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입니다. 정말 바보 같은 의문이지만, 항상 마음속에서 간직하고 있었던 궁금증이 있습니다. '슈퍼맨이랑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혹은 '다간과 라이징오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와 같은 의문들이었죠.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나곤 합니다.

세계관을 넘나드는 한판 승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흥분을 안겨줍니다. 가장 가까운 소재로는 최근 속편의 한국 촬영이 결정되면서 많은 이들의 심장을 데우고 있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있겠지요. 어벤져스 시리즈는 '헐크와 아이언맨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블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많은 팬들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죠.

블리자드는 한국인들에게 애증을 동시에 안겨주는 게임 제작사입니다. 한국의 게임시장을 뒤흔들었던 '스타크래프트' 이전에도 블리자드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게임 제작사였습니다. 어렸을 적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디아블로를 즐기던 게이머들이 현재 사회의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그만큼 욕도 많이 먹은 제작사가 블리자드입니다. 디아블로3 발매 당시 'error 37'사건으로 허망하게 모니터만 바라보던 이들이라면 분명 한 번쯤은 원망해 보셨을 테지요.

▲ 아 왜!


그런 블리자드의 주축이 되는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그리고 디아블로 시리즈. 이 세 타이틀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던 제라툴과 디아블로의 진검승부, 그리고 드워프 왕인 무라딘과 칼을 맞대는 야만용사를 볼 수 있는 무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Heroes Of the Storm 이하 히어로즈). 알파 버전 계정을 어렵사리 손에 넣은 기자가 히어로즈의 느낌을 여러분께 최대한 전달해드리려 합니다.

▲ 공포의 군주도 총 많이 맞으면 죽더군요.


◈ 히어로즈? 그게 뭐 하는 게임이래요?

'히어로즈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역시 저는 '캐릭터'라고 하겠습니다. 디아블로를 처음 경험해본 시절부터 도살자에게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 본 경험이 있는 기자로서는 블리자드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그 사실 하나로도 이 게임에 흥미를 느끼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문화 콘텐츠는 단순히 한 점을 가지고 평가할 수 없지요.

일단 히어로즈의 면면을 봅시다. 게임 로비 화면에서 우리는 친숙한 시스템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계정 레벨 시스템'입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계정 레벨이 오르고, 더 많은 선택지가 열리는 시스템입니다. 뭐 이 정도는 요즘 많은 게임에 적용되어 있는 부분이니 넘어가도록 하지요.

▲ 기자의 계정 레벨은 9입니다. 레벨 올리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SHOP이라는 버튼이 보입니다. 버튼을 누르고 들어가 보니 맙소사. 기존 블리자드의 게임에서 보던 영웅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었군요. 게임을 하며 모은 돈으로 영웅들과 스킨, 등등을 구매할 수 있죠. 알파 버전임에도 벌써부터 현금 결제가 되는 것은 좀 신기하긴 합니다. 나중에 배틀코인으로 다시 환급해 준다더군요.

▲ 공포의 군주 형님은 생각보다 비싸서 살 수 없었습니다.


신기한 점은 영웅을 사기 전에도 충분히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죠. 이 부분은 유저들이 영웅이 맘에 안 든다며 청약철회를 요청하게 될 일을 많이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실전으로 들어가 봅시다.

▲ 하지만 사지 못해도 해볼 수는 있죠. 동물을 사랑합시다.


▲ 디아블로3 초창기, 불지옥에서 스치면 죽었던 그 기술 맞습니다.


▲ 현재는 세 가지 모드를 즐길 수 있습니다.


게임 화면은 매우 깔끔했습니다. 사실 작년 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2013 당시 플레이했던 때와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짜잘한 인터페이스의 변화는 있었지만,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없었죠. 물론 블리자드 맛이 나는 화면 구성도 여전했습니다. 약간은 과장되어 보이는 영웅들의 모습과 밝은 원색을 주로 사용한 화면 구성이죠. 그 외에 화면 구성은 다른 AOS 게임들과 크게 다를 점이 없어 보입니다.

