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게임업계의 화두 중 하나로 '오픈 월드'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자유도 높은 오픈 월드를 탐험하는 재미는 코어 게이머들 사이에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지만,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명작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이후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특히 호요버스의 '원신'의 글로벌 히트 이후,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와 연이 없어 보였던 서브컬쳐 게임계에서도 오픈 월드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례들이 늘었습니다.
그 중 쿠로 게임즈의 '명조: 워더링 웨이브'도 유력한 경쟁작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전작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액션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느낌을 진하게 담아낸 그래픽에 디자인을 절묘하게 녹여낸 저력이 있는 개발사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2022년 글로벌 동시 공개 당시부터 전세계의 덕들에게 주목받았습니다.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 시절부터 쌓아온 쿠로 게임즈의 저력이 오픈 월드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특유의 색감으로 빚은 오픈 월드에, 저스트 회피와 패링 그리고 공중 추격에 태그 콤보까지 그간 오픈 월드 수집형 RPG에서 쉽게 보여주지 못한 액션은 그간 쿠로 게임즈를 몰랐어도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2023년 4월 알파 테스트 후 2023년부터 게임스컴과 TGS 그리고 지스타까지 참여하면서 눈도장을 찍은 '명조: 워더링 웨이브'. 이번 2월 19일부터 진행하는 글로벌 테스트에선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살펴보았습니다.
체계적인 액션에 시원한 무빙으로 쾌적한 오픈 월드 탐사
"그래서 이런 액션이 진짜 될까?" 명조: 워더링 웨이브를 이야기하기 전, 가장 먼저 궁금할 부분입니다. 그 옛날 모바일 액션 RPG 초창기 때와 달리 이제는 모바일-PC 크로스플랫폼에서도 말 그대로 '콘솔 급' 액션을 담아낼 수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걸 담아낸 사례가 많지는 않았으니까요. 대체로 저스트 회피를 기반으로 한 스킬 액션 콤보나 분기 공격 콤보 정도로 구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조: 워더링 웨이브'는 그 체계를 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녹여낸 게임입니다. 기본 액션의 구조는 이미 공식화된 일반 공격 - 전투 스킬 - 궁극기와 저스트 회피 후 특수기, 교체 QTE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부 적의 공격은 타이밍에 맞춰 대응하면 패링을 할 수 있거나, 일반 공격이나 공명 스킬 사용시 충전되는 협주 에너지에 따라 특수 분기 공격을 넣어서 한층 더 폭을 넓힌 방식이었죠. 그리고 타 오픈 월드 경쟁작에 비해서 점프도 비교적 높고, 각종 도구나 적의 잔재인 '에코'를 활용한 액션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명조: 워더링 웨이브'의 액션은 단순히 기본 시스템의 종류를 넓힌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출시 이전 테스트 단계인데도 기본 시스템의 응용 수준도 상당히 폭이 넓은 편이죠. 보통 전투 스킬은 한 번 사용하면 쿨타임이 돌고 그사이에 다른 걸 하는 것이 기본 방식인데, '명조: 워더링 웨이브'에는 그 틀을 벗어난 캐릭터들이 꽤 됩니다.
일례로 '단근'의 전투 스킬은 일반적인 스킬보다는 음향 게이지를 높이기 위한 특수 공격처럼 사용됩니다. 체력을 깎으면서 강공을 퍼붓는 스킬을 쭉 사용해 음향 게이지를 높이다가, 그것이 어느 정도 차면 강공격으로 게이지를 소모해서 범위 내의 적에게 강력한 피해를 주고 체력을 회복하는 메커니즘이죠. 이번 테스트로 처음 선보인 '감심'은 전투 스킬을 길게 누르면 반격 자세를 취하고, 적의 공격이 들어오면 그 방향으로 장풍을 발사합니다. 짧게 누르면 장풍을 쏘고, 게이지가 모인 상태에서 강공격 홀드를 유지하면 게이지를 소모해서 주변에 피해를 주고 실드를 생성하는 공방 일체의 스타일이 특징이죠. 이처럼 캐릭터마다 기본 액션 틀을 공유하는 것 같아도 스타일이나 조작법이 상당히 다릅니다.
거기다가 회피나 적 공격에 대한 대응도 저스트 회피에 그치지 않고 점프나 마치 몬헌 밧줄벌레처럼 로프를 타고 도약하는 테크닉, 혹은 일부 공격은 패링으로 받아치는 등 운신의 폭이 넓습니다. 여기에 적으로 일순 변신해서 강력한 스킬을 쓰거나, 혹은 여러 특수 효과를 주는 잔향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특수 기술이 있는 '에코'까지 극딜을 내기 위한 여러 세팅 연구도 가능하죠.
