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똥을 쥐어짜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베어 그릴스를 보며 환호하는 시청자들. 눈은 찌푸리지만, 손으로는 다음 편을 내려받는 사람들이 있다. 야만적이기까지 한 1차 생존술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복잡해지자 생존의 방법 역시 진화되었다. 학교는 이제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친구들을 찍어 눌러야 한다는 텁텁한 공식만 외우게 한다. 회색 성장기를 거치며 자라난 사람들에게 코끼리 똥을 짜는 베어 그릴스의 모습은 독특한 카타르시스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은 모험심 많은 게이머에게 판타지로 비쳤다.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여 일차적인 생존술을 체험하는 게임들도 꾸준히 등장해 왔다. 다만, 기본적으로 오픈월드 및 샌드박스 시스템을 채용해야 한다는 제약 아닌 제한이 있었고, 이런 알고리즘을 유지하며 재미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자칫 특색 없는 게임이 없을 가능성도 있었다.

본격적인 붐은 '데이즈'로 시작했다. 모드 게임이었지만, 현실감으로 유명한 '아르마2'를 원작으로 하여 생생한 긴장감이 살아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채용한 것도 좋았다. 결국 '데이즈'는 생존 게임을 게임업계의 새로운 블루 오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게임들은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생존물 중 뚜렷한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다. 한가지 당부하자면, 다소 잔혹한 장면들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산다는 게 잔인한 거 말 안 해도 다 아는데, 몇몇 게임은 그걸 그대로 보여준다.






절대 싼 약은 안 드시는 '페이스펀치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그들이 만든 전 작품이 저 유명한 '게리 모드'인 만큼, 약의 품질은 충분히 검증된 상태.

'러스트'를 간단하게 풀어보면, '마인크래프트'식 샌드박스 시스템에 생존 요소를 더한 것이다. '마인크래프트'도 생존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러스트'는 그 부분이 훨씬 섬세하다. 적은 다양하다. 그리고 예상을 거부한다. 우울한 마스크로 돌아다니는 좀비보다 신경 써야 할 게 있으니까. 바로 '인간'이다.

'러스트'가 화제를 모았던 이유는 '게리 모드' 개발진의 신작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플레이어 간 약탈을 공식적으로 허용한다는 게 더 컸다. 좀비, 그리고 타인을 적으로 한다는 데서 '데이즈'와 유사하지만, '러스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세상 무엇보다도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반쯤 썩은 시체는 정신 놓아버린 플레이어 앞에서 명함도 내밀 수 없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느껴지는 원초적인 긴장감이 여기서 온다. 어딘가에서 나를 보는 축축한 시선. 좀비는 흉내 낼 수 없는 그 느낌. 이제 막 '러스트'에 던져진 당신을 바라보는 '선배'들의 눈이다.

기름 얼마 안 남은 횃불, 그리고 짱돌 하나 쥔 당신은 엄연히 약자다. '러스트'는 그런 어린 양들을 절대 감싸주지 않는다. 모르면 죽어라. 죽으면서 배워라. 배우다 안되면 더 죽어라. 그러면서 늑대가 되라고 강조한다. 이런 성장 과정이 부담스럽다면 Non PvP 서버에서 시작하자. 경제와 법이라는 울타리는 있고 늑대가 없는 세계다.

무법 사회, 힘이 전부인 세상이 어떤 건지 경험하고 싶다면 PvP 서버를 추천한다. 여기서도 평화적인 대화가 통할 거라 믿을 수 있겠다. 처음엔 나도 그랬으니까.

3시간쯤 하면 보인다. 보급상자 하나 먹으려 돌멩이로 다른 사람 머리를 연신 찍어 내리는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놀라지 마라. 이 게임 원래 그렇다. 놀랄 정도로 단순하며, 소름 끼칠 만큼 잔혹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한국인이 보인다면 그 즉시 도망쳐라.






이 게임은 출시되지 않았다. 리스트에 추가한 이유는, 그간 공개된 트레일러와 스크린샷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 콘셉트만 놓고 보면 '생존' 게임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

무대는 숲이다. 한국 귀신들도 꽤 자주 등장하는 곳이지만, 유독 서양 연쇄살인마들이 '사람 잡기 좋은 명당'으로 집착하는 장소랄까. 스크린샷을 보면 알겠지만, '포레스트'의 배경은 무겁다. 울창한 숲 사이를 거닐며 광합성을 내려받는 그런 곳이 아니다. 여자친구랑 들어가 축축한 눈빛을 교환하는 데는 더더욱 아니고.

숲의 압박감은 음험함과 미스터리로 이루어졌다. 수풀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축축한 공기 사이에 어떤 냄새가 끼어 있는지, 잎사귀가 어느 방향으로 흔들리는지 온 신경을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먹먹한 이곳에서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게 플레이어 혼자라면 그나마 안심이겠지만, 불행히도 이 숲에는 당신 혼자만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비행기 사고로 표류해 들어온 이 숲에는 예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 있었다. 당신에게 우호적이지는 않다. 사람을 저녁 수프로 끓여 먹는 법도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감이 온다. '포레스트'의 기본적인 틀은 다가오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

생존 과정에 샌드박스의 기본 소양이 갖춰졌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비를 막기 위해 움막이라도 지어야 하고, 어둠을 피하려면 불이 필수다. 겨우내 버틸 양식을 못 마련한 다람쥐처럼 오돌오돌 떨면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사냥도 익혀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오브젝트의 분해 및 제작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래픽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등장한 샌드박스형 게임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주며, 실제 숲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환경 변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구현되어 있다. 낮과 밤 적용은 기본, 여기에 다양한 날씨도 묘사될 예정이다. 심지어 수풀이 자라고 죽는 것까지 구현되어 있다고.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포레스트'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정식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대폭 향상된 긴장감을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심장 약한 사람이라면 쓰는 걸 말리고 싶다.

