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 MLB의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는 유명합니다. 춘추시대 오왕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씹으면서 고통을 되새긴 끝에 복수에 성공했지요. 그 뒤로 이 말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흔히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굴곡을 야구만큼 잘 느끼게 만드는 스포츠가 있을까 싶습니다. 한 해를 완전히 망친 선수가 이를 악물고 훈련을 거듭해서, 다음 시즌 완전히 다른 존재로 돌아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합니다. 어제 승리의 주역이 오늘 패배의 주역이 되기도 하고, 실수만 거듭하던 선수가 역전 끝내기 홈런을 쏘아올리기도 합니다.

계절이 돌아오듯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야구장에 관중이 찾아드는 만큼 야구 게이머도 찾아옵니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손꼽아 기다린 팬들만큼이나, 새롭게 내놓은 게임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개발진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타석에 들어섰을까요.

2014년, 모니터 속 그라운드를 중계해봤습니다. '프로야구2K14'를 비롯해 '프로야구 매니저', 'MVP 베이스볼온라인이 이번 주인공입니다.



■ 그들은 왜 시즌을 새롭게 준비해야 했을까


연말 기획기사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야구게임은 언제나 수요가 있어요. 하지만 입문자를 데려오기 가장 힘든 것이 야구게임이기도 합니다.

스포츠 장르에서의 야구는 보드게임에서 바둑이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합니다. 알면 알수록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룰을 파악하기 전에는 야구 게임을 꾸준히 플레이할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 몇 없지요.

축구는 패스와 슛만 알면 게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농구는 그보다 까다롭지만, 농구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손맛이 있고요. 야구는 조작부터가 힘듭니다. 투구와 타격을 익숙하게 하는 동시에, 공의 상황을 판단하고 찰나의 순간에 개별 주자의 진루와 귀루를 결정해야 합니다. 특히 실사 야구에서는 공을 맞추는 타격 자체가 어렵습니다. 복잡한 각종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초심자들로서는 그저 어지러운 일이지요.

작년 역시 높은 퀄리티를 내세운 3개의 실사 야구게임이 동시에 출전했지만, 그중 둘은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고배를 마셨습니다. 소질에 맞지 않는 게이머는 시작 자체를 하기 힘든 것이 야구게임의 세계입니다. 충성스럽지만 폭이 좁은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비슷한 게임 다수가 동시에 뛰어들었으니, 희생되는 게임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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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포츠맨십의 기본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지요. 네, 그들은 다시 한번 칼을 갈았습니다. '이번 시즌은 다르리라'라는 생각, 누구나 하는 것이겠지요. 실제로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겨버린 게임들을 셋 발견했습니다. 공통점도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도 즐겁게'가 그것입니다.

마케팅 전략을 바꾼 경우에서부터 게임을 아예 다시 만든 경우까지 다양합니다. 부진한 선수마다 처방이 각각 다르듯, 야구 게임들은 각자 특성에 맞게 타격폼을 고쳐 나왔습니다. 그들의 변화를 하나씩 소개합니다.



■ "최고의 진화는 '재탄생'이다" - 프로야구2K14

▲ 변화구의 귀재 이대호 투수를 키워보고 싶지 않은가?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는 수준이 아닙니다. 전신 성형수술도 아닙니다. 사전 의미 그대로, 다른 게임이 되었습니다. '프로야구2K'가 '프로야구2K14'로 '환생'했습니다.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실사 야구 3파전 당시, 세 게임의 퀄리티 자체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초보 유저 접근성에서 밀린 것이 '프로야구2K'입니다. 결과는 암담했습니다. 제대로 이름도 알려보지 못한 채 명맥만 유지되었고,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나 싶었지요.

처음 발표된 바로는 올해 1월에 업데이트 계획이 있었고, 아마 전면적인 개편 정도를 하지 않을까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늦춰지더니,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은 예상 밖의 결과였지요. 네오플 주도 아래에서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한 겁니다.

굉장히 이례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좋은 성적의 게임을 새로 개발해 후속작으로 삼는 일이야 흔하지요. 그런데 출시 1년도 지나지 않아 큰 그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예 새롭게 게임을 만들어버린 사례는 또 언제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이 게임을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 모델링 역시 새로 구현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온라인 야구게임 중 가장 흡사'하다고 개발진이 주장하는데, 틀린 말 같지 않습니다. 모델링된 선수 얼굴을 보는 순간 헉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모션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제 구장이나 모션, 모델링 부분에서 현존하는 야구 게임 중 최고 퀄리티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 삼성 박한이 대기타석 특이폼


조작법도 개선되었습니다. 키보드로만 조작하던 기존 2K시리즈의 방법은 숙련자에게 무한한 손맛을, 초심자에게는 무한한 장벽을 선사했습니다. 이제는 마우스로 기본 조작이 가능하고, 그 방법도 직관적입니다. 가장 입문하기 어렵던 게임이 가장 쉬운 현관문을 마련한 것이지요.

