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가 어렵다 어렵다 했지만, 2013년은 그 어려움이 유독 도드라졌습니다. 대규모라 불리는 개발사 중에서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추운 겨울을 보낸 곳이 많았고, 중소 업체는 말할 것도 없었지요. 여기에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4대중독법' 논란 등 외풍도 겹치면서 게임업계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힘든 행군 속에서 올해 역시 많은 게임이 나왔고, 적어진 파이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모두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조금만 잘 풀렸으면 결과가 달랐을 텐데 싶은 게임이 많았습니다. 아쉽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하지요.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에 더 좋은 게임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히 미련이 많이 남은 6개 게임을 다섯 가지 테마로 살펴봤습니다.



1. 던전스트라이커 : 맛있는 카레를 만들었는데, 밥이 없었네

▶개발사: 아이덴티티게임즈
▶퍼블리싱: NHN엔터테인먼트
▶장르: 액션 MORPG
▶서비스: 2013년 5월 15일 오픈 ~ (서비스 중)



올해 상반기 기대작 중에 '던전스트라이커(이하 던스)'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지스타 2012에서 핵앤슬래시 액션과 예쁜 그래픽, 신선한 육성 시스템을 보여주면서 단박에 슈퍼스타로 떠올랐지요. 최대 동시접속 7만 명까지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초반 분위기는 그 어떤 아성도 무너뜨릴 기세였지요.

하지만 상승세는 한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한번 하락세로 돌아서자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태양의 항구 업데이트로 다시 러브콜을 보냈지만, 몇 달을 준비한 콘텐츠는 순식간에 소모됐습니다. MORPG의 고질적 난관인 콘텐츠 문제에서 특히 힘을 쓰지 못한 것이지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지목하고 싶은 점은 딱 하나입니다. 매력적인 시스템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말았어요. 한 캐릭터가 여러 직업을 오가며 자신만의 스킬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이 게임을 설명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꿔 말하면, '여러 캐릭터를 키워볼 이유가 없다'가 되어버린 것이죠. 사실 지금 상태로도 라이트 유저가 즐기기는 나쁘지 않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게임의 선두에 서서 주도하는 역할은 언제나 코어 유저층이 갖고 있습니다.

콘텐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WoW'조차도 두 개 이상의 만렙 캐릭터를 돌리는 유저가 흔합니다. 하물며 콘텐츠 소모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MORPG 장르는 어떨까요. 캐릭터 하나, 많아야 둘로 앞만 보고 달리는 상위권 유저를 만족시킬 콘텐츠가 나와야 합니다. 개발사가 규모가 정말 거대하지 않은 이상,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던스'의 맵과 세계관은 시작부터 넓은 편이 아니었고요.

카레 요리를 만들 때 웬만한 사람들은 카레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맛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밥이죠. 아름답고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냈는데 쌀통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젓가락으로 카레만 찍어먹으면서 맛을 음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식사가 되지 않지요.

멋진 시스템에 집중하다가 놀 거리라는 이름의 '밥'을 놓쳤다는 점, 그것이 '던스'가 맞이한 딜레마가 아닐까요. 재작년 '테라'가 그랬듯 약점 보완을 통해 해외 진출에서 만회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2/3. 마구더리얼 / 프로야구2K : 골목상권 맛집 싸움, 다 같이 흥할 수는 없어

▶개발사: 애니파크 / 2K스포츠-넥슨
▶퍼블리싱: CJ E&M 넷마블 / 넥슨
▶장르: 실사 스포츠 시뮬레이션
▶서비스: 2013년 3월 28일 오픈 ~ / 2013년 4월 9일 오픈 ~

▲ '마구더리얼'


올해 상반기 펼쳐진 주요 구도 중 하나가 실사(리얼) 야구게임 삼파전입니다. 엔트리브소프트의 'MVP베이스볼온라인'을 비롯해 넷마블의 '마구더리얼', 넥슨의 '프로야구2K'가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하며 선전포고를 했죠.

시기를 놓고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야구 인기가 급증했지만 온라인 야구게임은 캐주얼과 매니지먼트 위주였고, 그래픽 기술도 발전하면서 야구의 복잡한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단계가 찾아왔거든요.

