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감독이 아마추어 선수들로 팀을 꾸려 3년 만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게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e스포츠에서 일어난 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최우범 감독이 대단한 성과를 보여줬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우범은 신임 감독으로서 지휘봉을 잡은지 3년 만에 자신의 팀을 롤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15년간 한 팀의 이름 아래 선수에서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우승까지.

3년 전 처음으로 감독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잘될 줄 알았을까?



“성공이요?”

최우범 감독은 웃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가질 여유도 없었어요. 제가 처음 감독이 됐을 때만 해도 선수, 코치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최대한 빨리 로스터를 채워야했고, 팀이 시즌을 치를 수 있게만 되어도 다행이었어요.

다만, 어렵게 로스터를 완성하고 첫 시즌에 강등권을 오가면서도 팀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연습 과정에서 선수들의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여서 그래도 앞으로는 좀 더 나아지겠다 생각하기도 하고.

사실 감독으로서 성공이냐, 실패냐 그런 생각은 안해봤어요. 그것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쪽의 생각을 더 많이 했죠. 선수가 성공해야 제가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성 갤럭시가 걸어온 행보는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LCK 최하위 팀이 강등권을 피하고, ‘앰비션’ 강찬용 영입이라는 신의 한 수로 강팀 대열에 합류, 롤드컵 진출, 그리고 우승까지. 최우범 감독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저희 팀은 선수들이 감독, 코치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에요. 또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제가 강하게 이야기하는 편이기도 하고요(웃음). 만약에 우리 팀이 다른 팀처럼 코치가 어떤 걸 하라고 하는데, 선수들이 안한다고 하면 저는 일단 해보라고 말해요.

그게 맞는거 아닌가요? 감독, 코치가 해보라고 하는데 선수가 안한다면, 감독 코치 존재의 이유가 없잖아요. 선수들끼리 알아서 정하고 하면 되죠. 선수가 팀의 의견과 다른 챔피언을 하고 싶으면, 그건 다른 팀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해요. 좋은 챔피언은 팀원들도 같이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연습 때 승률도 좋고 팀원 모두가 인정하는 챔피언. 그런걸 해야죠.”

최우범 감독은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도 방침은 하나의 팀이라는 목표에 맞춰져 있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5명,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건 감독의 몫이다.

“최대한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1시에 연습이면 무조건 1시 전부터 연습실에 앉아 기다렸고, 영상도 선수들보다 더 많이 보고, 솔로랭크도 보고, 연구도 많이 했죠. 사실 영상을 꼼꼼하게 보는 일이 정말 힘들어요. 대충대충 보는 사람들도 많고.

그리고 정말 좋다고 검증받은 것들만 선수들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래야 선수들이 직접 해보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쌓여 서로 신뢰가 형성된 것 같아요.

선수 관리 부분에서도 지키는 원칙이 있어요. 연습 시간에 늦지 않기. 연습 시간에 늦으면 안되는 거잖아요. 맑은 정신으로 스크림을 해야 머리속에도 들어오는데, 일어나자마자 바로 자리에 앉으면 뭐가 남겠어요. 처음에는 잘 안지켜졌는데, 점점 나아졌죠.



연습이든 경기든 버릇처럼 남탓을 하는 것도, 절대 안돼요. 게임을 지는 건 괜찮지만, 남탓을 하게 되면 팀워크가 깨져요. 물론, 그 선수가 정말 못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걸 내뱉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피드백 하는 건 거의 대부분 이런 내용들이에요. 기본적인 부분들.”

최우범 감독과 남탓하지 않기에 대해 웃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팀 게임에서 다른 이의 실수를 탓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우범 감독은 팀에 그런 일이 생길 때는 강하게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감독이 가져야할 또 한 가지 재능은 선수를 보는 능력이다. 좋은 재목을 알아보고, 좋은 선수로 키워내고, 팀에 부족한 선수를 찾아 채우는 것, 최우범 감독은 이미 다양한 선수들을 통해 선수 보는 능력을 증명했다.

“솔로랭크, 챌린저스 경기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리고 선수를 뽑을 땐, 기준이 있어요. 첫 번째는 판 수, 두 번째는 챔피언 폭, 세 번째는 랭크 점수에요. 사실 점수는 일정 이상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게임 판 수를 가장 높이 두는 이유는 간단해요. 가장 열심히 하니까. 사람들에게 모두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는데 누구는 600게임을 하고 누구는 1,400게임을 해요. 물론, 게임 수가 적은 사람이 더 잘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더 잘해질 가능성은 게임 수가 많은 사람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재능도 가지고 있는데 열심히 하면 최고가 되는거고.



챔피언 폭은 프로 단계에서 매우 중요해요. 사실 두 세 가지 챔피언으로 점수를 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그게 대회에서는 쓸모가 없거든요. 프로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잘해야 해요.”

최우범 감독은 자신의 선수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룰러’ 박재혁이 가진 놀라운 재능, ‘코어장전’ 조용인의 파이팅 넘치는 콜, ‘크라운’ 이민호의 노력, 베테랑 ‘앰비션’ 강찬용에 대한 칭찬, ‘큐베’ 이성진에 대한 신뢰까지. 선수 개개인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팀원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처음 팀을 맡았을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잘 견뎌낸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작년 롤드컵 선발전이 계기가 되어줬다고 생각해요.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팀을 상대로 이겼던, 기적같은 일이었죠.

지금도 그 때 경기를 가끔씩 봐요. 제가 힘들거나 헤이해지면 꺼내보게 되요. 이번 롤드컵에서 우리 경기력이 좋지 않았을 때도, 선수들에게 보여줬어요. ‘봐봐! 이 때 우리 정말 잘하지 않았냐’라고.

선수들이 많이 걱정되요. 나태해지고 만족할까봐. 그리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부담감도 느끼고 있어요.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잖아요. 최소한 롤드컵은 가야하는데 가는 것은 쉽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SKT T1의 코치진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요. 몇 년 동안 이 부담감을 계속 가지고 해왔다는 거잖아요.

모든 팀들이 열심히 매달릴테니 저희도 열심히 해야죠. 변하지 않는게 중요해요. 거만해지지않고. 올 해 정말 기쁜 한 해였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먼 곳까지 와서 응원해주시고, 식사도 챙겨주신 팬 분들, 함께 열심히 일한 코치들, 선수들, 사무국 분들. 힘들 때마다 도움준 와이프에게도 고맙고. 우리가 약팀일 때도 계속 스크림을 해준 팀들도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