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리자드의 벤 톰슨 수석 아티스트



"하스스톤이 처음부터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블리자드의 벤 톰슨(Ben Thompson) 수석 아티스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 2014) 강연대에 올라 하스스톤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블리자드가 추구한 점들을 소개했다.

"하스스톤의 미학 : 실제 게임을 하는 것처럼(The art of hearthstone : Playing the cards you're dealt)"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강연에서, 벤 톰슨은 기존 CCG와 달리 하스스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라면서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 하스스톤 개발 과정에서의 4원칙



블리자드가 하스스톤을 만드는 데 있어서 세운 원칙은 총 4가지인데, 그 중 첫 번째가 '사실성'과 '물리적인 현실감'이었다.

벤 톰슨은 카드를 하스스톤이 카드를 수집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우표 수집과 같이 현실 세계의 다양한 '수집' 행위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것들이 '물리적인 현실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체스 게임을 하다보면 각각의 말들의 형태만으로도 어떤 것을 가리키고, 어떤 움직임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 하스스톤도 이처럼 형태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내포할 수 있도록 했으며 플레이어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하스스톤의 플레이 장소는 상자의 형태가 선택되었다. 이는 영화 '쥬만지'에서 보드 게임이 진행되는 놀이판이 상자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착안되었다. 어디든지 상자를 들고 이동하며, 필요하면 게임판을 펼쳐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에게 익숙한 부루마불 같은 보드게임처럼 하스스톤도 상자형태가 기본이었다.



전장도 수차례 수정이 이뤄졌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컴퓨터 카드 게임처럼 카드를 펼쳐놓은 형태였지만, 좀더 현실 세계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렇게 바뀐 디자인은 모든 것이 물리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보드 게임의 형태를 닮아갔다.

예를 들면 마나 비용을 표시하는 것도 작은 서랍에 들어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카드를 전개하는 것도 실제 카드 게임처럼 테이블 위에 카드를 늘어놓는 형태로 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실성이 오히려 게임을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 하스스톤의 초반 전장 디자인. 사실적이지만 다소 복잡한 형태였다.



결국 수차례에 걸쳐서 게임판은 간략화 할 수 있는 만큼 간략화를 거치게 되었다.

현재는 하수인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은 가운데에 두고 영웅들이 각각의 플레이어 앞에 위치하도록 배치했다. 카드는 실제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표시된다.



▲ 복잡한 부분이 많던 과거 버전(좌)과 간소화가 많이 이뤄진 현재 버전(우)



"상점에서 팩을 살 때 부피감 있는 팩들이 쌓여가는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현실 세계에서 팩을 구입하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었죠."

사실성에 대한 부분은 단순히 게임 플레이에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카드 팩을 구입하고 팩을 뜯는 과정에도 이러한 고민은 이어졌다. 현실 TCG에서 팩을 뜯어볼 대의 기대감과 긴장, 그리고 좋은 카드가 나왔을 때의 환희를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 사실감 있는 상점 인터페이스. 카드 수가 늘어나면 묵직하게 쌓인다.



두 번째로 언급된 원칙은 '매력적이지만 기발할 것'이다.

사용되는 카드의 디자인도 다양한 시도를 거쳐 현재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불꽃을 내뿜는 효과인데, 사실 화염은 어느 게임에나 등장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과 또다른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 하스스톤의 강력한 주문인 불덩이 작렬. 정말 맞으면 뼛속까지 불타는 느낌을 준다.



전장의 초기 모습도 지금과는 달랐는데, 초기 버전에 있던 전장 중에 용암이 흐르는 용광로 전장은 재미있고 흥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원칙까지는 충실하기 못했기에 딱 봐도 익숙하고 인간 종족을 상징하는 스톰윈드 같은 곳이 전장으로 채택되었다.



▲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된 용광로 전장



승리화면도 처음에는 이번 게임에서 얼마나 마나를 사용하고, 하수인을 어느 정도 잡았고 하는 식으로 복잡한 통계를 제공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된 승리 화면은 핵심 정보만을 담도록 했다.


"당신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잘 했어요. 카드를 사러 갈 수 있겠네요. 이 정도의 정보만 제공합니다. 사실 이걸로도 충분했어요."



▲ 복잡한 통계는 사라졌지만 승리의 희열은 더 강조되었다.




하스스톤 개발의 세 번째 원칙은 '단순하고 깔끔할 것'이었다. 벤 톰슨은 하스스톤의 시작화면이 이런 원칙을 가장 잘 살리는 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시작화면은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대전과 연습, 투기장 모드와 하단의 팩 열어보기, 내 카드 보기, 상점, 이게 전부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하죠."

옵션 설정 화면도 슬라이드 바, 사각형, 선택 버튼 등으로 단순화 시켰고, 카드 목록 역시 이런 원칙이 적용되었다.

초창기 카드 목록에는 수많은 카드로 복잡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오히려 원하는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기에 한 화면에는 8장의 카드만 보여주게 하고 덱에 넣은 카드와 보유한 카드의 구분을 명확하게 했다. 직업 필터링 같은 부분도 화면 상단에 시각적으로 단순화 시켰다.



▲ 초기 버전의 내 카드 화면(좌)와 현재 버전의 모습. 가독성이 높아졌다.


▲ Simple is Best! 간소한 형태의 하스스톤 메인 화면



영웅 선택 화면도 초창기엔 복잡했는데, 영웅에 대한 설명과 능력치, 영웅별 레벨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같은 정보들이 한 화면에 담겨 있었다. 역시 대대적인 수술이 이뤄졌다.

"이 화면에서 뭘 하는 지 생각해봤죠. 이 화면은 영웅을 선택하는 화면입니다. 그렇다면 영웅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모두 빼버려도 되는 것이었죠."



▲ 사실 통계 정보가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게임을 하는데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벤 톰슨이 말한 마지막 원칙은 '수집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고민은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되었다. 하스스톤의 카드들이 정말 '카드'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트럼프 카드를 보여주면 카드를 섞거나 뽑거나 나누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때문에 굳이 새로운 단어나 용어를 만들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스스톤 또한 카드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수집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카드 형태를 선보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TCG의 포일(Foil) 카드처럼 수집욕을 자극하는 '황금 카드'를 만든 것이나 팩을 개봉하면 카드 등급에 따라 화려한 효과가 나오는 것, 투기장 보상을 획득하기 위해 승수에 따라 달라지는 열쇠 모양 등은 이러한 원칙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 카드 팩을 열 때마다 두근두근한 마음이!



블리자드의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이었을까?

이 질문에 하스스톤을 이미 플레이해본, 또 카드 팩을 수차례 개봉해본 경험이 있다면 'Yes'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카드 게임이라는 장르를 하스스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고, 이를 통해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카드 게임의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완벽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카드 게임은 어렵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깨버린 하스스톤의 비밀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게임의 작은 요소들에서조차 이러한 개발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 복잡한 건 잊어버리고, 재밌게 즐겨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