 정말 다양한 글이 검색되거든요. 그러한 글을 하나하나 읽어 보면서 팬들의 질타나 칭찬 등을 머릿속에 새겨두려고 노력해요."

이 남자, 정말 e스포츠밖에 모른다.





아무리 본인이 재미를 느끼는 분야라고 해도, 그것이 생업이 되면 '재미'보다는 '압박'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일은 일로 만들지 말고 취미로 남겨라.'라는 말이 있지 않나. 매일 게임으로 진행되는 e스포츠와 함께 하는 김동준 해설위원. 질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왕 그의 사생활을 물어본 김에 평소 즐기는 게임이 있는지 물었다.

이와 같은 질문에 김동준 해설위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LoL은 여전히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저에겐 여가가 아닌 일이 됐죠. 최근 PC 게임도 그렇고 모바일 게임도 그렇고 오래도록 즐기고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가끔 어렸을 때 인생에 대한 고민 없이 WOW나 워크래프트3 등 다양한 게임을 온종일 즐겼던 때가 그립기도 하네요."

오랜만에 LoL이 아닌, 다른 게임 생각에 젖은 김동준 해설위원. 그와 함께 과거 유행했던 다양한 게임과 관련된 수다를 즐길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카메라를 향해 프로 모델급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김동준 해설위원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스포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김동준 해설위원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바쁘게 돌아가는 화보 촬영에 사적인 질문까지. 정신없을 법도 했지만, 김동준 해설위원은 위의 질문에 더욱 진지한 눈빛을 보이며 답변했다.

"저는 아직 어른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이는 제법 많지만, 아직 생각이나 개념 등은 아이 같은 면이 남아 있다고 할까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는 표정을 지어 보았다. "가끔 제가 봐도 철이 없다 싶을 정도로 실수도 많이 하지만, 가끔 저의 순수한 열정을 알아봐 주시면 그게 정말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혹은... 제 나름대로 완벽을 꿈꾸지만, 늘 능력 부족으로 고뇌하는 완벽주의자 같아요. 더 잘하고 싶고, 더 인정 받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안돼서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죠. 그런데 그게 또 가끔은 힘들게 느껴지는?"

진지한 눈빛으로 답변을 마친 그의 모습을 보니 '김동준은 매 순간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하지만 항상 본인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다분히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게 됐다.





어느덧 화보 촬영이 끝났다. 김동준 해설위원은 사진 기자와 함께 사진 원본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중계가 끝나고 이어졌던 촬영, 어느덧 늦어진 시각에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스튜디오에서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던 중, 김동준 해설위원에게 정말 궁금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김동준 해설위원의 답변에는 그의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일에서의 김동준 해설위원과 평소의 김동준 해설위원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사실 해설위원이라는 위치가 갖는 무게감이 e스포츠의 무게감과도 연결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진중하게 중계에 임했죠. 하지만 저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실수도 잦고 허점투성이에 가벼운 면도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요. 아직도 저를 다 내려놓진 못하고 있지만, 팬 여러분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면서 좋은 쪽으로 변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인터뷰 : 박범 기자 / 사진 : 석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