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탑솔러의 나라로 널리 알린 '샤이' 박상면이 은퇴했습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박상면은 한국을 대표하는 탑 라이너로 첫 손에 꼽힌 선수였죠. 떡잎부터 남다르기도 했습니다. 데뷔 초 박상면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CJ 프로스트에 입단해 '웅' 장건웅이 비워둔 탑 라인을 메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데뷔 시즌에서 CLG EU를 상대로 '패패승승승'을 기록, 드라마 같은 첫 우승을 일궜죠. 이어 같은 해 롤드컵에서도 준우승을 달성하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이토록 시작은 창대했지만,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꾸준히 4강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팬들은 박상면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늘 위기에서 제 몫을 다해줬고, 'This is Shy'라는 말이 탄생했을 정도로 진한 감동을 주는 선수였기 때문이었죠.

그것도 잠시, CJ 엔투스는 2016시즌을 끝으로 강등이라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결국, 박상면은 락스 타이거즈에서 자신의 스승인 강현종 감독과 새 도전에 나섭니다. 안타깝게도 손목 부상과 기량 하락으로 과거의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고, 끝내 19승 20패의 전적을 남긴 뒤 은퇴를 결정하게 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상면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선뜻 인터뷰에 응하며, 팬들에게 꼭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Q. 팬들에게 꼭 인사를 남기고 싶다 했는데, 이렇게 자리가 마련됐네요.

원래 은퇴나 다른 중요한 일이 있으면 SNS에 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라도 할까 고민했는데, 글이 안 쓰이더라고요. 최대한 빨리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늦게나마 인사를 드리게 돼 죄송해요. 아직도 크게 실감이 나지는 않네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수들의 은퇴를 보면서 언젠가는 제 차례가 오겠구나 싶었는데, 지금 상당히 공허해요.


Q. 은퇴를 선택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갑작스러운 은퇴는 아니었어요. 발표 자체는 늦게 했지만, 서머 시즌부터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아무리 스크림과 대회가 다르다 하지만, 옛날만큼의 경기력이 안 나오더라고요. 라인전에서부터 무너지니까 많은 '때가 왔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습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거예요. 그때부터 감독님께 이야기를 드렸죠. 앞으로 연습을 많이 못 할 것 같다고. 은퇴의 뜻을 밝혔어요.


Q. 손목 부상의 여파도 있었겠네요.

없지 않아 있었죠. 손목이 멀쩡할 때는 게임이 엄청 잘 됐어요. 그러다 아프면 게임이 안 되고, 그다음부터는 '아프면 게임이 안 되나? 내가 손목만 안 아팠으면 더 잘했을 텐데'라고 억울해했어요. 결과적으로 그런 약한 생각들이 저한테 도움이 안 됐던 거죠. 그냥 제가 남들한테 밀린다는 사실이 싫었던 거예요.


Q. 경기력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분명히 나가고자 하는 마음 있었으면 감독님께 어필해서 더 많이 출전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제 마음일 뿐이지 실제로 연습 때 증명한 것도 없고, 후배 선수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프로는 늘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저 게임으로 인정받아 출전하고 싶었던 거고,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 나가는 건 달갑지 않았어요. 이왕 출전한다면 팀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캐리까지 하고 싶었죠. 그냥 짐처럼 경기 석에 앉아 뒷받침하는 데 급급하기 싫었어요.



Q. 슬럼프 때문에 찾아오는 스트레스와 은퇴 시기의 감정은 사뭇 다를 것 같아요.

슬럼프 시기에는 게임만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도 없었고 게임을 하면서 너무 힘들고, 의욕이 사라지니까 이게 은퇴의 시기라는 것을 직감했죠.


Q. 아까 공허하다고 했는데, 그럼 당장 내일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당장 내일보다 앞으로가 걱정이죠. 코치, 개인 방송, 군대 등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일단 여태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다른 게임도 하면서 쉬어야죠(웃음). 신기하게 팀을 나오자마자 돈 쓸 때가 많아지더라고요. 현실이 확 와닿는 느낌이랄까요. 조금만 더 쉬고 진지하게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Q. 은퇴한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뭐라고 반응하던가요?

왜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아, 이제 하는구나'라는 느낌으로 말하더라고요(웃음). 아마 제가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나 봐요. 확실한 건 갑작스러운 은퇴는 아니니까요.



Q. 가장 먼저 어떤 게 달라졌나요?

앞으로의 걱정이 달라졌어요. 비시즌 기간이지만, 프로게임단은 엄청 바쁘거든요. 만약 로스터가 변경되면 호흡 맞춰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각종 행사나 일정 등을 소화해야 하니까요. 이제는 그런 압박이나 부담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긴 한데, 아까 말한 것처럼 현실적인 걱정거리가 생겨버려서요(웃음).


Q. 짐을 싸고 고향 갈 때는 어땠어요?

아직 군대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원하던 은퇴이기는 했지만, 제가 한 선택이 맞는 건지 잠깐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원섭섭하기는 한데, 불편한 기분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Q. 앞으로 선수 생활이 그립지는 않을까요.

그립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열정을 다 쏟아부었고, 선수 커리어로 보면 금액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뤘다고 생각해요. 여러 번 정상을 밟은 건 아니지만, 그 커리어를 얻기 위해 선수 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요. 충분히 힘들었고, 할만큼은 했다고 봐요.


Q.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초창기에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금액적인 부분에 큰 아쉬움이 있다 하더라고요.

조금만 더 어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하죠. 하지만 핑계가 되는 말이기도 하죠. 예전부터 했는데, 지금까지 잘하는 선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단순하게 제가 계속 잘했으면 당연히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만큼 못했기 때문에 크게 아쉽지는 않아요.


