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수작


지난 2019년 PS4로 출시된 '데이즈 곤'은 유저와 평론가의 평가가 엇갈린 대표적인 게임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이른바 팔리는 소재를 가져온 '데이즈 곤'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E3 2016에서 첫 공개 당시 압도적인 물량의 호드를 보여주며, 뭇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후 하나둘 공개한 게임 플레이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색다르다고 할 순 없었지만, 좀비 아포칼립스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담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데이즈 곤'에 대한 기대는 출시와 동시에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최적화와 버그가 발목을 잡은 거였다. AI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멍청해 옆에서 동료가 죽었는데도 모르는 수준이었고 싸우다 말고 적이 공중으로 튕겨 나가거나 갑자기 NPC가 등장하는 등 미완성된 상태에 가까웠기에 혹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발사인 SIE 벤드 스튜디오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패치를 통해 게임을 완성했고 그 결과 '데이즈 곤'은 유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대작은 아니지만 할만한 수작'으로 재평가를 받게 됐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다. PS4 독점작이었던 '데이즈 곤'이 '호라이즌 제로 던'에 이어 PC로 출시를 알렸다. 그래픽이 더 좋아졌을 뿐 아니라 발목을 잡았던 버그와 최적화 문제도 해결된 상태. 게임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도 없다. 하지만 이미 2년 전에 출시한 게임인 만큼, 이번 리뷰에서는 게임에 대해 얘기하는 기존의 리뷰와는 거리를 둘까 한다. 대신 주제를 다르게 잡았다. PC로 출시한 '데이즈 곤'이 기존의 혹평을 뒤집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다. 과연 '데이즈 곤'은 최적화와 버그가 발목을 잡은 비운의 명작이었을까. 이를 재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게임명 : 데이즈 곤(Days Gone)
장르명 :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 2021. 5.19.
개발사 : SIE 벤드 스튜디오
서비스 :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PC

관련 링크: '데이즈 곤' 오픈크리틱 페이지


기본기에 충실한 좀비 아포칼립스, 참신함은 글쎄?


좀비 아포칼립스는 이제 익숙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기에 이를 게임에서 표현하는 방식 역시 어느 정도는 정립된 상태다. 문명이 파괴된 세계. 생존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타인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약탈자 아니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경우다.

이것만으로는 뭔가 밋밋하다면 여기에 이 모든 걸 신이 내린 벌이라면서 좀비보다 더 좀비 같은, 종교에 빠진 광신도를 넣으면 된다. 이제 주인공이 남았다. 보통 주인공은 외지인이거나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인 경우가 많다. 어떤가. 이것만으로도 그럴듯한 무대가 만들어진다. '데이즈 곤' 역시 큰 줄기에서 보면 이러한 문법을 착실히 따르고 있다.

게임의 전반적인 플레이 스타일 역시 익숙하다. 비슷한 부류의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을 해봤다면 10분도 안 돼서 전반적인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수풀에 숨으면 적의 눈을 피할 수 있고 돌멩이를 던지면 시선을 끌 수 있다. 여기에 눈치채지 못한 적의 뒤로 돌아가면 은신 처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있을 건 다 있는, 기본기에 충실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 익숙한 컨셉에 익숙한 시스템. 익숙함은 '데이즈 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러한 익숙함은 처음에는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틀에 박혔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게임을 하기에 앞서 기대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데이즈 곤'은 분명 기대한 만큼의 재미는 충분히 보장하는 게임이다.

스토리와 이를 보완하는 연출은 부족함이 없었고 방대한 오픈 월드는 다양한 임무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여기에 낮과 밤, 그리고 날씨에 따라 바뀌는 프리커들의 행동 패턴과 자연재해 같은 호드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70점 초반이라는 혹평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적화와 버그로 과한 혹평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기존의 혹평이 단순히 최적화와 버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익숙해지자 아쉬운 점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앞서 '데이즈 곤'은 익숙한 문법을 따르고 있다고 한 바 있다. 이러한 익숙함은 분명 큰 장점이다. 시쳇말로 평타는 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목표로 한다면 익숙한 데에서 멈춰선 안 된다. 특색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데이즈 곤'은 스토리와 연출을 제외하면 그런 면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오픈 월드인 만큼, 생존에 대한 요소를 좀 더 살릴 수 있을 법하건만 '데이즈 곤'은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재료 채집은 색다르지 않았으며, 한 번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양도 적어서 귀찮게 느껴졌고 동물을 사냥하는 등의 식량 조달 역시 생존에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라 캠프장에 팔아서 크레디트와 호감도를 올리는 게 전부였다. 사실상 생존 요소가 없는 셈이다.

