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은 역대급 챔피언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좋은 스킬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괴물이라는 평가, 그것이 그녀를 역대급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그녀와 비교하면 다른 챔피언들의 스킬 구성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당연히 그녀는 등장과 동시에 역대 최고의 OP 중 한 명으로 등극했고, 솔로 랭크에서 그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유저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프로 선수들에게도 탐탁지 않은 존재였다. 시즌 초 '르렝카' 삼대장 중 한 명에 속하며 필밴 카드 1순위였다. 간혹 카밀을 만만하게 봤던 팀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그녀의 발 칼(?)에 몸통이 휙 베어졌다. 잔인하게 잘려진 다음부터는 결코 그녀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 메타는 '정의' 아니겠나? 정의를 스스로 더럽혔던 라이엇은 다행히 소환사 협곡에 심판을 내렸다. 카밀은 패치 때마다 너프를 당했다. 스킬 구성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스탯이라든가 스턴 시간 같은 것들이 잘려져 나갔다. 그 영향으로 카밀은 라인전에서 만큼은 강한 챔피언이 아니게 됐다. 정의가 구현되고 솔로 랭크에서 그녀의 밴율은 확실히 감소했다. 항상 밴율 최상위권에 위치하던 그녀는 어느새 34% 정도로 9위에 머물러있다.

이런 변화는 프로 대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를 얕잡아본 팀들이 생겨나며 카밀은 밴에서 풀리게 됐다. 하지만...이 덕지덕지 여왕님을 허투루 본 건 실수였다. 그녀는 건방진 상대편을 학살했다. 현재까지 카밀의 대회 승률은 70%에 가깝다. 이 승률을 만들어준 1등 공신이 있다.



대 카밀전 1승 7패, 칼잡이에 썰려버린 생선 레넥톤



노잼톤이라고 괄시받던 레넥톤은 최근에야 다시 등장하게 됐는데, 카밀의 대항마로 선택받은 경우가 많았다. 카밀을 상대로 라인전에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밀을 플레이한 선수들 대부분이 레넥톤을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았다. '크게 밀리지 않았다' 라는 문장은 다소 해석의 여지가 넓으니 정확히 말하겠다. 카밀은 레넥톤을 상대로 CS 정도만 10개 내외로 밀렸을 뿐 성장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 한타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선택된 것일까? 그 또한 아니었다. 카밀이 가지고 있는 E, R스킬의 한타 성능은 그 어느 챔피언도 감히 도전장을 내밀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다. 또 후반으로 갈수록 카밀은 1:1 능력도 강해진다. 반면에 레넥톤은 초, 중반 교전에서만 강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챔피언이다.


카밀 대 레넥톤 구도가 가장 많이 나왔던 3월 5일로 돌아가보자. 처음은 SKT T1과 kt 롤스터의 2세트 경기였다. '스맵' 송경호가 카밀, '후니' 허승훈이 레넥톤을 플레이했다. 초반 단계인 7분경까지 두 챔피언의 CS 차이는 5개 미만이었다. 레넥톤이 먼저 라인을 밀어 넣기는 했지만,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최강의 갱킹 호응력을 자랑하는 카밀이 궁극기로 레넥톤을 잘랐다. 주도권을 잃은 레넥톤은 이후부터 카운터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바로 이어진 경기였던 아프리카 프릭스와 콩두 몬스터의 대결에서는 이 구도가 두 번이나 나왔다. 처음 카밀을 잡은 선수는 당시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줬던 콩두의 '로치' 김강희였다. 반대로 레넥톤을 잡은 선수는 최고의 숙련도를 자랑하는 '마린' 장경환이었다. 이쯤 되면, 당연히 레넥톤이 카운터라는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이 경기도 카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심지어 이 경기에서 레넥톤은 상대 정글의 실수로 이른 시간부터 1킬을 먹고 시작했다. 그러나 카밀은 레넥톤을 1:1로 무참히 갈라버렸고 이후에 열린 2:2 싸움에서도 미친듯한 칼부림을 보여줬다. 이때부터는 카밀이 더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레넥톤 픽의 이유가 사라졌다.

3세트에서는 서로 챔피언을 바꿔서 경기를 치렀다. 카밀을 잡은 '마린'은 경기를 완전히 장악하며 아프리카에 승리를 가져다줬다. 이번 경기도 레넥톤 픽의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회 기준, 카밀 최다 사용자 MVP '애드' 강건모의 생각은?



도대체 프로들이 카밀 상대로 레넥톤을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칼 장수에게 썰려 나가 생선 가게에 내다 팔릴 뿐인데. 단순히 경기만 봐서는 그 이유를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당사자들인 프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이번 시즌 카밀 최다 사용자이고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MVP의 탑 라이너 '애드' 강건모에게 물었다.

첫 번째로 등장한 이유는 '마린'이었다. '애드' 는 "레넥톤이 등장하는 이유는 '마린' 선수 때문인 것 같다. 그 외에는 특별한 이유를 모르겠다. 마린 선수가 인터뷰에서 레넥톤이 잘만 풀어가면 11레벨까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강팀 입장에서는 11레벨까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면 경기가 편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경기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그는 "레넥톤이 솔로 킬을 당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있다. 게다가 카밀이 갱킹 상황에서 궁극기로 가둬버리면 해답이 없다. 레넥톤이 11레벨까지 무난하게 라인전을 한다는 게 잘 성립되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시간은 카밀의 편이니 무리할 필요가 없어 불편한 점을 못 느낀다는 말도 덧붙였다.


