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LoL 올스타전이 한국시각으로 9일 0시부터 나흘 동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팔라우 산트 조르디에서 열린다. 매번 LoL의 큰 대회가 해외에서 열리면 그곳으로 출장을 갔는데, 이번에는 나와 사진 기자가 함께 가게 됐다.

바르셀로나 출장이 결정됐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솔직히 말하면 '두려움'이었다. 전 세계 스타 플레이어가 대부분 참여하는 올스타전 현장에 직접 가게 된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긴 했지만, 이내 마음속에는 '나랑 사진 기자 모두 스페인어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압박감이 퍼져 나갔다. 영어라곤 단어 몇 마디 조합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수준이었고, 스페인어는 A를 뭐라고 읽는지도 모르는 상황.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그렇게 기대와 걱정이 머릿속을 차례로 지배하는 시기가 지나고, 출국하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지만, 머릿속에 드는 오만가지 감정들은 잠이라는 친구가 오는 것을 방해했다. 그렇게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한 채,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물론, 평소 덤벙대는 성격을 곧이곧대로 발휘하며 파란만장하게 출장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공항으로 가던 도중에 택시를 집으로 돌려 두고 온 여권을 후다닥 들고나와야 했던 것. 다행히 택시는 뻥 뚫린 도로 위를 매끄럽게 질주하며 제시간에 날 공항에 내려줬다.

▲ 드디어 도착한 인천국제공항

▲ 사진 기자의 분신, 회사원 피카츄도 동행!

▲ 면세점의 유혹을 지나

▲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진 기자와 출국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환전하고, 로밍하고, 비행기 표를 끊고, 가지고 온 캐리어를 맡기고, 탑승 절차를 밟고, 마침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정신없는 와중에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포기하진 않았다. 사진 기자는 이러한 낭만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향기 짙은 아메리카노 대신 다른 음료를 주문하다니. 끌끌.

몸을 실은 비행기가 있는 힘껏 날아올랐고, 이제 우리는 시간과의 싸움을 앞두게 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경유해야 하는 코스. 하지만 일단 프랑스 파리까지 가는데 걸리는 12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아까 밝혔듯이 2시간밖에 잠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6시간쯤 눈을 붙였다가 영화 두 편 정도 감상하면 프랑스 파리의 바게트 냄새가 나를 반겨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이내 잠들었다.

'음... 얼마나 됐지...?' 앞 좌석에 앉은 사람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을 여과 없이 맞이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본 나는 투덜거리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이제 고작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5시간 30분은 더 잘 수 있었는데 저 망할 모니터 불빛이 이를 방해했다. 그 빛을 피해 몸을 돌린 채 다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나는 연거푸 다섯 번이나 30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어나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한 번 잠에서 깨어나자, 더는 뇌에서 잠이라는 친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 기내식은 나름 괜찮았다

▲ 분위기를 위해 레드 와인도 주문했다

다행히 잠을 이루지 못해 억지로 시청했던 영화들은 재미있었다. 자막을 지원하지 않아 한국어 더빙 버전으로 영화를 몇 편 시청했는데, 어렸을 적 이후로 오랜만에 겪는 일이었다. 반가운 목소리들이 여러 편의 영화에서 나의 귀를 행복하게 해줬다. 그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덜 고통받은 채 긴 비행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물론, 마음과 달리 몸은 조금씩 고통을 호소했지만.

12시간 넘게 붙이고 있던 엉덩이가 저리고, 제대로 뻗지 못한 채 굳어가던 다리 근육이 답답함을 호소할 때쯤, 드디어 프랑스 파리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비행기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온몸의 세포가 환호했다. 하지만 진짜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이번 출장으로 생애 처음 비행기 '경유'라는 것을 해보게 됐다. 매번 직항만 고집했기에 경유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다. 출발 전에 인터넷 검색으로 경유하는 방법을 검색해봤기에 다행이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광판을 확인한 뒤, 입국 심사대를 거쳐 다시 출국 심사를 받으러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 이때까진 몰랐다... '경유'라는 악몽을...

샤를 드골 공항의 출국 심사대 직원들이 일 처리를 이상하게 진행했던 것.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후 3시 20분이었는데, 이를 꽤 넘긴 시점까지 몰려드는 사람들을 어찌할 줄 모른 채 내버려 뒀고, 승객들은 불만 섞인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멋들어지게 긴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중년의 이탈리아인이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탄력을 받은 관광객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여전히 출국 심사를 하는 직원의 수는 늘지 않았고, 그렇게 승객들은 느릿느릿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무려 한 시간이나 지연된 비행기에 말이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에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린 경유 과정까지. 이미 나에게는 비행기에서 내내 울어대던 어떤 아기의 울음소리에 짜증낼 체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사진 기자와 나는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있는 대로 벌린 채 잠을 잤다.

▲ 우여곡절 끝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입성!

▲ 이곳 면세점에는

▲ 당연하게도 FC 바르셀로나 매장이 있었다

▲ 충동구매의 유혹을 뿌리치며 택시에 탑승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인 바르셀로나 공항에 발을 디뎠다. 아직 본격적인 출장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를 기쁨과 환희가 온몸을 감쌌다. 공항 측의 실수로 평소보다 훨씬 늦게 우리의 품에 안긴 캐리어 따위는 이러한 기쁨을 망치지 못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택시에 오른 우리는 마침내 예약했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겪었던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고, 노곤한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져 나가는 것을 만끽했다. 일단 짐을 풀고 다시 밖에서 만나기로 한 다음, 사진 기자와 나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 정말 맛있었지만, 느끼했던 피자

그래도 기왕 바르셀로나까지 왔는데, 시내 구경은 해야 하지 않겠나. 그전에 일단 주린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음식점을 발견한 우리는 고민조차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잡고 앉아 피자와 콜라를 입 안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먹은 우리는 느끼한 피자 덕분에 김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음식점을 나왔다. We Love Kimchi.

이렇게 시작부터 힘든 출장은 난생처음이었다.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택시를 도중에 돌려 집에 두고 온 여권을 챙겨야 했고, 12시간이 넘는 비행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경유'라는 단어만 들으면 표정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좋지 않은 경험도 했다.

▲ 그렇게 방문한 바르셀로나는

▲ 너무나도 낭만적인 자태를

▲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특유의 낭만과 멋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자유로우면서도 나태하지 않은 시민들의 모습과 멋들어진 건물 디자인, 어디를 돌아봐도 하늘이 보이는, 자연에 대한 도시의 배려까지. 마치 바르셀로나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번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사진 : 박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