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2강 SKT T1과 kt 롤스터의 대결은 모두의 눈을 정화시켰다. 경기의 수준을 단순히 '높았다'라고 적는 게 미안할 정도다. 인간계를 넘어선 신계의 대결이었다. 신들이 만들어낸 눈부신 산물을 값싼 전기료만 내고 볼 수 있었다. 우리 E스포츠 팬들은 이번 경기로 은총을 받았다고 해도 실언이 아닌 정도다. 그들의 프로 정신과 승부욕은 칭찬받아야만 했다.

모든 선수들이 뛰어난 플레이를 보였지만, 세트 별로 유독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었다. 신계 대전을 캐리한 '킹갓'이 있었다는 얘기다. 두 팀은 엇비슷한 실력과 다르게 판이한 경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MVP에 선정된 선수들은 팀 색깔에 중심이 되는 역할을 했다.

물론 '킹갓'들이 혼자 힘으로 경기를 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을 빛날 수 있게 하는 무지개 색 카페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세트 별 MVP의 활약을 조명해보고 그들을 위한 어떤 카페트가 깔려 있었는지 확인해보자. 일단은 양 팀의 색깔에서부터 시작한다.


■ 주도권 vs 안정성

kt 롤스터의 팀 색깔은 주도권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kt 선수들의 라인전 능력은 발군이다. 어느 하나 약한 라인이 없다. kt는 이런 장점을 살려 라인전부터 공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챔피언을 선택한다. 한두 라인이 아니라 거의 모든 라인에서 초반부터 강력한 픽을 뽑는다. 이번 대결에서 럼블, 제이스, 애쉬 같은 챔피언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하나의 증거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운영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들이 한 대 모였을 때 발생하는 일반적인 단점은 위험성이다. 딜러 위주로 조합이 구성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무너지면 탱커를 가진 안정적인 조합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이 완벽해야 한다. 오더의 신이라 불리는 '마타' 조세형을 중심으로 한 kt 롤스터의 팀 구성은 이를 실행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SKT T1의 팀 색깔은 안전성이었다. SKT는 일반적으로 조합의 안정성을 추구한다. 특별히 OP 챔피언이 풀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탱킹력, CC 등 여러 가지 방면을 고려한 밸런스 잡힌 조합을 선택해왔다. 특히, 중요한 경기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번 대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 2세트 모두 탑에서는 노틸러스, 미드에서는 안정적인 AP 딜러, 마지막으로 원거리 딜러로 이즈리얼을 선택하면서 조합의 안정성을 고려했다.

선택의 이유는 미드, 원거리 딜러의 캐리력을 믿어서다. 때로는 탑이 캐리 역할을 할 때도 있다. SKT의 라인전은 어느 팀 못지않게 강하다.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픽을 선택했을 때 불리할 수도 있는 초반 단계를 무난히 넘기거나 또는 앞선다. 그리고 중, 후반 단계에서 세계 최고인 미드, 원거리 딜러의 힘으로 게임을 지배한다. SKT 전략의 장점은 기본기 우위를 바탕으로 변수 없이 승리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 1세트 #
이즈리얼 '뱅'즈리얼로 개명하자!


두 팀 모두 색깔에 맞는 조합을 완성했다. 누가 더 색깔을 잘 살리느냐의 싸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SKT가 한 발 더 앞섰다. 그 중심에는 '뱅' 배준식의 이즈리얼이 있었다. SKT는 1, 2픽으로 이즈리얼-카르마를 선택해 '뱅'의 실력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는 조합을 만들었다.

이날 경기에서 kt가 중점적으로 준비한 픽은 럼블과 제이스였고 1세트부터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그리고 선택의 이유를 증명하는 듯했다. 라인전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압박을 주며 경기를 주도했다. 첫 2킬을 획득했던 장면에서도 라인전 우위의 이득이 나타났다. 라인전 승리의 전리품으로, 럼블은 순간이동이 있었고 노틸러스는 없었다. 혼자 순간이동을 활용한 럼블을 통해, kt가 첫 교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kt의 약점은 중반부터 드러났다. 일단 첫 번째는 럼블이 마음 놓고 사이드에 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치하고 있는 노틸러스가 워낙 CC가 많기도 했고, 라이즈의 궁극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에 놓여있었다. 사이드 운영에 여유가 없는 kt는 싸움을 노려야 했다. 조합의 장점을 활용하기에도 싸움이 최선이었다. 여기서 두 번째 약점이자 최대의 약점이 등장한다. 이즈리얼.

kt는 이즈리얼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뱅즈리얼'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강력한 CC를 가진 이니시에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딱 하나, 쓰레쉬가 있었지만 확률이 높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kt에게는 강력한 딜을 가진 논타겟 원거리 스킬들이 있었다. 특히, 럼블의 이퀄라이저 미사일은 가장 중요한 스킬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즈리얼-카르마 조합이었다. 이퀄라이저를 비롯한 상대의 원거리 스킬들을 무마하기 탁월했다. 게다가 사용자가 '뱅' 배준식이었다. 피한다는 게 말이 쉬울뿐 언제라도 비명횡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뱅즈리얼'은 안정적인 포지션과 놀라운 피지컬로 상대의 공격을 회피했다. 결국, 차선책인 라이즈와 그레이브즈가 kt의 타겟이 됐지만, 두 챔피언도 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다음 한타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라이즈에 많은 소모 값을 날려버린 kt는 뱅즈리얼이 쏘아대는 황금빛 화살에 쓰러졌다. 앞에 노틸러스라는 단단한 탱커까지 앞에 둔 뱅즈리얼은 무적이었다.



