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가 끝났다. 16개 팀 중에 8개 팀이 올라가고 8개 팀이 떨어졌다. SKT T1과 그리핀, 담원 게이밍이 조 1위를 휩쓸어 LCK의 위상을 되살렸고 G2와 프나틱, 스플라이스 등 LEC 세 팀 역시 모두 8강에 합류해 만만치 않은 지역임을 다시 알렸다. LPL의 펀플러스 피닉스와 IG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 롤드컵을 관통하는 메타는 '상체 캐리'다. 바텀 라인의 캐리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그쪽에서 힘이 나오기 전에 이미 위에서 경기의 결과를 절반 이상 결정해버릴 힘을 갖추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8강에 합류한 팀들의 면면을 보면 상체 캐리 메타가 현재 정석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8강 합류 팀
날뛰는 상체, 후반 보험 하체


8강에 합류한 팀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초중반 혹은 후반까지 내내 날뛰는 탑 라이너와 정글러, 미드 라이너를 보유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바텀 라이너 역시 후반이 찾아오면 존재감을 한 번에 뿜어내는 '보험' 역할을 곧잘 해낸다. 소위 구멍이 없다는 말과 비슷하지만 좀 더 시기 별로 구체적인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보태진 말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LCK 세 팀을 들 수 있다. 이번 메타에서는 상체 중에서도 특히 정글러와 미드 라이너의 힘이 중요하다. 이 둘이 상대 미드-정글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존재감과 영향력을 탑과 바텀 라인까지 퍼뜨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SKT T1의 '클리드' 김태민과 '페이커' 이상혁, 그리핀의 '타잔' 이승용과 '쵸비' 정지훈, 담원 게이밍의 '캐니언' 김건부와 '쇼메이커' 허수는 너무나도 든든하다.

LCK 섬머 후반기부터 조금씩 흔들려 또 준우승을 차지했던 그리핀도 당시 '쵸비'의 존재감이 줄어들었기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롤드컵 들어서는 '쵸비'의 캐리력이 눈에 띄게 상승하면서 '타잔'과의 호흡도 올라왔고 그 결과 많은 승수를 챙길 수 있었다. 담원 게이밍은 '너구리' 장하권이 상대의 견제에 몸살을 앓는 사이에 '쇼메이커'가 말 그대로 슈퍼 플레이를 연속으로 보여주며 팀을 이끌고 있다. SKT T1은 절정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클리드'와 '페이커'의 시너지를 계속 유지 중이다.

▲ 상체-하체 번갈아 캐리(출처 : LCK 유튜브)

그러면서도 바텀 라이너들이 제역할을 잘해줬다. '테디' 박진성과 '바이퍼' 박도현 뿐만 아니라 평소 담원 게이밍의 약점이라 불렸던 '뉴클리어' 신정현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종류의 데이터에서 바텀 라이너들이 전체 선수들 중 최상위권을 독식할 정도다. 그리고 이들이 속한 팀은 대부분 8강에 합류했다.

유럽의 G2도 비슷한 흐름이다. '얀코스'와 '캡스'가 엄청난 힘을 잘 보여줬고 '퍽즈'는 비원딜과 원딜 챔피언을 고루 다루는 모습을 롤드컵에서도 이어가 만능 플레이어임을 다시 알렸다. 심지어 8강 합류 팀들 중에 가장 약한 전력이라는 스플라이스도 정글러 '절지'와 바텀 라이너 '코베'가 에이스인 팀이다. '재키러브'의 힘이 끝까지 드러난 적이 별로 없었던 IG 정도가 예외라고 할 수 있겠다.


8강 탈락 팀
지나친 바텀 의존도 혹은 부실한 상체

반면, 그룹 스테이지에서 다음 발걸음을 떼지 못한 팀들은 최근 메타의 흐름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한 팀들이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객관적 전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던 팀들 중에 꼽자면 RNG와 팀 리퀴드였다. 이들은 지나친 바텀 의존도 혹은 허약한 상체의 힘 때문에 쉽게 무너졌다.


먼저 RNG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우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팀이고 이번 대회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우지'는 팀 내 대미지 비중 37.1%라는 말도 안되는 부담을 떠안았고 그럼에도 잘했지만 팀의 탈락까지 막진 못했다. 그나마 '카사'가 눈에 띄는 경기력을 보였지만 그 혼자서 초중반까지 특히 중요한 상체 캐리력을 전담하기엔 무리였다. 탑 라이너 '랑신'은 모데카이저라는 특유의 카드를 꺼냈을 때 말곤 존재감이 없었고 미드 라이너 '샤오후'는 정규 시즌 말미부터 찾아온 부진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댔다.

상체가 바텀 라이너를 돕기 위해 최근 뽑기 좋은 픽으로는 판테온과 케일, 갈리오, 카르마 정도가 있다. 문제는 RNG를 상대했던 팀들 대부분이 이런 챔피언들을 밴했다는 것. 판테온이야 '필밴'이었다고 해도 케일이나 갈리오까지 밴한 건 RNG 상체의 '우지 케어'를 막겠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상체 캐리력에 '우지'를 보살필 픽들까지 밴 당하자 RNG는 '우지'의 저력에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팀 리퀴드는 RNG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이유로 탈락했다. 하체 힘이 최고의 강점인 팀의 색깔을 계속 드러내려 했지만 상체 쪽에서 상대의 괴력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졌기 때문. '더블리프트'와 '코어장전' 조용인의 시너지는 여전히 빛났던 장면이 있었지만, 변수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임팩트' 정언영 쪽은 일단 아니었다.

정글러 '엑스미디'와 미드 라이너 '옌슨'의 경기력이 끝내 나오지 않았던 게 팀 리퀴드를 옭아맸다. '엑스미디'는 북미 정글러들 중에 머리 싸움에 가장 능하다고 손꼽히는 선수, '옌슨'은 할 땐 제대로 해주는 미드 라이너로 통한다. 하지만 이들은 담원 게이밍과 IG의 미드-정글에게 휘둘리기만 하다가 탈락했다. '옌슨'의 KDA는 고작 2.4였고 평균 킬과 데스, 팀 내 대미지 비중 모두 하위권에 머물렀다.

8강에 합류하지 못한 대부분의 팀은 팀 리퀴드와 비슷했다. 상체 쪽에서 무력하게 쓰러졌다. 그래서 팀의 주포인 바텀 라이너가 힘을 발휘하기 전에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을 면치 못했다. '우지'나 '더블리프트'가 준수한 데이터를 보유했음에도 탈락한 이유다. 심지어 Cloud9도 폼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니키'가 뛰어난 데이터를 기록했다. '스니키'가 잘했다기 보다는 상체 쪽에서 너무 쉽게 무너져 바텀 라이너 말고는 눈에 띄는 데이터를 보여줄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더 명확해진다. 지금 메타 속에선 바텀 라이너가 가장 돋보이면 패배한다. 그건 앞으로 다가올 8강은 물론, 4강과 결승전에서도 이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