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명 리드 디자이너의 강연 주제는 '야생의 땅: 듀랑고의 계산 프로세스 중심 게임 디자인'

마비노기와 마비노기 영웅전을 개발한 '파파랑' 이은석이 개발한 모바일 게임이라는 소식에, '야생의 땅: 듀랑고'는 처음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특히 독특한 콘셉의 포스터나 티저 영상이 공개된 이후에는 게임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마저 더해졌다.

NDC 2014의 최대 관심사 역시 듀랑고였다. 강연자는 듀랑고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 그는 계산 프로세스라는 독특한 단어를 꺼내들며 듀랑고의 핵심 디자인에 어떤 혁신이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게임을 만들기로 했는가 - 이론적 배경

"먼저 듀랑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게임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께요."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는 '프로세스와 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게임은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섞어 정보를 만들어 낸다. 프로세스는 알고리즘, 수식을 뜻하고, 데이터는 텍스트, 사운드 같은 것을 말한다.

게임은 상호 작용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게임은 룰을 통해 정보를 구성하고 유저의 조작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유저는 시청각적인 자료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만의 패턴을 확인하고 판단하며 이를 축약하는 성질을 가진다. 그래서 유저들은 게임속 세상을 마음속에 재구성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2013년 해외 유명 게임 매체 '가마수트라'의 필자인 타이난 실베스트는 '플레이어가 조작했을 때 받아들이게 되는 시청각 정보의 격차가 크게 되면 재미가 없고, 너무 비슷하면 지루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플래피버드에 사람들이 빠지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현실과 게임 간의 차이가 적절히 있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플래피버드에 열광했던 것이다.




"데이터 중심의 게임이란?"

그는 '진주 목걸이 구성'을 예로 데이터를 이용한 방식과 프로세스를 이용한 방식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진주 목걸이 구성은 '게임 스테이지-스토리 컷신- 게임 스테이지'가 반복되는 구성이다.

보통 게임 내 스테이지를 즐길 때 유저들은 자신의 행동을 게임에 입력한다. 그리고 입력은 계산된 프로세스를 통해 게임 내에서 흥미로운 상황을 만든다. '언챠티드', '모던워페어'를 포함해 대부분의 콘솔게임이 이 방식을 따르고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전통적인 미디어 작법 즉 '소설'이나 '영화'같은 형태에서 볼 수 있으며, 몰입감과 임팩트를 주기 쉬운 방식이다. 그러나 데이터 중심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집약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더군다나 데이터방식의 게임은 유저가 다시 플레이하게 만들기가 힘들다. 유저는 자신이 즐기는 게임의 스토리, 즉 데이터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헤비레인'이라는 게임을 통해 이런 단점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볼 수 있었다. 다중 스토리 혹은 멀티 엔딩을 통해 게임을 여러번 플레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소셜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여러 유저들의 행동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유저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다른 방향성을 지니는 전통적인 MMORPG나 PVP 기반의 게임을 통해, 소셜 프로세스가 중심인 게임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소셜 프로세스 게임에서는 유저들의 움직임과 프로세스가 곧 게임 콘텐츠가 된다.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요즘은 게임이 아니더라도 이런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SNS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데이터 중심의 강렬한 체험과 소셜 프로세스의 의외성이 더해진 대표적인 예다. 여러 유저의 행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재미를 느낄수 있고 유저들 사이에 발생 되는 행동들에 의해 게임의 주요 콘텐츠가 생산되는 현상을 관찰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와 소셜 프로세스가 더해진 게임은 개발할 때 많은 비용이 들고, 유저가 어떤 이벤트를 만드는지 알 수 없는 문제점을 가진다. 즉 데이터 프로세스와 소셜프로세스가 가진 단점들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랜덤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랜덤 프로세스를 이용한 대표적인 예로 디아블로3를 들 수 있다. 디아블로3는 아이템 드랍의 랜덤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오늘 전설템 2개나 먹었어, 10번 잡았는데 1번도 안 나왔네 조금 더 잡아봐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어 계속 즐기게 유도한다. 그러나 사실 디아블로 3가 가지고 있는 방식은 예전부터 존재 했던 방식 중 하나다.

스키너의 이론에 의하면, 사람에게 행동에 따른 보상을 제공할 경우 특정 행동을 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방식에서는 고정 보상보다 랜덤 보상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했다.

"계산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계산 프로세스를 이용한 게임으로는 FM이나 문명,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장르를 예로 들 수 있다. 유저가 행한 행동이 게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유저는 매번 달라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유저는 변화된 환경을 학습하고 자신이 원하던 바를 게임에 투영한다. 보통 계산 프로세스를 적용한 게임들은 유저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계산프로세스를 이용한 게임의 경우에는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굉장히 많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계산프로세스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물리연산, 에이전트, AI, 절차적 생성, 조합'을 들 수 있다. 먼저 물리연산은 실제 세계에서 보이는 물리법칙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하프라이프의 경우에는 폭탄을 설치하고 총으로 사격했을 때, 폭발과 동시에 유저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바로 알게 된다.

