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은퇴를 택했다. 지난 8년 간 수많은 e스포츠 팬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함께 울고 웃던 '스맵' 송경호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매듭짓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홍대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스맵'은 선수 시절과 똑같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스맵'은 너무 우중충한 인터뷰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 기자도 마찬가지로 팬들이 기억하는 밝고 재미있는 '스맵'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늘상 그렇듯 근황 토크로 인터뷰의 포문을 열었다.

"요새는 방송 준비로 되게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보니까 집에서 방송을 할 수가 없어서 집도 새로 구해야 하고, 조명이랑 세팅도 해놔야 하고, 유튜브 편집자도 구해야 하고. 여러가지로 신경쓸 게 많더라고요.

집은 본가 바로 앞에 원룸이 있길래 거기로 구했어요. 출퇴근하는 느낌으로 살려고요. 주변에 락스 형들만 봐도 다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독립을 하던데, 저는 독립하면 너무 막 살 것 같아서 무서워가지고... 그래서 좀 가까운 곳으로 구한 거예요."


무려 8년이다. 2013년, '스맵'은 만 18세의 나이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듯, 롤러코스터 같은 굴곡을 겪었다. 데뷔 팀인 IM에서의 2년 동안 '스맵'은 그저 그런 신인 선수였다. 간간히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단점도 많은. 그러나, 2015년 락스 타이거즈에 합류하면서 '스맵'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진다. '스맵'은 이 시기를 자신의 황금기로 꼽았다.

"IM에서 처음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해서 2년을 보냈어요. 당시에는 대회 때도 못했고 솔로 랭크도 높지 않은 되게 애매한 탑라이너였죠. 솔로 랭크에서 제 아이디를 보면 이미 우리 팀 사기가 죽어있어요. '스맵? 아 씨...' 이런 느낌을 받았었어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싶었죠.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부계정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그때 키웠던 아이디가 박봉춘이라는 아이디에요. 그때 막 솔로 랭크 3위까지 하고 그랬거든요. 그때는 이제 사람들이 '박봉춘이 누구야? 얘랑 팀하면 좋다. 얘는 캐리해주는 사람이다' 이런 인식을 갖게 된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 박봉춘이 '스맵'이라는 제 알려지면서 저에 대한 인식도 조금 바뀌는 상황이 됐어요.

아, 박봉춘이 사람 이름은 아니에요(웃음). 제가 친형이 있는데, 옛날부터 형을 따라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게임도 형한테 많이 배웠고. 그 형이 와우라는 게임을 하는데, 그때 아이디가 박봉춘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따라 썼어요.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도 잘 몰라요. 근데, 어감이 좋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팬분들도 좋아해주셨죠. 저도 되게 마음에 들어요.

어쨌든, 이후 IM에서 나오고 나서는 SKT(현 T1)에 테스트를 보러 갔어요. 숙소에서 테스트를 보고 있는데, '쿠로' 이서행 형한테 연락이 오는 거예요. 우리 이렇게 팀을 꾸릴 건데, 너 어떠냐. 묻더라고요. 사실 고민이 많이 됐죠. 테스트를 보고 있기도 했고, 사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거든요. 근데, 팀 구성이 뭔가 되게 멋있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그쪽으로 합류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사실 부담이 되긴 했어요. 제가 제일 마지막에 합류하기도 했고, 다들 잘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제일 못했었잖아요. 그리고, 막내였고요. 그래서 되게 부담이 컸는데, 그걸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저희가 팀이 만들어지고, 승강전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제가 캐리를 해서 올라간 거예요. 그 이후로 팀원들에게 인정받고, 저 스스로도 팀에 잘 녹아들게 됐던 것 같아요. 그게 시작이었죠.