▲ 시험용 영웅은 패륜의 아이콘 리치왕으로 정했습니다.


▲ 칼날 여왕을 혼내주었습니다.


히어로즈만의 특이한 점을 꼽자면, 전장이 여러 곳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다른 AOS 게임 중에도 여러 전장을 보유한 게임들은 있습니다. 다만 히어로즈의 경우 선택권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유저들은 대기열을 신청한 후 랜덤으로 정해지는 전장에서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 시작 전 로딩화면에서 목표를 잘 알려줍니다. 이번 목표는 용기사군요.


그리고 그 다양한 전장마다, 히어로즈만의 매력이 가득 숨어있습니다. 히어로즈는 맵 상의 다양한 오브젝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그 종류 역시 다양하죠. 두 곳의 성소를 차지한 후, 강력한 용기사를 소환하는 전장이 있는가 하면, 불쌍한 몬스터들의 돈을 뺏어 유령선에게 포격을 요청해야 하기도 합니다.

▲ 두 성소를 확보한 후


▲ 모두의 염원을 모아 용기사를 소환합니다 얃!


▲ 그 후엔 건물이고 영웅이고 신나게 두들겨 패주면 됩니다. 캬하하!


그 외에도 지하 세계에서 해골을 모아 강력한 무덤 골렘을 소환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전장이 있는가 하면, 상대에게 까마귀 군주의 저주를 내리기 위해 맵 곳곳을 뛰어다녀야 하는 전장도 있습니다.

▲ 본격 저주 걸기 한판승부


이런 맵 오브젝트는 히어로즈만의 매력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플레이어들은 상대 영웅을 처치하기 위해 매복을 한다던가, 충분히 성장하기 위해 상대와의 전투를 회피하는 행동을 일체 할 여유가 없습니다. 오로지 어떻게든 빨리 맵상의 오브젝트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투가 벌어지고, 게임의 흐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갑니다.

공동으로 획득해 공유하는 경험치 또한 이 부분과 잘 맞물립니다. 히어로즈의 팀은 개개인의 성향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한 사람이 활약해 게임을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보기 힘듭니다. 다른 AOS 게임에서 5인조 팀이 2인분을 하는 사람과 0.5인분을 하는 사람이 골고루 섞여 있을 수 있다면, 히어로즈에서는 모두 다 똑같이 1인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논해 보도록 하지요.

▲ 미니맵 상단의 파란색, 붉은색 바가 양 팀의 경험치와 레벨을 나타냅니다.


아이템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습니다. 하다못해 그 흔한 빨간 약 파란 약, 즉 포션의 개념조차 없지요. 영웅들은 쏟아지는 미니언을 잡다가 나오는 치료 구슬과 스킬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대신 히어로즈는 일정 레벨마다 각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플레이어는 그중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택하며 영웅을 성장시켜 나가게 되죠.

▲ 영웅의 성장 시스템은 매우 간소화되어 있습니다. 아 언어의 장벽...


▲ N 버튼을 누르면 선택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아 영어...


그렇게 상대의 건물을 모두 파괴하면 게임은 끝이 납니다. 한 게임이 진행되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 AOS 게임치고는 굉장히 빠른 페이스로 진행되었지만, 나름 재미는 충분했지요. 자 이제 게임의 내적인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눠 볼 시간입니다.


◈ 히어로즈 아직은 좀 더 두고 봅시다.

AOS(MOBA라 칭하기도 하지만, 본 기사에서는 AOS로 지칭하겠습니다.)는 RTS와 RPG의 요소들을 따온 후 융합해 만들어진 장르입니다. 그 범위 역시 어느 정도 정형화되었죠. 실시간 전략 게임(RTS)에서는 전략성과 시점, 그리고 게임의 포맷을 가져왔습니다. AOS의 시작이 RTS의 유즈맵에서 분화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죠.

▲ RTS + RPG = AOS


그리고 RPG에서는 영웅의 육성과 아이템 개념, 그리고 RPG의 정체성과도 같은 '역할 분담'이란 개념을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팀플레이라는 요소를 넣고 이리저리 섞으면 AOS라는 요리가 딱! 하고 나오는 것이죠.