생생한 배경에 취하지 말자. 수프가 되는 건 금방이다.

* 잔인한 장면이 있으니 청취에 주의 바랍니다.






수많은 좀비 아포칼립스 생존 게임들을 두고 왜 이 게임을 리스트에 올렸냐고? 간단하다. 그래픽이 정말 끝내주니까.

'러스트'와 '포레스트'가 현실에 가까운 그래픽을 선보였다면,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노스텔지어 그 자체다. 도트가 톡톡 튀는 고전적인 그래픽. 굳이 비슷한 그래픽을 꼽으라면 크리스 소여(Chris Sawyer)가 만든 '롤러코스터 타이쿤' 정도겠다.

2000년대 후반부터 게임을 즐긴 유저라면, 이런 고전미 충만한 그래픽이 무슨 매력을 주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래픽이 단순할수록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클래식 '파이널 판타지', 혹은 6편 이하의 '울티마'가 좋은 예다. 도트 덩어리를 때려잡는데도 희열이 쏟아졌던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물론,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외형만 놓고 전설과 나란히 세울 순 없다. 그렇지만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인디 게임으로 성장한 '마인크래프트'가 스플래시로 이 게임을 추천한 만큼, 어느 정도 게임성에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진행 방식은 다른 생존 게임과 마찬가지다. 플레이어의 죽음은 게임의 엔딩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플레이어를 죽이고자 하는 나쁜 놈들이 너무 많다. 언제 봐도 정떨어지는 좀비들은 우리네 이웃을 모조리 잡아먹고 디저트로 당신을 선택했다. 뭐, 다행히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좀비처럼 그리 영리하지는 않다만… 플레이어를 죽이러 오는데 온갖 정성과 성실함을 쏟는다는 건 암울한 소식.

멍청하다고 방심하지 말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세계대전 Z'는 쓸만한 교훈을 줬다. 녀석들의 숫자는 언제나 변수가 될 준비를 마쳤다고.

This is How You Died - 이렇게 당신은 죽었다.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표어 중 하나다. 여기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데이즈'는 원작을 뛰어넘는 인기를 보여준 대표적인 모드 게임이다. 하드코어 밀리터리 FPS 게임 '아르마2(ARMA2)'의 모드로 시작한 '데이즈'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많은 매니아를 만들었다.

2013년 12월 17일 출시된 스탠드 얼론 버전은 모드 버전 '데이즈'에 비해 수려해진 그래픽이 특징이다. 아르마 특유의 분위기는 스탠드 얼론 들어 거의 지워졌고, 좀비 소굴 특유의 꿉꿉한 느낌이 더욱 짙어졌다. 더욱 정밀해진 커스터마이징은 덤.

사용 가능한 오브젝트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게임의 전체적인 볼륨도 늘어났다. 이렇게 되면 기존 팬들이 올레를 외치며 달려들어야 정상이지만, 뜻밖에 유저들의 평가는 혹독한 상태. 요즘 유행인 티가 안 나는 성형으로 외형도 다듬었지만, 모드 시절 유저들이 가장 원했던 내실 보강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버는 여전히 늘어지고, 게임 자체의 최적화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 조작감 향상으로 몰입감을 더해주길 바랐던 팬들의 열망 역시, 한 치의 오차 없이 날려버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많다고 해서 '데이즈 : 스탠드 얼론'이 망한 게임이라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좀비 아포칼립스 서바이벌을 유행시킨 작품이며, 그 재미의 핵심은 여전히 쥐고 있으니까.

혜성같이 등장한 '러스트'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팀 동시접속자 수 10위권대를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재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샌드박스 요소는 다소 적지만 생존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섕크', '마크 오브 더 닌자'를 제작하며 자신만의 색을 보여준 '클레이 엔터테인먼트'의 신작이다. (다른 작품들도 몇 개 더 개발했지만, 한국에서는 조용히 뭍혔다.)전작 중 '마크 오브 더 닌자'가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 줬기에 신작 '돈 스타브'에 걸린 기대치도 큰 편이었다.

전작들은 선형적 플레이를 보여준 액션 게임이었다. 그래서 차기작으로 비선형적 생존 게임 '돈 스타브'를 발표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 특히 '마크 오브 더 닌자'는 인디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게임 디자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선택이 자칫 만용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스팀으로 '돈 스타브'의 알파 테스트를 즐겨보고 나서는 이러한 걱정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꽤 괜찮았으니까. 클레이 특유의 카툰 풍 그래픽은 이 작품으로 정점을 찍은 듯했고, 조작감도 자연스러웠다. 팀 버튼의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캐릭터 디자인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작년 4월 23일에 출시될 당시에는 그리 많은 콘텐츠가 있지는 않았다. 생존 게임은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인데, 상호 작용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너무 적었으니까. 신선한 그래픽만 튈 뿐, 게임으로서의 품질은 다소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래도 출시된 뒤 꾸준하게 살을 붙였고, 지금은 여타 생존 게임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은 깊이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알려주자면, '돈 스타브'는 싱글플레이 전용이다. 코옵도 온라인 멀티플레이도 없다. 오로지 혼자 즐겨야 한다. 즉, 플레이어의 생존을 방해하는 것에 다른 유저는 포함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게임들에 비해 긴장감 면에서 다소 떨어질 수 있겠으나, 스트레스 안 받고 진득하게 플레이하길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