이때가 프로게이머 3년 차가 되는 해였어요. 한창 잘하기 시작할 때잖아요. 보통 2년 동안은 좀 헤매다가 경험을 쌓고 3년 차부터 잘하기 시작하는데, 그 못했던 2년 동안 저한테는 잘하는 탑라이너들이 되게 하늘 같았거든요. '샤이' 박상면 선수나, '플레임' 이호종 선수나. 근데, 탑라이너 최초 펜타킬이라는 기록도 세우고 하면서 '나도 이제 어느 정도 올라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락스에 있으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안 좋은 일들도요. 근데, 사실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좀 재미있었다? 당시에 한창 잘해서 생긴 여유였을까요.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자꾸 일어나는데, 그걸 헤쳐나가는 우리가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아, 우리 어떡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뭐, PC방에서 연습하자.' 이런다던지, 아니면 숙소에 뜨거운 물 안 나와서 다들 빨리 들어가서 찬물로 씻는데, 다들 얼어 죽겠다 싶고. 한번은 자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에요. 그래서 서로 자꾸 어떻게 자냐고 막 그러면서... 그런 장면들이 저는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서로 더 돈독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만약 락스가 아닌 SKT를 선택했다면요? 그런 상상 많이 해봤죠(웃음). 이후에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 하면서 감사하게도 여러번 오퍼를 받기도 했어요. 락스가 흩어지고 나서도 연락이 왔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저기는 진짜 이기고 싶다. 무조건 내가 부술거다. 그런 거요. SKT한테 워낙 많이 졌으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KT를 선택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지? 왜 SKT를 안 갔을까? 아, 너무 어렸다. 이런 생각이 좀 드는데,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컸으니까요. 그래도 만약 SKT에 갔다면 더 풍족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가끔 생각은 나요. 꿈에도 나오고. 제가 참 어리긴 했던 것 같아요."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그에게도 어둠은 찾아왔다. '스맵'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KT에서 있었던 2019년이었다. 2018 시즌을 마친 KT는 '스코어' 고동빈과 '스맵'을 제외하고 로스터를 대거 교체했다. 하지만 역대 최악의 성적표와 마주했고, '스맵' 역시 개인적인 부진을 겪었다. 그는 이 시기를 자존감이 떨어지는 한 해였다고 표현했다.

"사실 2019년도에는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 팀에 와도 잘 어우러질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 근데, 그렇지 못했잖아요. 그때는 정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일일히 나열할 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가요. 탓하려면 탓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죠.

크게 보면, 합이 잘 안 맞았어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잘 어우러지지 못했고, 선수들끼리도 잘 어우러지지 못했어요. 계속 그런 문제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근데, 그냥 저 스스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내가 잘 못했고, 내가 많이 부족했다. 그렇게 2019년을 마감했던 것 같아요.

다만, 연습량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저는 당당해요. 저는 게임을 직접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는 것도 연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습을 안 한다고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결국 솔로 랭크를 안 한다는 거였거든요. 근데, 저는 항상 솔로 랭크가 다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왔어요. 한창 잘할 때도 솔로 랭크를 많이 해서 잘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저는 시뮬레이션을 되게 많이 하고, 영상을 많이 보는 스타일이에요. 잠들면서 생각하고, 자다가도 뭔가 생각이 나면 바로 컴퓨터를 켜서 연습 모드에서 해보고 그랬어요. 제가 잘하게 된 원동력은 솔로 랭크가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면, 제가 특정 챔피언을 많이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그 챔피언을 100판 하는 것보다 100판 한 사람의 영상을 연구하는 게 저는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좀 흔들리더라고요. 주변 선수들이나 감독, 코치님들이나 아니면 부모님이요. 계속 솔로 랭크 좀 하라면서 주변에서 압박이 들어오니까 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조금 있었어요. 그 외에 대중의 평가는 설명하고 이해시켜드리기 어려운 저만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게임을 공부한다. 이건 피지컬적으로 재능이 따라와줘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프로게이머라면 모두 게임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중에도 유독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곤 하다. 그리고, '스맵'도 이 '재능파'에 속하는 선수라는 평가가 많다.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스맵'은 쿨하게 인정했다. 자신은 재능파라고.

"저는 확실히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게임이든 다 잘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주위 사람보다 게임을 잘해야 되고, 학교에서 '짱'이어야 하고 그랬거든요. 게임은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게 됐죠. 근데, IM에서 2년 생활하면서 깨달았어요. 여기는 다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만 모여있구나. 나는 별 거 아니었구나.

근데, 웃긴 건 락스에 들어가면서 다시 확신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 나는 역시 재능파였다. 하하.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그때부터 승승장구 했죠. 누굴 보고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팀원들...? 근데, 확실한 건 락스 팀원들 중에 제가 가장 재능파예요. 그건 진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다들 노력을 되게 많이 하는 편이에요. 특히, '고릴라' 강범현 형이 노력파고, 그나마 재능파는 '쿠로' 형 정도?

근데, '쿠로' 형은 또 재능의 한계치가 있더라고요. 그에 비해 저는 무궁무진한 재능을 가졌죠(웃음). 아, '피넛' 한왕호 그 친구도 확실히 저랑 비슷한 과이긴 하더라고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되게 잘할 것 같아요. 이제 벌써 LCK 고참이잖아요. 잘 할 거예요."