두번째는 에이전트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이다. 게임 내에서 단순한 룰에 의해 움직이는 다수의 에이전트가 활동하는 형태로, 에이전트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 창발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심시티에서 발생하는 교통체증을 예로 들 수 있다.

세번째는 AI(인공지능)다. AI는 게임 내 어떤 개체가 지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사실 유저가 봤을 때는 잘 모르지만, 개발자가 이를 실행 시키기 위해서 집어넣은 수많은 프로세스가 포함되어 있다.




네번째, 절차적인 생성이다. 게임 환경이나 개별 오브젝트를 정해진 룰에 의해 생성시키는 작업으로 적은 데이터량을 이용해 다양한 게임 상태를 만들 수 있다. 문명의 경우 게임을 생성할 때마다 자원의 위치가 다르고, 지형의 위치가 다르다. 이는 개발 할 때 자동으로 생성 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집어넣어 연산 처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다.

다섯째, 조합이다. 게임 내에서 조합 규칙에 의해서 결과물을 만들게 하는 방법이다. 조합 방식을 이용한 마인크래프트는 유저가 조합 규칙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모바일에서는 왜 계산프로세스를 도입할수 없었나?

모바일 시장 초창기에는 용량이 부족하고 CPU에 대한 제약도 많아 데이터 중심의 게임을 만들기 어려웠다. 또한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의 제약으로 인해서 소셜 프로세스형식도 적용하기 어려웠었다. 덕분에 랜덤 프로세스를 이용한 퍼즐과 런 장르가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유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모바일환경은 UX(유저경험)을 전달하기가 힘들다. 작은 기기의 터치스크린을 이용해야하는 문제가 있어, 면밀한 시청각 체험을 전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유저의 정교한 조작도 유도하기 힘들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클라우드 기술과 분산 서버 기술이 한층 발전하고, 낮은 비용으로도 서버 CPU 및 저장 공간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즉 예전엔 모바일 기기에서 부담 되었던 계산 프로세스도 이제는 서버에 이전할 수 있어 계산 프로세스 방식을 모바일에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계산 프로세스에 소모되는 부분을 서버로 이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야생의 땅 듀랑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야생의 땅 듀랑고에게 입혀진 계산 프로세스는 어떤 모습이었나

"논리적인 규칙을 만들고, 유저간의 소셜 프로세스가 일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조합을 제공한다."

'야생의 땅 듀랑고'는 '심시티'와 '문명'에서 사용된 절차적 지형 생성 시스템을 도입했다. 게임 내에 논리적인 규칙을 도입하고, 규칙에 맞는 지형과 기후가 게임에서 생성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에 반응하는 동물과 식물을 더했다. 동물 생태계의 경우에는 '욕구'라는 프로세스를 적용했고, 식물은 온도, 습도, 생물량, 번식 패턴을 포함시켰다.

또한 '야생의 땅 듀랑고'에 시간이 흐르더라도 게임에서 발생한 현상이 지속되는 영속성을 더했다. 예를 들면 나무를 베었을 경우 그 자리에 나무를 심거나 자라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베어진 상태로 유지된다. 즉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는 유저들이 실행한 행동들이 그 세계에서 남게되는 것이다.

계산프로세스를 더한 '프로토타입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는 다이나믹한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식물이 없어 초식동물들의 이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었고, 배가 고파 티라노사우르스가 동물들을 마구 잡아먹는 장면도 연출됐다.



"계산 프로세스에는 함정이 존재합니다."

완벽해 보이던 계산 프로세스에서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일단 예측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가상의 예측 모델을 만들어 문제점에 대비해야한다. 모델을 통해 변하지 않는 조건과 개발자의 의도를 더해, 게임이 개발자가 의도한 상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약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제약을 더하게되면,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너무 제약하지 않는다면 말도 안되는 현상이 발생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또 하나 계산프로세스만이 게임 개발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설명했던, 데이터, 랜덤, 소셜 프로세스도 중요하다. 이 세가지 프로세스를 통해 디테일이 좋은 그래픽을 표현할 수 있고, 유저가 선택하는 방향에 따른 적당한 랜덤 보상으로 게임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유저와 유저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도 할 수 있을 뿐더러, 유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래를 통해 게임 내에 거시 경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Easy to Learn Hard to master.' 간단해 보이는 단어이지만 게임에서 구현하기 매우 어려운 작업중 하나다. 유저가 쉽게 경험을 쌓을수 있도록 유도하고, 경험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과정을 어렵게 만드는 작업이다.

보통 개발 과정에서 현실성이 높으면 게임이 더 재미있겠지? 같은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과도하게 현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현실 재현은 게임에서 필요없다. 유저가 게임에서 역 이용할 수 없는 룰은 있으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는 "계산프로세스 게임의 경우에는 개미집 신드롬에 주의해야한다. 개미집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개미들의 움직임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내부에서 일을 하고있는 개미들은 힘든 상황인 경우가 많다. 만약에 이안에 있는 개미가 유저라면? 사실 하나의 공간에서 유저개인이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이지, 전체적인 사회를 지켜보는 입장의 재미만 고려해서는 안된다."라는 말과 "모바일 게임의 다음 혁신은 계산 프로세스에 있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