사실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월드를 어떻게 구현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전투나 액션은 이미 전작에서 검증된 개발사였으니, 그것을 뺀 나머지 부분을 새로 어떻게 구축할까 싶었으니까요. 그냥 전투가 재미있으면 전부가 아니라, 이동하고 탐사하면서 둘러보는 맛 그리고 나중에 반복 루틴까지 얼마나 빠르게 소화할 수 있는지 여부도 이 장르에선 중요한 파트이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서 명조: 워더링 웨이브는 후발 주자라면 해야 할 것 이상을 보여줬습니다. '원신'을 예로 들자면 초창기에는 그냥 절벽을 깡으로 타고 올라간 뒤 활강해서 다른 절벽으로 가는 방식이었지만, 이젠 클로버 인장 같은 이동 기믹들이 있어서 그런 수고를 많이 덜었죠. 이미 '명조'는 초반부터 로프 같은 도구를 사용하니 자신들의 설정에 맞춰서 그런 기믹을 필드 일부에 구현한 상태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마치 경공을 쓰듯 벽을 빠르게 타고 오르는 시스템까지 더해서 필드 이동의 재미를 살리고 불편함을 줄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뒀습니다.
거기다가 비전투 상황에서는 달리기에 스태미나 소모를 없애고, 전투 시에도 회피의 스태미나 소모량은 상당히 적은 편이라 그런 기믹이 없을 때의 이동도 쾌적합니다. 회피의 스태미나 소모량이 적어서 너무 싱겁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겠지만, 대신 회피와 저스트 회피의 무적 시간이 통상의 액션 RPG보다 짧아서 자주 피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조율했습니다. 특정 속성 공격으로 필드에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는 없지만, 대신 필드의 여러 오브젝트를 활용해서 기믹을 풀이하고 보통 방법으로는 못 갈 것 같은 곳도 생각보다 높은 점프와 로프 그리고 벽타기로 가는 등 다른 방식으로 탐사의 재미를 살렸죠.
고유명사로 쌓은 장벽과 미진한 빌드업, 미완성 번역의 3중고
그러나 이번 글로벌 테스트에서는 첫 번째 지역, '금주'까지만 공개됐습니다. 필드 탐사의 밀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아예 그거에 올인한 구성이 아니고서는 물리적으로 그 종류가 타 게임보다 많을 수 없는 구성이죠. 그리고 몇 년 전과 달리, 유저들은 이미 이러한 오픈 월드 양식에 익숙해진 상황입니다. 전투와 필드 탐사에서 확실히 강점을 보였다고 해도, 그것을 다 파악한 뒤에 '그다음'을 기다리게 만들 또다른 카드가 필요하죠.
애석하게도 '명조: 워더링 웨이브'는 그다음 카드가 조금 부실합니다. 스토리나 전개 방식에서 우선 그게 느껴지거든요.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더 설명하자면, '명조: 워더링 웨이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쪽 서브컬쳐 게임 대다수가 공유하는 문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고유명사 도배로 시작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풀기보다는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일관하는 내러티브 사이사이에 과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누군가 등등. 중국 서브컬쳐 게임을 사람들이면 여러 번 겪었을 상황이죠.
이런 방식은 사실 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나온 서브컬쳐 작품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위에다가 친절하게 기존에 통용되는 단어를 작게 써주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용어를 남발하면서 기존 단어는 뒤틀어서 쓰고, 아예 연관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관계도 없던 상황에서 멋도 모르고 오게 된 뒤에 설명도 없이 "타라"라고 하는 등, 지금 와서 보면 살짝 수틀리는 순간부터 이탈할 여지가 높은 방식이긴 합니다. 다만 이것을 중간중간 기깔난 연출이나 알면 알수록 심오하게 느껴지는 방대한 설정을 그 안에 녹여낸 터라, 그 편린을 짚어나가는 순간부터 계속 파고들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담은 것이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작품들이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 중 하나죠.
굳이 이 말을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에 붙인 단서, 즉 '수틀리는 순간'부터 이 내러티브 방식은 힘을 상당히 잃게 되거든요. 오히려 "이게 뭔데"라는 말을 듣기 딱 좋죠. 그나마 처음 시작할 때는 주인공이자 유저의 분신인 방랑자가 특별한 존재란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뒤에 대사가 이어지는 파트부터는 나만 모르는 이야기만 계속되는 것이 호불호가 갈립니다.