카밀을 상대로 좋은 챔피언은 딱히 없다고 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CC기가 많은 탱커고, 강팀이 사용해야만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카밀은 초반 주도권이 없는 챔피언이라 탱커를 뽑아도 초반에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다. 탑에서 반반을 가주면, 강팀의 경우는 밑에서 경기를 터트린다. 이런 상황에서 CC기 많은 탱커가 카밀을 한타 때 전담 마크한다면, 아군이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애드'는 실제로 인터뷰가 있은 후 15일 콩두 몬스터와의 경기에서 뽀삐로 카밀을 상대해 승리했다).

문득 국쉔변호사(이현우)의 말이 떠올라 쉔에 대해서도 물었다. 나쁘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쉔이 카밀 상대로 자주 나오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다. CC기가 논타겟 도발 뿐이라 한타 상황에서 카밀을 마크하기가 어려워서였다.

끝으로 '애드'는 카밀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확실한 건 카밀이 예전만큼 강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무난히 후반에 가면 1:3이 가능한 챔피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2 정도까지 가능하다"며 카밀의 사기성을 입증하는 듯한 평가를 내렸다.



신지드로 카밀을 질식사, '후니' 허승훈의 생각은?



'후니' 또한 레넥톤을 사용하는 이유는 주도권과 라인 유지력이라고 답했다. 그는 "레넥톤이 Q스킬을 이용해 라인을 밀고 체력을 유지하는 데 더욱 좋다. 게다가 노코스트 챔피언이다. 반면에 카밀은 상대가 라인을 밀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레넥톤이 영리하기만 하다면 갱킹을 피하는 것도 엄청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6레벨 전에 라인을 밀면서 싸우는 게 아니라, 단순 1:1이라면 카밀이 좋기는 하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레넥톤이 유리한 구도인 듯하다. 하지만, 최근 카밀 플레이어들이 파훼법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라인전에서 CS를 최대 20개까지는 버리더라도 침착하게 후반을 바라본다면 분명히 카밀의 시간이 온다고 얘기했다.

또 한 가지 카밀이 유리한 점은 갱킹 상황이다. '후니'는 "레넥톤이 라인을 밀어 넣고 정글러와 다이브를 성공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카밀이 강력한 갱킹 호응력으로 레넥톤에 압박을 줄 수 있다. 2:2 싸움에서도 선공을 잘하는 쪽이 이기기 때문에, 레넥톤이 특별히 카밀의 카운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현재 구도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원래 카밀 상대에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코치님께 레넥톤을 꺼내 카밀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대회에서 드러났듯이 결과적으로 상대를 억제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코치님이 카밀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신다. '카' 자도 꺼내지 말라고...(웃음)"라며 카밀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어느 정도 동의했다. 카밀은 스킬 구성 자체가 너무 좋은 챔피언이라, 어떤 챔피언과 상대하더라도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카밀을 상대할 수 있는 챔피언이 누구일까? 그가 꼽은 대 카밀전에 뽑을 만한 챔피언은 신지드였다. '후니'는 이미 대회에서 방귀 대장을 사용해 너프 전 카밀을 질식사시킨 적 있다. 그는 "신지드가 초반 라인 푸쉬력도 좋고, 카밀의 궁극기 또한 던져 넘기기로 무력화할 수 있어 좋다. 게다가, 후반 한타 기여도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스플릿 주도권도 싸워주지만 않고 라인을 민다면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다. 다만, 최근 유체화가 너프되면서 신지드를 사용하기가 조금 애매해졌다는 게 단점"이라고 전했다.


탑 카밀 12승 6패...


아무래도 당분간 카밀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프로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특별한 발견이나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카밀은 역시나 까다로운 챔피언이다. 상대하기에 전제 조건이 너무 많이 붙는다.

여태까지 레넥톤 말고도 카밀의 대항마로 여러 챔피언이 등장했다. 잭스, 쉔, 럼블, 신지드 등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딱히 카밀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카밀이 간혹 패배한 이유는 카밀을 플레이했던 선수가 큰 실수를 했거나, 팀적인 차이에 의해 승패가 갈려서였다. 카밀을 눌러버렸다는 느낌을 주는 챔피언은 딱히 없었다.

카밀이 이렇게 강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유틸성. 카밀의 유틸성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E스킬인 갈고리 발사/돌진은 스턴이 달린 점멸 두 개 거리의 이동기다. 그리고 궁극기인 마법공학 최후통첩은 시전시에 일시적으로 무적 판정일 뿐만 아니라, 이 안에 갇힌 챔피언은 점멸로도 빠져나올 수 없다. 갱킹, 소규모 교전, 한타 등 어떤 상황에서도 최강의 효율을 자랑하는 스킬 구성이다.

마지막으로 후반을 향할수록 카밀을 강력하게 만드는 Q와 W스킬. Q는 고정 데미지가 속해있고, 사이사이에 평타를 섞어 넣기 좋아서 광휘의 검 패시브 효과를 발동시키는 데 최상이다. W는 체력 비례 데미지와 체력 회복 효과까지 있다. 슬로우는 덤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카밀은 후반 1:1에서 매우 강력하다.

유틸기가 뛰어나고 1:1 싸움에 강한 챔피언이 스플릿을 한다? 이런 챔피언을 억제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완벽한 스킬 구성이라는 '개성'을 가진 카밀과의 희박한 확률 싸움에 굳이 도박을 걸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