'마이 플레이어 모드' 추가는 화룡점정입니다. 사실 조금 이상했지요. 2K 시리즈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가 마이 플레이어고,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 조작 난이도거든요. 작년 '프로야구2K'는 조작법을 가져오고 마이 플레이어 모드가 없는, 한 마디로 청개구리 같은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그것이 이제 정확한 퍼즐로 맞춰진 느낌입니다.

현재 마이 플레이어 모드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특히 홈런왕 류현진을 키우는 비중이 가장 높고, 발빠른 유격수 이대호나 선발투수 진갑용 같은 이색적인 조합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선수의 이름과 모습으로 색다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마련된 콘텐츠가 다양하다는 것이 호응을 불러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뭘 해도 안 되는 선수가 있습니다. 타고난 소질 자체가 부족한 경우지요. 반 농담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선수도 있다고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가능한 말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프로야구2K14'는 가장 파격적인 동시에 가장 정확한 길을 찾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 감탄을 자아내게 한 두산 유희관의 모델링





■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전략으로" - MVP 베이스볼온라인


작년 밀물과 썰물이 이어진 실사 야구게임 전쟁에서, 근성 있게 버텨낸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인벤 순위 기준으로 2012년 말 14위까지 올라간 저력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 게임이야말로 어쩌면 실사 야구게임의 한계를 가장 크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나가는 승리자가 아니라, 어려운 팀을 외롭게 이끄는 소년가장의 모습이었지요. 다른 게임들이 워낙에 저조했을 뿐, 'MVP 베이스볼온라인' 역시 지난 시즌 겨우 평균 성적에 이르는 정도였습니다.

결국 비시즌 동안 '보수공사'가 들어갔습니다. 우선 그래픽을 보강하고, 요청이 쇄도했던 날씨와 야간 경기 설정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카우트로만 선수를 영입해야 했던 단점을 없애 유저끼리 이적시장을 열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타겟층 공략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좁은 수요층을 넓히는 일이 필수였습니다. 여기서 최근 BJ 열풍이 결합하게 됩니다. 아직 실사 야구게임을 많이 접하지 못한 젊은 층에게 야구의 재미를 알려줄 가장 좋은 수단이었고, BJ간의 대결 구도는 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최고의 이벤트였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13일까지 진행되는 '스타 BJ 슈퍼매치'는 영리한 기획이었습니다. BJ 양띵과 악어, 대정령과 머독이 대결한 지난 30일 방송에서는 누적 시청자 8만 2천 명을 기록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리기보다 일정 계층의 유저에게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 "손 보기 어려운 곳, 대수술을 결정하다" - 프로야구 매니저

▲ 재계약이 사라졌다, 선수 성장은 그대로

한때야구 매니지먼트 게임 붐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원흉은 바로 '프로야구 매니저'였지요. 그 아성을 위협하거나 잠깐 넘어선 게임이 여럿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현재는 다시 외롭게 혼자 남아 있지요. 어떤 매력 때문인지 하나를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개인적 느낌을 말하자면 디자인과 직관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프야매'가 정체 상태에 놓인 것은 사실입니다. 진입 장벽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경력의 헤비 유저들은 팀 전력이 우주로 갈 수밖에 없고, 라이트 유저를 위한 사다리가 너무 길어도 짧아도 문제가 생깁니다. 헤비 유저는 또 나름대로 그동안 들인 비용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 시기입니다. 게임을 쉬다가 복귀하는 유저는 상대 전력과 자금의 압박에 다시 무릎 꿇곤 하지요.

이 딜레마는 시스템 본연의 성질에 기대고 있습니다. 해결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요. 골치 아픈 시스템을 두고 엔트리브가 낸 해답은 바로, "없애버리자!" 였습니다.

시즌 개막 직전 '프야매'가 던진 승부수는 꽤 묵직했습니다. 신규 카드 추가는 덤일 뿐, 게임의 근간이 되던 재계약 시스템을 폐지한 것이 가장 커 보입니다. 재계약 비용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계층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순위표를 언제 어디서나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등 세심한 배려들도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 모바일 앱 개편도 함께


게임의 유저는 보통 네 가지 경우 중 하나입니다. 신규와 복귀 유저, 그리고 라이트 및 헤비 유저입니다. 온라인게임이 오래 되면 그중 한두 군데에는 필연적으로 균열이 생깁니다. 운영진이 정치의 달인이 아닌 이상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은 정말 어렵거든요.

그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 골수를 건드리는 대수슬을 한다는 일, 신중한 동시에 대담해야 합니다. 일단 '프야매'는 과감하게 질렀습니다. 동시에 이례적으로 위시팩까지 지급했고요. 일단 지금까지 반응은 뜨겁습니다. 신규 및 복귀 유저는 얼마나 더 찾아올까요. 시즌은 초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