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계획대로 되는 일이란 건 없다. 모든 일엔 차질이 생기고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진다. 사람이 빚어내는 실수도 한몫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이 틀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만에 하나까지 생각하면서 일을 계획하고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써먹을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2020 미드 시즌 컵이 끝났다. T1의 CEO 조 마쉬가 처음 공개적 언급을 했고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와 차이나가 이벤트 대회를 체계화했다. LCK 상위 네 팀과 LPL 상위 네 팀이 상금을 놓고 격돌했던 진검승부가 많은 관심 속에 마무리됐다.
외부에서 봤을 때 이번 미드 시즌 컵은 참 특이한 대회였다. LoL e스포츠 사상 국제대회가 온전한 온라인으로 진행된 건 최초였다. 그래서 많은 불안요소가 존재했고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와 차이나는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가장 먼저 제기됐던 우려는 핑에 대한 것이었다. 핑은 네트워크 딜레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리며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정보를 보내면 서버에서 받고 바로 사용자에게 되돌아간 시간을 뜻한다. 핑은 수치가 낮을수록 사용자 간 불편함이 줄어든다.
미드 시즌 컵은 LCK 팀과 LPL 팀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네트워크상으로 만나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핑 격차가 발생했다. 대회가 한국 서버에서 진행됐는데 중국에서는 핑 30~40ms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래서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와 차이나는 LCK 팀들의 핑을 인위적으로 높였다. 공정한 진행을 위함이었다. LCK 팀들은 대회 전에 미리 핑을 높여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다.
핑을 인위적으로 높였을 때 그 수치가 유지되면 문제가 될 게 없지만,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한국이나 중국 쪽에서 경기 중에 핑 수치가 갑자기 크게 상승할 가능성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대회는 지연됨은 물론, 심한 경우 중단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대회 중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드 시즌 컵 중에 네트워크 이슈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않았다. 경기 중에 긴 시간 동안 퍼즈가 발생하지도 않았고 선수들이 경기 중에 핑 수치가 크게 올랐다며 이의를 제기한 적도 없었다.
이번 대회는 다른 두 곳에서 같은 방송을 진행하는 이원생중계의 형태도 띄었다. 한국 롤 파크에서는 한국 중계진과 방송 스태프가 중계를 진행했고 중국에서는 그쪽 인원들이 따로 중계를 진행했다. LCK 팀이 승리했을 땐 롤 파크에서 인터뷰 장면을 촬영해 송출했고 LPL 팀이 이기면 LPL 아레나에서 인터뷰가 이어졌다. 반대쪽에선 그 장면을 받아 실시간으로 화면에 담았다.
이 역시 단순한 일은 아니다. 이원생중계는 방송 사고 가능성을 언제나 품고 있다. 이원생중계의 기본 형태 중 하나는 TV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기자가 현장에 나가 스튜디오에 있는 앵커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보도 형태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시간차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 격차 때문에 재밌거나 때론 심각한 방송 사고가 나오기도 한다.
미드 시즌 컵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다른 쪽에선 미처 준비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쪽에서 갑자기 화면을 넘길 수도 있었고 상황에 맞지 않는 장면이나 소리가 송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 역시 단순한 기우로 끝났다. 간혹 인터뷰에 나서는 선수에 대한 콜이 맞지 않아 닉네임을 잘못 말하는 '귀여운' 실수가 나오긴 했어도 방송과 대회 진행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미드 시즌 컵은 이원생중계의 형태를 띄고도 방송 사고 없이 일정을 마무리했다.
큰 사건 없이 마무리된 미드 시즌 컵은 팬들의 대회에 대한 갈증을 어느정도 해소시켜줬다. 진행에 있어 꽤 깔끔하고 매끄러웠다. 라이엇게임즈 내부에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궁금해 짧막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MSI가 취소된 상황에서 팬들이 미드 시즌 컵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원만한 진행'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움직였다. 아무래도 한국 서버에서 대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방송 제작 및 송출은 한국에서, 중국은 대회 관련 영상 콘텐츠 제작 등을 담당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한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화상 회의와 공유 문서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했고, 큐시트와 각종 제작물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해 완성된 형태로 만들었다. 촉박한 상태에서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임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다들 아는 것처럼 LCK 팀들이 한국 서버에서 경기를 진행할 때의 핑은 한 자리수로 유지되나 LPL 팀들이 한국 서버로 접속할 경우에는 30~40ms가 최선의 핑이었다. 공정한 대회 진행을 위해 서드 파티 툴을 이용해 핑을 특정 구간으로 조정했다.
대회에 출전하는 LCK 팀들에게는 해당 핑 속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별도의 툴과 방법을 안내해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온라인으로 국제대회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테스트를 많이 했다. 다행히도 각종 리허설과 테스트를 거치면서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고, 실제 대회 중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Q. 대회 진행 전엔 온라인 진행이나 핑 제한, 이원생중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번 대회 진행 결과물에 있어 어떤 내부 평가가 있나?
서드 파티 툴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핑 구간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프로 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처음이었던만큼, 발생하는 이슈의 심각성에 따라 대회 중도 취소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상태였다. 하지만 테스트 과정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운영되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큰 문제 없이 대회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e스포츠가 온라인으로 국제 대회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것과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을 확보한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LCK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결과는 아쉽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LoL e스포츠팬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이번 미드 시즌 컵은 LCK에게 뼈아픈 대회였다. LPL은 자신들이 그토록 넘고 싶었던 LCK를 다시 한 번 눌렀고 LCK는 과거 LPL의 입장에서 와신상담을 준비 중이다. 이번 대회로 LCK와 LPL 사이에는 또 하나의 스토리가 쓰였고 두 지역 간 라이벌 구도는 한층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예정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미드 시즌 컵이 무사고로 끝났기에 가능했다. 경기 중에 핑 문제가 대량 발생했다면, 이원생중계 중에 방송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면 LCK와 LCK 간 결승전이 진행됐어도 개운치 않았을 거다. 쉽지 않았던 대회 진행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려하게 해낸 이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번 대회의 성공적 마무리는 e스포츠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코로나19로 전세계 모든 스포츠가 멈췄을 때도 분주히 돌아갔던 e스포츠라는 표현에 가장 걸맞는 예시가 아닐까. 미드 시즌 컵은 e스포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된 대회라는 타이틀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