▲ 식량이라고 하지만 생존에 대한 시스템은 없는 수준이다

프리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부 요인에 따라 바뀌는 프리커들의 행동 패턴 역시 처음에는 나름 신선했지만, 밤이 되거나 비가 내리면 그냥 밤을 자서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에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었던 호드는 존재감에 비해 게임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몇 없는 특색마저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알맹이가 텅 빈 광활한 오픈 월드


광활한 오픈 월드가 다양한 재미를 안겨줬다면 그래도 이러한 평가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데이즈 곤'의 오픈 월드는 기대한 만큼의 재미를 안겨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데이즈 곤'의 오픈 월드는 유비소프트 게임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약탈자나 리퍼(광신도)가 특정 지역을 차지하고 있으면 디컨이 가서 싹 쓸어버리고 그곳을 점령하는 식이다. 지역을 점령하면 연막탄이나 폭발물, 근접 무기 등 전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제작 레시피를 배우거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빠른 이동을 위한 중간 거점으로 삼는 동시에 조금씩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그리 재미있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 한두 번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매번 똑같은 방식을 요구하기에 몇 번 하다 보면 금세 질리게 된다. 약탈자와 리퍼로 구분하고 있지만, 겉모습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다. 외형이 조금 다를 뿐,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종류는 거기서 거기다. 후반부로 갈수록 적들 역시 강해지지만, 중무장을 하고 체력이 좀 더 많아지는 정도에 불과해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 약탈자나 리퍼를 처치해서 지역을 점령하면

▲ 레시피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보통 이런 단조로움을 해결해주는 게 서브 퀘스트의 역할이다. 그러나 '데이즈 곤'의 서브 퀘스트는 빈말로도 재미있다고 할 수 없었다. 저마다 특색이 없었고 단조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서브 퀘스트라는 명칭처럼 메인 스토리만큼 재미있게 만들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데이즈 곤'의 서브 퀘스트는 대부분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캠프 근처에 약탈자나 리퍼가 발견됐으니 처치해달라거나 생존자를 데려와 달라는 부탁이 대부분으로, 질보다는 양으로 밀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다.

즉, '데이즈 곤'의 오픈 월드는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유저가 돌아다니면서 즐기기 위한 오픈 월드라기 보다는 서브 퀘스트를 배치하고 디컨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 월드라고 할 수 있다. 알맹이가 없는, 텅 빈 방대함이다.

▲ 나는 차가운 드리프터, 하지만 생존자들에겐 따뜻하지

바이크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작중 바이크는 디컨의 분신과도 같다. 함께 성장하고 언제 어디서든 같이 다닌다. 하지만 딱 이 정도에서 머문다. 바이크를 이용한 독창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확립하거나 하지 못했다. 서브 퀘스트를 하면서 추격전을 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하지만, 이런 몇몇 이벤트를 제외하면 단순한 이동 수단에 그친다. 방대한 오픈 월드와 바이크라고 하면 좀 더 색다른 콘텐츠를 넣을 수도 있었을 법하건만 아쉬움이 남았다.

▲ 오픈 월드와 바이크, 좀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왔다. 그래서 최적화와 버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데이즈 곤'이 어떤 게임이냐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데이즈 곤'은 대작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가득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을 구성하는 시스템과 콘텐츠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나쁘지 않지만, 한데 어우러지지 못한 모습이다.

메인 스토리는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지만 이를 보완해줘야 할 서브 퀘스트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오픈 월드는 방대하지만 채집 요소는 있으나 마나고 탐험의 재미도 없다. 알맹이가 없는 셈이다. 좀 더 박하게 평가하자면 차라리 오픈 월드가 아닌 일자식 진행 방식이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메인 스토리 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이러한 단점들이 곧 '데이즈 곤'은 할 가치가 없는 게임이란 걸 의미하진 않는다. 다소 불편하고 난잡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가 주는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그러니 PS4 독점작이어서 '데이즈 곤'을 즐기지 못했다면 이번 PC 버전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장르의 기본기와 재미는 보장하고, 플레이타임 역시 준수하다. 한 편의 영화, 아니 드라마를 보는 감각으로 즐기기에 딱이다. 후속작 계획이 불발됐다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PC 버전의 흥행이 '데이즈 곤2'로 이어질지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러한 기존의 단점을 메꾼 명작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