2020 시즌을 끝으로 '고릴라'와 '쿠로'까지 은퇴를 택하면서 '스맵'과 락스 시절을 함께 했던 팀원 중 '피넛'을 제외한 모두가 은퇴 수순을 밟았다. 락스의 창단을 함께한 원년 멤버는 모두 은퇴한 셈이다. '스맵'은 '고릴라'와 '쿠로'의 영향을 꽤 받았다고 했다. 은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고.

"'호진' 이호진 형이나 '프레이' 김종인 형이 은퇴할 때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아, 이 형이 은퇴를 했구나' 정도였죠. 올해는 다르더라고요. 정말 크게 와닿았어요. 시즌 끝나고 '쿠로' 형이랑 '고릴라' 형이랑 2021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 은퇴를 한다는 거예요.

'고릴라' 형은 매년 그랬어요. 맨날 앓는 소리만 하는 사람이라 늙어서 못한다고, 은퇴한다고 그랬었거든요. 이번에도 그러길래 '저러다 또 말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마음을 굳게 정한 거예요. '쿠로' 형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제 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고민을 시작하게 될 정도로 둘의 은퇴는 저한테 영향을 많이 끼쳤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죠. 일단 팀 오퍼는 국내 팀에서는 거의 안 왔어요. 프랜차이즈화가 되면서 노인네들을 잘 안 뽑아주더라고요. 다들 유망주와 신예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갑자기 실업자가 엄청 많이 생겼잖아요. 이 실업자들이 이제 개인 방송이나 코칭스태프, 해설진 쪽으로 가게 될텐데, 다들 방송을 하려고 하던데요.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고도 또 경쟁을 해야하게 생겼어요(웃음).

아무튼 그래서 저는 해외 쪽을 많이 알아봤는데, 사실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 큰 제안을 오지 않았어요. 조금 아쉽긴 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LCK에서만 프로게이머 생황을 해왔잖아요. 해외팀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은퇴를 결정한 것도 어느 정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어쨌든 저는 군대를 가야 해요. 그 군대를 가기 전에 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게 개인 방송이었죠.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방송을 가끔 했었는데, 팬분들이 되게 좋아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군대를 갔다 와서 개인 방송을 시작하기에는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군대 가기 전까지 개인 방송을 좀 해보자는 결론을 낸 거죠. 이게 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어요. 군대에 다녀와서는 코칭스태프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개인 방송은 군대가기 전에 꼭 해야할 것 같더라고요. 방송하는 거 보고 잘되면 최대한 늦게 가려고요(웃음). 안 되면 빨리 갔다 와야죠.

선수 생활하면서 감독이나 코치 쪽은 절대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너무 힘들어보이는 거예요. 근데, 프로게이머 후반기가 되니까 제가 이런 쪽에 재능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9 시즌에 팀원들이 거의 다 동생들이었거든요. 같이 생활하면서 동생들이 저를 잘 따라주기도 했고, 저도 팀을 잘 조율하거나 누군가를 잘 이해시킬 수 있다는 걸 좀 깨달아서 코칭스태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2020 LCK 섬머 스플릿이 마지막 시즌이 될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스맵'은 이 마지막 시즌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자평했다. 반년 간의 휴식기를 가지면서 했던 다짐을 모두 지켰고,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유종의 미를 거둔 '스맵'은 이제 개인 방송을 시작으로 인생의 2막을 연다.

"마지막 시즌은 진짜 이 악물고 열심히 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이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전에도 항상 열심히 해왔지만, 마지막 시즌은 정말 자신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만족스러워요. 쉬면서 떨어졌던 자존감도 되찾았고요. 그래서 은퇴에 엄청난 미련이 남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개인 방송에 집중할 것 같아요. 저는 팬분들한테 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섬머 복귀를 택했던 것도 팬분들의 응원이 되게 컸거든요. 근데, 코로나19 때문에 경기장에서 만나뵙지도 못하고, 경기 외적으로 보여드린 게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팬분들과 소통하고, 재미있는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저 아직 은퇴한지 얼마 안되서 잘하거든요. 방송 많이 보러와주세요.

항상 말로만 감사하다고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이게 진짜 진심이에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팬분들의 응원이었다는 건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언제나 응원해주셨던 팬분들께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많은 응원과 사랑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모습으로 또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