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자가 세 명이었습니다. 인원수만 보면 키노트 규모입니다. 모두 그랬지만, 그중 한 사람의 명함은 특히 무거웠습니다. NXCL 대표, 넥슨 컴퓨터박물관 최윤아 관장입니다.

클래식 '바람의나라' 복원 이야기. 지금도 서비스 중인 '바람의나라'의 원년도 버전 복원 프로젝트가 강연 주제였습니다. 잘 알고 있어요. 게임 복원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것. 백업 해뒀던 걸 꺼내 덮어씌우는 정도론 어림도 없습니다. 리메이크와는 다른 개념이죠.

상대도 상대입니다. '바람의나라'는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습니다. MP3 플레이어보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익숙하던 시절에 태어난 작품입니다. 윈도우 버전 하나만 바뀌어도 몇가지 프로그램이 먹통이 되잖아요. 몇 세대를 뛰어넘는게 쉬울 리 없죠.

결실이 나왔다는 소식은 2014년 5월 23일에 들었습니다. 복원된 '바람의나라' 클래식 버전은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추억, 누군가에겐 꿈, 그리고 가능성을 주었던 작품을 제주도 여행 때마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작게나마 흐뭇합니다.

사연이 적을리 없었습니다. 마침표가 찍힌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따끈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 강연은 최윤아 관장, 이효진 이사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편의상 기사에서는 이효진 이사의 강연을 앞으로 두었다는 것, 아울러 녹취록 형태로 본문을 구성했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 저스트나인 이효진 이사


복원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가장 먼저 논의한 것이 '어떤 형태로 복원할까'였는데요. 96년에 윈도우로 출시된 '바람의나라' 초기버전으로 가닥을 잡았고, 바로 자료 수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소스코드, 실행파일, 문서 모두 없었어요. 그냥 군데군데 흐려진 기억만 남아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복원이 굉장히 어려운 상태였죠.

노선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온라인 게임 특성상, 기록상 최초보다는 다수 유저의 기억 속에 최초로 남아있는 버전을 복원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유저 분들이 기억하는 초기 '바람의나라'는 98년 버전이었어요.

바로 자료 수집에 들어갔습니다. 넥슨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백업은 물론, 홍보 문서, 그리고 당시 윈도우 재설치할 때 남은 자료 등이 있는지 개발자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봤습니다. 잡지 부록에 번들 형태로 나간 게임이나 공략집에 들어간 게임 클라이언트가 있는지도 샅샅히 뒤졌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게임 개발사들은 서버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리소스를 백업하잖아요. 1996년 당시에는 데이터 묶음을 CD에 하나하나 구워서 은행에 보관했어요. 그 때 보관된 CD에서 많은 리소스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확인해보니, 97년 게임 리소스에 98년 서버, 그리고 99년의 클라이언트 소스가 가장 원년 버전에 근접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합친 뒤 구동해봤어요. 처음 게임 구동한 모습은 이랬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안돌아갔죠.



파일 확장자가 BMP이지만, 당시 BMP는 알고리즘이 달라서 지금 이미지뷰어로는 확인조차 불가능했죠. 그렇다고 요즘 쓰는 JPG같이 통일된 포멧이 있는게 아니었어요. 개발사마다 포멧이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당시 개발자들에게 이거 여는 법 아냐고 하나하나 물어봤는데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꾸준히 복구를 진행하면서 당시 자료도 더욱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 결과, 깨지던 그래픽들을 조금씩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또 처음 복원하여 사용한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구조가 달라서 이것을 통일하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복원된 '바람의나라 1996' 버전에 특별히 적용한 기능도 소개하겠습니다. 맨 처음 복원 작업에 착수했을 때, 이 게임이 '전시되는 형태'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진짜 박물관에서 체험하는 버전 형태로 제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에 의해 저희가 추가한 시스템이 '당시 네임드 유저 ID로 플레이하기'였습니다. 2000년 버전에서 '바람의 ID'라고 불린 네임드 계정명을 '바람의나라 1999' 버전에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로 둔 거죠.



참고로 복원 DB는 96년 버전이었는데, 그중에는 우리가 복원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분들도 있었어요. 결국 그나마 복원할 수 있는 외형을 가진 유저 분들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보시면 '유령'이 많아요. 당시 어려운 보스 몬스터를 잡다가 로그아웃을 했는지, 아무튼 유령으로 남은 분들이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살려주세요'라는 명령어를 치고 부활한 다음에 게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추가된 점을 소개하자면, 우선 전체이용가 딱지가 붙었고요. 한국 온라인 게임이니만큼,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청소년은 접속이 불가능합니다(웃음). '바람의나라 1996'은 넥슨 컴퓨터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가능하니까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다운받아서 즐겨보세요.







안녕하세요. 최윤아입니다.

아시다시피 '바람의나라'는 1996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최장수 온라인 게임입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도 높습니다. 몇 년간 '바람의나라' 초기버전 복원에 힘써 왔고, 결국 해냈기에 지금 이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역사를 보존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디지털매체 보존 처리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뉴욕 현대박물관을 비롯한 대형 박물관에서도 이미 디지털 작품을 전시중이고요. 소장품 중 게임도 있습니다.


▲ 넥슨컴퓨터박물관 최윤아 관장


몇 가지 사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작년 5월 즈음일겁니다. '페르시아왕자' 초기버전 복원하는 장면입니다. '조던 매크너'라는 개발자가 14년에 걸쳐 초기버전의 소스코드를 복원했습니다. 또, 바로 얼마 전이죠. 2014년 5월에는 세계 최초의 머드게임이 처음으로 소스코드를 공개했습니다.

이런 디지털 작품 복원은 예술계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는 '앤디 워홀'의 작품도 '아미가 1000'이라는 컴퓨터로 복원된 사례가 있습니다. 한 작가가 3년에 걸쳐 복원을 진행했고, 이러한 과정은 곧 다큐멘터리로도 상영된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디지털 보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실제로 디지털 매체는 데이터 보존에 한계가 있습니다. 화두가 분명하고, 항상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참고로 소스코드가 아니라 그 때 당시의 기술로 작품을 복원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도전한 사례가 없습니다. '바람의나라' 복원 프로젝트는 그 부분에 기초를 뒀습니다. 누구도 시행하지 않았던 일인 만큼, 그 가치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바람의나라'와 과거 '바람의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개발 언어입니다. 그 때는 컴퓨터와 대화하듯 하나하나 개발 언어를 입력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이 기술 자체가 하나의 유물이 되었고요. '바람의나라 1996'은 과거의 핵심 기술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시작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료가 많이 부족했어요. 지금은 '바람의나라'가 세계최장수 온라인게임이라는 가치를 지녔기에 보존이 필수지만, 당시로선 보존 자체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초기 개발자들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것부터 시작했지요. 넥슨 김정주 회장, 서민 대표 등 당시 복원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게임은 문화입니다. 사운드, 그래픽 등 지금까지 개발된 기술의 집합체이자 융합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번째로 인터넷을 개발했고, 빠르게 발전해 IT 최강국 중 하나로 자리메김했습니다. 반면, 디지털 문화 보존 및 복원 사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입니다.



'바람의나라 1996'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해서 디지털 복원 사업 규모가 활성화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디지털 유산을 보존해나가는 데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온라인 게임 복원은 아직 어디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가장 잘 할 수 있습니다. IT강국이 되는데 꼭 필요한 밑거름을 만드는 사업인 만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지금 이시간이 여러분들에게 보다 멋진, 그리고 조금 다른 미래를 열어가는 체크포인트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