Q. 아쉽지도 않고, 후회도 없다. 그 말은 선수 생활에 만족했다는 이야기겠네요.

선수로서의 경험은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고가 돼보기도 했고, 바닥도 찍어봤으니까요. 그리고 한국의 탑 라이너가 최고라는 걸 입증하기도 했으니까 그거면 됐어요. 제 인생 경험으로는 최고였어요.



Q. 그럼 선수 인생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뭘까요?

팀적으로는 CLG EU와의 결승전과 2012 롤드컵 결승전이에요. 개인적인 최고의 순간은 전성기 최고점을 찍은 올스타전 결승전이었죠. 그때는 정말 제가 최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기였어요.


Q. 경험했던 최고의 동료도 궁금하네요.

'앰비션' 강찬용을 고르고 싶어요. 제가 CJ 엔투스와 락스 타이거즈에만 있어서 다른 선수들은 잘 모르겠고, 강찬용 선수랑 대화하면 정말 게임을 열심히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선수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삼성 갤럭시가 이렇게 잘할 수 있게 된 이유도 강찬용 선수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Q. 대략적으로 예상이 되지만, 최악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당연히 승강전이죠(웃음). 승강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끔찍했어요. 그때는 현실을 부정했었어요. 멤버만 보면 나쁘지는 않았는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다들 게임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어요. 분위기만 좋았으면 절대 그렇게 될 팀은 아니었어요.


Q. 당시 동생들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에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 같네요.

많이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그런데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동생들이 물어볼 때 조언을 해주는 편이었어요. 그게 아니라면 코칭스태프가 요청할 때 조언을 했죠. 그래도 최대한 많이 도와주려 노력했어요. 제 그런 모습을 떠올려 보니 (이)현우 형이 진짜 좋은 형이었네요. 한 팀이었을 때는 지옥 같았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Q. 어린 시절, '샤이'와 CJ 엔투스는 어땠어요?

예전에는 정말 100% 게임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어요. 제 머리에는 LoL뿐이었어요. 게임에서 패하면 엄청 화도 나고, 그때는 프로스트와 블레이즈 간의 경쟁도 치열해서 (이)호종이 한테 지면 그날 밤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어요. 거기에 현우 형이 잔소리하면 속이 더 끓어 오르고 그랬죠.

'래피드스타' 정민성도 나름대로 야생에서 뛰어놀던 친구라 장난 아니었던 시기에요. 그때 정말 어디에 풀 곳도 없고 억울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하나 같이 다 웃기네요. 그렇게 많이 싸우고, 울고 했는데 뭐가 그렇게 진지하고 서러웠는지 다들(웃음). 흐뭇한 추억거리죠.


Q. 이현우 해설위원만큼이나 강현종 감독과도 인연이 긴 편이에요.

제 시절은 지금처럼 연습생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테스트해서 1군 로스터에 넣는 방식이 아니었잖아요. 그저 게임만 하던 폐인 같은 저를 강현종 감독님이 양지로 꺼내주셨어요. 잠시 사이가 안 좋은 시기도 있었지만, 저희는 참 오래 지내면서 온갖 정이 다 생긴 사이에요(웃음). 아무튼, 저에게는 은혜로운 분이에요.


Q. 분명 커리 말미에는 부진했잖아요. '샤이'가 '샤이'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극도로 부진할 때, 이게 잘하는 게 맞나 싶었어요. 지금 그때로 돌아가서 저뿐만 아니라 우리 팀에 '너희들과 나는 지금 잘하는 게 맞으니까 남들의 비난은 흘려듣고 자신감을 가져라'.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때는 저희가 부진한 성적치고는 인기가 많아서 그랬는지 많이들 부러워서 욕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비난조차 안 하지만요(웃음). 당시에는 어떻게 이길까 하는 고민만큼, 어떻게 하면 욕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도 생각했어요.


Q.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프로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는 뭘까요.

딱 하나만이죠? 남자 몇 명이 모여서 한 곳만을 보면서 열심히 한다는 그 모습. 그런 게 그리울 거예요. 실제로 경험하기 매우 힘들기도 하고, 소년 만화에 나올법한 모습이니까요.


Q. 자신을 둘러쌌던 소문 중 꼭 말하고 싶은 것도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한동안 제 티어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잖아요. 그 시절에 챌린저는 못 갔지만, 마스터 최상위권까지는 갔었어요(웃음). 그냥 티어 자체를 공개하는 것도 두려웠는데, 관심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아이디 공개를 꺼렸었으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웃음).



Q. 다시 e스포츠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웃음). 당장 생각으로는 아마 없을 것 같아요. 좋다 싫다 라기 보다 기회에 따라 다를 거예요. 당분간은 개인 방송을 이어갈 생각이에요. 아직 군대라는 숙제도 남아있어서 이것부터 해결해야죠.


Q. 이제 막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아마추어들에게 대선배로서 한마디 해주세요.

열심히 해도 빛을 못 보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끝내는 빛을 보는 것 같아요. 제 경험상 모든 게이머는 각자의 잠재력이 있어요. 특히 '비디디' 곽보성 선수는 정말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그 외에 CJ 엔투스에 몸담았던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잘하고 있잖아요. 각자 빛을 보는 시기가 다를 뿐이니까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만 나간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샤이'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제가 평소 역사를 좋아하는데, 삼국지도 참 즐겨 봤어요. 대개 역사를 보면 XXX년 X월 X일 무슨 사건 발생. 짤막하지만, 정말 큰 의미를 가진 일들이 기록되잖아요. 저도 2012년 '샤이' 박상면 데뷔, 우승. 이런 식으로 e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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