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프릭스 정글러를 맡고 있는 '모글리' 이재하입니다.”

170이 조금 넘을 것 같은 키에 마른 체구, 이유 없이 잘 어울리는 안경을 썼다. 학생이라 부르기엔 어딘지 모르게 성숙한 느낌, 청년이라 부르기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얼굴. 아프리카 프릭스의 정글러 ‘모글리’ 이재하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느낌이다.

롤드컵 선발전을 며칠 앞두고 그를 만났다. 경기 인터뷰가 아닌, 처음으로 하는 단독 인터뷰가 떨리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이재하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롤드컵을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잖아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최연성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아프리카 프릭스는 단 한 곳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팀이 됐다. 주간 스크림, 야간 스크림, 개인별 연습 및 라인전 반복 연습, 솔로랭크까지. 다른 게임단 소속으로 뛰어본 선수들은 아프리카 프릭스의 연습시간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올해 LCK에 데뷔한 ‘모글리’ 이재하만은 몰랐다. 그는 자신이 소화하는 일정이 으레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고.



“솔로랭크 1등을 찍으면서 팀원들과 스태프 분들께 인정을 받았어요. 하지만 ‘스피릿’ (이)다윤이형이 기존 멤버와 계속 호흡을 맞춰왔고, 저와는 챔피언 폭이 달라서 형이 계속 출전 기회를 잡은 것 같아요.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쉽지만, 교체 출전할 기회는 언제든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이 아쉽죠.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변하는 것이고, 팀의 승리가 우선이기에 감독 코치진의 판단을 믿어야 해요. 누가 출전할 지 미리 알 수 없기에 언제나가든 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스무살,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 욕심도 제법 있을 법한 나이건만 이재하의 대답은 꽤나 성숙했다. 이재하는 더 앞의 미래를 보면서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출전은 줄었지만, 섬머 시즌에 오히려 스크림에 더 많이 참여했어요. 게임을 하는 방식, 운영법,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좀 더 명확히 알았고, 내년에는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거라 믿고 있어요. 지금은 제가 부족하기에 그 자리를 차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팀 게임은 콜이 중요해요. 밴픽에 따라 동선을 달리 잡고, 각 라인 상황도 끊임없이 체크해야 하죠. 무엇보다 시야 싸움이 중요해요. 시야를 지우고, 상대가 볼 수 없는 곳을 예상하면서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시야 싸움이에요. 프로의 실력을 10으로 치면 시야는 7, 피지컬은 3정도 되는 것 같아요.”



프로 세계에 뛰어들면서 어떤 점을 배웠냐는 말에 이재하는 끊임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게임 내적인 질문에 대해 대답할 때는 거침이 없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 보였다. ‘이 친구는 정말 게임밖에 모르는 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습이었다.

“시야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심리 싸움이에요. 라이너들의 위치를 보고, 내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좀 더 배짱을 부리면서 들어가야 해요. 그렇게 설치한 와드 하나가 상대에게 매우 큰 압박감을 줄 수 있어요. ‘스코어’ 고동빈 선수나 ‘블랭크’ 강선구 선수가 시야 싸움을 정말 잘해요. 이 선수들은 허투루 쓰는 와드가 거의 없어요.

정글러가 콜을 하는 방법은 (이)다윤이형에게 배우고 있어요. 맵이나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방법은 마형이 잘 알려줘요. 미드 라인 주변에 시야를 잡는 방법은 ‘쿠로’형이 알려주고요. 누가 집중적으로 절 가르쳐줬다기 보다는 모든 선수들에게 배움을 받고 있는 편이에요.”



주전 경쟁을 통해 갖는 압박감, 출전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분함,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었다. 하지만 ‘모글리’ 이재하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확신이 있어 보였다. 언젠가는 자신이 기회를 잡고, 뭔가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 이제 막 날개를 펼치려는 새에게는 떨어진다는 공포보다 날 수 있다는 희망이 더 컸다.

“감독님 말씀이 S급 선수가 되려면 운도 따라줘야 하고, 모든 상황이 받쳐줘야 한다고 하셨어요. ‘될 놈은 된다’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이 없고 상황이 맞지 않으면 S급이 될 수 없대요. 지금 해야 하는건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도록 실력을 유지하는 것이래요.

저도 SKT T1처럼 도장깨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야 롤드컵에 갈 수 있으니까요. 아프리카 프릭스에게 마지막 기회에요. 남은 팀들을 모두 이겨서 롤드컵에 무조건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