히어로즈는 여기서 RPG의 맛이 나는 양념은 대거 빼버렸습니다. 어디 볼까요? 일단 아이템 개념을 싹 빼버렸군요. 게다가 모든 경험치를 팀원들이 똑같이 분배받습니다. 열심히 적과 싸우는 팀원도, 기지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팀원도 동일한 속도로 성장합니다. 그래도 아직 역할 분담의 요소는 살아있군요. 이어 히어로즈는 몇몇 가지 블리자드맛 양념을 별첨으로 넣었습니다. 가장 뚜렷한 맛을 내는 요소는 '다양한 전장'입니다. 이로 인해 겉보기에는 타 게임과 비슷해 보이는 히어로즈는 완벽하게 다른 게임으로 거듭났습니다.

히어로즈가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무기는 '무자비할 정도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영웅들'입니다. 솔직히 블리자드의 팬이라면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블리자드의 골수팬들에게 히어로즈는 꿈에서나 그리던 게임입니다. 오그리마 은행 앞에 앉아 '전투 순양함이 오그리마 하늘에 나타날 날이 올까?'하며 농담이나 하던 와우저도, 어느 순간 떨어질지 모르는 전설 아이템의 주황색 빛줄기만을 노리고 수 없이 악마를 때려잡던 디아블로 유저들도 바라던 드림 매치니까요.

▲ ㅠㅠ 사랑해요. 다 좋아요. 결혼해주세요.


게다가 히어로즈는 엄청난 캐주얼성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배틀넷 클라이언트 접속 후, 실전 투입까지 몇 번의 클릭이면 충분합니다. 현재야 비공개 상태이지만, 오픈 베타가 진행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쉽게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겠죠. 더불어 게임 한 판의 시간도 굉장히 짧으며, 게임을 잘 못해도 남들보다 영웅 성장이 늦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 역시 많습니다. 제일 먼저 다가오는 문제는 '캐리'를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타 게임에서는 팀원들의 실력이 저조하더라도, 내 실력이 좋다면 얼마든 상황을 뒤엎을 수 있습니다. 반면 히어로즈는 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미드 라인을 솔로로 가든, 봇 라인을 세 명이서 가든 다 똑같은 속도로 성장합니다. 아니 아예 어떤 전장은 미드 라인 자체가 없습니다.

▲ 팀이 망했다면, 나도 같이 망한 겁니다.


더불어 '동시 성장'이라는 요소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바로 게이머들이 "아 좀 있다가 와도 다른 사람들이 키워놓겠지. 밥이나 먹고 와야겠다."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게이머를 착한 게이머로 상정한다면, 블리자드의 노림수는 분명히 먹힙니다. 캐주얼하면서도 초보들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으로 거듭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모든 게이머는 착하지 않습니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대학 조별과제를 들어 보죠.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어영부영 하다 보면 팀이 망하고 교수님 시선에서 아웃당합니다. 몇 판 안 되는 게임을 하면서도 이렇게 자리를 비운 플레이어들을 여럿 본 걸 생각해볼 때 이는 충분히 현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이런 고의 트롤러들에 대한 대책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리뷰를 마치며...

장점과 단점들을 논해 보았지만, 히어로즈가 분명 흥미로운 게임이라는 것에는 게임을 즐겨본 기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었습니다. 사실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엔 너무 이른 시기이기도 하죠. 현재 공개된 버전은 베타 버전도 아닌, 개발자용 알파 버전이니까요.

기존 AOS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나는 게임. 블리자드표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AOS. 히어로즈에 대한 기자의 느낌은 이 정도였습니다. 물론 많은 부분이 변화할 것이지만, 우려되는 부분과 놀라웠던 부분에 대해 최대한 기술해 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여러분들의 판단입니다. 진짜 히어로즈의 맛은 언젠가 우리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그 날, 여러분의 오감으로 직접 느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Yeah! R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