물론 이야기의 큰 맥락 자체는 그런 고유 명사를 제거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특별한 존재였지만 현재 기억을 잃은 상태고, 그 잠재력을 기존의 인류와 세계를 멸망한 뒤에 재구축하려는 세력 양측에서 눈여겨 보고 있다는 클리셰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죠. 적으로 등장하는 '잔상'이나 명조 세계에 몰아치는 재앙인 '비명',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준으로 일어나는 '명식' 같은 것은 좀 낯설기는 해도, 계속 스토리를 보다 보면 기존에 알고 있는 개념으로 치환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상당히 조급하게 전개되는 나머지 주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각각의 빌드업이나 이후에 추가될 지역에 대한 힌트의 소개는 미흡한 편입니다. 양양의 초반 설명이나 금주의 영윤인 금희가 자신처럼 세주와 소통하는 영윤들이 다른 지역에도 있다고 하는 것 외에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죠. 처음에 만나서 한동안 같이 활동하게 될 양양, 치샤, 설지 세 명부터 캐릭터 빌드업을 위한 퀘스트가 없기도 하고요. 5성 캐릭터 '기염'이나 '능양'의 얽힌 별 이야기는 있지만, 기염과 능양은 스토리상 등장 시기가 굉장히 늦은 걸 생각하면 조금 기묘한 느낌입니다.
여기에 번역도 현재는 썩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미완성이라, 이 부분은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은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초반에는 그냥 문어체나 살짝 어색한 어투 정도였다면, 고유명사들이 가득 나오는 순간부터는 직역투의 말투가 나오더니 후반에는 번역문이 아예 없어서 출력이 안 되거나 이를 불러오는 문구가 나오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더빙이 안 된 것이 아쉬웠지만, 나중에는 더빙이 늦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완성 단계에서도 느껴지는 저력, 완벽을 향해 다듬어야
현 테스트 단계의 명조: 워더링 웨이브는 개발자들의 영상에 나온 것처럼 알파테스트 이후 나왔던 문제를 한 차례 개선한 뒤 그 흐름을 검증받기 위한 자리라고 봐야 할 겁니다. 다만 처음에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진 터라, 후반에 미처 구축되지 못한 것들과 중간중간 보이는 흠들이 그만큼 크게 느껴졌죠.
그래픽이나 캐릭터 디자인은 이미 전작부터 이어진 노하우를 한층 더 발전시킨 터라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콘텐츠는 선발주자들이 다져 놓은 것을 바탕으로 자신에 맞춰 새로 풀어냈지만, 기본 액션이나 기믹 그리고 플레이 방식에서 '명조: 워더링 웨이브'만의 체계를 구축한 상태라 장르의 수렴진화 정도로 짚고 넘어갈 수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공백인 부분이 많이 보이는 게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앞서 더빙만 얘기했지만, 사실 더빙 외에 효과음 같은 것도 아직 다 갖춰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현란한 액션을 펼쳐도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도 짜임새가 느껴질 정도로 액션은 '진짜'라는 느낌이 들지만, 차근차근 훑어본 결과 '명조: 워더링 웨이브'는 아직 더 담금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 문제야 무조건 고쳐야 하는 것이니 차치해두고, 이야기를 너무 급하게 끌고 나가다 보니 이야기를 이끌어 가게 될 캐릭터의 활약상이나 함께 하게 될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 부분이 아직 미약하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스토리를 다 본 이후의 소위 '루틴'도 좀 하드한 편이라 더더욱 '명조: 워더링 웨이브'만의 빌드업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캐릭터 육성 재화를 위한 파밍, 특히 나중에는 유물과 비슷한 '에코'의 옵션작이 주가 되는데, 이 부분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여러 시스템이 추가했거든요. 에코 수집 진도에 따라 출현 가능한 에코의 최대 랭크나 확률, 장착 가능한 코스트를 정하는 '데이터 레벨' 시스템 등이 그 예죠. 에코 자체가 유물을 넘어서 액티브 아이템의 역할도 맡고 있으니 이 부분에 힘을 싣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행동력 대비 재화 수급량도 적은 편이다가 옵션은 물론이고 같은 모양의 에코여도 속성이 다르고 세트가 달라지는 등 변수가 있어서 스트레스가 상당한 편입니다.
물론 '명조: 워더링 웨이브' 또한 역경의 탑 같은 콘텐츠를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하드하게 세팅을 맞출 필요는 없게끔 필드를 설계한 상황이긴 합니다. 게임 자체가 조금 스펙이 낮아도 저스트 회피나 파생기, 에코 스킬 등 다양한 액션으로 커버할 수 있게끔 구성이 되어있기도 하고요. 그 이성적인 설계 외에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2%를 더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 현재 '명조: 워더링 웨이브'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부분이 서브컬쳐 게임에서는 유저들의 관심을 쭉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이미 액션이나 짜임새는 오픈 월드 후발주자 가운데에서도 손꼽을 만큼 잘 되어있으니, 다음번에는 이 부분에서 확고히 다듬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