# 2세트 #
'더 세게' kt 롤스터의 뚝심, '폰' 허원석의 제드


마지막 픽을 남겨놓은 kt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상대는 이번 세트도 이즈리얼을 과감히 선택했고, 미드에서도 오리아나라는 안정적인 딜러를 뽑았다. 모험 수를 두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kt는 오히려 전 세트보다 더 과감한 픽을 보여줬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제드였다.

얼핏 보기에 '이판사판' 해보자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가 있는 선택이었다. 바로 전 세트와는 다르게 봇에서 애쉬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즈리얼이 라인전 주도권을 잡기에 좋은 픽은 아니다. 그래서 현재 메타에 별로 각광받지 못한다. 애쉬는 이즈리얼의 그런 약점을 파고들기에 좋은 픽이다. 라인전 단계에서 케이틀린보다는 효과적으로 이즈리얼에 압박을 줄 수 있다. 거기에 카르마까지 더해졌으니 금상첨화였다. 실제로 kt 봇은 전 세트와는 다르게 주도권을 잡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제드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는 점이었다. 제드는 과감하게 오리아나에 싸움을 걸었고 봇과 정글의 도움을 통해 차근차근 킬을 획득했다. 반대쪽에서 럼블이 강력하게 노틸러스를 압박했기 때문에 제드의 활동은 더욱 편안했다.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다소 수동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던 SKT의 챔피언들은 상황을 만들기 어려웠다.

킬 수가 누적되자 제드는 스플릿 운영에 나섰다. 암살자 플레이에 원래부터 탁월했던 '폰'은 적재적소에 매복해 상대를 잘랐다. 스킬 활용도 정확하고 차분했다. 게다가, 제드의 궁극기는 타겟팅이다. 이즈리얼도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다. 가는 곳마다 피바람을 일으킨 제드의 활약에 일찍부터 만 골드 차이가 벌어졌다. 경기 후반에 SKT의 그림 같은 한타로 기세가 약간 주춤해졌지만, 이미 격차는 크게 벌어져 있었다. '폰' 허원석은 자신이 돌아왔음을 제대로 알렸다.



# 3세트 #
내가 캐리해? 오랜만에 탑신봉자 '후니' 허승훈


이번 세트의 주연은 캐리의 화신이었던 '후니' 허승훈의 럼블이었다. '페이커' 이상혁의 제드가 이번 세트의 주인공이 될 것 같았지만, 제드는 조연이었다. SKT의 3세트 밴픽은 아주 영리하고 재밌다. 제드를 마지막에 픽하면서 주연을 속였다는 점도 재미있지만, 그들이 바라본 한타가 가장 소름 끼친다.

kt는 이번 세트도 주도권을 중점으로 뒀다. 그라가스 픽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상대가 럼블을 빼앗아가자 kt는 노틸러스나 뽀삐가 아닌 그라가스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라인전이었다. 그라가스는 럼블을 상대로 라인전에서 밀리지 않는 챔피언이다. 또한, 몸통 박치기와 궁극기로 초반 소규모 교전에서 변수도 만들 수 있었다. kt는 탑을 포함 모든 라인에 주도권이 있다는 장점으로 초반에 꽤 앞서갔다.

하지만, SKT는 문제를 만들었다. 일단 시작은 조연 제드였다. 제이스가 아무리 초반부터 강한 챔피언이라고 해도 암살자를 상대로 중반부터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kt는 3원딜이라 더욱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페이커'는 이런 이점을 노려 제드를 선택했고 플레이로 보여줬다. 선제공격권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사이드에서 상대를 교란했고, 자연히 kt의 틈새는 벌어졌다. 그 틈을 노려 제드는 킬을 획득했다. 아군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플레이였다.


후반부터는 주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한 줄 알았던 럼블은 괴상할 정도의 CS 수급을 통해 복구에 성공했다. '후니'의 이퀄라이저 미사일은 매번 대박이었다. 럼블의 궁극기 화력에 애쉬와 제이스 같은 이동기가 없는 챔피언들은 불바다에 허우적거렸다. '마타' 조세형의 브라움도 앞으로 들어오는 상대를 막기에 좋은 챔피언일 뿐 바닥에 깔린 이퀄라이저 미사일을 대처할 수는 없었다.

궁극기 활용의 비밀은 또 있다. 제드와 진이다. 이퀄라이저 미사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산개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kt는 진영을 넓게 펼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제드에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고, 진의 궁극기를 딜러가 맞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이 똘똘 뭉쳐있던 kt는 불 속에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럼블의 딜량은 8만을 넘겼다. 여러모로 SKT의 밴픽은 날카로웠다.

반대로 kt의 그라가스는 너프된 궁극기로 중, 후반에 변수를 만들기 어려웠다. 게다가 상대 서포터는 탑 라이너만큼의 탱킹력을 보유한 탐 켄치였다. 앞 라인을 파고들어서는 도저히 이득을 챙기기 어려웠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라가스가 다른 탱커만큼 탱킹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 제약은 더 많았다. 그래도 집중력을 발휘해 넥서스까지 때리는 상황을 만든 kt였지만, 패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초반 스노우볼로 게임을 끝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