문제는 실사 야구게임 자체가 '먹는 사람만 먹게 되는'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축구와는 조금 달랐죠. 야구는 보기에 재미있지만 직접 하기에는 대중적이지 않고, 그 점은 게임에서도 이어집니다. 야구를 축구만큼 직관적으로 컨트롤하게끔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 '프로야구2K'


크게 성장하지 못할 상권 하나를 가지고 큼지막한 3개 게임이 달려드는 형세, 필연적으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진운이 따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죠. 결국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한 게임은 'MVP베이스볼온라인' 하나뿐. 나머지 둘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내년을 기약하게 됐습니다.

각자 강점은 있었습니다. '마구더리얼'은 현존하는 온라인 야구게임 중 최고급의 배경 그래픽을 자랑했고 KBO 선수들의 모션을 충실히 반영했지만, 최적화와 각종 버그가 문제였습니다. '프로야구2K'는 미국의 '2K'시리즈를 들여와 매니지먼트에 기반한 개입 모드와 같은 게임성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까다로운 조작 역시 그대로 가져와야 했습니다. 2K시리즈가 NBA 쪽에서 매년 호평이 들리지만 야구 관련해서는 고전하고 있는 것도 악재였습니다.



4. 이지투온 : 입맛이 바뀌었는데, 개량 없이 그대로

▶개발사: 톡톡플러스
▶퍼블리싱: 에스지인터넷
▶장르: 리듬액션
▶서비스: 2013년 7월 16일 오픈 ~ 2013 12월 30일 (서비스 종료)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고 지난 7월 공개서비스를 실시했습니다. 한 번 실패한 후 재도전이었지요. 결과는 두 번 실패입니다. 반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12월 30일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시리즈를 거듭하며 쌓인 게임성과 수많은 명곡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까운 일입니다.

이유를 꼽자면 참 많습니다. 오픈과 함께 시작된 서버 폭주로 '기다리던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서버가 원래 안 좋아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리듬게임계는 1프레임의 차이도 감지해내는 초능력자들이 대거 은둔하는 곳. 서버렉은 치명적입니다. 여기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 버그와 핵, 불편한 인터페이스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PC플랫폼 리듬액션의 한계지요. 아케이드와 모바일이 완전히 장악한 시장입니다. 조금 강하게 표현하자면, 모바일에 비해 PC플랫폼의 경쟁력이 태생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장르가 '리듬액션'이라고 봐도 됩니다. 지금까지 검증된 생존법은 단 하나입니다. '오디션'처럼 커뮤니티 요소를 완전히 강화해버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지투온'은 그럴 생각이 없었고, 그게 어울리는 게임도 아니었습니다.

지나친 과금 체제는 결정타였습니다. 실감나는 조작 측면에서 아케이드 리듬게임이 압도적으로 우위일 수밖에 없는데, 그 틈새를 파고들려면 비용 지불이 극심하다는 약점을 PC플랫폼의 장점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지투온'은 아이템과 음원에 지나친 과금 부담을 지우면서 마지막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서비스 첫 종료 당시에도 주된 이유로 꼽힌 것들입니다.

모든 장르에서의 리메이크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현대의 감성을 반영하지 못한 '리부트'는 어디서든 성공하기 힘들었습니다. 50년 전 과자 맛을 그대로 살려 내놓는다면 처음에는 향수 때문에 곧잘 팔리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곧 현대의 입맛을 찾아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이지투온'의 재실패는 그렇게 요약됩니다.



5. 마계촌 온라인 : 아직 빵은 덜 부풀었는데... 잠깐, 오븐빼기냐?

