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디오 게임 씬의 화두 중 하나는 '스토리'다. GDC 어워드에서 2013년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된 라스트 오브 어스(Last of us) 역시 특히 스토리 부분에서 강력한 인상을 줬던 게임. 그래서일까. 올 해 GDC에는 스토리와 내러티브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연이 더 많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GDC에 참가한 개발자들 또한 이런 강연을 듣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있고 엔딩까지 달려가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경쟁하는 형태의 게임에서도 스토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경쟁 게임에서 스토리를 논하면 흔히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는 캠페인 플레이를 통해 전달되는 부분. 싱글 플레이 파트가 없는 게임인 경우에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GDC 4일차, 라이엇 게임즈의 크리스티나 노먼(Christina Norman) 수석 디자이너가 "멀티플레이 경쟁 게임에서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크리스티나는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경쟁 게임에서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게임플레이를 방해하고, 플레이어들도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 게임에서 스토리를 전달할 때 주의해야 하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거슬리게 하지 않을 것. 게임을 멈추거나 연기시키지 않을 것. 집중을 흐뜨러트리지 않을 것. 집중이 흩어지면 죽기 때문이죠. 그리고 팀플레이를 강화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런 원칙 아래 4가지의 비법을 공개했다. 첫번째는 NPC의 대사. 일반적인 게임에서라면 NPC의 대사가 전체적인 게임의 분위기와 캐릭터, 스토리를 전달해줄 수 있지만 멀티플레이 게임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당장 내 캐릭터가 죽었는데 밝은 대사가 나온다거나 하면 분위기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시 각각 변하는 게임 플레이와 대사가 맞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 대사를 듣느라 캐릭터가 죽어버리면 안되죠."








이런 부분을 고려해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들어간 NPC의 대사로, 칼바람 나락의 상점 NPC의 대사가 소개되었다. 상인이 바이 캐릭터를 만나면 "네 언니랑 닮았구나" 하는 대사를 하는데 이는 리그오브레전드의 팬들에게 주목받았던 것.






레딧에는 바이의 언니가 누구냐는 분석글이 올라왔고 수많은 추측들이 이어졌다. 결국 이후 출시된 징크스가 바이와 자매지간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라이엇은 이에 대해 아직 확답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바이와 징크스가 자매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많은 유저들이 스토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이 중요하죠."







두번째 비법은 PC의 대사. 플레이어 캐릭터의 대사 또한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 도구다. 크리스티나는 이에 대해 레프트4데드의 캐릭터 Rochelle을 예로 들었는데,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혹은 다른 캐릭터를 도와줄 때 하는 캐릭터의 말들이 게임 저변에 깔린 스토리를 전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캐릭터의 대사들이 게임 플레이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의 과정 속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번째 비법은 내러티브의 목적성을 부여하는 것. 이를테면 퀘스트는 플레이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앞으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경쟁 게임에서 그런 목표를 제시할 때는 몇가지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목표가 반복되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받으면, 또 배달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게 되는거죠. 팀 게임에서는 그런 목표가 개인과 무관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팀 게임에서 한 사람이 가진 목표가 전체적인 팀플레이를 해칠 위험도 있습니다."




스토리를 경험하게 하면서도 게임플레이에 녹아들어갈 것, 그러면서 양 팀 모두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크리스티나는 리그오브레전드에 도입된 카직스와 렝가 챔피언의 관계가 바로 그런 부분을 고려해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카직스와 렝가는 모두 사냥꾼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카직스는 성장할 수록 특정 부위가 진화하는 형태를, 렝가는 사냥에 성공할 수록 렝가의 목걸이가 더 좋은 성능을 띄게 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챔피언이 서로 상대 팀으로 만나는 경우에 '사냥 시작' 이라는 버프가 나타나게 되고 이후 서로를 쓰러뜨리는 히든 퀘스트가 발동하게 된다. 이 퀘스트에 성공하게 되면, 카직스는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완전체로의 진화가 가능해지고 렝가는 기본 목걸이 대신 카직스의 머리를 목에 걸게 된다.










"이 퀘스트는 경기마다 발생하는 게 아니고, 두 챔피언이 서로 다른 팀에 선택되었을 때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또 똑같은 퀘스트야?'하는 느낌을 주지 않게 됩니다. 아마 실제로 이렇게 챔피언이 선택되서 진행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 거고요. 또 팀 전체에 해당되는 퀘스트가 아니라 렝가와 카직스에만 적용되는 것이라 다른 팀원들이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또 사냥 시작 퀘스트는 꼭 두 챔피언이 1:1로 이겨야 하는 게 아니라 팀 플레이 중에 다른 팀원의 도움을 받아도 되기 때문에, 팀 플레이를 방해하지도 않죠."

이 역시 리그 오브 레전드 팬들이 두 챔피언의 관계와 히든 퀘스트가 발동하는 조건 및 보상 등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정보로 공유하는 2차적인 효과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 관련기사 : 지금까지 없었다! 게임으로 구현된 렝가 VS 카직스 천적 관계(12.09.25)





마지막 비법은 스토리와 관련된 이벤트를 여는 것. 크리스티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안퀴라즈 이벤트를 꼽았다. 안퀴라즈 이벤트는 서버 전체의 유저들이 힘을 합쳐 일정 조건에 도달하면 안퀴라즈 사원의 문이 열리는 서버 전체를 아우르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런 형태는 경쟁 게임의 플레이에 방해를 줄 수 있고, 모든 팀원이 이런 이벤트에 참여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이와 관련해 성공적인 사례가 있을까? 그녀는 프렐요드 대격변 업데이트와 함께 진행된 '부족 선택' 이벤트를 소개했다.

새로운 챔피언 신드라, 새로운 전장 칼바람 나락의 공개와 맞물려 진행된 부족 선택 이벤트는, 프렐요드의 세 부족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골라 10번의 게임에 승리하면 해당 아이콘을 영구히 소장할 수 있게 했다.

"이 이벤트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별개의 층위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또 하고 싶은 사람만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되 되었죠. 하지만 다들 이렇게 말했어요. 공짜잖아? 왜 안해?"






공짜 아이콘을 획득할 수 있는 이 이벤트가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했을까? 85%의 플레이어가 참가하면서 성공리에 끝난 이 이벤트의 결과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라이엇은 이후 추가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프렐요드 챔피언들의 소속 부족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벤트 전에 50% 미만이었던 '알고 있다'는 대답이 이벤트 후에는 64%까지 증가했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런 수치가 6개월이 지난 후에 다시 조사했을 때도 유지되었다는 것. 그만큼 이와 관련된 세계관과 스토리가 잘 전달되었다는 뜻이었다.




"제가 소개해드린 방법들은 사실 굉장히 일부에 불과할 겁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방법들이 있을 거예요. 여기에 소개해드리지 못했지만 타이탄폴에도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후의 영역은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영역이겠죠."

크리스티나는 마지막으로 얼마나 플레이어들이 스토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통해서 플레이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는 것이 게임 개발자들이 가져야 할 목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