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 시절부터 그랬다. 저그는 유독 테란과 프로토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명장면, 명승부의 희생자로 많이 기억됐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2 이후에는 이승현(KT)이라는 최강의 저그를 필두로 저그도 굉장히 멋있고 테란과 프로토스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혼내줄 수 있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이런 저그의 앞날에 적신호가 켜졌다. 바로 테란의 '메카닉'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원이 한정적인 맵에서 우주방어테란을 구사하는 메카닉을 상대로 마땅한 파훼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테란 선수들이 그동안 저그전에서 메카닉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테란 선수들의 피지컬이나 메카닉에 대한 이해도가 나날이 발전하면서 마음먹고 버티고 수비하는 운영이 화두에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일, 비록 팀은 패배했지만 프라임의 최병현이 프로리그에서 SKT 어윤수를 상대로 저그전 메카닉의 무서움을 만천하에 알렸다.

▲ 메카닉을 선택한 최병현


최병현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메카닉 잘하는 선수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번에 만났던 어윤수를 상대로도 지난 1월 12일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 메카닉을 선보였지만 땅굴망 러시에 허무하게 패배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최병현은 똑같은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메카닉을 꺼냈다. 땅굴망에 의한 패배는 자신의 메카닉 체제에 약점이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부주의로 한 번 패배했을 뿐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전해졌다.

▲ 군단 숙주로 응수


어윤수도 최병현이 메카닉을 사용할거라고 충분히 예측하고 연습을 해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최대한 일벌레 욕심을 내며 후반 운영을 도모했다. 소수의 뮤탈리스크 생산 이후 군단 숙주 다수를 생산하며 경기는 점차 반반 싸움으로 흘러갔다.

▲ 과연 이 조합을 어떻게 이겨야 할까?


최병현의 컨셉은 명확했다. 100으로 공격과 수비를 배분한다면 최병현의 메카닉은 공격0, 수비 100이었다. 최병현은 조금씩 자신의 확장을 늘려나갈 때마다 공성 전차와 행성요새, 그리고 밤까마귀와 바이킹, 전투순양함까지 부드럽게 체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남는 광물로는 다수의 궤도 사령부를 늘렸고, 이는 굳이 건설 로봇을 버리고 지게로봇으로 자원 채취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스캐너 탐색'의 의도가 더 강했다.

갖춰진 테란의 메카닉 200 병력은 대 저그전에서 '완벽'에 가깝다. 저그가 어떤 유닛을 뽑아도 그에 맞는 대처법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그 병력의 체제와 움직임을 지속해서 파악할 수 있는 스캐너 탐색이 테란에게는 승리로 가는 필수 요소였다.

▲ 저그와 테란의 1차 우주대전


저그의 자원은 광물 1만, 가스 1만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계속해서 드는 의문은 갖춰진 테란의 병력에 맞서 어떤 조합을 선보일 것이냐였다. 이 때 어윤수의 판단은 ALL 타락귀였다. 사실 교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다녔다.

타락귀의 공격은 밤까마귀의 국지 방어기에 흡수된다. 게다가 공중 유닛의 특성상 잘 뭉쳐서 밤까마귀의 추적 미사일에도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윤수의 생각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미 많은 자원을 확보한 상황이고, 아무리 많은 국지 방어기가 깔려고 더 많은 양의 타락귀로 상대방을 제압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판단은 100% 최병현의 허점을 찔렀다.

▲ 2차 교전까지 승리


우주 대전에서 승리한 어윤수는 일부 타락귀를 무리 군주로 변태시켜 2차 교전까지 완승을 거뒀다. 그대로 과감한 공격을 시도했더라면 어윤수가 충분히 경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윤수는 테란 역시 자신만큼 많은 자원을 보유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테란에게 시간을 내주고 말았다.

▲ 마지막 교전 장면


다시 한 번 병력을 모을 시간을 확보한 최병현에게 똑같은 실수는 없었다. 최병현은 어윤수의 타락귀, 무리 군주 체제에 맞서 다수의 바이킹과 토르, 밤까마귀 위주로 병력을 편성했다. 감염충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기에 바이킹 컨트롤에서도 자신감이 묻어났다.

결과는 테란의 압도적 승리였다. 사실 밤까마귀가 다수 갖춰진 테란의 메카닉을 상대로 저그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선수도 아직은 없다. '어윤수처럼 1차교전에서 승리하고 그대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방법은 정석이 아닌 1회용 깜짝 카드였다.

저그가 지상군 위주면 공성 전차의 비율을 늘리면 되고, 이번 경기처럼 공중 유닛 체제면 바이킹과 밤까마귀의 비율을 늘리면 된다. 다수의 궤도 사령부로 스캐너 탐색을 마구 뿌려가면서 저그의 체제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실제로 테란을 플레이하는 A선수는 "버티는 메카닉이 실수만 하지 않으면 엄청 강력하다. 가끔 사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맵의 자원이 제한적이거나 크기가 작은 맵에서만 사용하기 좋다. 현재로써 이런 스타일의 메카닉을 잡으려면 저그가 격차를 크게 벌려서 빠른 체제 전환 회전력을 통한 승부나 아예 초반 올인이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에서 100% 필승법이란 존재하지 않기 마련이다. 하루빨리 저그 선수들이 우주방어 메카닉에 대한 파훼법을 방송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