▶개발사: 씨드나인게임즈
▶퍼블리싱: CJ E&M 넷마블
▶장르: 횡스크롤 액션 RPG
▶서비스: 2013년 2월 14일 오픈 ~ (서비스 중)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마계촌'의 온라인게임 제작 소리를 들었을 때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요. 다른 고전도 아니고 횡스크롤 아케이드의 조상님 같은 분이잖아요. 하지만 최초 캐릭터와 스크린샷을 봤을 때 "제대로 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딱.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리메이크 형태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잘 만든 게임입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에 게임 분위기는 유쾌발랄했고, 액션도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클로즈베타 당시 유저들의 평도 좋았습니다. 고전명작의 현대판 재해석이라는 면에서 이보다 좋은 분위기는 없을 듯했습니다. 그런데 정식 오픈 이후 빠르게 사그라들었습니다. 분명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갈 재미'를 만들려면 더 숙성이 필요한 느낌이었죠.

우선 액션의 배경이 되는 스테이지, 그리고 보스의 패턴이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긴 제작 기간에 비해 볼륨이 크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완하는 콘텐츠가 PvP와 도전모드인데, 직업 밸런스 역시 다듬어지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했죠. 예측하지 못한 버그가 계속 나타난 점도 아쉬웠고요.

그리고 너무 많은 곳에 과금 정책이 붙었습니다. 재료를 조합해야 하는 특성상 인벤토리가 상당히 부족한데, 오픈 초기부터 가방과 은행의 추가 공간을 기간제 캐시로 판매하면서 유저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죠. 최대한 많은 유저를 유치하면서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에 타격은 더욱 컸습니다. 게임사가 수익을 시도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실제로 프리미엄 패키지는 적절한 가격에 제공되었지만, 오픈베타임에도 불구하고 무료 플레이에 제약이 심했다는 점은 실착으로 보입니다.

여러가지로 참을성이 필요했습니다. 게임의 밸런스나 과금 정책에서나 마찬가지로요. 조금 더 숙성된 채로 알맞게 구워져 나왔으면, 사랑받는 메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6. 야구의 신 : 주방장님, 요리를... 요리를 하고 싶어요

▶개발사: 네오위즈게임즈
▶퍼블리싱: 네오위즈게임즈
▶장르: 야구 매니지먼트
▶서비스: 2013년 3월 13일 오픈 ~ 2013년 10월 29일 (서비스 종료)



사실 '대박'을 예상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지스타에서 처음 만난 '야구의신'은 제법 빼어난 기본 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구 매니지먼트 장르에 충실한 작전 싸움과 심리전이 돋보였습니다. 같은 장르 게임들에 비해 과금 부담이 적어 보이는 시스템도 기대하기에 충분했죠. 베이스볼 모굴 엔진을 들여와서인지 선수 자료도 방대하고 과학적이었습니다.

이런 게임은 대세가 못 될지라도 장기적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게 보통입니다. 개발과 서비스를 담당한 네오위즈게임즈 역시 그 사실을 염두했을 겁니다. 문제는 내부에 있었죠. 작년 12월과 올해 초에 걸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한창 클로즈베타를 통해 막바지 완성도를 갖춰야 했던 '야구의신'에게 특히 직격탄이었습니다.

핵심 개발진들이 도중에 빠져나갔고, 게임은 '나쁘진 않은데 뭔가 의도만큼이 아닌' 상태로 시장에 나왔습니다. 제대로 이슈를 끌 만한 프로모션도 없었고요. 결국,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3월에 공개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이 10월에 서비스 종료를 맞이한 것이지요.

사측이나 개발팀이나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갑갑한 경우가 아닐까요. 좋은 재료를 가져와 공들여 손질했고, 이제 간을 맞추면서 냄비에 끓이면 되는데 요리사를 교체해야 하는 거죠. 나가는 사람의 허탈감과 더불어 새로운 팀의 혼란도 생각보다 상당할 겁니다. 힘들게 요리했지만 음식은 완성하지 못한 '야구의신'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입니다.




2013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강의한 이영아 교수의 한 마디가 잔잔한 감동을 준 일이 있습니다. 네 살 아들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Fail'이 뜨자 좋아했다고 합니다. 뜻을 아느냐 물으니 '실패'라고. 실패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아들의 답변은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하라는 거야"

모든 게임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피땀 흘려 노력하지 않은 게임도 없을 겁니다. 경쟁을 통해 유저들의 선택을 받은 게임은 오래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게 되어 있지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허탈한 업계 여러분도,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도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다시 달려갈 수 있는 2014년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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